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I

아프리카의 정치 - 냉전이후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발전

africa club 2012. 7. 17. 21:46

 

 

아프리카의 정치 - 냉전이후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발전

 

 

 

30년 이상의 부패와 독재 정치를 겪고 난 후였던 1990년대 초에는 실제로 아프리카 전 대륙에서 강력한 정치적 개혁과 민주화를 보여주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아프리카인들은 1989년 베닌에서 시작하여 1990년대 초 여세를 몰아 독재적 지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숨막힐 듯 답답하고 악화된 경제와 구 소련 및 동구 유럽의 몰락으로부터 자극 받은 아프리카인들은 다당제 정치체제와 시민의 자유 확대, 자유 선거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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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유화의 물결은 남아공과 나이지리아의 민주화 과정으로 인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남아공은 1990년 2월 1일 드 클레르크(F.W. de Klerk)가 300여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초유의 인종차별정책 폐지를 선언하였고 1994년 4월 최초의 다인종 선거로 넬슨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됨으로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또한 1999년 6월에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고 타보 음베키(Thabo Mbeki)의 주도아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multi-cultural diversity)을 추구하며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사회-경제적, 문화적 민주화 과정을 시도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남아공의 민주화는 아프리카 역내 민주화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의 중심국가로서 남아공은 이 지역 분쟁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1998-2001년 비동맹 의장국으로서 제3세계의 중심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남아공의 “기적”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협과 화해를 통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960-66, 1979-83 그리고 1985-99년에 걸쳐 군사정권이 들어섰던 나이지리아는 1999년 5월 오바산죠(Olusegun Obasanjo) 대통령이 이끄는 민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더 이상 아프리카가 정치적으로 후진적이라는 비판을 근절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폭력적인 정권 획득의 대부분은 구데타나 군사 개입을 통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1960년 이후 25명의 대통령과 수상들이 정치적 폭력의 결과로 정권에서 쫓겨났다. 1952년 이집트 혁명이후 아프리카에서 85번의 폭력에 의해 정권 교체가 있었으며 모두가 폭력적인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90여개의 정부가 전복되었다.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31개국이 정권교체를 당했고 이들 중 22개국은 유사한 종류의 정권교체를 1번 이상 경험했다. 베닌, 부룬디, 가나, 나이지리아, 수단, 시에라 레온과  우간다는 최소한 5번의 군사적 정권 교체가 있었다. 군사정권은 일당제와 다당제 국가 모두에서 발생했다.

 

 


보츠와나와 모리셔스만이 독립 이후 다당제를 유지해 왔으며 1994년 7월 군부의 권력 탈취가 있기 전까지는 감비아도 다당제를 유지하였다. 짐바브웨와 나미비아는 독립 이후 다당제 국가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기니아, 말리, 니제르같은 나라들은 독립과 함께 일당제를 채택하였는데 일당제는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게 일반적인 정당 체제로 받아들였다. 구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의 일반적인 모습은 점진적으로 군사정부를 민간정부형태로 이양해가고, 또한 군부 정치 체제를 일당 독재 체제로 변형시켜나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가나와 나이지리아는 예외적으로 독립 후에 민주주의와 군정이 번갈아 가면서 나타났다. 1977년까지 이집트, 모로코, 세네갈에서는 다당제를 부활시켰으며 1980년대에는 튀니지아, 수단, 알제리, 라이베리아, 코모로스 등지에서도 다당제가 뒤따라 부활되었다. 그 후에 라이베리아와 수단에서 독재주의가 부활하고 라이베리아가 내전에 휘말리게 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초 다당제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소용돌이의 초석이 되었다.

 

1980년대의 마지막 해에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권위주의적 권력 질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한 저항은 폭 넓은 대중의 지지속에 일어났으며, 경제적인 빈곤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또한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힘을 얻게 된 아프리카 지원국들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정부에게 경제와 정치 체제에 대한 개방 압력을 가했다. 1989년 11월, UN의 감독 하에 치러진 독립전 나미비아의 총선은 아프리카 제 2의 해방 이라 일컬어진다. 이것은 1990년 전반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일당제 권력 독점이 다당제 선거 제도로 상당히 빠르게 이행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 3월 나미비아가 독립을 맞았을 때, 코모로스는 최초의 경선을 치루었고, 가봉과 코트 디부아르도 같은 해에 코모로스의 전철을 밟았다.

