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The Historical Contextualization and Ethnic Identity of Bakongo People in DRC: Case of ABAKO, BDK, BDM.” 韓國 아프리카 學會誌, 제57집, 2019년 08월 30일, pp. 69-116.

2020. 5. 31. 11:31

2019년 8월 30일 아프리카학회지-The Historical Contextualization and Ethnic Identity of Bakongo Peopl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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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a Musa 연구성과 네무안다은세미, 마얄라연합(BDM), 바콩고 민족주의, 바콩고(Bakongo), 바콩고동맹(ABAKO), 콩고민주공화국, 콩고연합(BDK), 콩고왕국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 종식은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의 정착이 관건이다.

2018. 5. 15. 17:53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지금 현재 동부 지역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동맹민주군(Allied Democratic Forces : ADF)이 무장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이 조직은 우간다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으로 수단의 지원을 받는 우간다 무슬림이 중심이 되어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지역과 우간다 국경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 고마에서 작전중인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c/FARDC_and_MONUSCO_reinforce_their_presence_in_and_around_Goma_following_a_second_day_%2821_May_2013%29_of_clashes_between_M23_and_National_troops._%288782972992%29.jpg



콩고민주공화국의 분쟁은 이웃 국가의 정치상황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 정착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은 내전과 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반군이 모두 진압되었다고 하지만 자원 확보와 지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웃 국가의 영향력이 언제든지 콩고민주공화국을 내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이웃한 르완다, 부룬디의 후투족 대 투치족의 대결 구도와 연계되어 있고, 종족간 대립이 깊어 질대로 깊어져서, 양 종족간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실정이다.


2017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상황은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 대통령인 조셉 카빌라(Joseph Kabila) 대통령은 2차례 연임을 하였으며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3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 선거가 20161127일 예정되어 있었으나, 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현 대통령인 조셉 카빌라 대통령의 임기가 연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적 불안정, 예를 들어 동부 지역의 반군활동이 활발해지거나 예기치 않은 소요사태로 인해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선거가 치러지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집권이 연장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러한 사태를 맞지 않고도 카빌라의 대통령 직이 연장되는 결과를 맞고 있다. 이미 콩고민주공화국의 선거관리위원회(Commission Électorale Nationale Indépendante: CENI)2016929일 대통령 선거를 2018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헌법재판소 역시 선거연기를 공포하였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콩고민주공화국의 선거는 20184월에서 7월 사이에 치러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야당과 국민들의 반발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으며 콩고민주공화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카빌라 현 대통령은 2016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 않고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 국내정치를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웃나라인 부룬디가 정치적 불안정을 이유로 대통령 선거를 미루고 대통령이 계속해서 정권을 이어가고 있는 사례를 학습하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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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자원 때문에 계속되고 있다.

2018. 5. 15. 17:49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왜 콩고민주공화국은 내전에 고통을 받고 있으며 저발전의 상태에 머물고 있을까? 필자가 만난 킨샤사 국립대학교의 한 교수는 서구 국가들은 결코 콩고민주공화국의 안정을 바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구 국가들은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의 민주주의와 정치적 안정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을 비롯한 수단,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앙골라 등은 풍부한 자원으로 인해 오랫동안 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오히려 자원의 저주가 되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금, 주석, 콜탄(coltan), 목재 및 다양한 광물이 정부와 반군의 무기를 사는데 사용되거나 개인적 축재로 이용되었다.


아프리카의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나라는 선진국가로 이는 새로운 아프리카 쟁탈전”, “착취적 세계화또는 자원 식민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아프리카 수입품 중 자원이 60%를 차지한다. 중국은 30%의 석유를 앙골라, 수단, 리비아에서 수입된다. 잠비아에서는 구리를,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구리와 코발트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크롬과 백금을, 그리고 가봉 및 모잠비크에서는 목재를 수입하고 있다.


르완다는 콜탄이 전혀 생산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전세계 4위의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콜탄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밀반입 된 것으로 동부 지역의 내전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지구상의 70~80%의 콜탄이 콩고민주공화국에 매장되어 있고 동부 지역에 주로 매장되어 있다.




<지도> 콩고민주공화국의 자원분포 현황 

https://www.newsecuritybeat.org/wp-content/uploads/2012/07/Minerals+and+Forests+of+the+DRC.jpg




 2004년부터 키부 지역에서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 투치족 중심인 국민방위민족회의(National Congress for the Defence of the People : CNDP), 후투족이 중심이 된 르완다해방민주세력(Democratic Forces for the Liberation of Rwanda : FDLR)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키부의 자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콩고내전 이후 정부군에 편입되었던 로랑 은쿤다(Laurent Nkunda)2004년 북키부 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은쿤다는 키부 주에 있는 바냐물렝게족의 보호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무능함과 부정부패를 비판함으로서 많은 정부군이 그를 따르는 상황이 되었다. 2006년 대선 당시 정부가 동부 지역 투치족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자 다시 정부에 대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하였다. 2007년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은쿤다와 그를 따르는 반군을 콩고민조공화국 정부군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오히려 은쿤다가 이끄는 무장세력은 확대 재편되어 CNDP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정부군과 CNDP의 충돌이 계속되었고 이 지역의 불안정으로 수십만 명의 피난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2008년 휴전, 북키부 주의 반군 철수, 피난민의 귀환, 은쿤다 반군에 대한 면책 등을 조건으로 평화협상이 진행되었으나 끝내 타결되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가중되는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르완다와 비밀 조약을 맺었다. 르완다가 은쿤다를 제거한다면 콩고민주공화국은 르완다 정부군이 FDLR을 척결할 수 있도록 콩고민주공화국에 군사력이 진입하도록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091월 르완다 정부군이 은쿤다를 체포하였고 3CNDP는 해체되어 정당으로 전환되었다.  




