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내전, 남부 수단과 다르푸르(Darfur) 사태

Mansa Musa 2020. 5. 15. 15:30

식민지배 시기부터 인종적, 종교적, 경제적 차이가 발생

남부 수단은 협정을 통해 독립했지만 다르푸르는 여전히 내전이 진행 중

알 바시르 대통령의 독재가 문제를 악화

 

수단의 수도 카르툼은 백나일과 청나일이 합쳐지는 곳으로 고대부터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이집트와 활발히 교류하며 문명을 꽃을 피웠다. 수단의 누비아(Nubia) 왕국은 기원전 3200년경 쿠쉬 왕국이 출현한 이후 기원후 1500년경까지 이어졌다. 줄곧 이집트의 지배를 받던 누비아 왕국은 기원전 약 920년경 이집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통치를 시작하였고 피앙키(Piankhy: 기원전 751~712) 왕은 이집트를 정복하여 제25왕조를 열어 검은 파라오가 되었다. 누비아 왕국은 기원전 300년경 수도를 나파타에서 메로에(Meroe)로 옮긴 이후에 화려한 메로에 문명을 꽃 피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뮤지컬 아이다의 줄거리는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와 포로로 잡혀 온 누비아 왕국의 공주 아이다의 이야기이다.

수단 내전은 북부의 중앙집권적인 아랍계 이슬람 정부와 남부의 자치를 주장하는 아프리카계 기독교도 사이에 발생하였다. 중앙집권적 정부와 자치 또는 연방정부를 둘러싼 정치권력의 주도권,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적 분쟁, 아랍계와 아프리카계의 대립, 북부와 남부의 지역간 갈등, 석유자원에 대한 경제적 이익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수단 내전 발생 이전부터 수단은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 이질적인 모습을 갖게 되었다. 1820년 이집트는 금과 노예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수단을 침략했고 북부 수단을 이용해 남부 수단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강화하면서 남북 사이가 이질화되기 시작했다. 1881년 마흐디가 이끄는 무슬림이 봉기해 이집트의 지배를 몰아냈으나 1882년 이집트가 영국의 보호령이 되면서 다시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영국의 선교사들은 수단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선교활동을 벌여 남부 지역은 1956년 약 80%가 기독교도 또는 전통적인 토착종교를 믿게 되어 북부와 더욱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수단 내전은 1955년 독립 이전부터 북부와 남부 사이에 불평등과 정치적 주도권을 놓고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남부 수단은 남부수단해방운동(Southern Sudan Liberation Movement : SSLM)을 조직하고 정부에 대해 자치를 주장하며 저항을 하였다. 결국 당사자들은 1972년 아디스아바바 협정(Addis Ababa accords)을 통해 휴전에 합의하고 상당한 정도의 자치를 보장받아 내전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1983엘 니메이리(Gaafar Muhammad el-Nimeiry) 대통령은 수단 남북 경계지역에서 발견된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과 샤리아 이슬람 법을 제정하여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는 의도로 아디스아바바 협정을 파기하였다. 이로 인해 1983년부터 2005년까지 약 21년간 내전이 발생했으며 약 200만 명이 사망하고 약 4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극도의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 남부 기독교계 흑인들은 수단인민해방운동군(People’s Liberation Army : SPLM)을 조직하여 수단 남부의 자치를 위하여 정부와 전쟁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1985년 쿠데타가 발생하여 니메이리 대통령이 실각하였고 19864월 선거를 통하여 알 마흐디(Sadiq al-Mahdi)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알 마흐디 정부는 SPLA와의 평화협상을 통해 샤리아 법 적용을 폐지하고 헌정회의를 소집하는 내용을 담은 코카담 선언(Koka Dam declaration)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평화정착 노력은 악화된 경제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결국 1989년 알 바시르(Omar Hassan al-Bashir)가 이끄는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고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섰다.

2005년 합의된 포괄적 평화협정이 이행되어 2011년 남수단이 국민투표를 통해 분리 독립을 하게 되어 수단 내전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수단 정부가 남수단의 독립을 용인한 것은 합의와 협정을 통해 해결된 아프리카 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수단 내전은 일반적으로 북부와 남부의 갈등으로 설명하지만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다르푸르(Darfur) 지역의 분쟁도 포함시켜 설명해야 한다. 차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지역은 17세기부터 퍼르 술탄국이 출현하였고 이슬람이 국교로 채택되었다. 영국은 식민지배 당시에 다르푸르의 경제적 이익이 크지 않고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지배체제를 이용하여 간접통치를 하였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은 종족과 씨족 전통의 전통적인 통치체제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인구는 2017년 현재 약 930만으로 주로 농업을 하는 아프리카계와 유목을 하는 아랍계가 섞여 있다. 아프리카계 종족인 중부의 퍼르(Fur)족과 서부의 마살리트(Masalit)족은 기장을 재배하고 있으며 북부의 자그하와(Zaghawa) 족은 낙타와 염소를 방목한다. 그리고 아랍계인 남동부의 바가라(Baggara) 족은 소를 방목하고 있다. 2003년 초부터 수단정부군이 지원하는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Janjaweed)와 아프리카계 반군들 사이에서 종족 분규가 발생하였고 무차별적인 인종청소와 인권남용이 발생하였다.

