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사용어사전 75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 of 1885-86)

◎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 of 1885-86) 아프리카를 분할하기 위한 원칙들을 협의하기 위해 독일의 비스마르크(Bismarck)에 의해 베를린에서 강대국들이 모여 국제회의를 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벨기에 대표들이 참가하였으며 미국은 참관인으로 참여하였다. 베를린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다. 첫째, 식민지 영토는 '효과적인 점령과 경영'이라는 원칙하에 이용되어야 한다. 둘째, 영국과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도서 지역과 도서 인근지역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셋째, 콩고 자유국은 벨기에 레오폴드2세의 개인 소유로 인정한다. 강대국들의 합의로 나타난 베를린회의는 유럽에서 긴장완화를 이끌어 내었다. 참가국들은 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에..

벨기에와 스페인 제국

◎ 벨기에 제국(Belgian Empire) 콩고자유국(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알려진 영토는 1908년 벨기에 의회가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영토로 물려준 곳이며 이후 벨기에 콩고라 불리어졌다. 일차세계대전 이후 벨기에는 연맹(LU)의 일원으로써 전 독일의 식민지인 르완다-우룬디(현 르완다와 부룬디 )를 위임통치 하였다. 레오폴드왕의 콩고자유국에 대한 착취는 너무나 가혹하여 그 나라 인구는 20년간 급격히 감소하였다. 1960년까지 그같은 착취는 계속되었다. ◎ 스페인 제국(Spanish Expire) : 1914년 이전까지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던 아프리카지역을 말한다. 그 지역은 적도기니와 서부사하라 그리고 모로코의 북부와 남부의 아주 일부분이 포함된다. 스페인의 아프리카 제국은 제국주의 열강 중에서 가..

포르투갈 제국(Portuguese Empire)

◎ 포르투갈 제국(Portuguese Empire) 1914년 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아프리카지역을 말한다. 서아프리카의 섬 지역인 케이프 베르데, 서아프리카의 기네비소, 샹톰 프린스페, 남부 지역의 앙골라와 모잠비크가 이에 속한다. 16세기 까지 포르투갈은 동부해안의 모잠비크에서 서부 앙골라 해안을 따라 접촉하였다. 리스본은 주로 노예무역과 다른 무역 그리고 선교사 일에 관심을 가졌다. 19세기 노예무역이 폐지된 이후에는 그 식민지를 개발시키는데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프리카 쟁탈이 본격화된 이후 포르투갈은 앙골라와 모잠비크라는 두개의 거대한 영토에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였으나 가장 강력한 영국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결국 이 두 국가는 포르투갈의 영향력 하에 놓였다.

이탈리아 제국(Italian Empire)

◎ 이탈리아 제국(Italian Empire) 1914년까지 이탈리아의 식민통치하에 있던 아프리카지역을 말한다. 리비아, 에리트리아, 그리고 소말리아 일부가 이에 해당된다. 1871년에 통일된 이탈리아는 식민지 경쟁에 늦게 출발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지역 외에도 1896년에는 에티오피아를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으나 아도와(Adowa) 전투에 패배하였다. 그러나 1936년에 다시 에티오피아를 침입하여 1944년까지 점령하였다

독일제국(German Empire)

◎ 독일제국(German Empire) 이것은 1914년까지 독일의 아프리카에서의 식민지배를 뜻한다. 그 지역들은 현 탄자니아(잔지바르는 제외), 부룬디, 르완다, 카메룬, 토고 그리고 나미비아를 포함하고 있다. 이 식민지들은 1차대전 이후 대부분 상실했으며 영국, 프랑스, 벨기에에 위임통치 되었다. 1871년에 통일된 독일은 즉각적으로 식민지 획득에 나섰다. 일부 중요한 영토를 획득했지만 1차대전 이후 모두 상실하였다.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영향력은 오랜 세월 동안 전식민지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특히 나미비아에서는 오늘날에도 독일언어와 문화들이 남아 있다.

