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아비 총리 201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다

2020. 6. 26. 17:51

20191011, 아비 아머드 알리(Abiy Ahmed Ali) 에티오피아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총리 취임 이후 약 20여 년간 지속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전쟁을 종식하고 긴장 완화 및 평화 정착을 이룩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아비 총리의 노벨평화상 수상 배경에 대해 "에리트레아와 국경분쟁 해소를 위한 노력을 비롯해 역내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라고 밝히며, 국내적으론 정치범 석방과 국가비상사태 해제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 신장 등 국민·국가 통합을 추진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아비 총리는 비단 에리트레아와의 관계개선뿐만 아니라 역내 국가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20193월 이사이아스 아프웨르키(Isaias Afwerki) 에리트레아 대통령과 함께 남수단을 방문해 평화 구축방안을 모색했다. 또한, 지난 20194월에는 수단을 방문하여 오마르 알바시르(Omar al-Bashir) 수단 전() 대통령의 축출 이후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수단의 권력 이양 협상을 중재했다. 그 결과 수단 군부와 야권은 20198월 아비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권력 이양 협상에 최종적으로 서명했다.

그러나 아비 총리의 노력은 어떻게 결말이 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며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아직 완전한 관계 정상화를 이루지 못했다. 국경선은 여전히 막혀 있으며, 양국 간 무역은 전무하다. 일각에선 에리트레아 정부가 압제적인 정책을 펴는 이상 양국 간 평화는 요원하다고 관측한다. 평화 정착 과정이 자리 잡기 위해선 에리트레아가 민주적 제도를 도입하고 시민 사회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만평 출처: https://www.cartoonmovement.com/cartoon/60873

 

Mansa Musa 아프리카 뉴스/뉴스와 만평 노벨평화상, 아비 아머드 알리(Abiy Ahmed Ali),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내전

2020. 5. 19. 17:36

에티오피아는 19세기 통일당시 여러 종족과 지역이 통합됨

소수인 암하라인과 티그레이인이 다수 종족을 지배 탄압하여 내전이 발생

에티오피아의 미래는 모든 종족의 평화로운 공존에 달려 있어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아들로 시작된 솔로몬 왕조는 19세기 이전까지 에티오피아를 통일시키지 못했으며 여러 종족이 독자적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16세기에는 유명한 커피 산지인 하라르(Harar)에 있었던 이슬람 국가인 아달(Adal) 왕국이 솔로몬 왕조를 침략했고, 18세기에는 오로모족이 침략하여 현재의 오로미아 지역에 독립 국가를 세웠다.

19세기 중반부터 솔로몬 왕조는 여러 종족을 통합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며 에티오피아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정복전쟁을 통해 다른 종족들을 굴복시켰고 서구의 식민지배와 같은 방식으로 가혹하게 통치를 하였기 때문에 다른 종족들은 반감을 갖게 되었다. 1974년 공산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황제들은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를 강화하고 다른 종족을 배제하였으며 암하라족의 문화, 종교, 언어를 강요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 에리트리아와 오가덴 지역이 에티오피아에 통합되었으나 국경분쟁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침략과정에서 또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 에리트리아는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통해 1991년 결국 독립한다. 소말리아는 소말리 족이 주로 살고 있는 오가덴 지역에 대한 영토회복을 주장하며 1977년 침략하였다. 결국 에티오피아는 이웃국가인 에리트리아와 소말리아에 대해 적대적 관계를 이어가야 했고 두 국가는 반정부활동 조직의 근거지가 되어 내전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에티오피아는 햄, , 쿠시 어족이 모두 함께 살고 있으며 종족수도 80개에 이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다양한 어족 및 종족 집단이 모두 함께 살고 있는 다종족 국가다. 주요 종족은 오로모(Oromo)족이 34.4%, 암하라(Amhara) 족이 27%, 소말리(Somali)족이 6.2%, 티그레이(Tigray) 족이 6.1% 등으로 오로모족이 최대 종족이지만 역사적으로 북부의 암하라와 티그레이 족이 지배종족으로 다수종족인 오로모 족을 비롯하여 다른 종족을 지배하여 왔다.

에티오피아 내전은 결정적으로 셀라시에 황제와 멩기스투 공산정권이 오로모족과 소말리족 등 다른 종족을 탄압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1974년의 민중 봉기로 인해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종족 자결권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정권은 종족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폭력을 통해 해결하였다. 이에 대해 여러 종족이 공산정권을 암하라의 압제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투쟁했다.

특히 에티오피아 정부는 다수종족인 오로모족을 식민지화전략이나 다름없는 암하라화정책을 통해 가혹하게 탄압했다. 무엇보다 오로모인을 에티오피아인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의 피지배민으로서 취급하였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정부 정책에 저항하고 오로모 정치조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강제 수용소나 형무소에 수감되거나 살해되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오로모족 출신인 페이사 릴레사는 시상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의 오로모족 탄압을 폭로하는 ‘X자 세리머니인 반정부 퍼포먼스를 벌이며 오모족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정부 탄압에 대해 오로모 족은 정치·군사적 조직을 결성하여 반정부활동을 벌였다. 오로모 족은 1973년 오로모해방전선(OLF)과 군사조직인 오로모해방군(OLA)을 조직하여 강력한 저항을 하였다.

19915월 멜레스 제나위가 이끄는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이 공산정권을 무너뜨렸고 대통령에 된 후 종족 연방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종족 연방제는 언어·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종족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종족에 기반을 둔 지방자치를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선거는 종족에 기반을 둔 연방주의가 필연적으로 종족집단간 경쟁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위험한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선거에서 다른 종족들이 집권당인 EPRD에 도전하려 하자 제나위는 이를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515일에 있었던 집권 여당의 총선 부정의혹에 대해 반정부 시위가 6월과 11월에 걸쳐 발생했고, 이를 보안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총 193명의 시위자가 사망하고 763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2만 명이 구금을 당했다. 제나위는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했다.

EPRDF는 티그레이, 암하라, 오로모 등 3개 민족집단이 이끄는 티그레이인인민해방전선(TPLF), 에티오피아인민민주운동(EPDM), 오로모인민민주조직(OPDO) 등이 연합하여 조직되었으나 티그레이인이 1991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권력을 장악해왔다. 6%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티그레이인이 정부를 주도하며 다수인 오로모족과 암하라족을 배제시켜 반정부 시위와 게릴라 공격이 발생했고 결국 2018215하일레마리암 데살렘 총리를 퇴진시켰다.

