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구인은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거래했을까?

2018. 4. 6. 09:59


아프리카가 인도로 가는 무역로의 중간에 있어 거추장스러운 곳으로 생각했으나 16세기 말 남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에 설탕 플랜테이션이 시작되자 극적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설탕, 담배, 커피, 면화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노동력은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의 질병에 노출되자 사망률이 높아졌고, 식민지 노동력으로 편입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저항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노동자들 역시 열대병 때문에 높은 사망률을 보였고, 플랜테이션에 필요한 노동력을 채우기에 유럽 노동자들의 숫자는 태부족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들은 열대병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고, 고대부터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을 통해 유럽인들과 접촉을 해왔기 때문에 유럽의 질병에도 저항력을 갖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유럽인 무역상들과 내륙 지역에서 포획한 노예를 수송하는 아프리카인 중개인들 사이에는 사업적 협력 관계가 구축되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 AFRICA, allafrica, 노예, 면역력, 사하라, 서구인, 아프리카, 열대병, 올아프리카, 인도양, 중개인, 포획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탐험과 항로의 개척

2018. 4. 6. 09:58


아프리카와 유럽의 상호작용의 역사는 1400년대 초반 포르투갈의 항해 왕자 헨리(Henry)의 후원을 받은 항해부터 시작되었다. 헨리 왕자는 북부 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아랍 지역을 우회하여 서부 아프리카의 주요 문명 지역들과 황금을 직접 교역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계획은 기술이 발달하여 포르투갈인들이 기니 남쪽을 탐험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1460, 무역선이 케이프 베르데(Cape Verde)에 당도하였고, 곧 이어 1471년에는 황금해안(Gold Coast), 1483년에는 콩고, 1488년에는 희망봉(Cape of Good Hope)에 도착했다


1497년에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양과 동부 아프리카에 있는 스와힐리 해안도시에 도착했고, 그 이후 인도에 도착하게 된다. 드디어 1500년 카브랄(Pedro Cabral)은 포르투갈을 출발하여 브라질에 기착한 후 케이프 타운을 돌아 동아프리카를 거쳐 인도로 가는 항로를 확고히 열고 포르투갈의 독점시대를 열었다. 이 지역에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The Dutch East India Company)가 인도 항로의 중간 정박 기지인 기항지를 건설을 목적으로, 얀 판 리비어크(Jan van Riebeek)가 이끄는 3척의 배와, 130명의 남녀로 구성된 탐험대가 165264일 테이블 만에 도착하게 됨으로서 드디어 유럽인이 최초로 아프리카에 이주 정착하게 되었다.


매우 이익이 컸던 인도양 무역으로 인해 원래의 목적이었던 아프리카의 황금은 뒷전이 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은 황금해안의 엘미나(Elmina), 콩고, 앙골라, 모잠비크, 몸바사에 거주지를 만들고 제한된 무역을 했지만, 선박들은 대부분 아프리카를 우회하여 동방으로 향했다. 1500년 중반 네덜란드인, 영국인, 프랑스인들이 포르투갈 무역상을 대신하기 시작했지만, 아프리카는 유럽의 최종목적지인 극동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우회해야 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더 우세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 AFRICA, allafrica, 개척, 무역, 바스코다가마, 아프리카, 올아프리카, 인도양, 탐험, 포르투갈, 항로

인도양 무역로와 스와힐리 문명

2018. 4. 6. 09:56


인도양에 접한 동부 아프리카 해안은 계절풍을 이용한 무역을 통해 아라비아, 인도, 그리고 멀리 중국과 왕래했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내륙지방과의 무역은 일찍 시작되었고 인도양은 남부 아프리카에서 채굴된 금, 구리, 철 등의 주요 목적지였다. 특히 14-15세기에 스와힐리 해안과 짐바브웨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는 이러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스와힐리 무역망은 해안가와 내륙지방을 따라 확대되어 갔으며 내륙지방과의 장거리 무역은 18-19세기에 급격히 확대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 일부 학자들은 스와힐리 문명이 서구 학자들에 의해 정체성을 분명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스와힐리 문명을 인도양의 대양문명(大洋文明)으로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스와힐리어 문명은 인도양 무역로를 중심으로 성장한 동아프리카 해안의 도시국가였다. 스와힐리인들은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서 온 이슬람 선원들과 교류하였고, 다우(dhow)선으로 알려진 배를 이용하여 인도양 무역에 참여하였다. 서기 1천년 무렵에는 아프리카의 스와힐리 도시국가들은 모가디슈(Mogadishu : 현재의 소말리아)부터 소팔라(Sofala : 현재의 모잠비크)에 이르기까지 약 120여개가 있었으며 국제해상무역에 깊이 관여했다. 13세기 무렵에는 킬와(Kilwa)를 중심으로 스와힐리 상인들이 해안을 따라 내려가서 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짐바브웨 지역의 고대왕국과 황금무역을 하였다


탄자니아 남부에 위치한 킬와는 쇼나(Shona)족이 지배한 짐바브웨의 금광을 기반으로 중국, 인도 그리고 다른 이슬람 세계와 광범위하게 무역을 했다. 이러한 도시국가를 기반으로 한 해상무역 사회는 아랍과 페르시아의 이민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의 문화를 모두 근본으로 삼은 독특한 스와힐리 문화를 발달시켰다. 많은 이슬람 도시를 여행한 이븐 바투타는 킬와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이고, 건물들이 매우 고상하며, 그 곳에 사는 주민들 역시 고결하고 덕망 있는 이슬람 교도라고 서술한 바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 AFRICA, allafrica, shona, 동부아프리카, 무역로, 문명, 쇼나, 스와힐리, 스와힐리어, 아프리카, 올아프리카, 인도양, 탄자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