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까치(갈치), 오징거, 새-우, 무너...”
나를 뺑 둘러싼 흑인 아이들이 저마다 외쳐대서 정신이 멍멍할 지경이다.
“마담, 마담, 오징거 프렛쉬 오징거”
손에 오징어 한 마리를 쳐든 녀석이 내 눈앞에 바짝 들이대며 슬쩍 손가락으로 오징어 몸통을 건든다. 오징어의 색깔이 무지개 빛으로 금새 금새 변한다.
“마담, 마담, 새우”
오징어를 밀치고 다른 녀석이 코 앞에 불쑥 왕새우 한 마리를 내민다. 나를 보자 마자 양손에 새우 한 마리씩을 쥐고 뛰어오던 녀석이다. 손바닥만큼 크고 탐스러운 새우의 껍질이 다 비칠 것같이 싱싱하다.
“마담 마담”
또 다른 녀석이 아예 내 옷자락을 잡아 다니며 게 바구니를 들여다보라고 야단이다. 솥뚜껑만한 게딱지를 둘러쓴 왕게들이 펄펄 살아서 움직인다.
다레살람의 바닷가 대통령 궁 앞쪽으로 어선들이 들어오는 부두와 어시장이 있는데 이곳에 갈 때마다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멀리 차에서 내릴 때부터 우르르 뛰어오기 시작해서 어시장에 다가갈 때쯤이면 그만 흑인 애들이 새까맣게 에워싸고 서로 자기 사라고 아우성이었다. 이 애들은 한국 사람도 잘 알아보고 생선 이름을 용케도 한국말로 다 외우고 있었다.
맨발이나 다 헤진 슬리퍼 차림에 열 대 여섯 살 정도의 이 애들은 생선 주인이 아니라 말하자면 바람잡이 격이었다. 바가지나 비닐봉지도 없어서 맨손에 새우나 오징어 한 마리씩을 쥐고 다니며 외치다가 임자를 만나면 다행인 녀석들이었다. 생선주인에게 몇 푼이나 얻는지 모르지만 바가지를 씌울수록 떨어지는 것이 있는지 막상 새우나 오징어를 가리켜 사겠다고 하면 제값의 서 너 배를 척 부르기 일쑤였다. 안 살 듯, 갈 듯, 온갖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제값으로 내려가서 생선을 사면 이번에는 비닐 봉지 파는 아이들이 부리나케 뛰어왔다. 이 애들은 한 장에 50쉴링 (약 70원) 하는 비닐봉지 묶음을 들고 다니며 파는 열 살 정도의 한층 더 어린 아이들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바닷가 바로 앞에 멋지게 돛을 단 배들이 점점이 떠 있어서 처음에는 요트인가 하고 봤는데 알고 보니 ‘다우’(dhow)라는 고기잡이 배라고 했다. ‘다우’는 긴 통나무의 가운데 부분을 파서 만들어서 좁고 가는 모양에 서 너 명, 많아야 대 여섯명이 탈 수 있고 긴 장대로 젓는 배인데 돛을 올리면 제법 속력이 빨랐다. 바로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그만큼 인근 바닷속에 어량이 풍부한 모양이었다.
이 배들이 바로 앞에 나가서 금방 잡아오는 생선들이니 싱싱할 수밖에 없어서 회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더구나 탄자니아 인들은 해안지역 사람들 외에는 바닷 생선을 먹을 줄 모르고, 새우니 바닷가재, 게, 오징어 문어 따위는 아예 혐오의 대상이어서 덕분에 한국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다.
까맣게 몰려들어 정신을 빼는 아이들이며 흥정하느라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것이 어려워 직접 생선 사는 일은 엄두를 못냈지만 그래도 지나갈 때면 ‘마담 꼬레아’ 하고 웃으며 외치는 아이들과 정이 들고 사람이 들끓는 부둣가와 생선 시장의 활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은연중 즐거워했다. 가난하지만 낙천적이고 생명력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떠나올 때쯤 해서 일본의 원조로 몇 년에 걸쳐 생선시장이 현대식으로 바뀐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내 머릿속의 풍경은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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