1991년 이전에는 암하라족과 티그레이 족에 대해 오로모족과 소말리족이 저항을 했지만 1991년 이후에는 티그레이 족에 대해 암하라 족과 오로모 족이 저항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마디로 에티오피아의 종족간 갈등은 상황이 맞아떨어진다면 언제든지 합종연횡을 통해 재편되며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황제의 통치 시기, 공산정권, 제나위가 이끌었던 EPRDF 정권 모두 종족갈등을 풀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과거 역사에서 발생했던 부당한 종족 관계를 청산하고 모든 종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적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20184242세의 젊은 아비 아흐메드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반년도 안 되었지만 에티오피아는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무슬림인 오로모족 아버지와 정교회 신자였다가 개종한 암하라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비 총리는 오로모, 암하라, 티그레이 등 3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어 종족과 종교를 뛰어넘어 국민을 통합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어진 그의 개혁 정책은 내전과 국경분쟁을 종식하고 국민과 국가를 통합하여 진정한 발전으로 나아가는 행보로 평가받고 있다. 20187월에는 에리트리아와 종전을 선언하고 9월에는 평화협정 체결하여 20년간 이어진 무력 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시켰다. 또한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3국 정상이 에리트레아의 아스마라(Asmara)에서 회담을 개최하여 아프리카 뿔 지역의 협력을 논의함으로써 이 지역의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810월에는 1977년 소말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이후 운항을 중지했던 에티오피아항공이 41년 만에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운항을 재개하였다. 아울러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는 모든 아프리카인에 대해 도착비자를 발급하도록 문호를 개방하였다.

에티오피아의 경제는 현재 고속 성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4마리 사자로 넣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경제발전은 아비 총리가 추진하는 개혁정치를 성공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뿌리 깊은 민족갈등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와 정책적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189월에 발생한 2건의 민족간 유혈사태는 에티오피아가 추진하는 개혁정책 과정에서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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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a Musa 정치/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소말리(Somali), 아비 아머드 알리 (Abiy Ahmed Ali), 암하라(Amhara), 에티오피아, 오로모(Oromo), 티그레이(Tigray)

[잠보리카] 에티오피아의 국어능력 향상 프로그램 - 모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미 국제개발처와 교육부가 협력해. 에티오피아

2015. 3. 6. 14:05


본 게시물은 생생한 아프리카 소식을 전달하는 아프리카 뉴스 전문 프로젝트 블로그, 

잠보리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http://blog.naver.com/jamborica/220259689859





에티오피아의 국어능력 향상 프로그램

모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미 국제개발처와 교육부가 협력해

 

http://allafrica.com/stories/201410301196.html

 

 

 

  20141029, Hawassa.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미국 대외원조기관인 국제협력국과 개발차관기금을 통합하여 국무성에 설치한 비군사적인 원조프로그램 수행기관; 역자 주)는 교육부와의 협력을 통해, 천오백만 명에 이르는 에티오피아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언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차원의 모국어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교육부 장관 Shiferaw ShiguteUSAID의 대표 국장 Dennis WellerSNNPR(Southern Nations, Nationalities and People's Region; 에티오피아 내에서 1994년 선거 이후 분리된 아홉 개 민족 집단 중 에티오피아의 남서부에 있는 민족 집단을 일컫는 말; 역자 주)Hawassa에서 열린 정부의 연례 검토 회의 직전에 이러한 사항을 발표했다.

 올해 개발된 새로운 교육과정과 읽기용 교재들 중 1학년부터 4학년을 위한 것들은 교사 교육에 의해 보충되었으며, 이는 연방 및 지역 정부와 교육자들, 언어학자와 삽화가, 교원 양성 대학 및 단기 학교들의 2년간에 걸친 큰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노력들이 5~8학년을 위한 교과 과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읽기 능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한 저학년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부와 USAID는 저학년을 위한 국가 지정 읽기 과정을 개발하였으며, 9천만 달러에 상당하는 것으로 평가하였으며, 이를 에티오피아의 개발 성취를 위한 읽기; Reading for Ethiopia's Achievement Developed(READ)’라고 이름 붙였다. 2012년에서 2017년에 걸친 이 5년간의 장대한 계획의 궁극적 목표는 에티오피아에서 사용되는 암하릭, 티그리냐, 오로모, 소말리, Sidama Afoo, Wolayttatto, and Hadiyyisa 등의 7개 언어를 1~8학년에 다니는 천오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사용함에 있어 그 읽기 및 듣기 실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국어 교육은 어린이들이 다른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기 전에 먼저 각자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더욱 빠르게 배울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는 교육 방침을 반영한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개발 성취를 위한 읽기 과정; Reading for Ethiopia's Achievement Developed(READ)의 발표 자리에서, USAID 에티오피아 지부의 대표 국장인 Dennis Weller교육부와 USAID 사이의 가깝고 역동적이며 지칠 줄 모르는 협력을 통해 (우리는) 학교들 내 새로운 교육과정의 보급을 위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READ는 이제 교육 기술과 교육용 자료들의 이용 가능성 및 질적인 측면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READ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을 통해 소년 소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읽기를 좋아하게 될 때, 이 아이들이 학교에 더 오래 머무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라고 언급했다.

 

READ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상호 연계된 프로젝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

1. 에티오피아에 내 7가지 언어들과 관련된 교육과정과 교육용 자료들에 대한 기술적 지원

2. 교원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의 기관적 발전

3. READ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부모 및 지역 사회의 참여 유도

4.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와 평가.

USAIDREAD 프로그램은 세이브더칠드런, SIL LEAD,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Inveneo, 위즈키즈 워크샵 등의 참여 하에

 Research Triangle Institute에 의해 수행된다.

Ethiopia: USAID and Ministry of Education Launch a National Mother Tongue Reading Program

Hawassa, October 29, 2014. The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in collaboration with the Ministry of Education (MOE) launched a national mother tongue reading curriculum to improve the reading skills of 15 million primary school students in Ethiopia. Minister of Education Shiferaw Shigute and USAID Mission Director Dennis Weller opened the event on the eve of the Ministry's annual review meeting in Hawassa, Southern Nations, Nationalities and People's Region.

