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이미지와 역사․문화적 정체성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여전히 반쯤 벌거벗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알 수 없는 주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아프리카(Primitive Africa)로 인식되고 있거나 아니면 열대우림의 정글과 야생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야생의 아프리카(Wild Africa)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좀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발전되지 못하고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아, 가난, 질병, 내전, 구데타, 부정부패 등 아프리카는 희망이 없는 비관주의(Afro-Pessimism)를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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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들은 아프리카를 정확하게 보고 있지 못하고 일부분만 보는 것으로 아프리카 진출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는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에 역사적으로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지배 통치하였던 국가들이 세계사 속에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정치적 경제적 역사문화적인 분석이 물론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우리에게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역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륙으로 53개국이라는 국가가 속해있으며 약 10억에 이르는 인구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원의 보고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울러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도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개방경제로의 전환을 채택하고 있어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편입이 가속화됨으로서 21세기에는 또 다른 위상을 갖게 될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친구’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언제나 우월한 인종으로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일을 같이하면서 느낀 점은 이들은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오랜 기간동안 외국인들을 대하는 ‘노하우(?)’가 잘 준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사에 진정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정말로 어떤 계기가 없다면 외국인들은 ‘친구’라기 보다는 ‘이방인’ 또는 ‘침략자’ 등으로 생각한다. 또한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검둥이’, ‘머리 나쁜 사람들‘ ’게으름뱅이‘ ’흑인들은 안돼!‘ 라는 의식을 저변에 깔고 대하기 때문에 좀처럼 ’차별‘이라는 벽을 넘기가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 역사와 문명이 존재했었는가에 관한 논란은 최근까지도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일부 인종차별주의와 문명 우월주의자들의 중요한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또한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역사는 백인이 도래한 이후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설사 그 이전에 어떠한 원주민의 사회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야만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역사학자 토인비(Anold Toynbee)로 인한 바 크다. 그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이집트, 안데스, 중국문명 등 세계의 문명을 21개의 문명으로 분류하여 상호비교연구를 하는 가운데 아프리카의 문명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또 21개의 문명의 주체를 인종에 따라 분류할 때에도 “어느 문명에도 적극적으로 공헌하지 않는 것은 흑색인종뿐이다”라고 흑인의 문명을 부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일반적인 무지를 가져오게 된 이유는 아프리카의 '타자(他者 ; Others)화'되고 ‘주변부화(Marginalization)'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머피(E. Jefferson Murphy)교수의 말처럼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하고 백인들의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경멸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유럽’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필요로 했던 유럽인들은 非유럽 세계를 자신들의 타자로 상정하였다. 유럽은 ‘타자 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보편적 규범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우월한 인종으로 확인하였으며 어떤 면에서 유럽은 非유럽인들에게 부과한 인식론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럽문명의 토대가 되는 백인과 非백인, 문명과 야만, 진보와 정체 등의 개념이 정립되고 담론이 형성되었으며 유럽 지식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근대를 보편적 근대로 상정하고 공간적․시간적 동질화를 추구하는 역사 인식을 낳았으며, ‘유럽의 현재’를 ‘非유럽인의 미래’로 투영함으로서 역사적 진보를 정의하였다. 유럽이 ‘근대’라면 非유럽은 ‘전근대’ 또는 ‘非근대’여야만 했다. 서양인들이 非서구세계에 대해 행한 차별하기의 가장 뚜렷한 양상은 끊임없이 진보하는 서양에 대조되게 非서구세계를 정체한 혹은 퇴락한 사회로 표상하는 것이었다. 유럽이 자유, 진보, 문명, 역동성을 의미한다면 非유럽세계는 예속, 정체, 야만, 무기력을 의미하였다.
오늘날 벌어지는 아프리카의 많은 갈등과 문제들은 유럽의 식민통치체제와 맞물린 경제, 환경, 정치, 사회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과 마찬가지로, 식민통치 이전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아프리카 역사의 일정한 양식과 정체성이 아프리카의 식민지 경험에도 영향을 미쳤고 식민지 이후의 아프리카를 형성하는 데에도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 대륙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이 역사적 도전에 처했을 때마다 반응했던 고도의 적응성과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자기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했고 또 지금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아프리카는 서구열강이 오랜 기간동안 식민지배와 침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처럼 완전히 서구문화에 동화되지 못했는가?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가 월등하고 우월하다면 당연히 아프리카라 문명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인들의 지배와 침탈의 과정이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해 이익이 덜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은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을 살펴본다면 절대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인도등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서구열강으로부터 지배를 벗어나고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전통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프리카에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이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들 나름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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