역사/아프리카 역사

유럽인의 아프리카 탐험과 침략과 약탈

africa club 2018. 4. 6. 10:04


유럽인들에게 암흑의 대륙으로 여겨지던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지리적 발견과 탐험이 이루어졌다. 17세기 이후부터 이루어진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탐험은 경제적 목적과 아프리카 내륙에 대한 지리적 관심으로 시작되어 노예무역 폐지 등으로 이어졌으나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침략과 약탈의 역사였다.




<지도유럽인의 아프리카 내륙탐험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니제르 강에 대한 탐험이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니제르강의 탐험은 팀북투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팀북투는 황금의 도시로 유럽인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며 이슬람문명이 번영하고 있었다. 1828년에는 프랑스인 르네 까이예(René-Auguste Caillié)가 팀북투를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팀북투에 도달했으며 1952년에는 독일인 하인리히 바르트(Heinrich Barth)가 팀북투를 방문하여 자세히 기록을 남기고 있다. 주로 감비아 강과 세네갈 강의 탐험을 통해서 이곳에 도달하려 하였고 사하라사막을 횡단하여 시도되었다. 1975년 뭉고 파크(Mungo Park)가 세구에서 실라까지 니제르 강을 거슬러 올라감으로서 니제르 강을 성공적으로 탐험하고 아프리카 내지 탐험(Travels in the Interior Districts of Africa)을 출판했다


1823년에는 데남 (D. Denham), 클레퍼튼(H. Clapperton), 우드니(W. Oudney)등 세 사람이 처음으로 차드 호수를 발견하고 차드 호수와 니제르 강이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1830년 리차드 란더(Richard Lander)가 동생과 함께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카누탐험을 성공시킴으로서 서부아프리카의 베일이 벗겨지게 되었다. 기니에서 북상하여 부사에 이르렀으며, 강을 타고 내려가 대서양으로 나가 처음으로 니제르강의 하구를 완전하게 밝혀냈다. 이 결과를 1832나이저 강의 수로와 하구를 탐험한 탐사일지(Journal of an Expedition to Explore the Course and Termination of the Niger)로 출판하게 되었다.


1769년 청나일과 백나일로 이루어진 나일 강(6690km)은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서 합쳐지는데 영국인 제임스 부르스(James Bruce)가 이디오피아의 기이슈(Geesh) 마을에 있는 한 우물이 청나일강의 근원지라는 것을 밝혔으며 나일강의 수원을 찾아서(Travels to Discover the Source of the Nile)이란 여행기를 출판하였다.


남부 및 중부아프리카는 약 30년 동안 약 4차에 걸친 탐험과 탐사가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 선교사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마무리를 스텐리가 하였다. 리빙스톤은 진정으로 아프리카를 사랑한 사람이었으며 인도양에서 대서양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 합법적인 무역을 하게 함으로서 노예무역을 근절시키고자 탐사를 하였다. 1차 탐험에서는 1849년 칼라하리 사막을 건너 엔가미 호수를 발견하였고 2차탐험 때는 1853년부터 1864년까지 잠베지강을 탐험하였고 1855년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하였다


1857년에는 남아프리카에서의 선교여행과 조사(Missionary Travels and Researches in South Africa), 1865년에는 잠베지 강과 그 지류 탐험에 대한 이야기(Narrative of an Expedition to the Zambezi and Its Tributaries)를 출간하였다. 30년간 남부·중앙·동부 아프리카에서 펼친 그의 여행과 그리스도교 선교활동은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의 태도에 전례 없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탐험한 지역은 유럽인의 발길이 한번도 닿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의 지리적·기술적·의학적·사회적 발견은 다양한 지식을 제공해 아직도 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진정으로 아프리카가 근대사회로 발전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