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물연구

남아공의 만델라

africa club 2001. 10. 29. 17:03
미국의 고(故)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흑인지도자로 꼽히는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표현은 뭐니뭐니해도 「아프리카 흑인민권운동의 상징」. 아파르트하이트(흑백분리정책)란 이름 하에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았던 남아공 백인정권의 흑백차별정책을 종식시키기 위해 젊음을 바쳤고 결국 흑인 다수사회인 남아공에서 백인통치를 끝내는데 결정적 업적을 남긴 그의 업적에 대한 찬사다.
그를 가리키는 또다른 수식어라면 「화해와 관용의 정치가」다. 그는 백인정권의 억압에 저항하다 27년이란 긴 세월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러나 94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된 뒤 백인들에 대한 일체의 정치보복을 가하지 않았다. 남아공의 과거청산은 새로운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치보복이 아닌 흑백화합을 위한 관용과 화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통치철학이기 때문이다.
만델라를 가리키는 말 가운데는 「무욕(無慾)의 정치가」라는 표현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는 99년 대통령임기가 끝나는 만델라는 이미 오래 전 대통령직에 재도전할 의사가 없음을 공식 천명했다. 후계자로는 타보 음베키 부통령(55)을 지명했다. 12월 중 자신의 소속정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직도 그에게 이양할 계획이다. 올해 나이가 79세. 99년이면 81세가 된다는 자신의 고령을 의식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권좌에 앉은 채 생을 마감하겠다는 아프리카의 다른 지도자들과는 분명 다른 유형의 정치가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제사회와 아프리카인들은 만델라 대통령에게 또하나의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바로 「아프리카의 정치적 대부」. 아프리카를 대표할 만한 존경받는 정치가이자 아프리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란 의미가 함축된 표현이다.
그에게 아프리카의 대부란 칭호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냉전이 끝나고 아프리카대륙에서 미국·프랑스·러시아 등 외세의 영향력이 퇴조되면서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아프리카 민족자결기류 속에서 「21세기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를 부르짖고 나선 만델라의 정치적 위상은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아프리카대륙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정치·경제·군사적 변화 속에서 만델라가 보여준 활약상은 그가 아프리카의 대부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지난 94년 남아공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국제외교 무대에 본격 등장한 만델라의 활약상은 △국제무대에서 아프리카의 이익 대변 △아프리카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내전의 중재 △아프리카 국가들간 경제협력 주도라는 크게 3가지 방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만델라는 미국·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은 물론 유엔 등 국제사회의 논리와 입장이 아프리카의 이익과 주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10월 말 그의 북아프리카 순방과 영 연방정상회의 참석은 만델라의 그같은 입장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전달한 사건이었다. 당시 그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영 연방정상회담 참석에 앞서 북아프리카 순방계획을 발표했다. 그의 방문일정에는 이집트·튀니지 그리고 리비아가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리비아였다.  
리비아는 지난 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돼 2백70명의 희생자를 낸 미국 팬암기에 폭탄을 장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2명의 리비아 출신 테러리스트를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유엔에 의해 봉쇄조치를 당하고 있는 나라다. 따라서 만델라가 유엔에 의해 봉쇄조치를 당하고 있는 리비아를 방문한다는 것은 곧 유엔에 대한, 특히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리비아에 대한 봉쇄조치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은 실제로 만델라에 대해 테러국 리비아에 대한 방문계획을 취소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 제임스 폴리 미 국무부대변인은 『리비아를 방문하는 나라의 지도자에 대해서는 미국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라며 외교적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대통령으로부터 리비아 방문을 초대받은 만델라의 입장은 한마디로 단호한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미국이 우리에게 어디로 가고 누구를 만나라고 할 정도로 거만해졌는지 모르겠다』며 미국의 간섭에 쐐기를 박았다. 자신과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남아공 백인정권 하에서 흑인차별에 대항해 싸울 때 ANC를 도왔던 리비아를 미국의 압력 때문에 저버리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리비아에 대한 유엔의 비행금지조치를 피하기 위해 튀니지를 거쳐 육로로 리비아로 들어간 만델라의 행동은 갈수록 미국 등 서방을 당혹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개최된 군중대회에서 유엔을 향해 『우리 아프리카 형제·자매를 고통스럽게 하는 봉쇄조치를 해제할 것』을 당당히 요구했다. 아프리카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맞설 용기가 있음을 분명히 과시했다. 에든버러 영 연방정상회담에서도 리비아에 대한 봉쇄조치를 풀기 위한 만델라의 외교노력은 계속됐다.
그는 세계 각국 언론인들을 모아 놓은 기자회견장에서 로커비사건의 용의자에 대한 재판은 미국이나 영국이 아닌 제3국에서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이 미국 또는 영국에서 열릴 경우 이들 서방국가가 고소인·검사·재판관을 모두 맡게 돼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논리였다.
만델라의 이같은 주장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제3국에서 재판이 진행돼야 하며 그럴 경우에 한해 테러용의자들을 재판정에 내보내겠다는 리비아의 기존 입장을 전면 지지하고 나선 것이었다.
영국정부는 그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만델라의 주장은 희생자 가족들로부터는 즉각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영국과 미국의 희생자 가족들은 사건발생 후 9년이 지나도록 사건진상과 보상을 위한 재판이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영국정부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라며 비판했다. 그들은 만델라의 주장대로 중립지대인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라도 재판이 열려야 한다는 입장을 영국정부에 전달, 미국과 영국정부에 상당한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미국과 영국정부는 지금까지 로커비사건의 피해당사자라는 점에서 리비아정부는 비행기폭파 용의자들을 자신들에 넘겨 미국 또는 영국법정에서 재판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영 연방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리비아를 지원하기 위한 만델라의 외교적 노력은 계속됐다. 그는 귀국길에 다시금 리비아를 방문, 카다피에게 유엔의 봉쇄조치 해제를 위해 남아공과 아프리카국가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재다짐했다. 카다피 개인에게는 과거 ANC에 대해 지원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남아공 최고영예훈장인 「희망훈장」을 수여했다.
서방 강대국들에 맞서 아프리카의 이익을 대변하고 나선 만델라의 용기는 오랜 기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살아온 리비아국민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중동과 아프리카 언론들은 만델라의 중재외교로 장기간 끌어온 로커비 위기가 해결될 수 있는 전환점을 찾았다고 평가했다.
이번 북아프리카 순방을 통해 아프리카인들의 가슴속에 만델라는 아프리카의 이익과 주권을 대변하기 위해 서방 강대국들과 맞설 수 있는 용기있는 정치가라는 분명한 인식을 심어줬다. 만델라의 리비아 방문이 이처럼 국제무대에서 그의 위상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다면 아프리카대륙 내에서 만델라의 영향력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내전의 중재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과거 냉전시대부터 숱한 내전과 국경분쟁으로 시달려 왔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종족 갈등, 독재에 대한 항거, 자원쟁탈전 등 아프리카의 분쟁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거 아프리카인들은 숱한 분규에 시달리면서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주체적 역할을 맡지 못했다. 분쟁 해결은 미국·프랑스·러시아·영국 등 강대국들의 중재에 맡긴다는 식의 방관자로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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