프랑스제국과 프랑스연방

◎ 프랑스 제국(French Empire) 1914년까지 아프리카지역에 프랑스의 식민지 건설이 계속되었다. 이 지역들로는 북부 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아, 서아프리카의 세네갈, 말리, 모리타니아. 어퍼볼타, 기네아,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베넹, 중부아프리카의 차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가볼, 콩고, 홍해유역의 지부터 그리고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와 코모로스, 리유니온 등이 포함된다. 1차대전후 프랑스는 연맹의 일원으로 카메룬과 토고를 획득하였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가장 넓은 땅을 보유한 제국이지만 인구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약 40%에 이른다. 통치는 직접통치이며 정책은 주로 동화정책 흑은 협동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 프랑스 연방(Franch Union)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제..

프랑스 공동체(French Community)

◎ 프랑스 공동체(French Community) 프랑스 공동체는 1958년부터1960년에 걸쳐 효력이 발생한 루와 까드레(Loi-cadre:토대법)의 결과로 프랑스와 아프리카 식민지국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프랑스 공동체에 대한 제의는 프랑스의 드골(de Gaulle) 대통령과 아이보리코스트(현 코트디브아르)의 지도자인 보이기니(Hauphouet-Boigny) 사이의 협상에서 나온 것이다. 각각의 불령 식민지 국가는 루와 까드레를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거 부하던지 대해 1958년 선거를 실시하였다. '찬성'은 프랑스 공동체에 합류하는 것으로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반대'는 공동체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며 독립을 달성하게 된다. 대신 프랑스와 모든 관계는 단절되..

유럽인의 아프리카 탐험(European Exploation of Africa)

◎ 유럽인의 아프리카 탐험(European Exploation of Africa) 유럽인의 아프리카에 대한 탐험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인해 개인별로 아프리카 내부로 진출하였다. 16세기 중반 몇몇 포르투칼인의 아프리카 내부의 탐험을 제외하고는 시민단체나 회사단체를 앞세운 유럽정부들은 19세기까지 내륙으로 거의 진출하지 못했으며 단지 해안을 따라 무역을 하였다. 탐험가들은 나일강, 콩고강 그리고 니제르강 등의 진원지를 알기 위한 탐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내부에 존재하는 인종과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1795년에 뭉고 파크(Mungo Park)는 프랑스 동료인 르네 까이에(Rene Caillie)와 함께 니제르강 중류와 상류를 탐험했다. 그러나 곧 1830년 클라프톤(H.Clapperton)과 ..

흑인, 흑아프리카인(Blacks or Black Africans)

◎ 흑인, 흑아프리카인(Blacks or Black Africans) 조상들이 사하라 이남에 기원을 두고 사하라 이남에서 태어난 검은 피부색깔과 육체적인 형태에서 언급된 불명확한 용어이다. 때때로 남아공 내에 있는 소위 칼라이드(Colored : 혼혈인) 인종과 아시아 후손들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조상들이 사하라 이남에 그 기원을 둔 사하라 이남 출생의 대부분 아프리카인들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 그들 스스로 구별화하여 흑인 혹은 흑아프리카인이라고 부른다. 첫째, 조상들이 아프리카인(유럽인 흑은 아시안과 마찬가지로)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을 말한다. 둘째, 북아프리카인들(이들은 인종적으로 유럽과 관련이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아랍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들은 인식하..

직접통치(Direct Rule)

◎ 직접통치(Direct Rule) 한 지역에 대해 그 지역의 전통이나 이해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곳 주민들에게 취하는 식민지 정책을 펼치는 식민통치의 한 유형으로 일반적으로 프랑스와 벨기에의 통치가 그 예이다. 프랑스는 '동화정책' 흑은 '연합정책'이라는 직접통치정책으로 식민지를 통치하였다. 프랑스는 통치지역의 행정관으로 아프리카 현지 지도자를 지명하는데 그는 단지 프랑스의 대리인일 뿐이다. 그의 의무는 항상 프랑스의 정책에 충실히 의무를 이행하며 만약 그의 의무가 프랑스의 정책에서 벗어날 때는 해임되었다. 직접통치는 식민통치의 가장 보편적인 한 형태이다. 그것이 간접통치 보다는 다소 덜 아프리카 전통에 충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프리카지역의 전통을 완전히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