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는 방기이다. 북쪽은 차드, 동쪽은 수단, 남쪽은 콩고와 콩고 민주공화국, 서쪽은 카메룬과 접해 있다. 동서길이 약 1,350km, 남북길이 약 750km이다. 면적 622,436㎢, 인구 3,342,000(1997).
자연환경
해발 600∼800m의 낮은 고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주요하천분지 가운데 콩고(자이르) 강 분지, 차드 호(주요지류는 샤리 강) 분지, 나일 강 분지 등 3개의 분지가 갈라지는 분수령이다. 동쪽 수단과의 국경은 우방기(콩고) 강과 나일 강의 분수령과 잇닿아 있는데, 이 분수령은 북동쪽에서 1,350m 이상의 높이로 급격히 솟아 있는 몽고스 산맥과 동쪽과 남동쪽에 걸친 통두 대산괴로 형성되어 있다. 이 나라의 경관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중앙 능선이다. 이 낮은 융기부는 몽고스 산맥에서 서쪽으로 뻗어 카르 산맥으로 이어지면서 차드 호와 자이르 강(샤리 강과 우방기 강)의 분수령을 이루는데, 서쪽에서는 1,200m 높이까지 솟아 있다. 샤리 강의 지류들이 이 나라 북쪽 영토의 1/3을 차지하며, 나머지 2/3 지역은 남쪽의 우방기 강 유역으로 물이 빠진다. 기후상으로는 북쪽의 아(亞)사하라 기후와 남쪽의 적도기후 사이의 천이(遷移)기후대에 속한다. 비는 남부의 우방기 강 유역의 울창한 우림지역을 제외하고는 계절적으로 내리는데, 북동부 사바나 지대의 비라오에 내리는 강우량 860㎜ 가운데 90% 이상이 4∼9월에 집중된다. 강우량은 남쪽과 남서쪽으로 갈수록 많아지고 연중 분포도 갈수록 고르다. 기온은 계절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비교적 균일하며, 전국적으로 대부분 24∼27℃의 분포를 보인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의 초원지대인 사바나 지대에 대부분 속해 있어 사슴·영양·물소·코끼리·하이에나와 같은 종류의 동물이 서식한다. 강들을 따라 사바나 지대까지 깊숙이 뻗어 있는 우림에는 고릴라·침팬지, 각종 원숭이가 서식한다. 전체 국토의 약 3/5이 숲으로 덮여 있어 마호가니와 같은 경재(硬材), 오베크(흰색에서 연노랑색까지의 연한 목재), 림바(키가 크고 희뿌연 줄기 나무에서 나오는 세로 결의 목재)가 풍부하게 산출된다.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상당량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지만, 1980년대초까지만 해도 다이아몬드와 우라늄만 채굴되었다.
국민
주민의 대부분이 19세기에 부락을 개척한 주민들의 후손이다. 우방기족(강변 거주민들의 일반 명칭)은 우방기 강 연안과 음보무 주(州)에서 산다. 반다족은 중앙부에 위치한 브리아·방바리·포르시부 사이의 고지대에 거주한다. 만자족은 주로 포르시부 주변에 살며 바야족과 함께 지낸다. 사라족은 북쪽 국경을 따라 분단되어 있고, 그들의 부락들은 차드의 사르 지방까지 이어져 있다. 페르티족은 북동부에 살며, 음붐족은 멀리 차드와 카메룬에까지 살고 있다. 원주민의 잔여 종족인 피그미족은 남서부의 우림지역에서 거주한다. 주로 프랑스인인 유럽계의 소수민은 방기에서 산다. 국어는 링구아 프랑카(아프리카 중동 지방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터키어·아랍어 등의 국제혼성어)의 하나인 상고어(語)이며, 공용어인 프랑스어는 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밖에 장드어와 같은 부족어들도 쓰인다. 약 170만 명이 그리스도교도임을 자처하고 그중 대부분이 개신교도이지만 아직도 주민의 다수가 정령숭배의식을 행하고 있다. 북부에 이슬람교의 작은 공동체가 있다. 1970년대말 출생률이 1,000명당 44명으로 매우 높았다. 사망률은 1,000명당 23명이었으며, 1970∼80년의 인구증가율은 연간 2.3%였다. 정부는 인구분포가 지역적으로 불균등하여 행정 서비스의 제공이 어려운 것을 우려,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추세를 역전시킴으로써 사태를 완화시키고자 힘쓰고 있다.
