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뒤엎은 어느 무명가수의 노래>
작년 여름, 어느 한 무명가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이름하야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의 두 열성 팬이 남아공에서 대스타인, 그러나 종적을 알 수 없는 미국의 무명가수 로드리게스(Rodriguez)를 찾으러 떠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개봉 후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나 남아공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폐지에 미친 영향을 과대평가했는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남아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종을 차별하는 정책을 실행했다. 이른바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불리는 정책으로 인종을 분리함과 동시에 흑인을 척박한 땅으로 몰아넣고 독립시키는 정책이었다. 자급자족할 기반을 뺏긴 흑인들은 백인들 밑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 밖에 없었다.
강력한 독재 정권 하에서 아파르트헤이트는 거침없이 추진되었으나 1970년대에 들어 남아공 내의 아프리카너(Afrikaner, 네덜란드계 백인, 당시 지배계층) 사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반성 여론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론은 점점 커져 외국의 압박과 국내의 여론에 떠밀린 집권 백인정부는 흑인 대표인 넬슨 만델라와의 협상을 통해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1970년대 처음 남아공 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때 젊은 아프리카너들을 자극한 노래가 바로 로드리게스의 노래였다. 로드리게스의 노래는 남아공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그대로 노래했다.
아프리카너스들의 양심을 자극하는 가사들이었으며 현실을 그대로 대변했다. 이렇게 로드리게스는 반체제 의식을 노래했고 디스토피아를 묘사했다. 20년 넘게 시행되어 온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시스템 속에서 이미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던 1970~80년대의 아프리카너 젊은이들은 이러한 로드리게스의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았으며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물론 아파르트헤이트의 폐지가 오롯이 로드리게스의 노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Cape Times의 2013년 2월 27일자 기고문 열세 번째 문단에서 언급하듯 로드리게스에 의해 깨어난 의식이 아프리카너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예로 Voëlvry 운동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먼저 그 횃불을 켜도록 불똥을 튀겨준 로드리게스의 음악이 시대를 역행하는 차별과 분리의 악행을 멈추게 한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슈가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이다.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음악가가 정작 자국에서는 음반 몇 장 팔지 못하고 막노동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은퇴한 무명 가수라는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많은 인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음반을 내고 은퇴한지 20년도 넘게 훌쩍 지나서야 알게 된 늙은 무명 가수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자국의 미래를 밝혀준 대가수가 무명 가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아공 사람들도 참 황당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속의 진실 된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와 닿아 이렇게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자료출처>
1.http://www.iol.co.za/capetimes/sugar-man-afrikaners-musical-healer-1.1478019#.Ui8w4fCwf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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