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 분쟁 (2013.10.10)

2015. 3. 14. 23:26

<아프리카의 발전, 국제사회의 노력에서 나와>

 

지리교육과 2013190304 정희주

 

세계은행(WB)에서 10월 7일(현지시간) 발표한 반기 경제 보고서에 의하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각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5.1%에서 5.3%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올해 1.5%의 경제 성장률인 미국에 비교해보면 매우 긍정적이다. 또한 WB는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성장 속도에 비해 빈곤율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아프리카가 이렇게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 안정에 있다. WB에 의하면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은 내수에서의 빠른 성장 덕택인데 정치적 안정이 경제적 투자확대와 생산성 확대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수많은 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2013년 7월 12일  politicsweb는 알카에다 반군이 콩고의 동부 마을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또한 10월 8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신, 구 권력간 무력 충돌로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행해지고 있는 1인 장기 집권도 문제가 된다. 지도자가 국민에게 쓰여야 하는 돈을 독식하는 할 수 있고, 그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 하나가 그 국가에 큰 피해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난국 속에서 아프리카가 경제적 성장은 어렵다.



아프리카 안의 정치적 불안정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의 경제, 정치 등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국제 사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실행하고 있다. 먼저 미국은 10월 5일(현지시간) 소말리아와 리비아에서 전격적인 대(對)테러작전을 수행하였다. 테러를 일으키는 주범들을 제거함으로써 평화로운 국제사회를 만들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테러범에 접근하는 기술이 향상될수록 테러범들의 보안 능력도 향상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관계는 평행선상을 달릴 수 있다. Business day 2013년 10월 8일자를 보면,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케냐에서 일어난 유혈사태에 대해서 키바키 케냐 대통령과 라일라 오딩가 총리, 또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 체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유혈사태가 키바키와 오딩가가 출마한 대선의 부정 선거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시비비를 따져 한쪽의 사람만 체포될 경우 오히려 서로간의 분쟁이 더 커질 위험이 있다.



그럼 아프리카의 정치적 불안정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매스컴을 통해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감시하는 것이 답이 있다. 독재를 하거나 각 부족 간, 다른 종교간 분쟁이 발생하는 내면적 이유는 권력의 단맛과 경제적 이득이다. 자신이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고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을 위해 벌이는 분쟁들은 그들에게 부와 권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제3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크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경우를 살펴보자.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광산의 다이아몬드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총기를 판 기업의 손에 넘어갔다. 분쟁이 가지고 오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에게 알릴 필요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국제사회는 공신력있고 영향력이 큰 전달 매체들(다큐, 신문, 뉴스 등)을 통해 아프리카 사회에 대해서 비판하고 그들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가 원조 형태로 나가는 교육부분에 대해서도 언어, 수학 등 이러한 부분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상황들에게 대해서도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배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자료출처>

1.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10095451g

2.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801783

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522512

4. http://www.bizwatch.co.kr/?smode=referer&uid=2540&datatype=

5. http://www.politicsweb.co.za/politicsweb/view/politicsweb/en/page71639?oid=414961&sn=Detail&pid=71639

6. http://www.iol.co.za/news/africa/congo-attack-stirs-ugandan-fears-1.1546238#.UlT-MFCpUsY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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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akula는 독립선거위원회(IEC)의 회장이다. 현재 Tlakula는 광산 물류 회사의 직원인 Thaba Mufamadi와 열애설에 싸여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공공 시설인 독립선거위원회 건물을 Thaba Mufamadi에게 임대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공직자로써 공적인 업무로 사용해야하는 공공기관을 개인의 이득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연결고리는 다른 사실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녀는 광산물류회사의 지분은 20%정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녀가 부정하게 비리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심회시킨다. 이는 청렴하게 공직을 하겠다는 그녀의 과거의 말과 불일치하는 것이며 이번 스캔들을 통해 남아프리카에서 그녀의 영향력이 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출처> : http://www.bdlive.co.za/opinion/cart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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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리카] 앙골라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쿠바인들. 앙골라

