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왜 아프리카를 식민지배하였는가?

2018. 4. 6. 10:07


아프리카 식민지화의 핵심적 원인은 정치적,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럽 각국은 민족주의적 경쟁과 힘의 균형, 그리고 국가주의적 시각에 따라 더욱 더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고자 경쟁하였다. 또한 제국주의적 시각에 따라 새로운 시장과 자원의 공급지로서 식민지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욕구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는 것이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경제적으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선교사들이나 해안가에 거점을 두고 이루어지는 소규모 무역상들에게 방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유럽 국가들의 경쟁은 1870년대에 들어와 점점 치열해졌다.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과 그리고 독일에서는 개인과 집단들이 경쟁하고 있었고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조직한 국제아프리카회의(International African Association)같은 단체에 의해서도 경쟁이 유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비공식적인 무역 제국이 공식적인 식민제국으로 전환하는 것을 옹호하게 만들었다. ‘분할또는 쟁탈(scramble)’이라는 유럽인들의 표현에 맞는 거의 공황에 가까운 경쟁상태가 일어나게 되었고 188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쟁탈은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식민지배는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문화는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전통을 만들어 냈다. 일부 경우에 있어, 이러한 전통은 아프리카인들의 후진성과 미개함, 그리고 야만성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었다.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지배 방법이 다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는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체제, 즉 기술적으로 진보한 소수의 외국인이 다수의 원주민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강제로 지배한 체제였다. 식민주의자는 식민 지배를 하는 자신들은 우등한 쪽이고 식민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인들은 열등하다는 이론을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아프리카의 점령과 식민화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배경의 대부분은 다윈(Darwin), 스펜서(Spencer), 모건(Morgan),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역사발전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유럽인들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문명이 낮은 수준의 문명을 점령하여 세계의 곳곳에 번영과 진보를 가져오는 것이 옳은 일이고 심지어 자신들의 의무라고 주장한다. ‘백인의 십자가라는 문구로 표현되거나 프랑스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명의 의무라고 표현되는 이러한 주장들은 백인종의 생물학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인종차별적 이론을 더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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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에게 끼친 노예무역의 부정적인 영향

2018. 4. 6. 10:05


역사학자들은 노예무역으로 인해 아프리카 사회가 후진성을 띠게 되었고 세계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약점과 의존성은 식민 시대에도 계속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분명히 지속되고 있다. 다른 역사학자들은 노예무역에 크게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환경이나 기술, 사회 조직, 종교적 신념, 개인적 시도와 같은 식민지 이전 시대의 아프리카 사회를 형성한 요인들을 강조한다.


노예무역의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인위적인 인구손실로 아프리카가 발전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노예무역의 성장은 아프리카 사회의 불안정을 야기하였다. 17세기-19세기에 이루어진 노예무역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붕괴시켰다


신세계로 이송된 사람들의 숫자를 추정하는 데에는 기록이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최근의 계산에 의하면, 15세기와 16세기에 잡혀간 사람들까지 합쳐 모두 1,000만 명에서 1,300만 명의 사람들이 노예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이들 중 절반은 서부 아프리카에서, 나머지 절반은 중앙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사람들이다. 노예를 수송하는 과정에서 약 5배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의 인구손실은 약 1억명을 상회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8세기에는 약 1,000만 명 이상이 노예무역으로 인해 죽거나 유출되어 가장 심각했으며, 19세기에는 약 400만 명 이상이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에 미친 광범위한 부정적 이미지와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지금까지 고착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아프리카 사회가 저발전의 단계에 머물게 하였으며 생산적이지 못한 무역체계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의 불리한 위치 놓이게 되었다.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인해 서구사회는 아프리카의 희생을 발판으로 부유해졌고, 그러므로 아프리카가 현재 처해 있는 경제적 후진성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중심주의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의 영광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아프리카의 문명은 오히려 대서양 노예무역의 영향으로 변형되고 야만화 되었다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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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는 개도 인종차별을 한다! 개도 사람을 가려가며 짖는다!

2012. 7. 17. 21:04

 

 

남아공에서는 개도 인종차별을 한다! 개도 사람을 가려가며 짖는다!

 

 

 

우리는 흔히 너무나 형편없는 상황이 되면 ‘개보다도 못한 인생’이라고 이야기 한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개를 친구나 가족으로 대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상속도 해주어 그야말로 개 팔자 상팔자다.

 

아프리카에서 개는 어떤 지위일까?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의 한 부족은 과거에는 개고기를 해서 먹었지만 요즘에는 개고기를 즐겨 먹는 부족은 없다. 그러나 개를 선진국에서와 같이 잘 먹이고 잘 대하는 곳은 없다. 그 이유는 사람도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개에게 그렇게 정성을 들일 여유가 없어서다.

 

하지만 남아공의 백인 아프리카너들에게는 개는 흑인보다 중요한(?) 친구이며 가족이다. 교통사고로 흑인들과 백인들이 기르는 개가 차에 받혀 사망할 때 이러한 상황은 명백하다. 오히려 개를 죽인 경우의 처리가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유학을 하는 동안 개로 인해 황당한 상황에 접하기도 했고 주인의 인종차별을 그대로 따라하는 개에게 화가 많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보면 초한지의 토사구팽(兎死狗烹)에 얽힌 고사의 한 장면은 분명 남아공에서는 맞지 않는다. 역모혐의로 한신을 살해한 후 역모를 밝히는 과정에서 한신의 측근이 ‘개는 제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들고 외부에서 오는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짓는다...’라는 주장은 분명히 남아공의 개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다. 남아공의 개는 분명히 인종을 가려서 짓는다.