이 지방의 주민들은 인종적 차이를 떠나서 같은 수니파 무슬림이다. 또한 인종적으로는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인종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 혼종이 발생하여 일반적인 분류인 피부색깔과 외형으로 구분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이 지역의 분쟁은 환경문제의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다르푸르 북부지역의 사막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아랍계 유목민들이 초지와 물을 찾아 남진하면서 경제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 또한 독립당시 약 133만 명이던 인구가 2004년 약 600만 명으로, 그리고 2017년에는 약 930만 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여 환경이 악화되었고 1984-1985년 발생한 대기근이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2003년 아프리카계 종족이 중심이 된 두 개의 반군집단 - 수단 인민해방군(Sudan Liberation Army/Movement : SLA/SLM), 정의평등운동(Justice and Equality Movement : JEM) - 이 다르푸르 지역의 경제적 소외를 종식시키고 아랍인들에게 치우쳐 있는 국가권력을 공평하게 분배할 것을 주장하며 반군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또한 다르푸르 지역은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북쪽의 아랍계 유목민이 가뭄과 사막화로 인해 아프리카계 주민이 살고 있는 다르푸르 중심지역을 자주 침범하는데 대해 정부에 대책을 호소했으나 정부의 무대응으로 일관한데 대한 반발이 크게 작용하였다.

가장 큰 원인은 수단 정부의 무능과 편파적인 정책이 이 지역 주민들을 분열시키면서 서로가 대립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은 1989년에 등장한 알 바쉬르의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촉발되었다. 1989년 바시르 장군이 누메이리 정권에 대한 구데타 이후 군사독재를 강화하고 이슬람원리주의의 민족이슬람전선(National Islamic Front : NIF)과 손을 잡고 샤리아 이슬람 법의 적용을 강화하였다. 그는 비서구노선을 채택하여 이란, 이라크, 리비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의 입국을 환영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킨 계기는 1994년 수단 정부가 이 지역을 3개의 주로 분리하면서 아프리카계 부족의 경작지를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수단 분쟁은 강대국의 직접적 이익이 걸려있지 않고 그 영향이 국내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국제사회는 2007년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였지만 그 사이 약 30만 명이 사망했고 약 2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수단의 남수단 독립과 다르푸르 사태는 아프리카 역사와 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제공하고 있다. AU는 남부 수단이 협정을 통해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식민지 시기에 결정된 국경문제를 유연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다르푸르에 대한 AU 주도의 평화유지군 파병은 소말리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자적인 평화해결을 지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르푸르의 평화유지활동은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다. AUUN의 주도로 다르푸르 평화협정(Darfur Peace Agreement : DPA)200655일에 체결되었다. 모든 당사자들이 DPA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타르 도하에서 20106월부터 20116월까지 추가 협상이 재개돼 평화협정 문서를 다시 만들었다. 여전히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당사자들을 도하 협약에 합류하도록 외교적, 정치적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반군조직은 수단 정부에 대해 강경한 자세로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77SLMJEM에서 분리되어 결성된 세 번째 파벌인 수단자유동맹군(Sudan Liberation Force Alliance : SLFA)은 다르푸르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차드의 평화노력에 참여하고 있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다르푸르 사태는 빠른 시일 안에 효과적으로 종식되기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여러 가지 있다. 20186월 현재 다르푸르의 분쟁지역에 파병된 평화유지군의 일부가 분쟁 해결여부에 관계없이 예산 삭감으로 인해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보도가 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한 다르푸르 지역이 국제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수단 정부와 알 바쉬르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과 30년이 넘는 독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2009년 국제형사재판소는 반인도범죄와 전쟁범죄 혐의로 현직 대통령인 알 바쉬르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수단을 '무슬림 금지' 대상 6개국 중 하나로 지정했고 이란, 시리아와 함께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였다. 국제사회의 제제와 수단의 정치적 민주화는 내전 종식을 이끌어내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