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학자들은 현재 카메룬에서 케냐까지 광활하고 넓은 동부 지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쪽까지 걸쳐 살고 있던 부족들의 언어와 문화에 주목할 만한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아공의 블레이크(W. H. I. Bleek)는 1862년 동남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부족들의 언어와 문화에 주목할만한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들을 반투(Bantu)인, 반투 문화(Bantu culture)로 정의하였다. 동남부 아프리카의 언어에는 모두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은투(-ntu)’라는 어근, 또는 이와 비슷한 단어가 들어 있었다. 이곳의 대부분의 언어에서 ‘바(ba)’라는 접두어는 복수를 지칭했으므로 ‘반투’라는 단어는 ‘사람들’을 뜻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농사법, 그리고 가축재배법의 근원과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아프리카의 넓은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는지가 20세기 중반의 중요한 의문이었다.
<지도> 반투인의 이주 정착과 철기문화의 전파
반투어 사용자들은 철기문화와 가축이라는 혁명적인 생산방식을 가지고 아프리카의 선주민이었던 피그미족과 코이코이족들을 몰아내고 원주민이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반투 확장은 일반적으로 군사적 정복이 아니라 언어는 물론 흡수와 통합이 일어났으며 접촉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경제적 제도의 전파와 동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반투 “이민”의 주요한 두 가지 특징은 첫째,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이동은 매우 느리고 매우 짧은 거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큰 무리의 이동보다는 일반적으로는 소규모 친족 집단이나 무리들이 이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강조해야 할 두 번째 특징은 반투어 사용자와 아프리카 대륙에 거주하는 다른 아프리카 민족들 사이에 상당한 상호작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충돌과 갈등보다는 동화라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반투어 사용자들이 새로운 정치 경제 및 기술을 전해주었지만 반투이들도 코이코이족의 클릭 소리를 받아들이고 부계혈족제도와 연령등급제도에 기반을 둔 정치제도를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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