경제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은 국영기업과 사기업이 혼재하는 개발도상국의 자유기업 경제체제로 되어 있다. 1981년의 국민총생산(GNP)은 7억 7,000만 달러였으며, 1인당 GNP는 320달러로 저개발국 중에서도 최빈국에 속한다. 순수 GNP의 연간 성장률(1970∼ 80)은 -0.2%였고, 1980년대초까지도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었는데, 이는 사헬 지방의 한발과 개발을 위한 에너지 자원의 수입비용 때문이었다. 농업·임업·무역이 GNP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농업은 GNP의 약 2/5를 차지하지만, 경작지는 전체토지의 약 3%에 지나지 않으며 그 가운데 많은 땅이 영세적으로 경작된다. 가장 중요한 가내 소비작물은 과일·근대류·곡물이다. 환금작물로는 땅콩·면화·커피가 있다. 열매와 기름을 얻기 위한 야자재배가 1980년대초에 상업적 기반이 되었으며, 장 베델 보카사 정권(1965∼79)의 방치정책으로 떨어졌던 농작물 생산고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보카사의 뒤를 이은 정부는 경제개발에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농업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농업생산을 촉진시키기 위해 1982년 생산자 가격을 올렸다. 목초지는 국토의 약 5%를 차지하며 가축사육에 이용되는데, 소의 방목과 낙농은 체체파리로 인해 지장을 받는다. 임업은 GN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몫 가운데 약 2/5에 해당되며, 목재는 주요수출품이다. 그런데도 제재업이 미개발 상태여서 임산물 가운데 약 4/5가 땔나무로 쓰이며, 1/6이 공업용으로 쓰이고 1/10이 수출된다.
광업생산은 GNP의 약 3%밖에 되지 않지만, 금강석은 약 절반이 국외로 밀반출됨에도 불구하고 수출총액의 약 40%를 점한다. 우라늄 광산개발계획이 바쿠마 부근에서 시작되었으나 수송수단이 빈약하여 이 광산과 그밖에 광물자원의 개발이 지지부진하다. 제조업은 GNP의 약 12%를 차지하나 미개발 상태이며, 전통적인 경공업 분야에 주로 한정되어 있다. 중요한 공산품은 면직물과 의류·가죽제품·오토바이·자동차·가공식물유·벽돌·담배·맥주 등이다. 1980년대초의 전력생산은 6,400만kWh였는데, 94%가 수력발전이었고, 6%가 화력발전이었다. 건축은 GNP의 약 6%를 차지한다. 1980년대초에는 도로건설 및 살로·방기 두 하항(河港)의 개량이 최우선적인 공사였다.
인구의 약 절반이 노동인구에 속하며, 그 가운데 4/5가 농업에 종사한다.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은 프랑화(貨)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공동재정(Communauté financiére africaine/CFA) 프랑(franc)을 사용하며, CFA 프랑은 100상팀으로 다시 나뉜다.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며, 수송수단이 취약하여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총길이 7,040km에 달하는 사통팔달의 수로망이 흘수가 얕은 배들이 운항하는 전통적인 교통로였다. 우방기 강을 통해 이 나라 최대의 항구인 방기 아래까지 외양선들이 드나들 수 있다. 방기에는 국제공항이 있으며, 국영항공사와 민간인이 주식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항공사가 다른 지역의 작은 공항들과 연결되어 국내선 항공여객들을 수송한다. 무역수지는 1982년에 8,100만 달러의 적자를 보였다. 주요수출품은 다이아몬드·목재·면화·커피이고, 주로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로 수출된다. 수입품은 주로 기계류와 수송장비, 비금속과 제조품, 화학제품인데 대부분 프랑스와 독일로부터 수입해온다.
정치·사회
일당 군사정부가 다스리는 나라로 입법권과 행정권은 군참모총장이 이끄는 국가재건군사위원회(Comité Militaire pour le Redressement National)가 장악하고 있다. 이 군사정부는 1981년에 제정된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불법화했다. 사회복지제도에 따라 고용인들에게 근로상해·해산·불구·노령에 대한 연금을 지급한다. 특정분야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도 있다. 보건상황은 극도로 열악하여 말라리아·나병과 같은 병이 풍토병으로 만연하고 있으며, 의사와 병원시설의 극심한 부족으로 인해 의료행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유아사망률은 출산아 1,000명당 154명에 달한다. 출생시의 예상 평균수명은 남자 38세, 여자 45세에 불과하며, 세계 최저 평균치에 속한다. 교육은 무상이지만 전체 어린이의 약 절반만이 초등교육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등교육을 받는 비율은 훨씬 더 적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969년에 설립된 방기대학교가 있다. 신문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방송매체는 정부가 소유·운영한다.
