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후 아프리카국가들이 일당제 체제를 선택한 이유는?

2018. 4. 13. 15:54


독립을 얻은 새로운 아프리카 국가는 국민의 정치적 이익의 수준을 지속시키고 국민을 통합시키는데 실패했다.


많은 독립 아프리카 국가들이 일당제를 채택한 것은 국가 건설과 경제 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일당제는 정당내부에 심각한 경쟁과 분열을 막을 수 있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일당제에 대한 반대 주장에 대해 유럽인이 고안한 제도보다 집단 내부의 민주주의를 반영하는 아프리카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행히도 일당제는 정당의 권력집중을 합리화시키는데 사용되었고 정부는 점점 더 권위주의적이며 관료정치화 되었다. 또한 어떤 때는 일당제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민족적, 지역적 집단을 국가라는 제도 속에서 붙잡아 두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일당제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했다.


정치적 영역에서 합법적 경쟁은 불가능했고 부패한 정부 관료가 경제적으로 착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적 인물의 출현은 이단자로 여겨지거나 배제되었다. 오래지 않아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구테타를 경험해야 했고 역 구테타가 발생하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문제로 인해 아프리카의 정치적 문제는 식민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취약성과 함께 작용하여 더욱더 상황을 악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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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왜 발전하지 못하고 1세기 동안 정치적 불안정을 겪어야만 했는가?

2018. 4. 13. 15:53


1960년대 독립 전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주의의 흥기와 함께 탈식민화로 인한 해방을 맛보게 되어 아프리카의 낙관주의(Afro-optimism)가 예고되었으나, 국가체계의 구석구석에 묻어있는 과거 식민지 유산과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하여 서구에 대한 재의존과 냉전체제 속에서 내전 및 국가간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식민지 독립 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위적으로 형성된 식민/제국주의의 조형물이었다. 아프리카국가들은 독립에 대해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독립 후 아프리카국가들은 민족집단의 통합과 국가의식을 함양하는데 최우선적인 목표를 두어야만 했다.


식민 통치로부터 자유를 얻은 초기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흥분과 희망이 가득했다. 곧바로 인종주의, 제국주의의 통치라는 명백한 짐이 사라진 것이었다. 정부 청사에는 새로운 깃발이 펄럭였고, 유럽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이 정치 권력을 쥐었으며, 세계가 신생국들을 자치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독립의 흥분 뒤에는 정치 지도자들이 곧 대면할 수많은 문제들이 가려져 있었다.


시작부터, 독립 후의 지도자 자리를 기대하고 있던 당파들 사이에 내부 갈등이 빚어졌다. 민족주의 운동 단체로 이루어진 반식민주의 기구들은 민족, 지역, 이데올로기적 계통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독립을 이루자, 식민주의 압제에 대한 반대라는 공통적 유대가 약해지거나 사라지면서 당파간 또는 당파내 갈등이 생겨났다. 불화를 일으킨 이슈 중 가장 큰 것은 정부와 여당내 권력에 대한 접근이었다. 중앙 정부건 지역 정부건 간에 정부 내 직위는 영향력 있는 결정과 자원에 대한 지배력, 개인적 이익에 대한 접근을 의미했다.


탈식민화 시기의 선거로 국가 지도자가 된 반식민주의 지도자들은 깨지기 쉬운 국가적 화합에 직면했다. 식민주의자들이 통치한 지역은 다양한 문화와 언어 집단, 정치적 존재, 상업 지역이 해당되었다. 식민 통치기에는 식민지 내에서 사람들을 통합하거나 단결시키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통제 수단으로 민족 집단들이 서로 대립하게 하는 경우가 잦았다.


독립 이후 취약한 국가체제를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 계층, 엘리트 집단과 같은 경쟁 세력 간의 갈등과 부와 고용의 창출, 교육, 및 국가 자원의 배분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프리카의 정치구조는 정쟁의 장이 되었고 그 뿌리가 허약했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 되었다.


독립초기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낙관주의가 팽배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정치적 식민주의는 끝났지만 경제적인 간접지배를 통해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 독립 이후 40여 년간 잘못된 통치와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낙후, 빈곤, 불평등 악화. 정치적 실패로 이어졌는데 이는 과거 식민시대의 정치형태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1970~1980년대에 국가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또한 정치행동을 조작하기 위한 도구로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데올로기를 채택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 이는 식민지배시기부터 이어온 외국인들의 착취를 없애고 식민지 이전 아프리카의 과거에 있었던 공동체적 평등주의 요소를 부활하자는 전략의 표출이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80년에 들어와 일당독재체제 또는 군사독재정권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정치인들의 폐쇄적인 정치행태와 개발독재를 정당화 하려는 욕심은 군사정부가 출현하게 하였다. 아프리카 특징적인 정치 형태는 공직자의 부정부패, 정부의 신뢰성 결핍, 그리고 인권침해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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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당시 왜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과정이 달랐을까?