2015. 3. 8. 22:24


본 게시물은 생생한 아프리카 소식을 전달하는 아프리카 뉴스 전문 프로젝트 블로그, 

잠보리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http://blog.naver.com/jamborica/220189714746





http://allafrica.com/stories/201409301484.html

 

 

 

앙골라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쿠바인들

 

 

토요일, 앙골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쿠바지역민 연합사회(ACCRA)는 앙골라의 발전을 위해 공헌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 입장표명은 Gisela Beatriz Garcia Rivera 쿠바대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며,

Huambo 주 시가지에서 열린 2차 쿠바지역민 연합사회 국민회의의 최종공식 성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공식성명에서 쿠바와 앙골라 양국 관계의 지향점은 앙골라를 독립적, 포괄적, 자주적인 국가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쿠바인들은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 예방활동이 진행 중인 지역에서

바이러스 질병과 싸우고 있는 지역사회들과 협력을 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에서 공식성명문에 참여한 인사들은 José Eduardo dos Santos 앙골라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으며

대통령은 앙골라와 쿠바 양국 사이에 친선,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앙골라내의 국민적 조화와 융합 그리고 평화실천 또한 약속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ACCRA는 앙골라 정부에 이주해오는 쿠바인들에 대한 규제를 허용해 줄 것과,

국내에 살고 있는 쿠바인 이주민들이 자식을 낳았을 때 그들에게 앙골라 국적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고승우 역

Angola: Cubans Want to Continue Supporting Angolan Development

 

 

Huambo The Association Community of Cubans Resident in Angola (ACCRA) expressed on Saturday its willingness to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country.

 

The intention can be read in the final communiqué of the 2nd national meeting of the association, held in the central Huambo province, under the guidance of the Cuban ambassador to Angola, Gisela Beatriz Garcia Rivera.

 

The document also states that the objective is to continue making Angola a nation which is more and more independent, inclusive and autonomous, under the bilateral relations.

 

The Cubans also expressed their willingness to collaborate with communities where they integrated in the fight against various diseases, with emphasis on the prevention of Ebola virus.

 

In the same document, the participants in the meeting equally commended the Angolan President, José Eduardo dos Santos, on his commitment to the consolidating the friendship and cooperation ties between the Angolan and Cuban peoples, as well as in the achievement of peace, unity and national reconciliation in Angola.

 

On the other hand, they requested the Angolan authorities to permit the regularization of the migration situation of Cubans in Angola, and grant them the Angolan nationality to emigrants' children born in the national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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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정치 - 21세기 아프리카의 희망과 발전

2012. 7. 17. 21:47

 

 

아프리카의 정치 - 21세기 아프리카의 희망과 발전

 

 


 

아프리카는 통계수치로 보면 열악한 상황이다. GDP는 2009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5%이며 1인당 840불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개발지수(HDI)는 0.465로 세계평균 0.729에 비해 현저히 낮고 아프리카 국가 중 HDI가 가장 높은 남아공도 0.647로 세계에서 121위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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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21세기에 들어와 ‘블루 오션’으로 평가받으며 희망과 발전의 세기를 맞고 있다. 민주화와 좋은 통치(Good governance)에 바탕을 둔 정치적 안정, 그리고 지속가능한 경제적 발전은 지금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과제들이다. 어쩌면 그 어느 시기보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발전을 위한 기회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동서냉전체제의 종식으로 인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더 이상 이념과 체제에 따라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다당제 도입, 자유선거실시, 세계자본시장체제 편입 등 개혁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아프리카는 세계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 10년 동안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가 발전하였으며 경제성장이 가속화되어 아프리카 대륙에 희망이 싹튼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경제성장률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전체 GDP의 5.9% 성장함으로서 지난 10년간 평균 5%대를 상회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개혁‧개방과 함께 신중한 거시경제정책을 실시함으로서 독립이후 최근 10년 동안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아프리카는 2003년 이후 수출입 교역량인 두 자리 수의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였고 2008년 아프리카 FDI 유입액도 풍부한 지하자원과 투자여건의 개선으로 876억 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IMF에 따르면 정정 불안과 권위주의적 정부형태가 지난 20년 동안 크게 감소하였고 1990년대 이후 국가 간 분쟁과 내전도 급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현재 심각한 내전지역은 코트디브아르, 수단, 소말리아뿐이다.