 

This year's introduction of the new curriculum and reading materials to grades 1-4, complemented by teacher training, resulted from a massive two-year effort involving federal and regional officials, educators, linguists, and illustrators, teacher training colleges and pilot schools. A similar effort is now underway for grades 5-8.

 

To address the major challenge of poor reading comprehension in early grades,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USAID designed a national early grade reading program, valued at just under $90 million USD, called Reading for Ethiopia's Achievement Developed (READ). The overall goal of this massive five-year program (2012-2017) is to improve the reading and writing skills of 15 million children in grades 1-8 in seven of the most widely spoken languages in Ethiopia-Amharic, Tigrigna, Afaan Oromo, Af-Somaali, Sidama Afoo, Wolayttatto, and Hadiyyisa. The use of mother tongue instruction reflects an education policy that helps children learn more rapidly in the languages they speak at home before transitioning to learn in other languages.

 

At the READ launch, Mr. Dennis Weller, USAID Ethiopia Mission Director stated: "Close, dynamic, and tireless collaboration between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USAID teams has reached a major year with the launch of this new curriculum in the schools. READ will improve teaching skills, the availability and quality of materials, and most importantly, engage and enable girls and boys to learn faster and better. When children enjoy reading they are more likely to stay in school".

 

The READ program is comprised of four interconnected projects:

1. Technical assistance in curriculum and materials development for seven Ethiopian languages

2.Institutional improvement of the education system to support teacher training

3.Outreach to involve parents and communities in the attainment of READ objectives

4. Monitoring and evaluating outcomes.The USAID READ program is carried out by Research Triangle Institute with the participation of Save the Children, SIL LEAD, Florida State University, Inveneo, and Whiz Kids Workshop.

 

 

나유경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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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리카] 체포와 구금 그리고 대탈주 - 에티오피아의 언론탄압현장. 에티오피아

2015. 3. 6. 14:04


본 게시물은 생생한 아프리카 소식을 전달하는 아프리카 뉴스 전문 프로젝트 블로그, 

잠보리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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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llafrica.com/stories/201409150829.html 

 

 

 

​체포와 구금 그리고 대탈주

에티오피아의 언론탄압 현장

작년 3명의 기자와 6명의 블로거가 해외 인권 단체와 함께 일을 하고,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로 하여금 폭동을 선동하기 위한 자금을 받았다는이유로 구금되고 기소되었다.

불법구금된 기자들은 Tesfalem Waldyes, Asmamaw Hailegiorgis, Zelalem Kibiret, Befekadu Hailu,

Mahlet Fantahun, Abel Wabela, Atinafu Birhane, Natinael Feleke 그리고 Edom Kassaye 이다.

연방 경찰 범죄 수사부인 ‘Maekelawi’는 폭동을 선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6명의 블로거들을 체포하고 억류하였다.

그들은 후에 수도 Addis Ababa의 변두리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Kilinto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억류자들 중 한명인 Tesfalem Waldyes씨는 경제 주간 신문인 FortuneAddis Standard 잡지에 기고하고 있는 기자이다.

다섯 잡지사들은 - Lomi, Enqu, Addis Gudai, Jano, Fact and Afro Times newspaper- 법무부에 의해 기소되었다

.

이 신문과 잡지들의 출판사들은 사회적, 정치적 불안을 선동한다는 혐의와

거짓된 루머를 통해 헌법의 질서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혐의를 받았다.

 

기소 후, 몇몇의 피의자들은 법원 앞에 출두했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그러나 많은 피의자들은 이러한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에티오피아를 떠나 도망갔고 잡지사와 신문사들은 문을 닫았다.

 

김희진 역 

 

Ethiopia: Arrest of Journalists, Bloggers, Exodus of Journalists

13 September 2014

 

It was last year that three journalists and six bloggers were detained and charged with "working with foreign organizations that claim to be human rights activists and agreeing in idea and receiving finance to incite public violence through social media.“

 

The detainees were charged under three files.

 

The detainees are Tesfalem Waldyes, Asmamaw Hailegiorgis, Zelalem Kibiret, Befekadu Hailu, Mahlet Fantahun, Abel Wabela, Atinafu Birhane, Natinael Feleke and Edom Kassaye.

 

All six bloggers were arrested and detained at the Federal Police Crime Investigation Sector 'Maekelawi.' They were later transferred to Kilinto Prison, located in the outskirts of Addis Ababa.

 

One of the detainees, Tesfalem Waldyes, is a journalist who occasionally writes for Fortune - the business weekly newspaper and Addis Standard magazine.

 

It was also in the just-ended Ethiopian year that five magazines Lomi, Enqu, Addis Gudai, Jano and Fact and Afro Times newspaper were charged by the Ministry of Justice.

 

The publishers of the newspaper and magazines were charged with inciting unrest and subverting the constitutional order through false rumors.

 

After being charged, a few of the suspects appeared before court and were released on bail; however, many of the suspects fled the country and the magazines and newspapers were shut down because of this crackdown. More than 16 journalists fled th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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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프롤로그

2013. 9. 14. 21:56

 

에티오피아 프롤로그

 

 

‘에티오피아’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커피? 기아? 에티오피아 커피가 그렇게나 유명하지만 에티오피아가 3천년에 이르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가장 오래된 인류의 뼈가 발견된 곳이며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에티오피아의 역사는 시바여왕과 솔로몬왕의 아들인 메넬리크 1세가 건설한 악숨 왕국으로부터 시작된다. 에티오피아의 고대 왕국인 악숨 제국은 홍해를 건너 남아라비아를 영토로 삼아 메카로 따라갈 정도로 크게 세력을 떨치고 아프리카 유일의 문자를 만들어낼 정도로 부흥했다. 또한 악숨은 기독교 왕국으로 유명한데 기원전 330년에 성 프루멘티우스(St Frumentius)에 의해 악숨 왕조에 기독교가 전래된 후 기독교 왕국으로 부흥했다. 실제로 우리는 여행을 하며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에서 많은 기독교 유적을 볼 수 있었다.

 

곤다르의 파실다라스 궁전과 베르한 셀리시에 교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랄리벨라 암굴성당을 보며 에티피오피아의 과거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러나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힘을 얻은 이슬람 왕국의 위협을 받게 된 악숨 제국은 결국 쇠퇴하고 이슬람 영향권 아래 들어가게 됐다. 에티오피아의‘하라르’는 커피로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이슬람 성지이기도하다.