2018. 4. 13. 15:52


독립의 과정은 식민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었다. 유럽인들이 이주하여 정착하고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다른 독립의 과정을 겪었다. 즉 백인 이주민들의 이익에 따라 독립의 방식도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지도> 식민지배국가와 아프리카의 독립년도



식민지 해방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벨기에가 독립을 내주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민 열강들이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해방시킨 과정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각각의 경우는 서로 달랐다. 어떤 경우, 식민지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그 지배자가 영국이건, 프랑스이건, 벨기에건, 포르투갈이건, 비슷한 모형을 따라야 했다


예를 들어, 알제리,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케냐, 나미비아, 자이레, 짐바브웨 등의 독립운동은 코트디부아르, 어퍼볼타(부르키나파소), 탄자니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지역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고 커다란 충격을 동반했다. 전자의 경우 유럽 이주민의 이익이 민족투쟁의 성질에 큰 영향을 미쳤고, 후자의 경우에는 이주민의 이익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성격과 조직 능력 역시 중요한 변수로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식민 열강에 의해 지배를 받았냐는 사실보다는 그 식민지에 유럽인 이주민이 살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식민 해방의 유형과 방법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주민이 없는 곳에서는 식민 열강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자치를 허용하는 데 수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주민이 있는 경우에는 식민 해방의 과정에 아프리카인들과 유럽인들 간의 폭력적 갈등의 기간이 거의 특징적으로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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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리카] 연방반대주의자들은 스코틀랜드 국민투표의 교훈을 배워라. 탄자니아

2015. 3. 5. 18:33


본 게시물은 생생한 아프리카 소식을 전달하는 아프리카 뉴스 전문 프로젝트 블로그, 

잠보리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http://blog.naver.com/jamborica/220138924490





http://allafrica.com/stories/201409220456.html

 

​연방반대주의자들은 스코틀랜드 국민투표의 교훈을 배워라

 

CHAMA Cha Mapinduzi(이하 CCM)의 총재인 Abdulrahman Kinana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영연방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운동의 실패가

탄자니아의 국민 절반만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하려고 하는 정치가들에게 교훈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KinanaCoast Region지역 내 대중연설에서, 분리독립에 반대를 한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국민투표 결과가

탕가니카와 잔지바르 연방의 경우와 비슷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스코틀랜드 내 연방지지자들의 득세로 발생한 문제들이 졸속적이고 냉소적인 방식이 아닌 평화적으로 논의되었던 점을 배우는 것은,

탄자니아의 시민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이 스코틀랜드의 소식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 우리는 연방으로 남는 것이 좋은 생각임과 정치인들이 일반시민들의 결정을 좌우할 권리가 없음을 배웠다.”

Kinana는 캠페인 기간 동안, 국민투표가 수행되기 전,

영연방 탈퇴를 국민에게 촉구한 스코틀랜드의 여당대표인 Alex Salmond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스코틀랜드가 확실하게 영연방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투표동안 대중들은 다르게 투표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대중에 반하는 결정을 내려선 안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는 대중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법적인 문제들과 정치인들에 만들어진 그 문제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화가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임을 강조했다. Kinana는 모든 연방들이 연방들 마다 저항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최고의 해결책은 분리독립이 아니라 국가를 이롭게 하는 해결책에 관한 정점에 이른 심도 깊은 논의라고 덧붙였다.

“85%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분리독립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다

. 이것은 사람들이 안정을 위해 연방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함을 보여준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Credo와 캐나다를, 분리독립을 시도했으나 여론에 의해서 막힌 다른 지역의 예로 인용했다.

그는 여전히 탕가니카와 잔지바르로 분리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307년간 이어져 내려온 스코틀랜드와 영연방의 사례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연방은 고작 50년 남짓 이어져 내려왔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연방 동료들은 300년 이상을 연방으로 지내왔다

. 그리고 시민들은 발의된 독립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연방으로부터 이로움이 기인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라고 덧붙였다.

 

CCM의 선전부장이었던 Nape Nnauye는 스코틀랜드의 국민투표 결과는 탄자니아 연방이 계속해서 번창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의 결과물은 탕가니카와 잔지바르 분리에 관한 다툼을 몇 달간 다물게 했다.