 

 

2010년 2월에는 서아프리카의 니제르에서 구데타가 발생하였고 3월에는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충돌해 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21세기 아프리카 정치상황은 분명히 민주주의로 향하고 있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다당제에 기초한 선거를 실시하고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아프리카 각국은 AU와 NEPAD(The New Partnership for Africa's Development)를 통해 외교적 협력을 강화함으로서 위기상황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정치적 안정을 유도하고 있다. UN도 냉전종식이후 국제사회의 국지적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서 정치적 안정을 이루어가고 있다. 지금 현재 UN 안보리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제 중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에 관한 문제로 아프리카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48개국 중에서 다당제와 인권‧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국가’는 77년 단지 3개국이었으나 88년에는 11개국으로 늘어났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국가는 25개국에서 14개국으로 감소한 것으로 발표하였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상황이 역사적으로 식민통치의 유산이며 독립이후 동서냉전 체제와 이념으로 인해 발생된 것이라는 주장은 21세기에는 너무 진부한 설명이 되었다.  일당제(one-party system), 후원자 고객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 독재, 군사 쿠데타, 부정부패 등 이제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돌아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20세기까지 아프리카의 운명을 외부에서 결정하였다면 21세기는 아프리카인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들어와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주변부화 된 아프리카를 국제사회의 일부분으로 끌어내는 것이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동안 직면했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발전을 스스로 만들고 지속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수많은 종족 또는 부족으로 구성된 아프리카 국가들의 인종적 긴장은 항상 부도덕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인종정치(ethnic politics)’는 특히 2007년 케냐의 대통령 선거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권을 잡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방법으로 사용되었고 정치적 불안과 동요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케냐의 정치적 소요와 불안정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있어 부족적, 인종적 분쟁이 원인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democracy)’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각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이룬지 40여년이 이미 지나고 있고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의 역량에 따라 민주주의가 정착되어가고 있는 탄자니아나 보츠와나와 같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발생한 종족적 폭력은 선거부정으로 야기되었으나 종족간 폭력을 종식시키는 궁극적인 방법은 선거 민주주의의 회복, 책임 있는 정치, 나아가 민주주의의 완전한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점은 강력한 민주주의 제도(입법, 사법, 행정)가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선의(goodwill)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수준만큼 민주주의화 되어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남아공과 르완다는 변화하는 21세기 아프리카의 현주소를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했던 백인정부에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이끄는 흑인정부로의 정권교체는 아프리카의 마지막 독립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황제와 종이 그 신분을 뒤바뀐 역사적 사건으로 세계 역사상 ‘위로부터의 민주화’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한 남아공 정부는 선거를 통해 3번의 정권교체를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이룩하며,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사회-경제적, 문화적 민주화를 이룩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남아공이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또 지속시키느냐가 아프리카의 발전의 지표로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정권교체 이후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제외하고 점진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향후 남부아프리카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지도국으로 그 위상을 강화시켜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아공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전체 GDP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 영향력이 강력하며 정치적으로 남부 아프리카 개발동맹(Southern African Development Community: SADC),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 AU)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지도국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위상은 2010년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었고 G20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아프리카 대표로 참가함으로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르완다는 1994년 후투(Hutu)와 투치(Tutsi) 족 인종분규로 제노사이드가 발생했지만 중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발전이 빠른 국가에 속한다. 2010년 실질 GDP 성장률이 2010년 약 6%로, 2011년에는 약 7.5%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2010년 8월 총선에서 이변이 없는 한 현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이 다시 선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르완다 정부가 또 다른 차별과 권위적 통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노사이드의 상처를 딛고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1999년 만들어진 국가통합 및 화회 위원회(National Unity & Reconciliation Commission: UNRC)는 르완다의 문화적 전통을 일깨우면서 국가의식과 국민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21세기를 기회의 시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산적해 있다. 부정부패의 척결, 여성의 진출과 기여의 확대, 아프리카 역내 교류의 확대와 지역협력의 강화, 전세계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력.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적 고려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가난을 줄여나가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아프리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얼마나 진출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에 대해 편협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막연히 ‘마지막 남은 미지의 대륙’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자원’과 ‘시장’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할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진출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인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열악하다. 미래를 위해 적극적인 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국가와 기업 국민들이 진출을 서둘러야 할 곳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처럼 국가주도의 대규모의 투자와 진출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틈새를 노려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거의 500년 동안 서구 식민 지배를 받아왔다. 아주 익숙하게 식민지배 국가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국가들에 대해 ‘이 사람들이 이번에는 무엇을 뺏어가려고 오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익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신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현지화 전략을 발휘해야 한다. 아프리카 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친구로서 다가가려는 일관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게 아프리카 학(African studies)을 연구하는 한편 현지에 학교와 한국학 센터를 건립하여 한국을 알리고 우수한 아프리카 인재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지한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익을 챙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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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정치 - 냉전이후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발전