문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각 부족에 관한 역사기록은 없다. 부족들의 조상(彫像)과 탈, 1,500개의 부족민요 음반이 방기의 바르텔레미 보강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방기에 있는 아프리카 미술 장색(匠色) 센터에는 상아 세공품과 나비의 날개로 만든 그림과 같은 전통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구석기시대 말엽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19세기 전까지의 문서상 기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19세기 이후의 것도 드물다. 지금의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영토가 가오가라고 알려진 16세기 제국의 일부였음을 알려주는 약간의 증거는 남아 있다. 16∼18세기에 노예사냥이 계속되어 원주민의 수가 대폭 줄었다. 프랑스인들이 중앙 아프리카를 탐험하여 영토권을 주장하고 1889년 방기에 군영을 설치했다. 그들은 1911년까지 완전지배를 확보했지만 반란은 계속되었다. 1898년 프랑스는 이 식민지를 분할하여 특허권을 소유한 몇 명의 거상(巨商)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들의 노동력 징발은 지역 전체의 궁핍과 강을 제외한 적절한 교통로의 부재로 인해 수월하게 이루어졌지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노동자 혹사는 1920년대말까지 계속되었다.
1946년 당시 우방기샤리로 불린 이 식민지는 프랑스의 해외준주가 되어 바르텔레미 보강다를 프랑스 의회의 의원으로 선출했다. 보강다는 독립운동을 지휘했고, 그결과 1958년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공화국인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이 창설되었다. 보강다는 1959년에 죽었고, 그의 후계자인 다비드 다코가 1년 후에 독립을 선포했다. 1965년에는 장 베델 보카사가 군사혁명을 지휘하여 성공한 후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고 방탕한 독재자가 되었다. 그는 1976년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국명을 중앙 아프리카 제국(帝國)으로 고쳤다. 그는 1979년 약 100명의 어린이를 학살한 사건에 관여하여 프랑스의 개입으로 권좌에서 쫓겨났고 다코가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1981년 무혈 혁명이 일어나 앙드레 콜링바 장군과 그의 국가재건군사위원회가 정권을 장악했다.
한국과의 관계
1963년 9월 국교를 수립한 데 이어 1973년 5월 무역협정, 1974년 2월 경제기술협력협정, 1984년 12월 의료협력협정을 체결했다. 통상 면에서 1991년 대한 수입 77만 달러, 대한 수출 67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현재 한국에서 파견한 의료진이 활동하고 있다. 한편 북한과는 1969년 9월 국교를 수립, 1971년 3월 한때 단교했다가 1977년 2월 재수교했다.
자연환경
해발 600∼800m의 낮은 고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주요하천분지 가운데 콩고(자이르) 강 분지, 차드 호(주요지류는 샤리 강) 분지, 나일 강 분지 등 3개의 분지가 갈라지는 분수령이다. 동쪽 수단과의 국경은 우방기(콩고) 강과 나일 강의 분수령과 잇닿아 있는데, 이 분수령은 북동쪽에서 1,350m 이상의 높이로 급격히 솟아 있는 몽고스 산맥과 동쪽과 남동쪽에 걸친 통두 대산괴로 형성되어 있다. 이 나라의 경관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중앙 능선이다. 이 낮은 융기부는 몽고스 산맥에서 서쪽으로 뻗어 카르 산맥으로 이어지면서 차드 호와 자이르 강(샤리 강과 우방기 강)의 분수령을 이루는데, 서쪽에서는 1,200m 높이까지 솟아 있다. 샤리 강의 지류들이 이 나라 북쪽 영토의 1/3을 차지하며, 나머지 2/3 지역은 남쪽의 우방기 강 유역으로 물이 빠진다. 기후상으로는 북쪽의 아(亞)사하라 기후와 남쪽의 적도기후 사이의 천이(遷移)기후대에 속한다. 비는 남부의 우방기 강 유역의 울창한 우림지역을 제외하고는 계절적으로 내리는데, 북동부 사바나 지대의 비라오에 내리는 강우량 860㎜ 가운데 90% 이상이 4∼9월에 집중된다. 강우량은 남쪽과 남서쪽으로 갈수록 많아지고 연중 분포도 갈수록 고르다. 기온은 계절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비교적 균일하며, 전국적으로 대부분 24∼27℃의 분포를 보인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의 초원지대인 사바나 지대에 대부분 속해 있어 사슴·영양·물소·코끼리·하이에나와 같은 종류의 동물이 서식한다. 강들을 따라 사바나 지대까지 깊숙이 뻗어 있는 우림에는 고릴라·침팬지, 각종 원숭이가 서식한다. 전체 국토의 약 3/5이 숲으로 덮여 있어 마호가니와 같은 경재(硬材), 오베크(흰색에서 연노랑색까지의 연한 목재), 림바(키가 크고 희뿌연 줄기 나무에서 나오는 세로 결의 목재)가 풍부하게 산출된다.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상당량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지만, 1980년대초까지만 해도 다이아몬드와 우라늄만 채굴되었다.