그들은 그들은 그들의 분리의 논거로 사용하려 했으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 이것은 사람들이 연방을 더 선호함이 국제적임을 보여준다,”

올해 918일에 스코틀랜드의 유권자들은 영연방에서 독립된 나라가 될 것인지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찬반을 요구받았다.

Salmond 여당총재에 의해 스코틀랜드 정부는 스코틀랜드인에게 300년된 연방이 더 이상 이익이 안되고

이제 스코틀랜드의 석유자원으로 그들이 가장 부유한 국가중 하나가 될 것이라 말하며 독립 찬성을 촉구했다.

Salmond는 스코틀랜드가 스코틀랜드의 운명을 받아드릴 시간이자,

런던에 기반한 영연방 의회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질 시간이라고 말했다.

국제 미디어에 따르면 여당총재직 보장의 실패는

 독립에 대해 다수의 확보를 실패한 그가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여당 총재직에 사퇴할 것으로 공표되었다.

 

  

* 탕가니카 잔지바르 분리갈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 양철준교수님이 작성하신

http://www.emerics.org/boardfile.do?action=download&brdno=103&brdctsno=76143&brdctsfileno=16852

 를 찾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역주) 

 

박유택 역

 

 

Tanzania: Union Haters Learn From Scottish Vote

   


Kibaha CHAMA Cha Mapinduzi (CCM) Secretary General, Mr Abdulrahman Kinana, has said that the failure of campaigners who had been pushing for Scotland's separation from the United Kingdom should be a lesson to politicians in Tanzania, who think they already have the mandate to make decisions on behalf of the public.

 

Giving his opinion during a public rally in Coast Region, on the results of a referendum wherein Scottish people voted "No" to the envisaged separation, Mr Kinana said the reasons are similar to those of the Tanganyika and Zanzibar union.

 

He said that it is imperative for Tanzanian members of the public to learn from the Scotland case that the challenges that arise from the prevalence of the union should be discussed amicably instead of hurriedly or acrimoniously.

 

"This issue of Scotland has taught us a great lesson. We have learned that it is a good idea to remain in the union and that politicians have no right to attempt to influence the decisions of members of the public," he said.

Mr Kinana said that during the campaigning period, shortly before the referendum was conducted, Scotland's First Minister Alex Salmond, had urged members of the public to accept the envisaged separation from the United Kingdom.

"Many people thought that Scotland would, certainly, separate from the UK. However, during the referendum, the pubic voted differently. This should be a lesson to us.

We should learn that politicians should not make decisions on behalf of the public," he noted. He said that the public should be very careful because there are challenges that are legitimate and those that have been created by politicians.

He stressed that dialogue should be the best way forward. Mr Kinana added that every union has its challenges and the best solution is not likely to be separation but in-depth discussions that would culminate in sustainable solutions for the benefit of the nation.

"It has never happened before that 85 per cent of Scottish people vote to agree on the separation issue. This shows that people prefer to be in a union for stability," he explained.

He cited other examples of areas that had tried separation but were blocked by public opinion as Credo and Canada. He said that Tanzanians who are still talking about the separation of Tanganyika and Zanzibar should learn from the Scotland and UK case whose union has lasted 307 years. "Our union has lasted only 50 years so far.

Our colleagues in the United Kingdom have been in their union for more than 300 years. And the public has refused the proposed separation because they have seen the benefits that emanate from the Union," he added.

Earlier, the CCM Secretary of Ideology and Publicity, Mr Nape Nnauye, said the results of Scotland's referendum have shown that the union of Tanzania will continue to prosper.

"The Scotland's outcome has shut up the mouths of those fighting for the Tanganyika and Zanzibar separation. They wanted to use the results to build their case for our separation, but things have turned out differently. This shows globally that people prefer unity," he added.

On 18 September, this year, voters in Scotland were asked to answer Yes or No in a referendum whether they want the nation to become independent from the rest of the United Kingdom.

The Scottish government, led by First Minister Salmond, urged members of the public to vote 'Yes' saying the 300-yearold union is no longer of much benefit and that an independent Scotland, aided by its oil wealth, would be one of the world's richest countries.

He says it's time for Scotland to take charge of its own destiny, free from what he describes as the 'shackles' of a London-based UK Parliament.

Failure to secure the first minister has declared that he will stand down as Scotland's first minister and the leader of the Scottish National party after failing to secure a majority for independence, according to International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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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리카] 탄자니아의 알비노 차별을 규탄하다. 탄자니아

2015. 3. 5. 18:31


본 게시물은 생생한 아프리카 소식을 전달하는 아프리카 뉴스 전문 프로젝트 블로그, 

잠보리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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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llafrica.com/stories/201409220764.html

 

​탄자니아의 알비노 차별을 규탄하다

 

탄자니아 국민들은 알비노들에게 만행을 일삼는 이들을 규탄하고, 폭로할 것을 촉구해왔다.

