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54번째 신생 독립국가 남수단은 자원이 풍부하고 지정학적 중요성이 큰 국가
아프리카의 병폐인 독재와 부족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전이 발발
내전 이후 남수단은 발전 될 것이며 이에 대한 진출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
역사적으로 영국은 수단을 식민지배하면서 북부와 남부를 인종, 언어 및 종교 등에 따라 분리하여 통치함으로써 한 국가로 통합되지 못했다. 독립이후 수단은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져 약 50년간 내전을 겪었고, 2005년 포괄적평화협정에 따라 이루어진 주민투표에서 98%의 지지율을 보여 2011년 7월 9일 남수단 공화국(Republic of South Sudan)으로 분리하여 독립을 맞게 된다.
아프리카의 54번째 신생 독립국인 남수단은 독립 당시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아프리카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취약한 경제구조와 2012년 수단과의 석유분쟁은 이제 막 출범한 남수단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이로 인해 악화된 경제상황이 남수단을 내전으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2013년 12월, 권력투쟁과정에서 살바 키르(Salva Kiir Mayadiit) 대통령과 마차르(Riek Machar) 부통령 사이의 불화가 남수단의 양대 민족인 딩카 족과 누에르 족 사이에 내전으로 번지면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남수단의 사례는 탈식민지화와 독립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가발전 과정에서 겪어왔던 문제점을 한꺼번에 다시한번 보여줌으로써 아프리카의 국가건설과 발전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웃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국제사회는 남수단의 석유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하여 개별적인 지원전략을 통해 경쟁적으로 남수단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이면에는 지역의 패권과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필자가 2011년 1월 케냐를 방문할 당시 이미 케냐는 남수단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이윤이 나지 않는 남수단의 수도인 주바에 케냐항공을 취항시킨바 있다.
남수단은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으로 임기는 4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초대 대통령이자 현 대통령인 살바 키르는 2010년 대선 당시 93%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남수단 의회는 2015년 3월에 내전으로 인한 무정부 상태를 피해야 한다는 이유로 키르 대통령의 임기를 2년 연장하였는데 올해 7월 12일 다시 현 대통령의 임기를 2021년 7월까지 3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3년 7월 키르 대통령이 마차르 부통령이 쿠데타를 모의했다고 주장하며 부통령과 내각을 해임함으로서 두 세력의 갈등은 결국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2015년 8월 미국의 압박 속에서 키르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케냐, 우간다, 에티오피아 정상들이 주도하는 평화 협정에 서명하였다. 이에 따라 2016년 4월 마차르는 외국에서 귀국하여 남수단 통합과도정부(Transitional Government of National Unity)의 제1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러한 배경은 권력투쟁과 종족주의가 원인이다. 키르 대통령은 남수단 최대 종족인 딩카족(전체 인구의 약 35.8%) 출신이며, 마차르 전 부통령은 두 번째로 큰 누에르 족(전체 인구의 15.6%) 출신이다. 이 두 사람은 독립 이전에는 서로 협력했으나 독립 이후 국가권력을 놓고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키르와 마차르는 독립운동을 벌인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이끈 지도자들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뿌리 깊은 갈등이 내제하고 있었다. 마차르는 남수단이 독립하기 이전부터 2인자였으며 독립 이후에도 부통령이 되어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2015년 선거에서 마차르는 대통령이 되려고 했고 키르 대통령은 당연히 마차르의 도전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저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평화협정 이후에도 2016년에 대통령 세력과 부통령 세력 간 무력 충돌이 지속되었다. 마차르 부통령은 내전 상태로 돌입했다고 주장했으며 키르 대통령은 내전은 아니며 안정적인 상태라고 주장하며 사태를 봉합하려고 했다. 그러나 계속된 무력충돌로 인해 미국 대사관 및 IMF 등 긴급 구호 인력들을 제외한 각 국가 및 국제기구, 구호 단체 관계자들이 남수단에서 철수하였고 케냐 항공을 포함하여 주바로 취항하는 항공사들이 운행을 취소하였다. 키르 대통령은 2016년 7월 평화협정을 파기하고 마차르 부통령 및 관련 내각을 해임하였다. 이에 대해 마차르 전 부통령과 야당은 강력히 반발하였고 남수단은 불안한 정정이 계속되고 있다.
2013년 말부터 발생한 남수단 내전으로 지금까지 수만 명이 숨지고 약 300만 명이 피난민이 발생했다. 개발을위한정부간기구(IGAD)는 1990년대부터 수단-남수단 지역 내전에 대한 중재 역할과 함께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남수단 평화프로세스를 출범시킨 바 있다. UN과 AU는 남수단의 독립과 국가건설 그리고 내전 발생 이후 평화정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유엔은 유엔남수단임무단(UNMISS)을 파병하여 평화 유지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AU는 2016년 7월 아프리카연합 정상 회의에서 남수단 대통령 및 부통령 세력 간 충돌에 대한 대응책으로 아프리카연합 차원의 병력 지원을 결정하였다.
2018년 6월 27일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는 5년째 진행 중인 내전을 종식하는 평화안에 또 다시 합의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양 당사자들이 평화정착과 내전 종식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는 남수단의 내전은 획기적인 전기가 없을 경우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만약 내전이 종식된다면 남수단은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동아프리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될 수 있으며 석유자원 개발 및 인프라 건설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기회가 창출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남수단 진출에 대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남수단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의외로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알려졌다. 에번스 프리처드(Edward E. Evans-Pritchard)가 1940년 출판한 누에르(Neur) 족 인류학 저서가 1988년과 2008년 두 번이나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2001년에는 남수단 톤즈(Tonj)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사망한 이태석 신부 이야기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알려진 바 있다. 그리고 약 280여명 규모의 한국군 한빛부대가 현재 남수단임무단(United Nations Mission in South Sudan : UNMISS) 활동에 참여하여 남수단의 안정화와 재건임무를 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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