 

 

1991년에는 케이프 베르데, 상토메 프린시페, 베닌, 잠비아에서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1997년 10월까지 45개 국가에서 121번의 다당제 선거(53번의 대통령 선거, 68번의 입법 선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41개국이 존재함과 동시에 나이지리아, 부룬디, 시에라리온, 그리고 콩고 브라자빌 등 4개국은 군사정권으로 돌아갔다. 이 같은 나라 대부분은 자국의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위기의 상황 아래서 다당제를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알제리, 앙골라, 니제르, 그리고 오랜 다당제 전통을 가진 감비아를 포함해서 다당제가 새로이 도입된 곳에서는 불안정한 모습으로 군정권의 개입에 의해 다당제가 파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7년 중반, 이 네 나라들은 다당제를 부활시키고, 문민 정부로 회귀하였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많은 국가에서, 기존의 정치체제들은 야당의 형성과 공개된 선거제도의 실시를 허용했다. 사하라 이남 지역의 48개국 중 1997년 말까지 경쟁적인 다당제 선거를 치루지 않은 국가는 4개국뿐이었다. 실제로 1990년대 초의 아프리카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 민주화의 분명한 ‘물결'에 완전히 동참하고 있었다. 그 정치적 변동의 폭은 1994년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합법적으로 일당 체제의 국가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정치적 개혁과 민주화를 향한 아프리카의 다양한 추이는 21세기 초에 여러 가지 요인들이 아프리카 국가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정치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내부에서 정치가 이루어진 전반적인 배경에는 빈곤과 의존적인 경제라는 식민주의의 산물과, 후원자-고객(Patron-Client Network)중심의 정치 체제, 그리고 냉전체제의 붕괴와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외부의 정치적 경제적 세력의 영향력 증가가 포함된다.

 

아프리카는 중동 근처에 위치하여 남대서양과 인도양에 가까운 지리적 위치와 풍부한 광물 자원을 가진 덕택에, 냉전 기간 동안에는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전략적 지역'으로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아프리카에 상당한 지원을 한 것은 미국이었고, 그보다 양은 적었지만 소련 연방도 거들었다. 소련 연방이 와해되고 소련이 동구 유럽에 대한 통제권을 잃으면서, 아프리카의 중요성은 크게 떨어졌다.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과 케냐 등 미국의 고객국 뿐 아니라 나머지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원조가 삭감되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러시아와 동구 유럽에서 대체 자원을 공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프리카의 전략적인 광물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었고, 아프리카 전체의 경제적 침체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불리한 경제적 상황은 1990년대 후반 국제 정치 무대에서 변화가 일어난 배경이 되었다.

 

다시 말해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일당체제존립 정통성의 이론적 기반을 붕괴시켰고 이들의 원조가 단절되고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념은 이제 아프리카 국가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으며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화에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간 아프리카의 정치적 궤적을 형성한 사회적, 경제적 정황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들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민족, 지역, 종교, 하부민족적 차이로 인해 사회구조가 나뉘어졌다고 주장한다.

 

 

2002년 9월 23일 인종갈등으로 인한 구테타가 일어난 서아프리카의 코트 디브아르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발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머나먼 길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이러한 민주화를 향한 운동이 가지는 가능성이 커 보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경쟁 다당 체제의 민주정치가 쉽게 구축될 수 있다거나 아프리카가 지닌 무수한 문제들 사이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우려할 만한 것은 1990년대 초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비교적 민주적 정부로의 성공적인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민주화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은 감소되었다. 이러한 이유는 서구선진국가들이 상업적 이익이 있는 지역에서는 민주적 개혁이나 정권교체를 그다지 강요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1989년이래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프리카의 정치상황은 발전하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장애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모든 부문에 걸쳐 정치 구조에 근본적인 개혁이 있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모든 국가들은 정치적 자유화를 실행했고, 일당 정부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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