2012. 7. 17. 21:46

 

 

아프리카의 정치 - 냉전이후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발전

 

 

 

30년 이상의 부패와 독재 정치를 겪고 난 후였던 1990년대 초에는 실제로 아프리카 전 대륙에서 강력한 정치적 개혁과 민주화를 보여주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아프리카인들은 1989년 베닌에서 시작하여 1990년대 초 여세를 몰아 독재적 지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숨막힐 듯 답답하고 악화된 경제와 구 소련 및 동구 유럽의 몰락으로부터 자극 받은 아프리카인들은 다당제 정치체제와 시민의 자유 확대, 자유 선거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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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유화의 물결은 남아공과 나이지리아의 민주화 과정으로 인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남아공은 1990년 2월 1일 드 클레르크(F.W. de Klerk)가 300여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초유의 인종차별정책 폐지를 선언하였고 1994년 4월 최초의 다인종 선거로 넬슨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됨으로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또한 1999년 6월에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고 타보 음베키(Thabo Mbeki)의 주도아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multi-cultural diversity)을 추구하며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사회-경제적, 문화적 민주화 과정을 시도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남아공의 민주화는 아프리카 역내 민주화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의 중심국가로서 남아공은 이 지역 분쟁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1998-2001년 비동맹 의장국으로서 제3세계의 중심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남아공의 “기적”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협과 화해를 통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960-66, 1979-83 그리고 1985-99년에 걸쳐 군사정권이 들어섰던 나이지리아는 1999년 5월 오바산죠(Olusegun Obasanjo) 대통령이 이끄는 민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더 이상 아프리카가 정치적으로 후진적이라는 비판을 근절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폭력적인 정권 획득의 대부분은 구데타나 군사 개입을 통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1960년 이후 25명의 대통령과 수상들이 정치적 폭력의 결과로 정권에서 쫓겨났다. 1952년 이집트 혁명이후 아프리카에서 85번의 폭력에 의해 정권 교체가 있었으며 모두가 폭력적인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90여개의 정부가 전복되었다.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31개국이 정권교체를 당했고 이들 중 22개국은 유사한 종류의 정권교체를 1번 이상 경험했다. 베닌, 부룬디, 가나, 나이지리아, 수단, 시에라 레온과  우간다는 최소한 5번의 군사적 정권 교체가 있었다. 군사정권은 일당제와 다당제 국가 모두에서 발생했다.