 

에티오피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바히르다르에는 이집트 문명을 발생시킨 나일강의 원류(原流)인 타나 호수가 있다. 이곳에서 본 청나일 강의 폭포는 가히 아프리카 최고의 폭포라 불릴만한 장관이었다. 바히르다르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면 현재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가 있는데 아디스아바바는 1889년 메넬리크2세가 수도를 이전하면서 수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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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익숙한, 고대 왕국의 도시 악숨.

2013. 9. 14. 21:53

 

알고 보면 익숙한, 고대 왕국의 도시 악숨.

 

 

오랜 시간 버스를 달려 악숨(Aksum)에 도착했다. 악숨이라.. 우리나라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악숨이라는 도시에 대해 들어볼 기회가 있을까? 나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악숨은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에 터를 잡고 로마 제국, 페르시아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번성했던 “악숨 왕국”의 수도였고, 그 악숨의 고고유적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라고 한다. 또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악숨 왕국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들어봐도 내겐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악숨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보니, 사실 우리는 이미 악숨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모세의 십계명, 오벨리스크, 솔로몬 왕,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 중 <시바 여왕의 도착>,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 살면서 이들 중 적어도 두 개쯤은 다들 들어본 기억이 있지 않을까? 설령 그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는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악숨이라는 도시에 대해, 또 악숨 왕국이라는 역사 속 왕국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악숨 왕국은 기원 전 10세기 경에 세워져 기원 후 7세기 경에 쇠퇴하였다. 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는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중요한 무역 국가로 큰 정치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악숨 왕국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던 상아, 노예 등을 수출하고, 이집트로부터 의복, 유리 제품 등을, 인도에서는 철과 면포를 수입하면서 교류와 무역이 왕성했다. 7세기 경 이슬람 세력에 의해 쇠퇴하긴 했지만, 번성하던 시기의 악숨 왕국은 그 위세가 대단해 지금의 수단이나 예멘,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에 까지 이르는 영토를 가졌다 하니, 지금은 항구도 없는 내륙국가인 에티오피아에 비하면 꽤 잘 나가는 왕국이었음이 틀림 없다. 또, 그렇다 보니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이 악숨 왕국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한다. 우리 나라만 해도, 만주 지역을 넘어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렇게 융성한 왕국이다 보니,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해 거대한 돌기둥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오벨리스크 이다. 그렇다. 유럽의 광장이나, 이집트에서나 있는 줄 알았던 오벨리스크가 악숨이라는 도시에는 수 백 개나 존재하고, 그 규모는 이집트의 것보다 웅장하다. 대부분은 화강암으로 조각되었고 그 지하에는 무덤이 존재한다. 가장 큰 오벨리스크는 길이 33m에 무게는 100톤에 이를 정도이지만, 이탈리아의 침략 당시 붕괴되어 쓰러져 있다. 다음으로 큰 오벨리스크는 침략 전리품으로 이탈리아에서 약탈해 갔었는데, 2005년에 반환되었다. 우리 나라도 얼마 전 ‘외규장각 의궤’가 반환되는 경사가 있었는데, 의외로 공통점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앞서 말한 솔로몬 왕이나 헨델은 대체 어떻게 악숨 왕국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아직은 감도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이 악숨 왕국이 건국 되던 당시의 아주 흥미로운 역사와 관련이 되어있다.

 

솔로몬 왕은 다들 알다시피 무척이나 현명했다. 두 여인이 서로가 아이의 어머니임을 주장하자 “저 아이를 반으로 갈라 나눠주어라.”라는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판결을 내린 솔로몬 왕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솔로몬’이 ‘지혜로운’이라는 형용사처럼 여기저기에 쓰이고 있으니 더욱 익숙하다. 이 솔로몬 왕이 “지혜의 왕”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 이웃 나라였던 시바 왕국에는 매혹적이기로 유명했던 시바 여왕이 있었다. 시바 여왕은 솔로몬 왕의 유명세를 듣고서는, 그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보물을 잔뜩 챙겨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시바 여왕의 화려한 방문은 후에 “음악의 어머니”인 헨델에 의해 음악으로 화려하게 표현되었는데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 중 <시바 여왕의 도착>이 그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여왕은 솔로몬 왕을 시험하기 시작했고, 성경에 나오는대로1)  솔로몬 왕은 시바 여왕의 시험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의 매력에 이끌려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로맨스의 결과, 시바 여왕은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 아들이 바로 악숨 왕국을 건설한 메넬리크 1세이다.

 


악숨에서는 시바 왕국의 궁터와 왕국의 주인이었던 시바 여왕의 목욕탕을 찾아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그 배수시설이나 설계 구조가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일행들과 시바 여왕의 솔로몬 왕과의 러브스토리를 재구성하면서 돌아보았더니 더욱 흥미로웠다.

흥미로운 출생의 비밀을 가진 메넬리크 1세는 우리가 악숨에서 반드시 찾는 또 하나의 유적지를 만들어내는데, 바로 성모 마리아 시온 성당(Saint Maria of Zion)이다.

 

메넬리크 1세는 에티오피아 중북부의 타나 호수에서 엄청난 물건을 찾아 악숨으로 돌아오니, 그것이 바로 모세의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원본과 석판을 보관하는 성궤였다.2)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등으로 유명한 바로 그 십계명! 그리고 영화 속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죽을 힘을 다해 찾아 헤맸던 바로 그 성궤! 메넬리크 1세가 찾아온 이런 엄청난 물건들이 바로 성모 마리아 시온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성모 마리아 시온 성당들 사이에 있는 성궤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전설 속 이야기라, 또 성스러운 물건이 보관된 성스러운 장소에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니.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인들은 이 이야기를 사실로 여겨, 악숨은 그들에게 성스러운 도시라고 하니, 에티오피아를 찾는 사람에게 악숨은 고생스럽지만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참고문헌

1. Wikipedia

2. 성경

3. Stuart Munro-Hay. Aksum: A Civilization of Late Antiquity. Edinburgh: University Press. 1991.

4. Yuri M. Kobishchanov. Axum (Joseph W. Michels, editor; Lorraine T. Kapitanoff, translator). University Park, Pennsylvania: Penn State University Press,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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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바의 여왕이 주의 이름에 관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들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많은 수행원과 향료와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실은 낙차와 함께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라. 그녀가 솔로몬에게 나아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녀의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에게 드러나지 아니하여 왕이 그녀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열왕기 상 10장 1~3절

 

2) 메넬리크 1세가 십계명과 언약의 궤를 아버지인 솔로몬 왕에게서 받아왔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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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카멜롯’ 곤다르

2013. 9. 14. 21:50


‘아프리카의 카멜롯’ 곤다르

 

 

2012년 2월 1일, 우리가 인천공항에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이집트 행 비행기를 탄 날이다. 미국은 우리보다 하루가 느리니까 2012년 1월 31일이겠지? 그런데 에티오피아 기준에서는 2005년이다. 무슨 말이냐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여 1월 1일을 새해로 맞이하는 데 반해, 에티오피아는 아직도 율리우스력을 사용해서 그레고리력에 비해 약 7년이 늦다. 즉, 우리는 2000년 1월 1일에 밀레니엄을 기념했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밀레니엄은 2007년 9월 12일이었던 셈이다.