<사진> 북키부 주의 유엔평화유지군(MONUSCO)

https://en.wikipedia.org/wiki/Kivu_conflict#/media/File:Photo_of_the_Day,_08_January_2014.jpg



 

FDLR은 르완다 정부의 전복을 노리는 후투족 반군 세력으로 키부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CNDP와 경쟁관계에 있었다. 르완다 정부는 투치족이 이끄는 CNDP를 이용하여 FDLR을 압박하고 있었으며 2009년 이후에는 CNDP가 해체되어 콩고민주공화국의 집중공격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콩고민주공화국 유엔평화유지군(United Nations Mission in the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 MONUC)과 함께 FDLR을 압박하였고 2014년 결국 무장해제를 하게 되었다.


2012CNDP 잔당 중 일부가 M23이라는 무장조직을 만들어 동부 지역은 다시 불안정한 상황이 되었다. M23은 투치족 중심인 CNDP 반군이 협상을 통해 콩고민주공화국의 정규군에 통합된 2009323일에서 유래한다. 이들은 2009년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약속한 평화조약을 이행하지 않고 투치족을 차별하고 있다고 반발하였다. M23은 대략 6,000~7,000명 정도의 규모로 조직되었고 동부 중요 도시인 고마(Goma)를 장악하였다. 필자가 본 고마는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M23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인 킨사샤로 진격해 새로운 콩고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하였다.


콩고민주공화국은 르완다가 M23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즉 르완다가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지역의 지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M23을 지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 키부 호수와 북키부 주(North Kivu Province)

https://en.wikipedia.org/wiki/Democratic_Republic_of_the_Congo#/media/File:Nord-Kivu,_RD_Congo_-_Vue_sur_un_crat%C3%A8re_aux_abords_de_la_ville_de_Goma._(22722760943).jpg



 

20132월 유엔의 중재로 콩고민주공화국을 비롯한 11개국이 에티오피아 모여 르완다와 우간다가 콩고민주공화국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3월에는 유엔평화유지군 콩고민주공화국 감시단(The United Nations Organization Stabilization Mission in the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 MONUSCO)(2010MONUC에서 명칭변경)의 병력을 증강하여 3,069명의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을 파병하였으며 유엔 평화유지군 역사상 처음으로 적극적인 공격작전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M23은 내부의 분열로 2개의 세력으로 나누어져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2013년 말 유엔평화유지군과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의 공격으로 M23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12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회의(Nairobi Declaration)에서 M23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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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카빌라와 제2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2018. 5. 15. 17:38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롤랑 카빌라는 모부투와 내전을 치르는 와중에 후투족 난민들을 대량학살 하였다는 의혹을 받게 되었다. 또한 롤랑 카빌라는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르완다의 투치족 출신인 카바리(James Kabari)를 국방장관에 임명하여 르완다 투치족 군인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갔다. 이에 따라 롤랑 카빌라 정권이 르완다 투치족의 괴뢰정권이라는 비난도 받게 되었다.


롤랑 카빌라는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린 후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고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해 투치족 세력을 제거하면서, 우간다, 르완다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였다. 롤랑 카빌라는 투치족의 정당 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시켰으며 19987월 국방장관을 교체하고, 투치계 군사고문들을 추방하는 등 투치족의 전면 철수를 요구하였다. 자신의 집권을 도운 투치계 바냐물렝게족의 국외 추방을 선언하자, 결국 바냐물렝게족과 르완다 투치계 군인들이 무장 봉기를 시작하여 제2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이 시작되었다.


롤랑 카빌라 정권의 느린 민주화 이행과 내전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우간다와 르완다의 지원으로 반군이 수도에 접근하게 되자 이웃하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 개입하게 되었다. 롤랑 카빌라는 짐바브웨, 앙골라로부터 병력을, 나미비아, 차드, 잠비아, 수단으로부터 병참 지원을 받으며 반군 진압에 나섰고, 반군은 콩고민주연합(Rally for Congolese Democracy : RCD)을 결성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반군은 우간다의 지원을 받는 콩고해방운동(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Congo : MLC)으로 다시 분열되어 내전의 양상은 더욱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반군을 지원했던 우간다는 국경과 연결된 오리엔탈 주(Orientale Province)의 이투리(Ituri) 지역을 점령하고 이 지역의 금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지역의 토착민인 농경민인 헤마(Hema)족과 목축민인 렌두(Lendu)족의 갈등을 이용하였고 결국 1999-2007년 사이에 또 다른 내전이 발생해 약 5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우간다가 헤마족을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자, 헤마족은 스스로를 투치계, 렌두족은 후투계라고 주장하여 르완다 내전과 연결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로써 콩고민주공화국은 정부군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연합군, 친카빌라 경향을 띠는 후투족 민병대인 마이마이(Mai-Mai)[각주:1], 인터함웨와 RCD, MLC가 대립하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사태를 우려한 주변국들이 중재에 나서, 19995월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르완다 간에 정전협정이 체결되기는 하였으나, 반군들이 정전협정에 동의하지 않아 난항을 거듭하였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 남부의 카탕카 지역은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으로 이 지역을 둘러싼 격전이 계속 되어, 다이아몬드 전쟁으로 불렸다.


20002월 유엔안보리가 콩고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평화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하였으나, 교전 당사자들이 정전에 동의하지 않아 평화유지군의 파병이 연기되었다. 특히 카빌라는 20008월 루사카 평화협정에 참여하는 것을 유보하겠다고 발표하고, 반군에 대한 총공세를 시작함으로써 평화정착의 희망은 사라져 버리는 듯 하였다.


그러나 20011월 카빌라가 암살되고, 그의 아들 조셉 카빌라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그는 131일 유엔 평화유지군의 파병을 요청하는 등 평화협상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이어 2월에는 잠비아에서, 콩고내전 관련 6개국(짐바브웨, 앙골라, 나미비아, 우간다, 르완다) 회담이 개최되어, 관련국의 군대 철수 및 유엔 군사감시단의 전개에 동의하였다. 이로써 유엔은 교전당사자들이 현재의 전선에서 9마일을 후퇴하면, 이 지역에 유엔 군사감시단을 파견하기로 약속하였다.