Under the Same Sun Operations(이하 UTSS)의 운영진 Gamariel Mboya는 금요일 다레살람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UTSS, Commission of Human Rights and Good Governance(CHRAGG)와 그 협력 단체 Tanzania Albino Society(TAS), Confederation of People with Disabilities(SHIVYAWATA)는 이러한 행동들을 규탄하는 평화시위를 열기로 했다.

우리는 일요일 아침 8시에 Uhuru Mchaganyiko 초등학교에서 평화시위를 하기위해 회원들을 소집했습니다.”

라고 Gamariel은 말했다.

그는 집회가 국제평화의 날 기념행사와 함께 진행될 것이며, Mnazi Mmoja공원에서 집회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Gamariel은 집회의 목적은 알비노를 앓고 있는 사람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행위를 강하게 규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가 정부관계자와 사회전체 그리고 국제단체를 포함하는 이해 관계자들이

이러한 범법행위를 금지하는 데 조치를 취하도록 장려되길 기대하고 있다.

올해 기념행사의 주제는 ‘Haki ya Amani kwa wote: Komesha Ukatili na Mauji Dhidi ya Watu Wenye Ualbino’인데,

이는 ‘평화에 대한 만인의 권리: 알비노들에 대한 폭력과 살인을 멈추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번 행사에서 탄자니아 대통령Jakaya Kikwete를 대신하여 참석할

보건사회복지부 장관 Sief Rashid가 귀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TAS의 사무총장인 Zihada Msembo는 대중이 집회에 일정부분 기여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친다면 알비노를 앓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리고 마침내 해결책을 얻을 것입니다.”

CHRAGG의 사무국장 Mary Massay정부 단독으로는 이러한 우리사회의 암적인 활동을 멈출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사람들에게 정의를 가져다 주도록 도와야 한다.“ 라고 말했다.

* 탄자니아에서는 알비노 환자의 신체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알비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극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역자 주). 

 

박유택 역

 

Tanzania: Public Asked to Condemn Brutality Against People Living With Albinism

   

By Maureen Odunga

TANZANIANS have been urged to condemn and expose people involved in acts of brutality against people living with albinism. Under the Same Sun Operations (UTSS), Operations Manager, Mr Gamariel Mboya said this in Dar es Salaam on Friday.

UTSS, Tanzania Albino Society (TAS) in collaboration with the Commission of Human Rights and Good Governance (CHRAGG), the Confederation of People with Disabilities (SHIVYAWATA) intend to conduct a peaceful demonstration to condemn these acts.

"We are calling upon members of the public to appear at Uhuru Mchaganyiko Primary School on Sunday at 8am for a peaceful demonstration," said Mr Gamariel.

He said the demonstrations will end at and will go hand in hand with the commemoration of the world's International Day of Peace.

Mr Gamariel said the objective of the demonstration is to strongly condemn acts of violence against and the killing of people living with albinism.

The demonstration is expected to encourage stakeholders including government, society at large,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take action to stop these malpractices.0

"The theme of this year's celebrations is 'Haki ya Amani kwa wote: Komesha Ukatili na Mauji Dhidi ya Watu Wenye Ualbino' which literally means the right to peace for all, stop acts of violence against and the killing of people living with albinism," he said.

He said that the guest of honour for the event was expected to be the President of Tanzania Mr Jakaya Kikwete who will be represented by the Minister for Health and Social Welfare, Dr Seif Rashid.

Tanzania Albino Society (TAS), Secretary General, Zihada Msembo called upon the public to take part in the demonstration. "I believe that if we all come together as one then the cry won't be for the people with albinism alone but for the whole society and a solution will be obtained eventually," she said.

Executive Secretary of the Commission of Human Rights and Good Governance (CHRAGG), Ms Mary Massay said government alone cannot o stop these acts as the suspects live within our societies; therefore it's the role of everyone to assist in bringing these people to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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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독립을 위한 투쟁

2011. 1. 20. 11:28


1830년대 초에 알제리는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다. 프랑스 식민당국은 대부분의 비옥한 토지를 점령하고 원래의 주인들을 쫒아냈다. 알제리 사람들은 억압받고, 시민권을 유린당했다.