 

에티오피아의 새해는 “보석 선물”을 의미하는 Enkutatash라고 불린다. 시바 여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왕을 방문한 뒤 돌아왔을 때, 신하들이 보석을 잔뜩 선물해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봄에 열리는 이 축제의 막바지에 비가 내리면, 모든 마을에서 춤과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양에서 굉장히 크게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에티오피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로, 리뎃(Lidet)이라고 불린다. 서양과 달리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이 날에는 교회에서 신도들이 여러 교회를 옮겨다니며 기도를 드리는 행사를 거행한다.

 

 

크리스마스 2주 뒤인 1월 19일, 그리스도의 세례의식을 기념하는 성대한 팀켓(Timket) 축제가 시행된다. 이 축제는 3일간 진행되는데, 팀캣 전날 에티오피아의 각 교회에서는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모여 흥겨운 음악에 춤을 추면서 시가 행진을 하고, 당일 아침에는 요르단 강에서의 예수의 세례를 기념한다. 팀켓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데, 특히 곤다르에 있는 파실라다스 왕의 풀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된다.

 

곤다르(Gondar), 어린 시절 ‘반지의 제왕’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아라곤의 도시이자 왕의 도시라 불린 곤도르를 기억하시는지? 바로 이 곤도르의 모델이 되는 도시가 에티오피아에 있는 곤다르이다. 곤다르는 에티오피아 북서쪽에 위치한 암하라 주에 있는 도시로, 아디스 아바바에서 북쪽으로 약 500km 거리에 있다.

 

곤다르 왕궁은 영국의 전설적인 왕인 아서왕의 카멜롯 성에 비유되어 ‘아프리카의 카멜롯’이라고 불린다. 성채도시인 곤다르는 파실라다스 황제와 그 후계자들이 수도를 이전한 1855년까지 약 2세기 간 살았던 곳으로, 파실라다스 왕의 궁전 외에도 법원, 도서관, 수도원, 목욕탕 등이 들어서 있다.

 

 
1543년에 벌어진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전쟁에서, 기독교 진영을 돕기 위해 파견된 포르투갈 군대는 타나 호수 근처의 지역에 머물렀다. 당시 그 곳을 다스리고 있던 황제는 Susneyos였는데, 포르투갈 군대는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이후 Susneyos 황제는 에티오피아의 그리스 정교 신도들을 탄압했고, 수 천명의 신도들을 살해했다. 그 결과 국민들의 신임을 잃은 Susneyos 황제는 결국 1632년에 아들인 Fasilades 에게 왕위를 넘겨주어야 했다. Fasilades 황제는 1635년에 에티오피아의 첫 수도로 곤다르를 세우고, 성과 7개의 교회를 지었다.

 

곤다르 왕궁은 돔 형식 탑 4개가 있는 아치형 성문을 한 3층짜리 궁전인데, 1층은 연회장과 공식 접견실로 이용되었으며 2층에는 파실라다스 황제의 기도실이 있고, 3층에는 왕의 침실이 있다. 지붕 위는 황제가 연설하는 장소 및 종교적인 행사장이었다고 하는데, 탑에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타나 호수가 보인다고 한다.

 

파실라다스 궁전 옆에는 파실라다스 황제의 손자인 이야수 1세 황제가 세운 이야수 궁전이 있다. 이야수 궁전은 3층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 모양이 말안장과 비슷한데, 내부 장식이 화려하여 과거에는 솔로몬의 성보다 아름답다는 찬사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1864년 화재 이후 수단의 무슬림 등에 의한 여러 번의 침략으로 곤다르는 몰락하게 되었다. 게다가 1936년 이탈리아의 정복 이후, 곤다르는 이탈리아의 지배하에 놓였고, 1943년 2차 세계대전에서 아디스 아바바를 점령한 영국 군대에 대항하기 위한 이탈리아 게릴라의 활동 중심지가 되면서 유적 대부분이 소실된 상태이다.

 

 

성에서 나와 천장벽화로 유명한 데브레 베르한 셀리시에(Debra Berhan Selassie) 교회에 갔다. 이 교회는 17세기에 이야수 1세가 건립한 교회로, 곤다르에 있는 44개 교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교회다. 교회 안은 온통 다양한 색의 벽화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천장에는 머리에 날개가 달린 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80개의 천사들의 표정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정면의 벽에는 십자가에 못 밖힌 예수 그림이 그려져 있고, 다른 벽에는 에티오피아 성인과 순교자들이 그려져 있으며, 이야수 1세 황제의 초상화도 그려져 있다.

 

 

200년 간 수단과 이집트, 아랍세계를 연결하는 거점으로서 번성했던 곤다르, 과거 화려했던 왕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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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S ABABA - 에티오피아의 새로운 꽃, 아디스아바바

2013. 9. 14. 21:43


ADDIS ABABA - 에티오피아의 새로운 꽃, 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 이름이다. 암하라 어로 ‘새로운 꽃’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크게 이름값을 한다고 보긴 힘들다. 1980년대 에티오피아를 휩쓴 세계적인 가뭄으로 굶어 죽어가던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신문을 도배했다. 에티오피아는 역사적인 의미는 있을 것 같지만 엄청 더울 것 같고, 더러울 것 같고, 사람이 살기 힘든 삭막한 곳이라는 선입견이 우리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아디스아바바에 가서 직접 확인한 결과 이 중에서 기대(?)에 부응한 사실은 위생 수준 정도이다. 공항에 도착한 후부터 이동하는 동안 아디스아바바를 눈에 담아 볼까 하는 찰나에 코로 먼저 느끼게 되었다. 쾌쾌한 냄새와 탁한 공기. 실제로 온도가 더 올라가면 아이들이 메탄가스에 중독되어 자주 쓰러진다고도 한다.