  1.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지역 반군단체는 스와힐리어로 ‘물’을 뜻하는 마이(mai)라는 단어를 반군 단체 이름에 사용한다.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이투리(Ituri) 지역의 맘바사(Mambassa)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마이마이 심바(mai mai simba)”라는 반군 단체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조직의 단원을 “마이마이”라고 부르는데 반군들은 신비한 물을 마셨기 때문에 ‘무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투리 사람들은 ‘마이마이’라고 외치면 이들의 몸이 물로 변해 총알이 몸을 통과하여 지나간다거나 돌에 주문을 외우면 폭탄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마이’라는 단어는 사실 탄자니아의 마지마지(Maji Maji) 반란에서 비롯되었다. 스와힐리어(Kiswahili)로 ‘마지(maji)'는 ’물’을 뜻한다. 이 반란은 1905-1907년까지 탕가니카(Tanganyika, 현재의 탄자니아)인이 독일 식민정책에 저항하여 일으킨 반란이었다. 독일은 베를린회의(Berlin Conference, 1884-1885) 이후 탕가니카를 식민지배 하였는데 1890년대 중반부터 가혹한 직접통치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전통과 관습을 무시하여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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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인종학살과 제1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2018. 4. 20. 13:32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모부투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1당 독재정권을 유지하였으나, 1990년 미국이 군사 및 경제지원을 중지하자, 권력기반이 점차 약화되어 독재정권의 기반이 조금씩 붕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1994년 이웃한 르완다에서 인종학살이 발생하여 후투족이 동부지역에 대거 유입되어 르완다 투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반정부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지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부투는 콩고민주공화국의 후투족을 지원하여 르완다와 적대적 관계를 갖게 되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95년 키부(Kivu) 주에 거주하던 투치계 바냐물렝게(Banayamulenge) 족의 시민권을 부정하고, 콩고민주공화국을 강제로 떠나도록 명령하였다. 바냐물렝게족은 18세기부터 키부 주의 남부지역에 거주해 온 투치족을 일컫는 말로, 1910년 서방세력이 자의적으로 콩고-르완다 국경을 확정하는 바람에 콩고민주공화국에 편입되었다. 또한 역사적으로 르완다의 정치적 불안정을 피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투치족이 계속해서 유입되었다. 이 지역은 루뭄바의 민족주의를 추종했던 롤랑 카빌라가 1967년 인민혁명당(People's Revolutionary Party : PRP)을 결성하고 사회주의를 채택하여 1980년대까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지역이었다.




<지도 > DRC의 광물자원 생산지역

(http://electronics360.globalspec.com/article/10/conflict-minerals-facing-the-compliance-challenge)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정부군과 르완다 출신 후투족 민병대를 동원하여 강제로 투치족을 추방하기 시작하자, 롤랑 카빌라는 199610월 키부 남부지역에서 투치족과 함께 우간다와 르완다의 지원을 받아 콩고-자이레 해방 민주세력연합(Alliance of Democratic Forces for the Liberation of Congo-Zaire: ADFL)을 결성하여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1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으로 19975월 롤랑 카빌라가 이끄는 ADFL이 수도 킨샤샤를 무혈 점령함으로써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제1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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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의 냉전은 긴밀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발생한 지역분쟁이었다.

2018. 4. 20. 13:26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탈냉전시기에 아프리카는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했으며 아프리카 국가의 군사개입이 발생하여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생한 내전은 대표적인 사례로 아프리카의 제1차 세계대전(Africa's World War I)이라고 부르고 있다. 2002년 앙골라, 나미비아, 짐바브웨는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측에서 싸웠고, 르완다와 우간다는 반군편에서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키고자 했다.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 군사를 파병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역적 역학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잘 보여 준 사례였다. 냉전시기에는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했으나 탈냉전시기에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지역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이해관계가 중요한 요인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1994년 르완다에서 발생한 인종학살은 콩고민주공화국을 비롯한 중부 아프리카지역에서 민족 집단의 대이동을 야기하였고 이는 곧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1959년부터 1963년 사이 르완다의 정치적 불안정은 투치족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이때 난민으로 르완다를 떠난 투치족들은 거의 30여 년 동안 르완다에 돌아가지 못했으나 르완다의 투치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롤랑 카빌라는 투치족의 지원을 받아 1997년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1980년대 우간다로 들어간 투치족은 무세베니(Yoweri Museveni)가 이끄는 국민저항군(National Resistance Army : NRA)에 합류하여 밀톤 오보테(Milton Obote)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후 무세베니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우간다 군에 합류했다. 이후 우간다의 지원을 받아 르완다애국전선(Rwandan Patriotic Front : RPF)을 만들어 르완다를 침공하여 후투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1990년에 RPF는 르완다를 공격하였고 결국 19938월 권력분점에 합의하여 아루샤 평화협정(Arusha Peace Agreement)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평화협정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9310월 부룬디의 후투족 대통령 은다다예(Melchior Ndadaye)가 암살되면서 부룬디에서 투치족이 살해당했고 이어 후투족도 살해당했다. 이후 르완다 후투족 출신 대통령인 하비아리마나(Juvenal Habyarimana)와 부룬디의 후투족 출신 대통령인 은타리야미라(Cyprien Ntaryamira)가 탄 비행기가 199446일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공격으로 키갈리 공항에서 착륙 도중 격추되어 사망하면서 르완다의 후투족 과격파들은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에 대한 살육을 시작했다. 19944월부터 7월 사이에 약 100만 명이 살해되는 인종학살이 발생했다.


