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 타운(Cape Town)
인도양의 감미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2월 어느날 케이프 타운은 제일먼저 신비로운 자태를 보여주며 나에게 다가왔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사이로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에 하얀 구름이 신비롭다 못해 성스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 구름을 케이프 타운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악마(Devil)와 성 피터(St Peter)가 카드를 하면서 피우는 파이프 연기에서 온 것이라는 전설을 전해주었다. 정말 그냥 산에 구름이 덮이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마운틴을 타고 올라와서 평평한 정상을 바닥을 기어가 덮더니 그 끝에서는 다시 타고 뚝 떨어져서 마치 테이블 보를 얹어놓은 것은 모습을 연출한다. 분명히 신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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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름을 가져오는 바람은 ‘케이프 닥터(Cape Doctor)’로 이곳 사람들에게 불리어진다. 이 바람은 해충은 물론 먼지나 공중에 날려 다니는 오염물질들을 날려버리기 때문에 건강을 가져다 주는 바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1월부터 3월까지 부는 바람은 대체로 아침에는 잔잔하다가 오후에 격렬하게 불어오는데 어떤 날은 시속 120km정도가 될 때도 있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는 길에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비스듬이 누워있었던 것이다.
봄에 해당하는 8월부터 10월 사이에는 케이프 반도는 온갖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난다. 유명한 크리스텐보쉬(Kirstenbosch) 식물원과 희망봉 자연보호구는 그야말로 꽃속에 파 묻힌다. 이 시기는 청명하고 밝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 3월부터 5월에 속하는 가을은 가장 유혹적인 계절이다. 남동풍은 잠잠하고 바다는 여전히 따뜻하며 과일은 달고 맛있게 익어간다. 꽃은 져서 아쉽지만 낙엽들은 온갖 색으로 단풍이 든다. 겨울은 녹색과 신선함으로 대비된다. 프르티아(Protea) 꽃들은 꽃을 피우고 비와 북서풍이 분다. 마치 스파클링 와인처럼 청명하고 쌀쌀한 날씨는 케이프 타운의 또 다른 모습이다. 테이블 마운틴을 비롯한 드라켄스버그 산맥에 하얗게 쌓인 눈은 녹색의 땅과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밤에 사자의 엉덩이라 불리는 시그널 힐(Signal Hill)에서 달콤한 와인 한잔을 음미하며 바라보는 케이프 타운의 모습은 그 아름다움과 편안함으로 숨이 막히고 모든 것이 망각되는 도시였다. 하늘의 별빛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불빛이 청정한 공기덕분에 별처럼 반짝였다. 왜 백인들이 그토록 인종차별정책을 가혹하게 펼치면서까지 흑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였는지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라도 절대로 내주고싶지 않은 곳이었다!