 

아디스아바바의 별명 중 하나가 ‘회색도시’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인 것이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동차는 외국에서 싼값에 들여온 중고차이다. 이미 너무 낡고 오래되어서 외국에서는 폐차 상태까지 간 것이 대부분인데, 이 차들을 들여와서 이 곳 사람들이 쓰고 있다. 오래된 차인 만큼 그 차의 매연은 새 차의 것보다 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산 지대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중고차들이 내뿜는 시커먼 연기들이 도시 상공 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생성된 먼지나 가스들이 수증기와 쉽게 응결해 곧잘 푸른 안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 눈에 담은 풍경은 쓰레기 가득한 길가, 끝없이 이어진 거적과 누더기와 판자로 이어진 집들이다. 사실 이런 느낌이 처음에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사실은 5분 정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 아닌가. 특유의 적응력으로 적응 하고나니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특히 시내에서 마주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는 뭔가가 신비로움이 있다. 백인도 아니면서, 또 전형적인 흑인도 아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묘한 결합이다. 실제로도 현재의 에티오피아인은 백인계 함족과 아랍계 셈족의 후예들이 원주민인 흑인과 혼혈을 이루면서 아프리카에서도 독특한 생김새와 문화를 형성했다.1)

 

그리고 생각만큼 덥지는 않았다. 아디스아바바 아침의 거리는 시원하고 상쾌하고 낮에도 습도가 높지 않아 땀을 흘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기에다 햇살은 마치 지중해 연안처럼 따사로워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여기가 적도 근처이지만 무덥지 않은 이유는 수도가 해발 2,300m 고원에 있기 때문이었다. 아디스아바바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곳에 들어선 수도이다.

 

 

 

 

황제 메넬리크 2세

 

 

악숨이나 곤다르, 하라르와 같이 오래된 도시를 두고 아디스아바바는 언제부터 왜 수도가 되었을까. 아디스아바바 직전의 수도는 엔토토라는 곳이었다. 엔토토는 군사적 요지로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지만, 높은 탁상지 위에 있어 몹시 춥고 땔감용 나무가 부족했기 때문에 수도로는 부적합했다. 황제 메넬리크 2세 (1889~1913 재위)2)의 부인 타이투 황후가 황제를 설득하여 탁상지의 기슭에 있는 온천 부근에 집을 한 채 짓고 그 지역의 땅을 귀족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 귀족들이 자신의 집을 지어가면서 아디스아바바가 시작된 것이다. 아디스아바바의 탄생은 이후 에티오피아의 근대화의 발판이 되었다.

 

이 역사를 말하려면 황제 ‘메넬리크 2세’와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선, 과거 악숨 왕국이 막을 내리던 때로 돌아가보자. 악숨 왕국이 힘을 잃게 되자 에티오피아의 다른 도시들도 발전을 일제히 멈추게 되었다. 사실 악숨 제국의 몰락 후 하라르와 곤다르가 짧은 시기 동안 번영하긴 했다. 이 같은 그들의 짧은 번영 시기는 그들이 발전적인 변화를 이룩해 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에티오피아의 경제는 몰락해갔다. 사람들이 금,은,청동 화폐가 아닌 소금막대로 거래를 하기에 이르는 정도였다. 사회 전반이 혼란스러웠고 시민전쟁도 발발하였다. 또한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에 시달리며 퇴보의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메넬리크 2세가 아디스아바바가 세우면서 근대화를 위한 새로운 기반이 마련되면서 상황은 나아지게 되었다.

 

사실 아디스아바바 건립 초기에는 메넬리크 2세가 1896년 이탈리아의 침략을 무찌르는 아두와 전쟁3)에서 군사적 요지로 이용하였다. 메넬리크 2세는 부족 간의 대립으로 분열되었던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이 아두와 전쟁에서 이탈리아의 침략을 물리쳐 독립을 확보하였다.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이 전쟁의 승리 이후 에티오피아는 지금의 규모로 팽창했으며4), 아디스아바바와 지부티 사이에 철도가 생기고 수도는 신식 학교와 병원으로 근대화 되었다. 막 생겨난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부흥으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이로써 아디스아바바는 아랍, 인도,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정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용광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다양한 국제기구들의 본부가 총집합 되어 있는 도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통일기구5)가 아디스아바바의 아프리카 회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기구를 세운 황제가 ‘하일레 셀라시에 1세’6)이다. 그는 메넬리크 황제 이후 40여년동안 에티오피아를 지배했던 마지막 황제이자, 하일레 셀라시에는 메넬리크의 근대화 개혁을 착실히 이어받아 에티오피아가 또 한 번의 발전을 이룩하게 한 장본인이다. 특히 아프리카 통일기구를 세우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 정치의 본류로 끌어들이며 에티오피아를 국제연맹과 국제연합(UN)에 가입시키기도 했다.

 

이후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에티오피아의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도 확장되었다. 에티오피아는 아디스아바바의 건립을 발판으로 삼아 세계의 과학적 혁명들의 수혜를 받기 시작했다. 비록 악숨이나 곤다르, 하라르와 같은 도시에 비해 역사가 짧지만 에티오피아 전역에 기술을 전파하는 역할을 해냄으로써 중요한 도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디스아바바 시내에는 아디스아바바대학교와 여러 개의 사범학교 및 기술학교도 있다. 또한 대학 부속의 에티오피아 연구소박물관, 국립음악학교, 국립도서관 겸 공문서보관소, 역대 황제들의 궁전, 그리고 정부청사 등이 있다.

 

이렇게 아디스아바바는 에티오피아의 문화적, 정치적, 사법적 그리고 상업적 중심인 도시가 되었다. 위생, 환경적인 문제들이 하루빨리 극복되어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꽃’으로 피어났으면 한다.