이후 RPF는 르완다에 진입하여 후투 과격파 정권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후투족 200만 명이 망명길에 올랐다. 역사적으로 과거 30년간 투치족이 이웃 국가로 피난하였으나 1994년 인종학살은 후투족을 난민으로 떠나게 하였다. 1994년 이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들어간 후투족은 르완다 RPF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정치조직화 하면서 르완다 뿐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의 지역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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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은 독재와 부정부패로 역사적으로 실패국가(failed state)였다!

2018. 4. 13. 16:07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식민지 시기 이전에는 콩고왕국(Kongo Kingdom)이었으나 4번의 국명을 바꾸고 나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여러 개의 국명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콩고민주공화국이 순탄치 않은 역사를 갖게 되었으며 현재의 상황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지도 > 콩고민주공화국 국명

(http://www.bbc.com/news/magazine-24396390) 



콩고지역에는 콩고왕국이 있었으나, 19세기말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침입에 의해 콩고강을 중심으로 분리되어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서부지역은 프랑스가, 내륙의 탕가니카호()를 끼고 있는 동부지역은 영국이 각각 점령하였다. 1885년 콩고조약에 의해 동쪽은 벨기에령이 되고, 서쪽은 프랑스령이 되어 1960년 독립을 성취할 때까지 각각 식민통치를 당했다.


1960년 서부지역은 콩고공화국(브라자빌 콩고라고 부르기도 함)으로 동부지역은 콩고 민주공화국(킨샤샤 콩고, 1971년부터 1997년까지는 자이레로 불림)으로 각각 독립하여, 냉전시기에는 콩고공화국이 구소련에, 콩고민주공화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콩고민주공화국은 75년간 레오폴 2세와 벨기에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독립과 함께 5년 동안 내전을 치렀다. 벨기에령 콩고는 독립 당시 카사부부(Joseph Kasavubu)가 이끄는 바콩고협회( Alliance of Bakongo)와 패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가 이끄는 콩고국민운동(Cologolese National Movement : MNC)이 정치 세력으로 활동했다.


카사부부는 레오폴드빌(현재의 킨샤사)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연방주의를 주장하였고, 루뭄바는 스탠리빌(Stanleyville, 현재의 Kisangani) 지역에 지지 기반을 두고 가나의 지도자 응크루마(Nkrumah)의 범아프리카주의에 호응하여 즉각적인 독립과 반식민주의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606월 콩고민주공화국이 독립하였으며 카사부부는 대통령에 루뭄바는 총리에 각각 선출되었다.


그런데 독립과 동시에 광물자원이 풍부한 남부 카탕가(Katanga) 지역에서 벨기에의 지원을 받은 모이스 촘베(Moise Tshombe)가 독립을 선포하며 반란을 일으켜 내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으나, 내전상태가 지속되자, 루뭄바는 가나와 구소련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 때문에 루뭄바는 친소주의자 및 공산주의자로 알려지게 되어 서방권 국가들로부터 기피인물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카사부부가 루뭄바를 총리직에서 해임시키자, 루뭄바는 이에 불응하고 의회를 동원하여 카사부부를 하야시키려 하여,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정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 미국의 지원을 받은 모부투(Mobutu Sese Seko)가 자신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한 루뭄바를 체포하여 카탕가 반군에게 넘겨 루뭄바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모부투의 도움으로 정권을 되찾은 카사부부는 촘베를 총리에 임명하는 등 일시적으로 정권을 안정시켰으나, 196511월 모부투가 재차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였다. 이후 약 30여 년간 모부투의 장기집권이 지속되게 된다. 자이레로 국명을 바꾼 모부투는 독재와 부정축재로 콩고민주공화국을 실패국가로 만들었다.


19975월 모부투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롤랑 카빌라(Laurent Désiré Kabila)는 권위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했으나 패트리스 루뭄바의 민족주의를 추종했다. 그는 부정부패를 몰아내고 다수당체제를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필자가 킨샤사에서 한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 시기에 콩고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뇌물을 주고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정부로부터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2001년 대통령 경호원에 의한 모부투의 암살로 콩고민주공화국은 강력한 지배체제를 만들지도 못했고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도 못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아들인 조셉 카빌라(Joseph Kabila)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롤랑 카빌라가 주장한 콩고민주공화국의 민족주의 정책이 기득권을 가진 세력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암살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이야기다. 중세의 왕권국가도 아니고 정치적 경험이 없는 그의 아들이 대통령이 된 것은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젊은 카빌라는 취임 이후 좋은 통치(good governance)를 통한 국가발전보다는 자신의 정권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또 다시 콩고민주공화국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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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며 'Yes'맨?

2018. 3. 9. 17:17

 

오늘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러나 이러니 이야기는 일반화시켜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분히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콩고민주공화국 현지인들과 친한 관계를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7년 이상 메이드로 일했던 사람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훔쳐서 도망하는 경우도 있다. 17년 동안 일하던 경리직원이 작은 사건으로 인해 해고 통지를 받고 그날 들어온 달러를 모두 들고 훔쳐간 사건도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감시가 소홀해 지면 물건을 주머니에 넣고 훔치는 행위도 비일비재하고 관리자는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을 취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이익을 챙긴다. 물건을 정상 무게보다 낮게 장부에 적고 차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고, 오래 되거나 상태가 좋지 못한 물건을 싼 값에 빨리 팔라고 하면 비싸게 팔고 차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가격을 정해준 대로 팔지 않고 비싸게 팔아 차익을 넘기는 경우도 있으며 회사의 돈을 횡령하여 자신의 집을 건축하는 비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사람은 ‘yes’인이다! 일단 무슨 일을 시켜도 대부분은 ‘yes’라고 답한다. 심지어 하늘이 할 수 없는 일도.. ‘조금만 기다려,,, 내일이면 될 거야!’ 이런 말은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내일은 빠르면 일주일 혹은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처리를 위해 선금을 내고 추가금을 내고, 또 나중에 추가금을 내야하는 경우가 다반사며 그나마 일이 해결되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도둑은 일상적인 손님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도둑을 잡을 때도 모든 비용을 피해자가 내야 한다. 말로는 나중에 도둑을 잡으면 다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검찰은 우리가 준 돈을 먹고 도둑을 잡았을 것이고 도둑을 다시 협박해 돈을 또 챙겼을 것이다. 우리가 검찰에 항의하면 또 돈을 요구하고 그 돈의 가치에 따라 다시 도둑을 불러들일 것이냐가 판단된다. 도둑을 잡아도 돈은 받기 힘들다. 감옥에 도둑을 집어넣어도 도둑은 한 달 이내에 돈을 주고 감옥에서 나온다. 아프리카에 오는 모든 투자자들이나 사업가들은 많은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 습관 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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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남자들은 면도날을 이용해 이발을 한다.