1945년 이후 아메드 벤 벨라(Ahmed Ben bella)를 비롯한 젊은 민족주의자들은 은 민족자유전선(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 ; National Liberation Front ; NLF)을 결성하고 자유를 위한 무장투쟁에 돌입한다. 적은 수의 인원과 형편없는 무기들이었지만, 그들은 프랑스 군대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을 했다. 군사적 행동과 더불어 정치적으로는 정치적 단체를 조직하고 시위를 통하여 독립에 대한 의지를 고취시켰다. 프랑스는 이러한 반대세력을 없애기 위해 폭력적 방법으로 탄압하였고 약 7만 명의 군대를 투입시켰다. 프랑스 정착민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고 경제적 손실이 심각해지자 정부와 드 가울레(De Gaulle)대통령에게 전쟁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드 가울레는 FLN과 협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알제리는 1962년 6월 독립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길고, 피로 물든 해방전쟁중 하나는 케냐의 마우 마우(Mau Mau) 운동이었다. 케냐가 식민지가 되었을 때 백인 정착자들은 케냐의 가장 큰 종족집단인 키쿠유(Kikuyu)족이 살고 있던 비옥한 고지대(Highlands)를 차지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키쿠유족들은 보호지로 내몰렸고 부과된 세금을 내기 위해 백인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키쿠유족은 자신의 땅과 자유를 찾기 위해 무장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1952년 키쿠유족 게릴라들은 아버데어(Aberdare) 산과 케냐 산의 깊은 숲 속에 본거지를 만들고 무장 저항을 시작했다. 데다니 키마티(Dedani Kimathi)가 이끌었던 마우 마우 투쟁은 영국이 반란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서 더욱 더 강력한 저항을 벌이게 되었다. 증가하는 폭력과 사상자로 인해 영국의 여론은 식민지의 정부에 반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정치적 협상을 벌이도록 움직였고 최초의 자유투사였던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를 석방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조모 케냐타는 1947년 이래로 토지와 직업이 없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케냐 아프리카 연합(Kenya African Union)의 지도자가 되었고 1952년에 감옥에 수감되었다. 1961년 조모 케냐타는 감옥에서 석방되고 케냐는 1963년 독립을 이루어 낸다.

중부 아프리카에서는 남부 로데지아의 백인 정착자들이 마치 남아공의 보어인들처럼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는데 아프리카인들은 이들에 대해 백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토지를 포기하도록 저항하고 있었다. 1965년 이안 스미스(Ian Smith)가 주도하는 과격한 백인 정부 하에 로데지아는 영국에 반란을 일으켜 그들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로데지아 정부는 아프리카인들의 어떠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경찰국가를 수립 한다. 아프리카 인들 역시 남부 로데지아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of Southern Rhodesia ; ANC),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동맹(Zimbabwe African People's Union ; ZAPU), ZAPU에서 떨어져 나온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동맹(Zimbabwe African National Union ; ZANU)같은 정당을 수립한다. 1966년 무장투쟁은 짐바브웨와 모잠비크에서 훈련을 받은 게릴라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전쟁은 백인정부가 총선을 받아들인 1980년까지 지속되었다.

포루투갈은 프랑스처럼 동화정책을 실시했지만 아프리카인들이 어떤 권리나 자유를 갖는 것을 거부했다. 기니-비소(Guinea-Bissau), 앙골라 그리고 모잠비크 등에서 아주적은 아프리카인들이 동화되었을 뿐이고 대부분은 소위 원주민(undigenas)로 남아있었다. 3곳의 식민지에서 1956년과 1962년 사이에 저항단체가 조직되었는데 기니-비소에서 기니와 케이프 베르데 아프리카 독립당(African Party for the Independence of Guinea and Cape Verde ; PAIGC)가 앙골라에서 MPLA가, 그리고 모잠비크에서 FRELIMO가 조직되었다. 이 세 조직은 무장투쟁조직으로 변화해 1961년 앙골라에서, 1963년 기니에서, 그리고 1964년 모잠비크에서 각각 해방전쟁을 일으켰다. 이 조직의 활동은 극도로 폭력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결국 기니는 1974년에, 앙골라와 모잠비크는 케이프 베르데(Cape Verde)와 상 토메(São Tomé)와 함께 1975년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나미비아는 1945년이후 남아공의 통치에 대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1959년 조직된 남서 아프리카 연합(South West African Union ; SWANU)과 1960년에 조직된 남서 아프리카 인민조직(South West African People's Organization ; SWAPO)이 저항운동을 이끌었다. 아프리카 단결기구(Organization for African Unity ; OAU)와 UN이 남아공이 나미비아의 통치권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나미비아는 결국 1990년에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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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 100장면 Mau Mau, 독립, 마우마우, 아프리카, 알제리, 케냐,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