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 of 1885-86)
아프리카를 분할하기 위한 원칙들을 협의하기 위해 독일의 비스마르크(Bismarck)에 의해 베를린에서 강대국들이 모여 국제회의를 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벨기에 대표들이 참가하였으며 미국은 참관인으로 참여하였다. 베를린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다. 첫째, 식민지 영토는 '효과적인 점령과 경영'이라는 원칙하에 이용되어야 한다. 둘째, 영국과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도서 지역과 도서 인근지역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셋째, 콩고 자유국은 벨기에 레오폴드2세의 개인 소유로 인정한다.
강대국들의 합의로 나타난 베를린회의는 유럽에서 긴장완화를 이끌어 내었다. 참가국들은 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에서도 한사람 혹은 유럽의 나라에 복속되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효과적인 통치' 원칙의 주요 영향은 서로 싸우는 것을 방지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예를들면, 잔지바르, 탕가니카, 케냐 그리고 우간다에서 대치하고 있던 영국과 독일은 마침내 1890년에 분쟁이 해결되었는데 이는 주로 '효과적인 통치'원칙에 그 기반을 둔 것이다.
그러나 베를린 회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독립했을 때 영토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해 국경분쟁을 야기시킨 주 요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를 분할하기 위한 원칙들을 협의하기 위해 독일의 비스마르크(Bismarck)에 의해 베를린에서 강대국들이 모여 국제회의를 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벨기에 대표들이 참가하였으며 미국은 참관인으로 참여하였다. 베를린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다. 첫째, 식민지 영토는 '효과적인 점령과 경영'이라는 원칙하에 이용되어야 한다. 둘째, 영국과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도서 지역과 도서 인근지역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셋째, 콩고 자유국은 벨기에 레오폴드2세의 개인 소유로 인정한다.
강대국들의 합의로 나타난 베를린회의는 유럽에서 긴장완화를 이끌어 내었다. 참가국들은 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에서도 한사람 혹은 유럽의 나라에 복속되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효과적인 통치' 원칙의 주요 영향은 서로 싸우는 것을 방지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예를들면, 잔지바르, 탕가니카, 케냐 그리고 우간다에서 대치하고 있던 영국과 독일은 마침내 1890년에 분쟁이 해결되었는데 이는 주로 '효과적인 통치'원칙에 그 기반을 둔 것이다.
그러나 베를린 회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독립했을 때 영토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해 국경분쟁을 야기시킨 주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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