2018. 3. 9. 17:13

 

콩고민주공화국 현지인들은 면도날을 빗에 대고 빗질을 해가면서 이발을 한다. 흑인은 머리카락이 길게 자랄 수 없어서 빗질을 하면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이 잘린다고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태어날 때부터 곱슬머리여서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동부아프리카의 남자들은 레게머리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서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남자들이 레게머리를 많이 한다. 남자들의 경우 이발소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시내의 이발소도 있지만 시내버스 정류장이나 한적한 마을에 간이 이발소가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조잡한 그림으로 널빤지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 형태를 그려놓지만 실제로는 머리를 완전히 밀거나 약간 남겨놓는 빡빡 형태의 머리가 일반적이다. 만약 우리와 같은 머리 형태를 원하면 분명코 쥐어뜯어 놓은 것처럼 만들어 놓아 나중에는 완전히 바리캉으로 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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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은 왜 여러 대의 핸드폰을 들고 다닐까?

2018. 3. 9. 17:09


아프리카인들에게도 핸드폰은 신분과 부의 척도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모든 생활의 중심에 있다.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 앱을 깔아 결재를 하는 데도 이용되고 있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아날로그든 스마트폰이든 관계없이 핸드폰을 통해 돈을 보내고 받는 은행기능까지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이 우리보다 더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아프리카인들에게 핸드폰은 중요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얼마나 핸드폰이 중요하게 되었는가는 길거리의 광고를 보면 알 수 있다.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광고는 코카콜라에서 지원한 광고가 주를 이루어 온통 붉은 색이었으나 요즘은 통신회사에서 지원한 광고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진 1>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거리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 핸드폰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다. 2014127일 필자 촬영



아프리카에서는 일반적으로 핸드폰이 부의 상징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알 수 있어 그 사람의 정체성까지 결정할 수도 있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지금도 생각난다. 아프리카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좋은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였다. 소개나 미팅을 할 때는 물론이고 처음 만날 때 어떤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키아와 삼성이 가장 인기가 많은데 비용이 약 50만원에서 60만원 정도 하니까 결국 이런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는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약 1000만원 정도하는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당시 중국제 가짜 전화기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와서 놀란 점 중 하나가 사람들이 핸드폰이 기본적으로 2-3개 가지고 다닌다는 점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통신이 불안정해서 한 통시사의 번호만 가지고 있으면 통신사가 문제가 있을 경우 다른 통신사의 번호로 전화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한가지 이유는 같은 통신사끼리 전화를 하면 비용이 아주 저렴하고 다른 통신사의 번호로 하면 아주 비싼 요금체계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유엔이나 NGO, 정부 고위관료들은 명함을 받을 때마다 전화번호가 4개에서 5개까지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한 대의 핸드폰도 운영하기가 어려운데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은 보통 2-3대가 기본이고 4대 이상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전화번호를 여러 개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핸드폰에 심카드를 2개씩 넣을 수 있는 중국산 핸드폰을 이용하기도 한다. <사진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통화' 버튼이 두개가 있는 핸드폰으로 통화버튼 1은 첫 번째 심카드를, 통화버튼 2는 두 번째 심카드를 사용하는 통화버튼이다.


콩고민주공화국 마타디(Matadi)에서 35세의 회사원이 쥘(Jule)과 핸드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사진 2> 예언자 시몬 킴방구의 여정 2014126일 필자 촬영



한 번은 기업노조연합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어요. 거기엔 다수의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다들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놓았죠. 아니나 다를까 다들 스마트폰이었어요. 저는 전화가 오면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계속 끊어버렸죠. 창피했어요. 저도 나름 회사대표로 참석 했는데 말이죠. 저도 전화가 오면 액정을 밀어서 전화를 받고 싶어요. 하지만 스마트폰은 너무 비싸요. 제 한 달 급여를 다 투자해도 살 수가 없는 금액이에요. 몇 달 모아서 사고 싶지만 당장 월급은 마누라한테 다 들어가니마누라 몰래 급여를 가불 받아서 일단 사고 싶은데 그랬다간 아마 이혼당할지도 몰라요.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 1순위는 누가뭐래도 스마트폰이에요. 뭐랄까 좀 다른 느낌이니까 제 핸드폰이 제가 조금 잘나가는 위치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러기까지는 콩고민주공화국에 들어와있는 외국인들의 역할이 컸어요. 너도 나도 스마트폰이니. 우리가 최고로 보는 핸드폰은 삼성이나 아이폰이에요. 하지만 비싸죠. 보통 중고시장도 형성되어 있지만 중고도 비싸요. 하지만 중고 삼성 스마트폰은 저희가 아예 접근도 못할 가격은 아니에요. 중국인들이 중고 스마트폰을 많이 가져오는 것 같더라고요. 핸드폰을 여러 가지 가지고 있는 이유는 통신사별로 통신상태가 안 좋을 때가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보다콤이 안 터질 때 에어텔은 터지고, 에어텔이 안 터질 때, 보다콤은 터지는 식이죠. 그래서 통신사별로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요.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은 3G가 서서히 자리잡고 있는 형국이에요. 아직 가격이 비싸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진 않지만 글쎄요. 조금씩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겠죠?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페이스북 같은 거 해야 하잖아요.


