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물연구

나이지리아의 오바산조(Olusegun Obasanjo) 대통령

africa club 2001. 11. 21. 20:54
오바산조는 1937년 3월 5일 나이지리아의 옛 수도인 라고스 북부 아베오쿠타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요루바족의 중심지로 그의 가족은 기독교 집안이었다.  그의 집은 가난하여 그는 대학을 진학하지 못했으며 침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군에 입대한 뒤에는 영국 사관학교의 군사지도자과정 교육을 받았다.  그는 군대에 있는 동안 인도와 영국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오바산조는 빠른 속도로 진급했으며 나이지리아 내전(비아프라 내전:1967~70) 시기에는 특공대를 이끌고 내전을 종식시키는 데 공헌했다.

1975년 정권을 장악한 무르탈라 라마트 모하메드 준장은 1979년까지 민간정부에 권력을 양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976년 모하메드는 암살되었고 통치권은 그의 부관인 오바산조에게 넘어갔다. 오바산조의 통치에 대해 논란이 없지 않았으나 그는 모하메드의 일정대로 민간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기 위한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1979년 선거에서 오바산조는 자신은 출마하지 않기로 하면서, 주로 이슬람 지역인 북부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선거를 실시함으로써 동포인 요루바족의 분노를 샀으나 북부의 하우사족·풀라니족 지도자들에게서는 신망을 얻었다. 이로써 오바산조는 나이지리아 군부 지도자로서 민간정부에 권력을 이양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나이지리아의 정정이 극히 불안해지는 동안 오바산조는 외교 역할을 맡아 국제연합(UN)이나 기타 기구에서 여러 직책을 담당했다. 1995년 그는 아바차에 반대하는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혐의로 투옥되었다. 그러나 아바차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감옥에서 석방된 오바산조는 다수당인 인민민주당(People's Democratic Party)에 가입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대통령선거에서 63%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주적이고 투명하고 부패 없는 나이지리아를 건설하겠다는 오바산조의 목표는 서구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으로 그의 민주화의 실험은 선진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나이지리아의 민주화 상황은 점차 개선되어 미국은 나이지리아에 대한 적극적인 경제원조를 지원하고 있다.
남아공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도 치열해 선진국들과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