케이프 타운은 1652년 4월 6일 얀 판 리비어크(Jan van Riebeeck)에 의해 세워졌다. 이곳은 폭퐁우를 피해 인도로 가는 항로에 필수적인 전략적 거점으로 물을 비롯한 고기, 신선한 야채, 과일 그리고 포도주를 보급 받을 수 있었으며 파손된 배를 수리하고 병든 선원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는 남아프리카역사에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역사책을 펼치면 판 리비어크와 그의 부인 마리아(Maria)의 사진을 책이 시작하는 처음 쪽에서 만나 볼 수 있으며 남아공의 거의 모든 도시에 교회거리(Church street)와 함께 판 리비어크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땅 남아공화국이 백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488년 바돌로뮤 디아즈(Bartholomew Diaz) 휘하의 포르투갈 탐험대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케이프 타운이 쉽게 포루투칼인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은 유명한 유령선 전설(Flying Dutchman)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바람이 세고 폭풍이 심했기 때문이다. 이 전설은 바람이 심하게 몰아쳐서 대서양의 파도가 높게 해안의 바위를 들이칠 때 희망봉의 유령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배는 마스트가 부러지고 돛은 찢어져서 바람에 휘날리며 케이프 주위를 영원히 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포루투칼 왕 주앙(João)이 그 이름이 나쁘다 하여 희망봉(Boa Esperança ; Good Hope)으로 이름지었다. 즉 디아즈는 이곳이 아프리카의 끝이라고 확신하고 이곳을 돌면 인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이름에서부터 케이프 타운은 아이러니 하다. 고통과 절망대신 희망이라니.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 지역의 해안 지대에는 주로 코이산어족에 속하는 산(San)족과 코이코이(Khoikhoi)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노란색 피부와 작은 키 그리고 단음절의 흡기음(吸氣音, staccato click sound)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산족은 수렵채집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코이코이족은 주로 양과 소를 기르는 유목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친구로 친하게 지냈던 산족의 후예인 올리버(Oliver)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하에서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나 정체성은 사라졌다고 그리고 그 누구도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단지 내 어깨를 조금 넘는 작은 키와 노란색 피부, 그리고 ‘딸깍딸깍’하는 흡기음의 소리와 항상 웃는 모습이 그나마 특징적일 뿐. 흑인정부로 바뀐 이후 이들이 사는 지역을 보호구로 지정하고 관광자원화 시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백인들이 명명해준 ‘흡기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호텐토트’라는 이름대신 ‘사람중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코이코이’라는 그들 고유의 이름을 찾는데 무려 몇 백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말이다.
케이프 타운 대학교 교정에서 우연히 만나 남아공의 정치, 역사, 문화등 열띤 격론을 벌였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안드리스(Andries)와 존(John)은 굳이 따지자면 각각 아프리카너와 영국계에 가깝지만 비교적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모든 상황은 백인 이주자들의 욕심과 영국계와 아프리카너계의 분열속에서 ‘인종차별’이라는 악마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795년 나폴레옹이 해군을 강화함에 따라 케이프 타운은 무역루트로서 아주 중요하다는 전략적 인식하에 영국은 케이프 타운을 잠시동안 지배하였으나 1806년 다시 악화된 프랑스의 세력을 막고 케이프 식민지를 통한 인도와의 귀중한 해상 무역 루트의 장애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케이프 타운을 침략하여 이주사회를 건설해나가면서 이미 이주하여 정착하고 있던 네덜란드 후예들과 경쟁하기 시작한다.
이후 케이프 영국총독은 케이프 아프리카너(Cape Afrikaner)로 불리는 이들을 영국의 통치하에 두고 싶어하였다. 이때까지 부유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던 이들은 영국의 통치를 받아들이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가난한 많은 아프리카너들은 영국의 통치와 압제를 벗어나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우마차를 타고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내륙으로 대이주(Great Treck)을 시작하게 되었고 영국은 자동적으로 반투계 선주민들과 일련의 전쟁에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반면 케이프 타운 항구는 이 시기부터 유럽과 인도로부터 들어오는 화물과 병력과 전쟁물자가 많아지게 됨에 따라 '바다의 선술집(Tavern of the Seas)'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다.
