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룬디
□ 면적 : 27,800㎢
□ 지형 : 북쪽의 르완다와 비슷한 산악국가
□ 기후
·열대성이나 높은 고도로 기온이 다소 낮은 편. 연평균기온 23℃
□ 수도 : 부줌부라(도시화 8%)
□ 인구
·약 6,299,000명
·인구밀도 226명/㎢ (아프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음)
□ 종족
·후투족 80%, 투치족 15%, 트와 피그미족등
□ 주요언어
·키룬디어, 프랑스어
·문자해독율 14%
□ 통화
·부룬디 프랑(BF) 1$=90,000(BF)
□ 주요산업 : 농업이 대부분
□ 종교
·카톨릭 75.6% 개신교 16% 전통종교7.1% 회교1%
부룬디의 역사
·원시 및 근대상황
부룬디 왕국은 14-15세기경 이디오피아 방면에서 남하한 투치족의 왕조가 후투족을 지매하여 건설하였다고 한다. 부룬디 왕국의 근대역사는 단독으로가 아니라 북쪽에 있는 르완다 공화국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왔다.
1885년의 콩고분지 조약에 의하여 1890부터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편입되었으나, 부줌부라에 주둔부대가 있었을 뿐 직접적인 통치는 받지 않고 일종의 보호령적인 지위를 보유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콩고에서 진주한 벨기에군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독일이 패망하자 르완다-부룬디로서 1923년 벨기에 통치하에 연맹 신탁통치령이 되고, 46년 말에는 유엔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57년부터 일기 시작한 르완다-부룬디 민족독립운동은 르완다와의 통합에 의한 즉시 독립을 요구하였으며, 유엔도 르완다와 부룬디가 연방국가로서 독립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르완다에서는 소수민족인 투치족 왕의 지배에 항거하여 다수민족인 후투족이 폭동을 일으켜 국왕을 추방하고, 61년 공화제를 선포하였다. 그 결과 군주제를 지키는 부룬디는 62년 르완다와 분리하여 입헌군주국 부룬디로서 독립하였다. 1966년 국왕이 자이르 여행 중 미콤베로 수상이 쿠테타를 일으켜 공화제를 선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그 후 부족간의 항쟁이 격화하는 등 정정(政情)은 불안상태가 계속되었다. 1976년 바가자 중령이 이끄는 군부가 무혈 쿠데타에 성공하여 바가자 중령은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최근상황
종족간의 갈등은 오랫동안 부룬디를 괴롭혔다. 부룬디의 폭력사태는 지난 93년 10월 이 나라 최초로 민주선거로 선출된 후투족 출신 멜키오르 은다다예 대통령이 취임 3개월만에 투치족 출신장교에게 암살되면서 시작됐다. 그후 계속된 부족간의 학살로 투치족과 후투족이 10만 명이나 숨졌다. 엄청난 인명 살상극에 충격을 받은 투치족은 후투족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종족간의 갈등은 커져왔다.
대부분의 투치족은 지난 1994년 르완다에서 일어난 종족학살이 되풀이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 면적 : 27,800㎢
□ 지형 : 북쪽의 르완다와 비슷한 산악국가
□ 기후
·열대성이나 높은 고도로 기온이 다소 낮은 편. 연평균기온 23℃
□ 수도 : 부줌부라(도시화 8%)
□ 인구
·약 6,299,000명
·인구밀도 226명/㎢ (아프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음)
□ 종족
·후투족 80%, 투치족 15%, 트와 피그미족등
□ 주요언어
·키룬디어, 프랑스어
·문자해독율 14%
□ 통화
·부룬디 프랑(BF) 1$=90,000(BF)
□ 주요산업 : 농업이 대부분
□ 종교
·카톨릭 75.6% 개신교 16% 전통종교7.1% 회교1%
부룬디의 역사
·원시 및 근대상황
부룬디 왕국은 14-15세기경 이디오피아 방면에서 남하한 투치족의 왕조가 후투족을 지매하여 건설하였다고 한다. 부룬디 왕국의 근대역사는 단독으로가 아니라 북쪽에 있는 르완다 공화국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왔다.
1885년의 콩고분지 조약에 의하여 1890부터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편입되었으나, 부줌부라에 주둔부대가 있었을 뿐 직접적인 통치는 받지 않고 일종의 보호령적인 지위를 보유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콩고에서 진주한 벨기에군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독일이 패망하자 르완다-부룬디로서 1923년 벨기에 통치하에 연맹 신탁통치령이 되고, 46년 말에는 유엔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57년부터 일기 시작한 르완다-부룬디 민족독립운동은 르완다와의 통합에 의한 즉시 독립을 요구하였으며, 유엔도 르완다와 부룬디가 연방국가로서 독립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르완다에서는 소수민족인 투치족 왕의 지배에 항거하여 다수민족인 후투족이 폭동을 일으켜 국왕을 추방하고, 61년 공화제를 선포하였다. 그 결과 군주제를 지키는 부룬디는 62년 르완다와 분리하여 입헌군주국 부룬디로서 독립하였다. 1966년 국왕이 자이르 여행 중 미콤베로 수상이 쿠테타를 일으켜 공화제를 선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그 후 부족간의 항쟁이 격화하는 등 정정(政情)은 불안상태가 계속되었다. 1976년 바가자 중령이 이끄는 군부가 무혈 쿠데타에 성공하여 바가자 중령은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최근상황
종족간의 갈등은 오랫동안 부룬디를 괴롭혔다. 부룬디의 폭력사태는 지난 93년 10월 이 나라 최초로 민주선거로 선출된 후투족 출신 멜키오르 은다다예 대통령이 취임 3개월만에 투치족 출신장교에게 암살되면서 시작됐다. 그후 계속된 부족간의 학살로 투치족과 후투족이 10만 명이나 숨졌다. 엄청난 인명 살상극에 충격을 받은 투치족은 후투족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종족간의 갈등은 커져왔다.
대부분의 투치족은 지난 1994년 르완다에서 일어난 종족학살이 되풀이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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