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엔국립공원 – 아프리카의 별을 찾아서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시미엔 트래킹
여행의 출발을 세렝게티 사파리로 시작한 우리는, 3주에 걸친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을 아프리카의 지붕이라고 불리우는 시미엔산 트래킹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출발 전부터 기대가 컸던 세렝게티에 비해, 시미엔 산 트래킹은 정보도 부족하고, 알려진 바가 없어서 자세한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기대를 할 수도 기대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EBS에서 2008년도에 방영된 세계문화기행의 아프리카 4부작에서 사진작가 신미식 씨가 시미엔산 트래킹을 했던 내용과, 인터넷 블로그의 몇몇 사람들의 단편적인 정보만 보고서도, 그 40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아프리카의 산에 숨어있는 절경과 신기한 동물들, 그리고 그곳의 진짜 보물인 시미엔 산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곳임에는 분명했다.
시미엔산 트래킹은 짧게는 당일부터 길게는 10일까지 다양한 코스로 짜여져 있어, 개개인의 여행계획이나 시간, 금전적 여유에 맞게 코스를 정할 수가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제일 무난하면서도 시미엔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는 3박 4일 코스를 선택하였다. 곤다르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여, 드바라크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3박 4일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서울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경악할지도 모를 만큼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그만큼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 2500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시미엔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친구들 중에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한 친구가 있어서 트래킹 시에 포터나 가이드를 고용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언젠가 한번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시미엔 산 트래킹은 포터, 가이드, 요리사 뿐만 아니라 총으로 무장한 스카우트까지 함께 해야 한다. 야생 동물의 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흥미진진한 산이 아닐 수 없다.
시미엔의 어린 목동
‘ 내가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
알퐁스도데의 별은 이렇게 시작한다.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너무도 예쁘게 그려낸 동화 <별>. 내가 살면서 목동을 만날 일이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별>에서 방금 튀어나왔을 법한 목동 아이를 이 곳 아프리카 해발 3000m의 시미엔 산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린 목동은 외롭게 나무 위에 앉아서 양과 소를 살피고 있었다.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하고, 관리를 편하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아침이 되면 양과 소를 벼랑쪽으로 몰아넣고 높은 곳에서 그들을 관찰한다.
목동의 친구들
2004년, 시미엔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왈리아 아이벡스(walia ibex) 약 62마리.
소과의 포유류, 야생 염소의 한 종류이며 1m길이의 긴 뿔을 가진 아이벡스 중에서도 에티오피아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왈리아 아이벡스는 1980년대 초반 500여마리였으나, 24년뒤에는 62마리 정도로 개체 수가 급속히 감소하였다.
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정부는 1969년 시미엔 산을 시미엔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1996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이 국립공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까지 하였다.
뒤쪽으로 휜 최대 110cm의 큰 뿔은, 수컷들 사이의 계급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번식기에는 수컷들이 이 거대하고 놀라운 뿔로 들이받으며 암컷을 위해 경쟁한다. 뿔이 계급을 정한다면, 이 동물의 수염은 그들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나이 든 아이벡스 일수록 길고, 두꺼운 수염을 가지며, 암컷은 더 작고 얇은 수염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혹시라도 시미엔 산에서 62마리밖에 없는 아이벡스 중의 한마리라도 보게 된다면 그 뿔과 수염을 제일 먼저 봐야겠다고 생각해보았다.
다섯 마리에서 스무 마리 정도로 무리를 지어 사는 아이벡스 떼는 하루에 2키로미터 정도 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시미엔 산에만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해발 4000미터 정도의 고원지대인 시미엔 산, 그리고 2500미터~4500미터의 높고 가파른 바위 절벽 지역에서 관목, 이끼, 허브, 잔디를 먹고 사는 왈리아 아이벡스. 시미엔 산을 방문하는 여행객의 제일 큰 목적이 그들을 보기 위해서라는 말이 이해된다. 시미엔 산이 아니고는 이 동물들이 살 곳이 없으니 말이다.
시미엔 산의 또 다른 유명인사라 하면 겔라다캐코원숭이(Gelada Baboon)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자와 비슷하게 길고 덥수룩한 갈기를 가진 수컷의 특징 때문이 종종 사자비비 (Lion Baboon)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원숭이는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매력적인 원숭이이다.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본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뜯어 먹는 장면은 나에게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다. 이 원숭이의 제일 큰 특징이라면 뭐니뭐니해도 가슴 중앙에 하트 모양의 핑크색 무늬이다. 이 무늬는 번식기에 붉은빛을 띤다고 한다. 밤에는 동물이나 바위 틈 등에서 자고, 새벽부터 활동을 하는 이 원숭이 무리는 심심한 목동들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가 아닐까.
이 외에도 에티오피아 늑대, 시미엔 여우, 자칼 등을 비롯한 포유류와 수염독수리, 수리부엉이 등 137종 이상의 조류, 자이언트 로벨리아 등의 희귀 동식물들 때문에 목동은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심심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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