 

남아공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서 백인들이 모여사는 주택가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백인들의 집에 있는 개들이 몰려나와 걷고 있는 나를 사정없이 짖어 댔다. 한 집에서 짓어대니까 모든 집의 개들이 합창하듯이 짓었다. 너무나 소리가 커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화도 나서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한국인 선교사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시면서 백인들의 집에 있는 개는 한국인들을 흑인으로 생각해서 짓어댄다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흑인거주지에 가면 오히려 백인에게 짓어대고 한국인들에게는 꼬리를 흔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후 백인거주지와 흑인거주지에서 위와 같은 상황이 여러 번 벌어졌고 그 때마다 나를 백인으로 대해주기를 설명하는 작업을 포기했다(?)

 

 


내가 묵고 있는 집에 개를 마침 기르게 되었는데 나 또한 매우 개를 좋아하여 아주 친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어디가 불편해서 그런지 이 개가 까닭없이 짓고 말을 듣지 않아 살짝 한대 때려주었다. 그랬더니 개가 깨갱거리는 소리를 듣고 이웃집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평소에 젊잖고 온화한 얼굴을 하고 계신던 그 할머니는 ‘왜 개를 때리느냐?’, ‘개가 말을 안들으면 신문지로 돌돌 말아 교육을 시켜라’ 그래도 안되면 개를 교육시키는 학교에 보내라‘ 그래도 안되면 개 보호소에 보내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하셨다. 문화가 다르니까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그분의 눈에 ’이런 미개한 사람이...‘’라는 표정이 역력해지자 화가 너무나서 할머니가 가신 후 개를 좀 학대(?)하면서 우리나라의 견권에 대해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남아공의 노인들은 노년에 대게 양로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는데 혼자서 살아갈 기력이 있을때까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신다. 양로원의 생활이 편하기는 하시지만 사람사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혼자서 살면서 개와 고양이를 가족처럼 대하면서 사신다.

 

내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부모님을 모시거나 돌보고 산다고 했더니 너무나 좋은 제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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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

2012. 7. 17. 13:35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란 용어는 분리(segregation)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이념에 의하면 모든 종족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 기여할 문화적 공헌을 갖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 각각 다른 인종들은 종족별로 분리되어져야 하며, 그들 노선에 따라 발전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그들의 부족간, 인종간 분리에 따른 발전을 구체화시킨 것이 남아공의 홈랜드 정책(Homeland project)이다. 이 정책에 의하여 흑인들은 그들이 살던 원래의 지역을 떠나 국가에서 정한 새로운 거주지로 이동하여야 했고, 여러 사회, 경제적 제약과 차별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법규들이 남아공의 백인들에게 정당화되어 법제화될 수 있었던 이념적 근거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첫째, 백인의 타인종에 대한 우월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백인우월인종론에 기초한 것으로 바스캅(Baaskap)이란 용어로 대표될 수 있다. 그들은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며 정치, 경제 등의 여러 측면에서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둘째, 성경에 근거한 종족간 분리를 들 수 있다. 이는 남아공 백인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프카너들이 신봉하는 화란 개혁교회의 캘비니즘(Calvinism)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다. 그들은 인종의 다양화․영토분할이라는 신의 계율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구약성서와 신양성서의 몇구절을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신명기 32장 8절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대로 민족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또, 신약의 사도행전 17장 26절에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들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등을 인용,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성서적 배경에 때라 1959년 화란 개혁교회는 모든 민족과 인종이 분리되는 것은 “신의 뜻(Will of God)"이라고 천명했으며 아파르트헤이트정책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지지 표명하였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는 지역에 따라 그 정치문화적 특수성에서 인종차별정책이 완전히 불식되고 있지 않으며, 아직도 인도주의적인 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곳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을 실정법으로 하여 운용한 나라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이 유일무이한 경우라 하겠다.

 

  특히 1949년에 제정된 혼합결혼금지법(The Prohibition of Mixed Marriage Act)은 백인과 유색인종간의 혼인을 불법화시킨 것이며 1950년에 제정된 부도덕법(Immorality Act)은 더 나아가 백인과 유색인종간의 결혼은 물론, 교제나 성행위까지를 포함한 모든 행위를 금지시킨 것이다. 또한 1953년 제시설분리법 (Reservation of Separate Amenities Act)은 사용하는 모든 시설물을 인종에 따라 구분하였다. 이러한 인종차별법들은 결국 1959년에 제정된 반투자치촉진법(Promotion of Bantu Self-Government Act)으로 결론지어진다. 흑인의 종족별 단위에 기초한 개별국가의 건설은 백인사회와 흑인사회의 완전 분리를 전제로 하여 그 분리발전(separate development)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그 궁극적인 목적은 남아공화국의 흑인을 그 종족에 따라 개별적인 홈랜드에 귀속케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남아공의 국적을 잃게 만들어 흑인으로 하여금 자기 조국에서 외국인의 신분이 되게 하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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