 

 

 


참고문헌

에티오피아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 이해용

‘ADDIS ABABA IN THE PAST AND ITS PROSPECTS IN THE NEW MILLENNIUM’ Published by: the Addis Ababa Millennium Secretariat

 

 

사이트

http://blog.daum.net/sirius2375/215

http://cafe.naver.com/yogigajo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12&

http://blog.yahoo.com/_SUDAEJ6TL4I6MRQOWVW2EHG2S4/articles/706303 : 악숨 제국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0hyundai&logNo=100137283712&categoryNo=45&parentCategoryNo=0&viewDate=&currentPage=5&postListTopCurrentPage=1&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10&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5  : 회색도시

www.addisababacity.gov.et/ : 아디스아바바 시청 홈페이지

 

 


철도 시찰을 나온 메넬리크를 묘사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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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노아의 후손이라고 알려진 햄족으로 피부만 검을 뿐 혈통 상으로는 백인에 속한다. 흔히 에티오피아 하면 보통 아프리카 흑인들의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못된 상식. 거리를 걷다 현지인들을 관찰하면 이들의 얼굴과 행동이 어딘가 백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도!


2) 본명이 살레 마르얌(Sahle Maryam)인 메넬리크 2세(ምኒልክ,1844.8.17~1913.12.12)는 에티오피아의 황제. 에티오피아의 영토를 거의 오늘날의 수준까지 넓히고 이탈리아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근대화 개혁을 추진해 에티오피아를 강국으로 발전시켰다.

메넬리크 2세가 있다면 메넬리크 1세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메넬리크 1세는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의 인물이자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다.

 

 


아두와의 위치

 


3) 이탈리아군이 2만 명인데 비해 에티오피아군은 8만 명에 달했고, 이탈리아군은 에티오피아를 얕잡아본 탓인지 장비를 충분히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이탈리아는 대패하고 말았고, 같은 해에 에티오피아와 아디스아바바 조약을 체결해 에티오피아를 독립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두와 전투는 남아프리카의 줄루 왕국이 영국군을 격파한 이산들와나 전투와 함께 아프리카인이 유럽인에게 거둔 대표적인 승리로 기억되고 있다.

 

 

메넬리크의 영토확장. 아두와 전투에서 승리한 메넬리크는 위의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에티오피아의 영토를 꾸준히 늘려, 거의 오늘날의 것과 같은 영토를 만들었다.
 
4)


5) OAU (Organization of African Unity)


6)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1930년에 즉위. 하일레 셀라시에 시대의 에티오피아는 잠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착실한 근대화 사업으로 1960년대까지 1인당 국민 소득 3,000$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는 최빈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00$를 넘지 못했을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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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응고롱고로 + 시미엔 프롤로그

2013. 9. 14. 21:29

 

세렝게티 응고롱고로 + 시미엔 프롤로그

 

이번 여행을 하면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찬란한 문명과 함께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아프리카의 수려한 자연경관이었다. 초원이가 가고 싶어한 세렝게티 초원과 지구에서 가장 큰 분화구인 응고롱고로에서의 사파리 체험은 왜 전세계 여행자들이 그토록 탄자니아를 여행하기를 꿈꾸는지를 알려주었다. 대자연의 광활한 초원에서 오랫동안 그들의 질서를 유지하며 삶을 이어온 동물들을 보며 느낀 경외감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간섭이 없는, 아니 인간이 간섭할 수 없는 그곳에서 우리가 대자연 앞에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시미엔산은 탄자니아의 국립공원과는 전혀 다른 자연환경으로 우리의 눈길을 붙잡았다. 해발 2000미터의 고원에 세워진,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독자적인 문화와 전통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사미엔. 트래킹 내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장엄한 골짜기와 기기묘묘한 봉우리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독특한 희귀동물들은 아프리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야생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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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리벨라-그들의 성지, 우리의 유산

2013. 9. 14. 21:11

 

랄리벨라-그들의 성지, 우리의 유산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시간을 살면서 동시에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달력 체계인 에티오피아력1) 은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오력보다 약 7년 9개월 정도가 느린데, 이는 예수가 태어난 시기를 그만큼 느리게 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에티오피아에서는 예수와 그가 창시한 종교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종교는 조금은 독특한 기독교인 에티오피아 정교(Ethiopian Orthodiox)이다.

 

에티오피아 정교는 기독교의 일종으로 동방교회(Oriental church)에 속한다. 기독교는 로만카톨릭(천주교)과 개신교, 그리고 동방교회로 나누어지며 동방교회에는 그리스 정교, 우크라이나 정교, 러시아 정교 등이 속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신교나 천주교의 경우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이 많은 반면, 동방교회는 천주교나 개신교와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점2) 을 보이고 동방교회에 속하는 정교들 간에도 일치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이것은 동방교회가 주로 그 지역의 특성에 맞춰 토착화된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정교의 교회 중 가장 크고 위대한 것이 바로 지금부터 살펴볼 지역인 랄리벨라의 11개의 암벽 교회이다. 천사가 와서 지어주었다는 전설을 믿고 싶을 만큼 거대한 암벽 교회군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에티오피아 지역은 악숨제국3)  이전부터 유대교를 믿긴하였으나 그보다는 Astar라는 신을 섬기는 토착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기독교가 정식으로 인정받고 지금처럼 큰 영향력을 미치게된 것은 4세기경 에자나왕 때부터이다. 삼촌, 형과 함께 에티오피아로 항해하던 어린 프루멘티우스를 싣은 배가 홍해 근처에 멈춰 악숨제국의 노예가 된 프루멘티우스와 그의 형은, 운좋게도 죽임을 당하는 대신 과부인 왕비에 의해 어린 왕위계승자인 에자나의 교육을 맡게 된다.

 

어릴적부터 프루멘티우스에게 교육을 받았던 에자나는 왕이 된 후 서기 324년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것을 국교로 선포하였다.4)  그 결과 에티오피아는 이집트가 주변 국가로 (역시 기독교의 일종인) 곱트교 선교단을 보내던 시기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이집트를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후에 이 지역의 기독교는 이집트에서 들어온 곱트교의 영향과 지역적 특색을 더한 에티오피아 정교로 재탄생하였다. 형은 떠났지만 프루멘티우스는 이 지역에 남아 에티오피아에 파견된 초대 주교이자, 에티오피아 정교의 초대 수장으로써의 역할을 하였다.