저도 너무 스마트폰이 가지고 싶어서 중국산 짝퉁을 산 적이 있었어요. 기능은 잘 모르겠고, 어쨌든 밀어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한 달도 안 되어서 고장 나더라고요. 중국산 짝퉁은 정말 비추천이에요. 저희는 보통 몇 백 프랑에서부터 오천 프랑까지 선불카드를 사서 핸드폰 요금을 충전해요. 통신비가 싸지 않으니 자주 통화를 하지도 못 하죠. 급한 일이 있는데 제가 요금이 없을 때는 상대방에게 전화를 하고 끊어요. 그렇게 여러 번 하면 그쪽이 전화를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뭐 급한 사람이 우물 파는 거죠

 

1998년 초만 해도 킨샤사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매우 극소수로 일부였다. 2015년 현재 핸드폰은 통신수단으로, 편지와 문자, 음악감상, 동영상, 카메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 은행역할을 함으로서 현대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모토롤라(Motorola)와 노키아(Nokia) 전화기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아주 부유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선전신을 주로 이용하였다. 5년 뒤에 삼성, 엘지(LG), 애플 등 다른 회사 전화기들이 시장에 나왔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모토롤라와 노키아를 선호했다. 최근에는 아이부터 어른할 것 없이 좋은 품질의 핸드폰을 선호하고 있다.


2005년 초에 중국의 이중 심카드 전화기가 출시되어 킨샤사에 보급되었는데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비록 중국제품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메모리카드, 라디오, 카메라 기능을 갖춘 핸드폰을 선호하게 되었다.


킨샤사에서 요즘 핸드폰을 빼앗는 기막힌 사기행각도 벌어지고 있다. 킨샤사국립대학교(Université de Kinshasa: UNIKIN)에 다니는 클라우델(Claudel)이라는 학생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클라우델은 저녁 6시에 교회를 가는 길이었는데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클라우델을 보고 까이 와서 그는 반둔두(Bandundu) 주에서 살고 있는데 엄마가 아파 킨샤사에 왔고 엄마가 지금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엄마에게 드릴 약을 살 돈이 필요해서 고향에서 가지고 온 금을 팔려고 한다고 하며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그는 시골에서 와서 금값을 잘 모르니 클라우델이 좀 팔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는 클라우델을 믿으니 금을 가지고 약국에서 팔아 약을 좀 사다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약을 사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당신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대신 핸드폰을 두고 가도 좋다고 말했다. 클라우델은 핸드폰을 놓고 금이 든 가방을 열어보고 확인하지 않고 약국을 향했다. 몇 발자국을 떼어놓지도 않았는데 그는 도망했다고 한다. 소리를 지르면서 그를 쫒았지만 그를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사진 3> 마타디 시내의 핸드폰 판매대 진열장. 2014725일 필자 촬영



스마트폰을 통한 페이스북, 홧츠앱(Whatsapp), 이모(imo)같은 소셜 네크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의 발전으로 통신은 더욱 다양하게 발전했다.


보다콤, 오렌지(Orange), 아프리셀(Africell), 에어텔(Airtel) 같은 통신회사들은 다른 회사의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회사 네트워크를 사용하도록 강요한다. 따라서 만약 위의 회사들의 심카드를 사면 같은 회사끼리 전화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주 저렴하지만 다른 회사 심카드를 가지고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비용을 비싸게 청구한다. 그래서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은 핸드폰을 2-3개씩 가지고 다니거나 이중 심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중국 및 노키아 핸드폰을 사용한다.




<사진 4> 콩고민주공화국 마타디(Matadi) 시내의 핸드폰 판매대에 있는 가짜 핸드폰 2014725일 필자 촬영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통신회사는 오렌지다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셀을 이용하는데 같은 회사 통신망을 이용하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에어텔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시골지역에 연고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에어텔은 시골 지역까지 촘촘하게 통신망을 깔아 통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킨샤사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시골에서 올라와 사는 사람들로 아직도 가족들이 시골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메시지를 보낼 때 사람들은 정확하게 문법에 맞게 문장을 만들어서 보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집에 있어(je suis à la maison)’라는 문장을 ‘g s8 a la mzon’라고 쓰기 때문에 일종의 은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물론 발음도 다르다.


최근에는 안드로이드 또는 윈도우 스마트폰을 좋아한다. 삼성, 노키아, 모토롤라 등의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다. 오렌지 통신회사가 가장 잘 나가는 회사로 기지국의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져 통화품질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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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사람은 생선이 없으면 밥을 안 먹는다!

2018. 3. 9. 16:28

 

콩고민주공화국인 사람들은 바다 생선을 아주 좋아한다. 콩고 강을 접하고 있어 민물 생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작지만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바다 생선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이 식사 때마다 생선을 먹을 만큼 생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의 바다 생선 사랑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은 닭고기나, 소고기보다는 생선을 훨씬 더 좋아하며 끼니때마나 생선을 먹지 못하면 식사를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는 대체로 생선을 튀겨 먹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은 튀기고, 삶고, 졸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요리하여 즐기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생선을 냉동상태로 수입하여 팔고 있는 회사는 레바논, 벨기에, 한국 등 대부분 외국인 회사들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이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바다 생선을 주식으로 삼게 된 것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자원과 외국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 중요한 이유였다. 콩고민주공화국인의 생선 사랑을 살펴보면 콩고민주공화국의 식문화뿐만 아니라 외국의 영향력에 의해 어떻게 식량주권이 영향을 받았는지 조망할 수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피오디(mpiodi), 음봉고(mbongo), 하케(hake) 등의 제품을 판매를 하고 있는데, 피오디와 음봉고는 우리나라에선 전갱이 같은 생선종류이고, 하케는 동태 같은 종류의 생선이다. 뿔레는 닭고기이다. 보통 생선 한 박스는 30kg으로 10kg3개의 묶음이 들어가 있는데 위에 사진 속에 카톤(carton)은 박스가격이고 라메(rame)3개씩 나누어진 것 중 하나의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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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졸업식 뒤풀이에 하얀 가루를 뿌리고 축하한다!

