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내전

2020. 5. 19. 17:36

에티오피아는 19세기 통일당시 여러 종족과 지역이 통합됨

소수인 암하라인과 티그레이인이 다수 종족을 지배 탄압하여 내전이 발생

에티오피아의 미래는 모든 종족의 평화로운 공존에 달려 있어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아들로 시작된 솔로몬 왕조는 19세기 이전까지 에티오피아를 통일시키지 못했으며 여러 종족이 독자적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16세기에는 유명한 커피 산지인 하라르(Harar)에 있었던 이슬람 국가인 아달(Adal) 왕국이 솔로몬 왕조를 침략했고, 18세기에는 오로모족이 침략하여 현재의 오로미아 지역에 독립 국가를 세웠다.

19세기 중반부터 솔로몬 왕조는 여러 종족을 통합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며 에티오피아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정복전쟁을 통해 다른 종족들을 굴복시켰고 서구의 식민지배와 같은 방식으로 가혹하게 통치를 하였기 때문에 다른 종족들은 반감을 갖게 되었다. 1974년 공산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황제들은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를 강화하고 다른 종족을 배제하였으며 암하라족의 문화, 종교, 언어를 강요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 에리트리아와 오가덴 지역이 에티오피아에 통합되었으나 국경분쟁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침략과정에서 또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 에리트리아는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통해 1991년 결국 독립한다. 소말리아는 소말리 족이 주로 살고 있는 오가덴 지역에 대한 영토회복을 주장하며 1977년 침략하였다. 결국 에티오피아는 이웃국가인 에리트리아와 소말리아에 대해 적대적 관계를 이어가야 했고 두 국가는 반정부활동 조직의 근거지가 되어 내전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에티오피아는 햄, , 쿠시 어족이 모두 함께 살고 있으며 종족수도 80개에 이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다양한 어족 및 종족 집단이 모두 함께 살고 있는 다종족 국가다. 주요 종족은 오로모(Oromo)족이 34.4%, 암하라(Amhara) 족이 27%, 소말리(Somali)족이 6.2%, 티그레이(Tigray) 족이 6.1% 등으로 오로모족이 최대 종족이지만 역사적으로 북부의 암하라와 티그레이 족이 지배종족으로 다수종족인 오로모 족을 비롯하여 다른 종족을 지배하여 왔다.

에티오피아 내전은 결정적으로 셀라시에 황제와 멩기스투 공산정권이 오로모족과 소말리족 등 다른 종족을 탄압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1974년의 민중 봉기로 인해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종족 자결권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정권은 종족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폭력을 통해 해결하였다. 이에 대해 여러 종족이 공산정권을 암하라의 압제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투쟁했다.

특히 에티오피아 정부는 다수종족인 오로모족을 식민지화전략이나 다름없는 암하라화정책을 통해 가혹하게 탄압했다. 무엇보다 오로모인을 에티오피아인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의 피지배민으로서 취급하였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정부 정책에 저항하고 오로모 정치조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강제 수용소나 형무소에 수감되거나 살해되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오로모족 출신인 페이사 릴레사는 시상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의 오로모족 탄압을 폭로하는 ‘X자 세리머니인 반정부 퍼포먼스를 벌이며 오모족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정부 탄압에 대해 오로모 족은 정치·군사적 조직을 결성하여 반정부활동을 벌였다. 오로모 족은 1973년 오로모해방전선(OLF)과 군사조직인 오로모해방군(OLA)을 조직하여 강력한 저항을 하였다.

19915월 멜레스 제나위가 이끄는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이 공산정권을 무너뜨렸고 대통령에 된 후 종족 연방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종족 연방제는 언어·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종족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종족에 기반을 둔 지방자치를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선거는 종족에 기반을 둔 연방주의가 필연적으로 종족집단간 경쟁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위험한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선거에서 다른 종족들이 집권당인 EPRD에 도전하려 하자 제나위는 이를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515일에 있었던 집권 여당의 총선 부정의혹에 대해 반정부 시위가 6월과 11월에 걸쳐 발생했고, 이를 보안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총 193명의 시위자가 사망하고 763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2만 명이 구금을 당했다. 제나위는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했다.

EPRDF는 티그레이, 암하라, 오로모 등 3개 민족집단이 이끄는 티그레이인인민해방전선(TPLF), 에티오피아인민민주운동(EPDM), 오로모인민민주조직(OPDO) 등이 연합하여 조직되었으나 티그레이인이 1991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권력을 장악해왔다. 6%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티그레이인이 정부를 주도하며 다수인 오로모족과 암하라족을 배제시켜 반정부 시위와 게릴라 공격이 발생했고 결국 2018215하일레마리암 데살렘 총리를 퇴진시켰다.

1991년 이전에는 암하라족과 티그레이 족에 대해 오로모족과 소말리족이 저항을 했지만 1991년 이후에는 티그레이 족에 대해 암하라 족과 오로모 족이 저항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마디로 에티오피아의 종족간 갈등은 상황이 맞아떨어진다면 언제든지 합종연횡을 통해 재편되며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황제의 통치 시기, 공산정권, 제나위가 이끌었던 EPRDF 정권 모두 종족갈등을 풀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과거 역사에서 발생했던 부당한 종족 관계를 청산하고 모든 종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적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20184242세의 젊은 아비 아흐메드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반년도 안 되었지만 에티오피아는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무슬림인 오로모족 아버지와 정교회 신자였다가 개종한 암하라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비 총리는 오로모, 암하라, 티그레이 등 3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어 종족과 종교를 뛰어넘어 국민을 통합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어진 그의 개혁 정책은 내전과 국경분쟁을 종식하고 국민과 국가를 통합하여 진정한 발전으로 나아가는 행보로 평가받고 있다. 20187월에는 에리트리아와 종전을 선언하고 9월에는 평화협정 체결하여 20년간 이어진 무력 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시켰다. 또한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3국 정상이 에리트레아의 아스마라(Asmara)에서 회담을 개최하여 아프리카 뿔 지역의 협력을 논의함으로써 이 지역의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810월에는 1977년 소말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이후 운항을 중지했던 에티오피아항공이 41년 만에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운항을 재개하였다. 아울러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는 모든 아프리카인에 대해 도착비자를 발급하도록 문호를 개방하였다.

에티오피아의 경제는 현재 고속 성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4마리 사자로 넣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경제발전은 아비 총리가 추진하는 개혁정치를 성공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뿌리 깊은 민족갈등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와 정책적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189월에 발생한 2건의 민족간 유혈사태는 에티오피아가 추진하는 개혁정책 과정에서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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