국민
주민의 대부분이 19세기에 부락을 개척한 주민들의 후손이다. 우방기족(강변 거주민들의 일반 명칭)은 우방기 강 연안과 음보무 주(州)에서 산다. 반다족은 중앙부에 위치한 브리아·방바리·포르시부 사이의 고지대에 거주한다. 만자족은 주로 포르시부 주변에 살며 바야족과 함께 지낸다. 사라족은 북쪽 국경을 따라 분단되어 있고, 그들의 부락들은 차드의 사르 지방까지 이어져 있다. 페르티족은 북동부에 살며, 음붐족은 멀리 차드와 카메룬에까지 살고 있다. 원주민의 잔여 종족인 피그미족은 남서부의 우림지역에서 거주한다. 주로 프랑스인인 유럽계의 소수민은 방기에서 산다. 국어는 링구아 프랑카(아프리카 중동 지방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터키어·아랍어 등의 국제혼성어)의 하나인 상고어(語)이며, 공용어인 프랑스어는 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밖에 장드어와 같은 부족어들도 쓰인다. 약 170만 명이 그리스도교도임을 자처하고 그중 대부분이 개신교도이지만 아직도 주민의 다수가 정령숭배의식을 행하고 있다. 북부에 이슬람교의 작은 공동체가 있다. 1970년대말 출생률이 1,000명당 44명으로 매우 높았다. 사망률은 1,000명당 23명이었으며, 1970∼80년의 인구증가율은 연간 2.3%였다. 정부는 인구분포가 지역적으로 불균등하여 행정 서비스의 제공이 어려운 것을 우려,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추세를 역전시킴으로써 사태를 완화시키고자 힘쓰고 있다.
경제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은 국영기업과 사기업이 혼재하는 개발도상국의 자유기업 경제체제로 되어 있다. 1981년의 국민총생산(GNP)은 7억 7,000만 달러였으며, 1인당 GNP는 320달러로 저개발국 중에서도 최빈국에 속한다. 순수 GNP의 연간 성장률(1970∼ 80)은 -0.2%였고, 1980년대초까지도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었는데, 이는 사헬 지방의 한발과 개발을 위한 에너지 자원의 수입비용 때문이었다. 농업·임업·무역이 GNP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농업은 GNP의 약 2/5를 차지하지만, 경작지는 전체토지의 약 3%에 지나지 않으며 그 가운데 많은 땅이 영세적으로 경작된다. 가장 중요한 가내 소비작물은 과일·근대류·곡물이다. 환금작물로는 땅콩·면화·커피가 있다. 열매와 기름을 얻기 위한 야자재배가 1980년대초에 상업적 기반이 되었으며, 장 베델 보카사 정권(1965∼79)의 방치정책으로 떨어졌던 농작물 생산고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보카사의 뒤를 이은 정부는 경제개발에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농업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농업생산을 촉진시키기 위해 1982년 생산자 가격을 올렸다. 목초지는 국토의 약 5%를 차지하며 가축사육에 이용되는데, 소의 방목과 낙농은 체체파리로 인해 지장을 받는다. 임업은 GN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몫 가운데 약 2/5에 해당되며, 목재는 주요수출품이다. 그런데도 제재업이 미개발 상태여서 임산물 가운데 약 4/5가 땔나무로 쓰이며, 1/6이 공업용으로 쓰이고 1/10이 수출된다.
광업생산은 GNP의 약 3%밖에 되지 않지만, 금강석은 약 절반이 국외로 밀반출됨에도 불구하고 수출총액의 약 40%를 점한다. 우라늄 광산개발계획이 바쿠마 부근에서 시작되었으나 수송수단이 빈약하여 이 광산과 그밖에 광물자원의 개발이 지지부진하다. 제조업은 GNP의 약 12%를 차지하나 미개발 상태이며, 전통적인 경공업 분야에 주로 한정되어 있다. 중요한 공산품은 면직물과 의류·가죽제품·오토바이·자동차·가공식물유·벽돌·담배·맥주 등이다. 1980년대초의 전력생산은 6,400만kWh였는데, 94%가 수력발전이었고, 6%가 화력발전이었다. 건축은 GNP의 약 6%를 차지한다. 1980년대초에는 도로건설 및 살로·방기 두 하항(河港)의 개량이 최우선적인 공사였다.