2018. 3. 9. 14:43



콩고민주공화국에는 대학교는 졸업식 세리머니가 있으나 중등학교에서는 없다. 그러나 콩고민주공화국 전역의 중등학교에서 학생은 물론 부모들도 머리에 하얀 가루를 뿌리면서 축하를 한다. 특이한 점은 부모도 하얀 가루를 뿌리면서 축하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유행하는 교복 찢기, 옷 벗기기, 속옷 차림으로 바닷물 뛰어들기, 팬티만 입고 질주하기, 머리에 케첩 뿌리기…. 등등은 없다.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이 과거에는 밀가루를 많이 뿌렸는데 요즘엔 분말 가루가 가격이 싸져서 분말 가루를 많이 뿌린다.


학기는 9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6월이나 7월에 끝난다. 학생들은 청색과 하얀색으로 된 교복을 입어야 하면 finalists, pre-frinalists, 그리고 일반적인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Finalis는 졸업반 학생으로 6학년 생이며, pre-frinalists은 5학년 생이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특별한 이름은 없다. 링갈라어로 학생들을 ‘Bana class’라고 부르는데 ‘Children of the Class’라는 뜻을 갖고 있다.


간호학교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나 5학년 생을 학생으로 받는다.

어떤 때는 수험생들이 합격했을 경우에 가루를 공중에 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성공을 축하하고 친구, 부모님들과 기쁨을 함께 하는 의미가 있다. 가루를 몸에 뿌린 사람은 성공했다는 표시로 자긍심을 갖게 된다. 흰 가루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6학년 졸업학년 학생은 2개의 시험인 구두시험과 필기시험 중 1개과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졸업할 수 있다. 국가시험과 필기시험은 정부가 주관하는 중요한 시험 중 하나다. 국가 시험은 모든 시험의 마지막 단계에서 치러진다.


마지막 시험 다음에 약 3주에서 5주간 교육부의 결정을 기다린다. 그리고 통신회사를 통해, 주로 보다콤(Vodacom)을 통해 그해 시험결과를 발표한다.


시험결과에서 합격을 받으면 기뻐하며 노래를 부르고 길거리로 걸어가서 흰 가루를 뒤집어 쓰고 함께 뛰어다닌다.


콩고민주공화국 마타디(Matadi)에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및 분석 대학(Institut Supérieur d'Informatique, Programmation et Analyse: ISIPA)의 렐로(Lelo) 교수는 현재 53세인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음.. 글쎄요 우선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런 의식이 없었어요.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이 천 년도 초반 정도부터 그러한 문화가 생긴 것 같아요. 이유라… 뭐라고 설명 드릴 수가 없는데 그냥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나요?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하는 의식들.


보통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가장 많이들 그렇게 해요. 대학교 졸업식에는 물론 있긴 하지만 많이들 하진 않아요. 보통 밀가루나 파우더를 사용하는데 밀가루 같은 경우엔 한 봉지에 오백 프랑 정도 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그 정도면 충분히 뿌리고 졸업식을 즐길 수 있죠. 많이들 밀가루를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의식은 졸업식이 끝난 후 집까지 이어지는데 제 첫 째 녀석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집에 와서 제 얼굴에 밀가루를 뿌리더군요. 저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그 녀석을 교복을 찢어버렸어요. 이제 대학에 가야 하니까 더 이상 교복은 필요 없잖아요?


어쨌든 흰 가루를 뿌리는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그리고 이 의식을 싫어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애들에게는 뿌리지 않는다고 해요. 기분 좋은 졸업식에 굳이 감정 상할 필요 없으니까. 그냥 축하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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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C - 이투리 지역 내전 (2013.09.10)

2015. 3. 14. 23:01

[번역기사 - 손지윤]

 

Clashes in DRC’s Ituri District displace thousands

충돌 사태로 콩고민주공화국 이투리 지구(Ituri District)에서 수천 명의 피난민 발생  

 

- 2013년 8월 26일자 -


 

 

콩고민주공화국 북동부에 위치한 이투리 지구에서 발생한 정부군과 무장단체의 충돌로 인해 수천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고 현지인들과 국제 구호단체 요원들이 전했다.

피난민들은 이투리 지구의 중심지인 부니아(Bunia)에서 남쪽으로 20~100km 떨어진 카토니(Katoni), 보고로(Bogoro), 게티(Gety), 츠켈레(Tchekele), 송골로(Songolo), 아베바(Aveba) 등지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투리 지구에 속한 이루무(Irumu) 지역의 시민 사회 지도자인 고타보(Gili Gotabo)씨는, “몇몇 사람들은 학교에 남아있고, 다른 이들은 거리를 헤매고 있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포탄과 총알을 뚫고 도망쳤는데, 그 때가 금요일(8월 23일)이었다. 모두들 짐꾸러미 하나 챙길 정신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루무의 렌두 빈디(Lendu Bindi) 지역 원로인 페켈리안다(Ernest Pekelianda) 씨는 “콜레라가 마을을 휩쓴 이런 시기에 아이들과 노인들이 노숙해야 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만약 인도적 개입이 없으면 머지않아 이곳은 생지옥으로 변할 것이다.”고 말했다.


UN 인도적 지원 조정 사무국에 따르면 계속되는 충돌로 인해 이 지역으로의 즉각적인 접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23일, 정부군은 렌두 빈디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이투리애국저항전선(Ituri Patriotic Resistance Front : FPRI)을 공격했다. 이 단체는 정부군 장교 출신인 마타타(Cobra Matata)가 이끌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지난 10년 간 활동해왔다.