영국의 침략과정은 먼저 이주하였던 아프리카너 백인들의 분노를 살 수 밖에 없었고 대이주의 과정속에서 민족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이라는 방어정신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기는 내가 유학하면서 만난 판 스칼베이크(Van Schalkwyk) 할머니는 지금도 영국의 파이프 잭 소리를 들으면 얼굴을 붉히시면서 앙골로-보어전쟁동안 영국이 어떻게 집단수용소에서 비인간적으로 아프리카너 백인들을 다루었는지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조부와 가족들도 그곳에서 돌아가셨다며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설명하셨다. 영국인들은 케이프 타운을 침략했고 아프리카너 백인들을 미지의 내륙지방으로 내몰았으며 금과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종국에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가져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또한 남아공의 국가건설과정에서도 영국계 백인들은 기회주의적으로 ‘더러운 일’에는 관여하려하지 않으면서 편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결국 백인들의 적대적 감정이 지금의 남아공을 만든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백인 아프리카너들의 고통 못지 않게 선주민이었던 흑인들은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케이프 타운 외곽에 있는 흑인 슬럼가에 가서 본 그들의 세상은 ‘흑인들의 신’은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흑인정권이 들어온 이후 전기와 공동수도가 들어왔고 일부에서는 공동주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집들은 집이라기 보다는 세상에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로 만들어진 오두막이었다. 심지어 어떤 집은 도로에 세워져 있던 도로표지판을 잘라다 지붕의 한쪽 끝을 막고 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케이프 타운에 천국과 지옥이 같이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다른 지역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케이프 타운도 치안문제가 항상 이슈다. 내가 묵었던 크루거(Kruger)할아버지 내외의 집 앞뒤 정문의 초인종들이 도난 당했는데 흑인들이 떼어갔다고 추정하셨다. 할말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매일의 일과란다. 집집마다 이중문과 쇠창살로 막혀서 마치 집이 알 카트라즈의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가구는 물론이고 전화기, 냉동고, 냉장고에도 열쇠가 달려있고 자동차는 핸들, 기어, 전자잠금장치등 2중 3중으로 열쇠를 잠근다. 내가 그곳 크루거 할아버지에게 한마디로 남아공은 ‘열쇠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씁씁히 웃기만 하셨다.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백인가정들은 개를 키우고 있는데 물론 흑인들을 절대 접근하지 못하도록 개에게 교육을 시키기도 하겠지만 습성이지 흑인들만 지나가면 사납게 짖는다. 신기한 것은 길거리 지나가는 흑인과 백인에 대한 구분을 정확하게 하기 때문에 백인이 지나가면 절대 짖지 않다가도 흑인이 지나가면 문에 달려들면서 까지 짖는다는 것이다. 개도 인종차별을 하는 것인가?
롱 스트리트(Long street)에서 만난 피나르(Pienaar)라는 백인거지는 정말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어떻게 백인이 거지노릇을 한단 말인가! 인종차별이 법으로 존재하던 시대에는 ‘거지 백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케이프 타운 시내 곳곳에서 백인거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도 아직은 과거의 품위를 지키면서 부부 동반으로 개를 데리고 ‘오손도손’ 구걸을 하기도 한다. 흑인정부에서는 공직에서 인종비율에 따른 채용을 법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백인들이 점차 직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해 백인들은 동병상련으로 비교적 호의적으로 도와준다. 그러나 흑인 어린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로 돈을 주지 말라고 하고 자신들도 인색하다. 흑인들은 마약이나 술을 먹는다고. 그런데 왜 그런지 구걸하는 흑인들은 별로 불쌍해보이지 않는데 백인들은 불쌍해 보이는 것을 숨길 수 없다. 아프리카에서 백인 거지를 만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백인은 우월하다는 의식이 머릿속에 잠재되어 그러는 것인지. 이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이제 백인들도 과거의 인종차별을 통해서 얻었던 특권과 혜택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으며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과거보다 더 열심히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데 되었다.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메릴 영(Meril Young)은 케이프 타운은 불쾌하고 암울했던 역사의 짐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그 중심에 칼라드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99년 총선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더 이상 케이프 타운에 살고 있는 칼러드들은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지만 인종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최근에 생겨난 하나의 ‘새로운 인종’으로서 칼라드들은 그들의 민족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인종적 특징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개방적이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케이프 타운에 피는 다양한 프르티아 꽃 색처럼 이제 케이프 타운의 사람들은 다양한 인종의 색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들의 모습을 칼러드들속에서 만나고 있다.
케이프 타운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진 다양한 인종들의 문화적 모습, 그리고 지리적인 특수성은 케이프 타운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이프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제적 수준을 떠나서 그들이 살고 있는 케이프 타운을 사랑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과는 다른 곳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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