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물연구

남아공의 타보 음베키

africa club 2001. 10. 29. 17:05
타보 음베키는 가 은퇴하면 후계자가 될 인물이다. 만델라는 지난해 12월부터 국정의 대부분을 그에게 넘겼다.
음베키는 42년 6월18일 남아공의 흑인 거주 지역인 트랜스케이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교사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였다. 특히 그의 아버지 고반 음베키는 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두드러지는 활동가였다.
  20세부터 망명 생활…외교 활동 두각
이런 양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음베키는 열네 살 때 민족회의의 청소년 조직에 가입했다. 열일곱 살 때 그는 남아공 수도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학교로 옮겼다. 거기서 음베키는 ‘아프리카 학생회의’ 간부로 뽑혀 활동했다. 음베키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런던 대학의 통신 교육 과정에 들어가 경제학을 공부했다.
60년대 초반부터 음베키는 민족회의의 지하 활동을 시작했고, 스무살이 되던 해인 62년 그의 아버지가 투옥되자 짐바브웨로 망명했다.  그와 함께 활동한 동료들은 대부분 투옥되거나 남아공 백인 정부를 상대로 험난한 지하 활동을 벌여야 했다. 그들에 비한다면 음베키는 민족회의에서 선택받은 인물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영국에 유학해 66년 서섹스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공부를 마친 음베키는 옛 소련으로 가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이 군사 훈련은 민족회의 활동가라면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음베키는 본디 게릴라 전사보다는 우아하고 점잖은 외교관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70년대부터 음베키는 해외에서 민족회의 활동을 펼쳤다. 그는 영국·보츠와나·스와질랜드·나이지리아·잠비아에서 민족회의 대표로 일했다. 80년 이후 민족회의 국제국 책임자로 있으면서 음베키는 인종 분리 반대 운동에 대한 국제적인 지원을 얻는 외교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이 운동에 남아공의 백인까지 끌어들이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음베키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의 아버지 고반은 만델라와 함께 철창 속에 갇혀 있었다. 고반은 투옥된 지 25년 만인 87년에야 석방되었다.
90년 음베키는 28년 간의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그는 백인 정부와 협상해 만델라를 석방시켰고, 91년 말에는 헌법을 제정하는 협상에 민족회의 대표로 참석했다. 94년 선거로 민족회의가 남아공 집권당이 되자 음베키는 부통령이 되었고, 민족회의 부의장에 올랐다. 지난해 12월17일 민족회의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3천명의 만장 일치로 의장에 선출되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확실하게 제목소리를 내는 국가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아프리카 대륙 전체 GDP의 3분의1을 차지한다. 이는 ‘블랙 아프리카’로 불리는 사하라 사막 남쪽 아프리카 국가들의 절반 규모이다.
남아공은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도 크다. 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유엔 비동맹회의 의장국으로 내정되어 있다. 또 현재 아프리카단결기구(OAU) 부의장국이다. 남아공을 방문한 클린턴 대통령에게 만델라가 정치적 훈수를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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