9군 사령관인 키프와(Maj-Gen Claude Kifwa) 장군은 33명의 FPRI 군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군 3명이 전사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정부군은 FPRI가 점령했던 10여 곳의 마을을 탈환했으며 이 가운데에는 부니아 남부 60km 부근에 위치한 바비(Bavi)와 오롱바(Olongba)의 무역 센터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키프와 장군은 지역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저항군에 무기를 내려놓고 정부군이나 유엔 콩고 안정화임무단(MONUSCU)에 항복할 것을 권한다.”고 알렸다.

또한 “누구든지 정부군에 합류하고 싶은 자가 자신들의 군을 데려온다면 무조건 수용하겠다. 만약 이번 호소가 무시될 경우 우리는 다음 작전으로 들어갈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저항군 지휘관인 마타타는 2012년 11월부터 2013년 3월까지의 기간에 이루무 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강간, 살인, 약탈, 고문 등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몇 차례나 정부군에 돌아가겠다고 제안했으나, 휘하 군인들의 현재 계급을 보장하고, 이투리 지구의 다른 무장 단체들에 대해서 사면 조치를 해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 지역에서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지역 사회 간 충돌로 6만 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출처] 

http://www.irinnews.org/report/98640/clashes-in-drc-s-ituri-district-displace-thousands

 

 

[원문]

 

Clashes in DRC’s Ituri District displace thousands

 

BUNIA, 26 August 2013 (IRIN) - Thousands of people have been displaced by clashes between government forces and an armed group in northeast Democratic Republic of Congo’s (DRC) Ituri District, according to civil society and aid workers.

 

 These civilians are spread across several locations 20-100km south of Bunia, Ituri’s main town, including Katoni, Bogoro, Gety, Tchekele, Songolo, and Aveba.

 

“Some are staying in schools, others are wandering on the roads. They fled on Friday [23 August] amid shelling and gunfire. Nobody had time to take anything with them,” said Gili Gotabo, a civil society leader in Irumu territory, Ituri District.

 

“I feel sorry for the babies and the elderly who spend the night in the open, especially at a bad time like this when cholera has hit the village. If there is no humanitarian intervention soon there will be a crisis here,” said Ernest Pekelianda, an elder in the Lendu Bindi area of Irumu.

 

 Ongoing conflict made immediate access to the area impossible, according to the UN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On 23 August, the army launched an offensive in Lendu Bindi against the Ituri Patriotic Resistance Front (FPRI), led by a former army officer who goes by the name of Cobra Matata and which has been present in the area for a decade.

 

 Maj-Gen Claude Kifwa, commander of the ninth military region, said 33 FPRI fighters had been killed and one captured, while three government soldiers had been killed and seven wounded.

 

 The army said it had taken about 10 villages previously occupied by FRPI, including the trading centres of Bavi and Olongba, some 60km south of Bunia.

 

“The operations are going very well. Nevertheless we call on the fighters to lay down their weapons and surrender either to the army or to MONUSCU,” he said on local radio, referring to the UN stabilization mission in DRC.

 

“Whoever wants to join the army only has to come and bring his forces, and without any conditions. We are going to go to another level if this appeal goes unheeded,” said Kifwa.

 

 Cobra Matata faces crimes against humanity charges including rape, murder, looting and torture, allegedly committed in Irumu between November 2012 and March 2013.

 

 He has offered to rejoin the army on several occasions, but on condition his men retain their military ranks and that amnesty be granted to other armed groups in Ituri, where some 60,000 people died in inter-communal conflict between 1998 and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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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의 비민주적 대통령 선거

2012. 10. 28. 14:47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민주적 대통령 선거〉

 

 

지난 20111128일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이하 콩고)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 결과, 조제프 카빌라(Joseph Kabila Kabange) 대통령이 재선됐다. 그런데 시민사회와 야당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고, 이를 제압하기 위해 정부가 폭력을 행사하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201129일 카빌라 대통령이 890만 표(49%)를 얻어 에티엔 치세케디(Etienne Tshisekedi wa Mulumba) 야당 민주사회진보연합(Union for Democracy and Social Progress : UDPS) 후보를 300만 표 차이로 제치며 재선에 성공했다는 공식 발표가 이뤄졌다. 그러나 2위에 그친 치세케디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선언했고, 수도 킨샤사(Kinshaha)를 비롯한 콩고의 일부 도시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나와 선거 결과에 반대하는 시위가 10일까지 벌어졌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에 따르면, 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정부 치안부대에 의해 최소 24명이 사망했고 100여명이 다쳤으며 수십여 명이 임의적으로 구금됐다. 또한 민간인을 체포 및 구금할 법적 권한이 없는 대통령수위병력이 시내에서 민간인들을 체포, 구금하거나 평화적 시위를 무산시켜 문제가 됐다. 콩고대법원은 부정선거를 이유로 한 선거 무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랜 기간 내전과 독재를 겪어온 콩고는 2006년에 처음으로 ‘민주적’ 대선을 실시했다. 당시에도 선거에 패배한 야당 후보 진영과 정부군 사이에서 충격적인 총격전이 발생했었다. 이번에 치러진 두 번째 선거도 평화롭지 못했다. 심지어 투표 당일 킨샤사의 한 투표소에서는 투표함에 미리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투표용지를 집어넣으려 했다며 선관위 직원을 주민들이 붙잡아 발로 차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위의 만평은 이러한 콩고‘민주’공화국에서의 ‘비민주적인’ 대선을 그려내고 있다. 투표함의 입구에서는 민중의 피로 추정되는 붉은 액체가 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듯 쏟아져 올라오고 있고, 이 투표함을 사이에 두고 카빌라 대통령과 치세케디가 서로 씨름하고 있다. 다음번의 선거에서는 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기대한다.

 

 

만평 출처: http://www.businessday.co.za/Life/Content.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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