 

 


보츠와나와 모리셔스만이 독립 이후 다당제를 유지해 왔으며 1994년 7월 군부의 권력 탈취가 있기 전까지는 감비아도 다당제를 유지하였다. 짐바브웨와 나미비아는 독립 이후 다당제 국가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기니아, 말리, 니제르같은 나라들은 독립과 함께 일당제를 채택하였는데 일당제는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게 일반적인 정당 체제로 받아들였다. 구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의 일반적인 모습은 점진적으로 군사정부를 민간정부형태로 이양해가고, 또한 군부 정치 체제를 일당 독재 체제로 변형시켜나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가나와 나이지리아는 예외적으로 독립 후에 민주주의와 군정이 번갈아 가면서 나타났다. 1977년까지 이집트, 모로코, 세네갈에서는 다당제를 부활시켰으며 1980년대에는 튀니지아, 수단, 알제리, 라이베리아, 코모로스 등지에서도 다당제가 뒤따라 부활되었다. 그 후에 라이베리아와 수단에서 독재주의가 부활하고 라이베리아가 내전에 휘말리게 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초 다당제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소용돌이의 초석이 되었다.

 

1980년대의 마지막 해에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권위주의적 권력 질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한 저항은 폭 넓은 대중의 지지속에 일어났으며, 경제적인 빈곤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또한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힘을 얻게 된 아프리카 지원국들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정부에게 경제와 정치 체제에 대한 개방 압력을 가했다. 1989년 11월, UN의 감독 하에 치러진 독립전 나미비아의 총선은 아프리카 제 2의 해방 이라 일컬어진다. 이것은 1990년 전반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일당제 권력 독점이 다당제 선거 제도로 상당히 빠르게 이행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 3월 나미비아가 독립을 맞았을 때, 코모로스는 최초의 경선을 치루었고, 가봉과 코트 디부아르도 같은 해에 코모로스의 전철을 밟았다.

 

 

1991년에는 케이프 베르데, 상토메 프린시페, 베닌, 잠비아에서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1997년 10월까지 45개 국가에서 121번의 다당제 선거(53번의 대통령 선거, 68번의 입법 선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41개국이 존재함과 동시에 나이지리아, 부룬디, 시에라리온, 그리고 콩고 브라자빌 등 4개국은 군사정권으로 돌아갔다. 이 같은 나라 대부분은 자국의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위기의 상황 아래서 다당제를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알제리, 앙골라, 니제르, 그리고 오랜 다당제 전통을 가진 감비아를 포함해서 다당제가 새로이 도입된 곳에서는 불안정한 모습으로 군정권의 개입에 의해 다당제가 파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7년 중반, 이 네 나라들은 다당제를 부활시키고, 문민 정부로 회귀하였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많은 국가에서, 기존의 정치체제들은 야당의 형성과 공개된 선거제도의 실시를 허용했다. 사하라 이남 지역의 48개국 중 1997년 말까지 경쟁적인 다당제 선거를 치루지 않은 국가는 4개국뿐이었다. 실제로 1990년대 초의 아프리카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 민주화의 분명한 ‘물결'에 완전히 동참하고 있었다. 그 정치적 변동의 폭은 1994년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합법적으로 일당 체제의 국가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정치적 개혁과 민주화를 향한 아프리카의 다양한 추이는 21세기 초에 여러 가지 요인들이 아프리카 국가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정치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내부에서 정치가 이루어진 전반적인 배경에는 빈곤과 의존적인 경제라는 식민주의의 산물과, 후원자-고객(Patron-Client Network)중심의 정치 체제, 그리고 냉전체제의 붕괴와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외부의 정치적 경제적 세력의 영향력 증가가 포함된다.

 

아프리카는 중동 근처에 위치하여 남대서양과 인도양에 가까운 지리적 위치와 풍부한 광물 자원을 가진 덕택에, 냉전 기간 동안에는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전략적 지역'으로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아프리카에 상당한 지원을 한 것은 미국이었고, 그보다 양은 적었지만 소련 연방도 거들었다. 소련 연방이 와해되고 소련이 동구 유럽에 대한 통제권을 잃으면서, 아프리카의 중요성은 크게 떨어졌다.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과 케냐 등 미국의 고객국 뿐 아니라 나머지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원조가 삭감되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러시아와 동구 유럽에서 대체 자원을 공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프리카의 전략적인 광물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었고, 아프리카 전체의 경제적 침체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불리한 경제적 상황은 1990년대 후반 국제 정치 무대에서 변화가 일어난 배경이 되었다.

