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힐리는 역사적으로 동부 해안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으로 북으로는 소말리아의 모가디슈(Mogadishu)에서 남으로는 모잠비크의 루부마(Rovuma) 강에 이르기 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그들은 스와힐리인들이 아닌 사람들도 널리 사용하고 있는 '스와힐리어'(Kiswahili)를 구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아프리카 원주민과 아랍문화가 혼합된 도시에 기반을 두고 거주하고 있다.
동아프리카 해안과 아라비아 반도, 페르시아 그리고 심지어는 중국과의 접촉은 8세기 이슬람이 전파되기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이 지역을 아자니아(Azania)라 불렀다. 아랍인들은 잔즈(Zanj)라 불렀다.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해안가의 아프리카인들은 중앙 내륙에 있는 아프리카 사회보다는 아랍인들과 페르시아만인들과 보다 밀접하게 관계했다.
이 해안 국가들은 오랜 동안 어떠한 외세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들은 전쟁을 할 때 코끼리의 상아, 뼈 그리고 야생 소의 뿔을 창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갑옷과 활 그리고 화살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수많은 보병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랍인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침입하였다.
동부아프리카 해안은 2천년이 넘는 동안 여러 가지 상품들을 교환하는 오랜 동안 무역을 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아프리카 여성과 아랍 남자들과의 결혼은 풍부한 스와힐리 문명을 만들었으며 도시와 농경 사회의 혼합이 이루어졌고 풍부한 건축물, 직물 그리고 음식 뿐만 아니라 상품에 대한 구매력도 증가하였다.
스와힐리 초기 거주자들
아랍인 지배의 신화
아주 최근까지 동아프리카 해안의 역사는 무슬림-아랍 점령의 한 부분으로 기술되었는데 이는 주로 유럽인들과 아랍인들에 의해 쓰여졌다. 아랍인들의 동아프리카 해안 통치에는 아프리카인들도 포함되는데 그들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영국 작가들은 그들의 문화에 대해 '반 카스트' 혹은 '잡종'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경멸하였다.
그러나 구전과 고고학적 증거들은 스와힐리 사회가 역동적이고 논리적이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아프리카 내륙인들과 아랍과 페르시아인들과의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고 호혜적이었다. 그러므로 동아프리카 해안에 아랍인 '출현'과 아프리카 사회 '접수' 라는 말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초기 선원 이야기 : 페리플러스(Periplus)
동아프리카 해안에 대한 가장 초기의 서술은 AD 2세기에 쓰여졌다. 그것은 선원들의 가이드를 위해 쓰여진 것으로 그리스 상인들에 의해 AD 100년 경에 알렉산드리아(현재의 이집트)에서 아마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에리트리안 해(Erythraean Sea)의 페리플러스라 불렀는데 그 당시의 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형성된 루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의 성격은 해안 종족들에 대해 존경함을 불러일으키게 해 준다.
섬에서 육지로 행하는 이틀 동안의 항해는 그 종족들이 사용하는 작은 보트를 이용하는데 그들은 라프타(Rhapta)라 불리는 시장으로 행한다. 그곳에는 많은 상아와 거북이 껍질 등이 있다.
페리플러스에서 언급된 해안의 주요 도시는 라프타로 잔지바르와 다레살렘 근체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 라무 섬 근처에 존재했을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에서 온 화폐들은 AD 3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잔지바르와 탄지니아 북부에서 발견되었다. 이 화폐는 중동 세계와 아프리카와 무역이 이미 시작했다는 것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해안 정착
스와힐리에 대한 구전 역사들은 아라비아반도나 페르시안 만으로부터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남부 소말리아에 있는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이슬람 사원이 라무(Lamu) 근처에 세워졌다. 아랍인들의 아프리카 해안 사회로의 동화는 대개 마찰 없이 이루어졌다.
페르시아인과 접촉
첫 번째 동아프리카 해안에 온 이슬람인들은 페르시아의 시라지스(Shirazis)로 알려진 시라즈(Shiraz)로부터 왔다. 그 당시 페르시아 시라지의 알리 빈 셀리마니(Ali bin Selimani) 술탄이 왔다. 그는 그의 배로 상품들과 그의 아이들을 데리고 동아프리카 해안에 왔다. 그 아이들 중 파티마(Fatima)라는 술탄의 딸이 있었다. 그 이외의 아이들 이름은 전해져오지 않고 있다.
그들은 킬와(Kilwa)에 상륙하였고 그들은 이 나라의 추장인 엘드 음림바(Elder Mrimba)로 가서는 키시와니(Kisiwani)에 거주할 장소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가지 상품들과 유리구슬 등을 음림바에게 주었다. 술탄 알리는 음림바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는 그곳 주민들과 즐겁게 살았다.
(BBC on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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