 

에티오피아 정교의 자부심은 그들에게 전해져오는 여러 전설을 통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악숨제국을 설립자인 메닐리크 1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시바여왕과 솔로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한다. 그가 솔로몬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악숨에 있는 언약의 궤5) 로 오늘날 왕들의 유물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진다.6)  이 전설은 오랫동안 이들의 종교적 정통성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했고 20세기에 나타난 아주 먼 후대인 하일레 셀라시에 1세7) 까지 영향을 미쳐 그가 스스로를 위대한 솔로몬 왕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도록 하는 근원이 되었다.

 

 

960년 경 요디트(Gudit)?? 여왕8) 에 의해 악숨이 완전히 무너지고 그 자리에 자그웨왕조가 생겨났다. 자그웨(Ze-Agaw)는 게즈어로 ‘아그웨족(Agaw)의 왕조’라는 뜻이다. 거대한 암벽 교회군이 있는 도시인 랄리벨라는 자그웨 왕조의 7대 왕인 랄리벨라 왕의 이름을 본 딴 지역이다. 왕이 된 랄리벨라는 수도를 당시 로하(Loha)라고 불리우던 지금의 랄리벨라 지역으로 이전했다. 이 것은 600년경 말 신흥종교로 나타나 점점 성장하고 있던 주위의 이슬람 세력을 피해 좀 더 내륙의 지방으로 피신한 것이기도 하다. 이슬람 국가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성지순례는 점점 어려워졌고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랄리벨라에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랄리벨라의 거대한 암벽 교회를 지은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 랄리벨라 왕 또한 비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반적인 왕위계승서열인 전대왕의 아들이 아닌 이복동생이었다. 랄리벨라가 어릴 적 벌들이 떼지어 모여 그의 요람 주위를 돌고 그가 행복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모습을 본 랄리벨라의 어머니는 동물들이 그가 왕이 될 인물임을 알았다9) 고 생각해 ‘벌들이 이 아이가 왕이 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의 랄리벨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실을 들은 형이자 자그웨왕조의 6대 왕이었던 하르바이는 더욱더 애가 탔고 그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동생을 암살하려고 여러번 시도했다. 하지만 암살시도는 번번히 실패했고, 어린 랄리벨라에게 독약을 먹였을 때에도 그는 죽지 않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는 사흘간의 혼수상태에 빠진 후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 동안 천사들의 도움으로 하늘로 옮겨져 지냈으며 신이 그에게 돌아가 로하에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교회를 지으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하르바이는 랄리벨라 암살을 더 이상 시도하지 않고 그가 그 다음 왕이 될 것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랄리벨라의 거대한 암벽 교회는 총 11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교회들은 서양의 여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인들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그 중 마지막으로 지어진 성 그레기오스 교회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져 온다. 랄리벨라는 암벽 교회 10개를 완성하고 더 이상 지을 계획이 없었는데 어느날 밤 그의 꿈에 성 그레기오스가 나타나 ‘왜 나를 위한 교회는 지어주지 않느냐!’고 말해 그를 위한 교회를 지은 것이 위에서 보았을 때 십자가10)  형태를 한, 매우 독특하며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 그레기오스 교회라고 한다.

 

이 위대한 11개의 교회들은 120년에 걸쳐 지어졌고 이것을 어떻게 건설하였는지는 오늘날의 건축기술로도 알수 없어 사람들은 천사의 도움으로 바위를 조각해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랄리벨라의 중심을 흐르는 강은 예수가 세례받은 요르단 강이 되었고, 교회 옆의 언덕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갔다고 전해지는 무덤언덕인 골고타 언덕이 되었다. 새로운 성지 건설은 지쳐있던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재기를 위한 큰 힘이 되었다.

 

이 후 에티오피아는 유럽의 주변 국가 식민지화, 짧은 이탈리아 식민지 등을 거치면서도 종교적 특색을 계속 간직하여 지금도 에티오피아 정교의 유산과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에티오피아에는 절반 조금 안되는 정도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이고, 이슬람 신도들이 40% 정도로 예전처럼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가 많지는 않다. 또한 종교간 갈등이 과격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해 2011년에는 과격 무슬림 청년들이 50여개의 에티오피아 교회들을 불태우고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 한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과 기아 등 생활고 속에서도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굳건히 지키며 그들의 새로운 성지인 랄리벨라에서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영판 (+재인용도)

종교별 신자의 비율은 주 에티오피아 한국 대사관 참고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 에티오피아

처음 읽는 아프리카 역사

John G. Hall, Ethiopia : in the modern world, chelshia House Publisher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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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즈력(Ge’ze calendar)라고도 한다.

 

2) 심지어 크리스마스의 날짜도 다르다! 그레고리오력에서는 12월 25일이지만,  에티오피아력으로는 1월 7일(윤년의 경우 8일)이 크리스마스이다. 로만카톨릭에서는  동방교회의 교회력과 어느정도 통하는 부분을 만들기 위해 이날을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방문했다고 하는 날짜로 교회력에 넣었다.

 

3) 800여년간 지속된 북아프리카 지역의 매우 강성한 제국이다.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와 달리 게즈(Ge`ez)어라는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4) 사실 프로멘티우스가 악숨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은 이 곳에 들어오는 기독교 상인들의 거래를 위함이었다.

 

5) 모세가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돌을 보관해놓았던 상자라고 한다.

 

6) 언약의 궤는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에 보관되어 있어 존재유무조차 확실히 파악할 수 없어, 있다고 ‘전해진다’.

 

7) 거룩 삼위일체의 힘이라는 뜻. 재위 기간 : 1892-1975.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대위식을 보고 감명받은 사람들이 그의 왕자시절 이름을 딴 라스타파리교를 만들기도 하였다. 자메이카 출신 레게 가수 밥 말리가 신도인 것으로 유명하다.

 

8)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불명확한 반-전설적인 존재이다.

 

9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동물 세계가 위대한 인물의 출현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동물들이 미래의 중요한 일을 알려줄 수 있다는 민간신앙을 가지고 있다.

 

10) 우리가 생각하는 십자가와는 다른 모양으로 어느 쪽으로도 같은 길이를 가진 +형태이다. 동방교회에서는 많이 나타나는 모양으로 그리스 정교 또한 이러한 모양의 십자가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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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부갈(Abgal)족

2008. 7. 28. 12:20
 

아부갈족은 이사(Issa)족의 가장 하위종족집단으로 약 400,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사족은 아프리카의 뿔 지역인 에티오피아, 에리트리아, 그리고 소말리아에 살고 있는 소말리 종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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