 

다시 말해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일당체제존립 정통성의 이론적 기반을 붕괴시켰고 이들의 원조가 단절되고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념은 이제 아프리카 국가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으며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화에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간 아프리카의 정치적 궤적을 형성한 사회적, 경제적 정황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들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민족, 지역, 종교, 하부민족적 차이로 인해 사회구조가 나뉘어졌다고 주장한다.

 

 

2002년 9월 23일 인종갈등으로 인한 구테타가 일어난 서아프리카의 코트 디브아르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발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머나먼 길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이러한 민주화를 향한 운동이 가지는 가능성이 커 보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경쟁 다당 체제의 민주정치가 쉽게 구축될 수 있다거나 아프리카가 지닌 무수한 문제들 사이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우려할 만한 것은 1990년대 초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비교적 민주적 정부로의 성공적인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민주화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은 감소되었다. 이러한 이유는 서구선진국가들이 상업적 이익이 있는 지역에서는 민주적 개혁이나 정권교체를 그다지 강요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1989년이래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프리카의 정치상황은 발전하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장애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모든 부문에 걸쳐 정치 구조에 근본적인 개혁이 있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모든 국가들은 정치적 자유화를 실행했고, 일당 정부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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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프리카는 저발전 되었는가?

2012. 7. 17. 21:42

 

 

왜 아프리카는 저발전 되었는가?

 

 

 

여타 다른 지역보다는 달리 아프리카의 가장 널리 퍼져있는 문화특질들도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아프리카인들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자연환경과 그들 스스로 자연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는 자연에 대한 적응력의 결과로서 자연의 한 부분 또는 영역으로서 발전했다. 즉 환경의 다양성은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와 주목할 만한 신체적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아프리카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발전된 국가로 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질문에 아프리카의 역사적 환경적 요인이 적절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토양과 물이 다른 지역에 비해 척박하거나 충분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충분한 식량생산을 가능하지 못하게 한 주된 원인이었다. 둘째,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전파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셋째,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질병(malaria, tsetse fly)이 발전을 저해했다. 넷째, 강력하고 거대한 정치적 통일체(political entities)가 없었다. 아산테(Asante), 부간다(Buganda), 줄루(Zulu) 그리고 소코토(Sokoto)같은 왕국들은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거대한 정치적 통합체가 움직일 수 있는 많은 인구와 자연자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또한 문화적 이질성과 낮은 인구구성은 조그만 국가들이 모인 모자이크 같은 상태를 유지하였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기술의 교환 같은 효과를 노릴 수 없었다.

 

다섯째, 위와 같은 설명으로는 아프리카의 저발전을 설명하는데 분명히 충분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단계에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사항이 바로 노예무역이다. 노예무역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유효노동인구의 손실.

 

② 노예를 잡아들이는 방법은 삶의 토대를 파괴, 사회적 불안 가중.

 

③ 경제적 폐해. 의존적인 경제활동과 역내 무역의 파괴, 그리고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가져오게 되었다.

 

결국 노예무역은 인적자원 및 물적자원의 착취와 아프리카국가들의 실질적인 붕괴를 가져오게 되었다.

 

 


여섯째, 식민지배와 착취적인 통치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는 인종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주민이 대규모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아공의 백인들은 자신들 스스로 유럽의 백인들과 동일한 인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Afrikaner'라고 부르며 아프리카의 또 다른 인종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이메리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서처럼 토착민이 멸종하거나 미미한 존재로 남아있지 않고 강력한 중요인종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의 인종적 유입과 우월적인 정치, 경제, 문화적인 지배는 독립후에까지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게으르고 나태하며 과거와 현재만을 중시하는 아프리카인들의 민족성을 들 수 있다. 물론 위에 열거한 모든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원인 분석은 인종편견적인 발언으로 자제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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