인구의 약 절반이 노동인구에 속하며, 그 가운데 4/5가 농업에 종사한다.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은 프랑화(貨)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공동재정(Communauté financiére africaine/CFA) 프랑(franc)을 사용하며, CFA 프랑은 100상팀으로 다시 나뉜다.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며, 수송수단이 취약하여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총길이 7,040km에 달하는 사통팔달의 수로망이 흘수가 얕은 배들이 운항하는 전통적인 교통로였다. 우방기 강을 통해 이 나라 최대의 항구인 방기 아래까지 외양선들이 드나들 수 있다. 방기에는 국제공항이 있으며, 국영항공사와 민간인이 주식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항공사가 다른 지역의 작은 공항들과 연결되어 국내선 항공여객들을 수송한다. 무역수지는 1982년에 8,100만 달러의 적자를 보였다. 주요수출품은 다이아몬드·목재·면화·커피이고, 주로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로 수출된다. 수입품은 주로 기계류와 수송장비, 비금속과 제조품, 화학제품인데 대부분 프랑스와 독일로부터 수입해온다.
정치·사회
일당 군사정부가 다스리는 나라로 입법권과 행정권은 군참모총장이 이끄는 국가재건군사위원회(Comité Militaire pour le Redressement National)가 장악하고 있다. 이 군사정부는 1981년에 제정된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불법화했다. 사회복지제도에 따라 고용인들에게 근로상해·해산·불구·노령에 대한 연금을 지급한다. 특정분야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도 있다. 보건상황은 극도로 열악하여 말라리아·나병과 같은 병이 풍토병으로 만연하고 있으며, 의사와 병원시설의 극심한 부족으로 인해 의료행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유아사망률은 출산아 1,000명당 154명에 달한다. 출생시의 예상 평균수명은 남자 38세, 여자 45세에 불과하며, 세계 최저 평균치에 속한다. 교육은 무상이지만 전체 어린이의 약 절반만이 초등교육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등교육을 받는 비율은 훨씬 더 적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969년에 설립된 방기대학교가 있다. 신문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방송매체는 정부가 소유·운영한다.
문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각 부족에 관한 역사기록은 없다. 부족들의 조상(彫像)과 탈, 1,500개의 부족민요 음반이 방기의 바르텔레미 보강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방기에 있는 아프리카 미술 장색(匠色) 센터에는 상아 세공품과 나비의 날개로 만든 그림과 같은 전통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구석기시대 말엽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19세기 전까지의 문서상 기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19세기 이후의 것도 드물다. 지금의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영토가 가오가라고 알려진 16세기 제국의 일부였음을 알려주는 약간의 증거는 남아 있다. 16∼18세기에 노예사냥이 계속되어 원주민의 수가 대폭 줄었다. 프랑스인들이 중앙 아프리카를 탐험하여 영토권을 주장하고 1889년 방기에 군영을 설치했다. 그들은 1911년까지 완전지배를 확보했지만 반란은 계속되었다. 1898년 프랑스는 이 식민지를 분할하여 특허권을 소유한 몇 명의 거상(巨商)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들의 노동력 징발은 지역 전체의 궁핍과 강을 제외한 적절한 교통로의 부재로 인해 수월하게 이루어졌지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노동자 혹사는 1920년대말까지 계속되었다.
1946년 당시 우방기샤리로 불린 이 식민지는 프랑스의 해외준주가 되어 바르텔레미 보강다를 프랑스 의회의 의원으로 선출했다. 보강다는 독립운동을 지휘했고, 그결과 1958년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공화국인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이 창설되었다. 보강다는 1959년에 죽었고, 그의 후계자인 다비드 다코가 1년 후에 독립을 선포했다. 1965년에는 장 베델 보카사가 군사혁명을 지휘하여 성공한 후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고 방탕한 독재자가 되었다. 그는 1976년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국명을 중앙 아프리카 제국(帝國)으로 고쳤다. 그는 1979년 약 100명의 어린이를 학살한 사건에 관여하여 프랑스의 개입으로 권좌에서 쫓겨났고 다코가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1981년 무혈 혁명이 일어나 앙드레 콜링바 장군과 그의 국가재건군사위원회가 정권을 장악했다.
한국과의 관계
1963년 9월 국교를 수립한 데 이어 1973년 5월 무역협정, 1974년 2월 경제기술협력협정, 1984년 12월 의료협력협정을 체결했다. 통상 면에서 1991년 대한 수입 77만 달러, 대한 수출 67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현재 한국에서 파견한 의료진이 활동하고 있다. 한편 북한과는 1969년 9월 국교를 수립, 1971년 3월 한때 단교했다가 1977년 2월 재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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