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에 접한 동부 아프리카 해안은 계절풍을 이용한 무역을 통해 아라비아, 인도, 그리고 멀리 중국과 왕래했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내륙지방과의 무역은 일찍 시작되었고 인도양은 남부 아프리카에서 채굴된 금, 구리, 철 등의 주요 목적지였다. 특히 14-15세기에 스와힐리 해안과 짐바브웨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는 이러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스와힐리 무역망은 해안가와 내륙지방을 따라 확대되어 갔으며 내륙지방과의 장거리 무역은 18-19세기에 급격히 확대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 일부 학자들은 스와힐리 문명이 서구 학자들에 의해 정체성을 분명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스와힐리 문명을 인도양의 대양문명(大洋文明)으로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스와힐리어 문명은 인도양 무역로를 중심으로 성장한 동아프리카 해안의 도시국가였다. 스와힐리인들은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서 온 이슬람 선원들과 교류하였고, 다우(dhow)선으로 알려진 배를 이용하여 인도양 무역에 참여하였다. 서기 1천년 무렵에는 아프리카의 스와힐리 도시국가들은 모가디슈(Mogadishu : 현재의 소말리아)부터 소팔라(Sofala : 현재의 모잠비크)에 이르기까지 약 120여개가 있었으며 국제해상무역에 깊이 관여했다. 13세기 무렵에는 킬와(Kilwa)를 중심으로 스와힐리 상인들이 해안을 따라 내려가서 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짐바브웨 지역의 고대왕국과 황금무역을 하였다.
탄자니아 남부에 위치한 킬와는 쇼나(Shona)족이 지배한 짐바브웨의 금광을 기반으로 중국, 인도 그리고 다른 이슬람 세계와 광범위하게 무역을 했다. 이러한 도시국가를 기반으로 한 해상무역 사회는 아랍과 페르시아의 이민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의 문화를 모두 근본으로 삼은 독특한 스와힐리 문화를 발달시켰다. 많은 이슬람 도시를 여행한 이븐 바투타는 킬와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이고, 건물들이 매우 고상하며, 그 곳에 사는 주민들 역시 고결하고 덕망 있는 이슬람 교도라고 서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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