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침략과 저항사

독일통치와 반발 - 마지마지전쟁의 시발

africa club 2001. 11. 21. 15:26
마지마지전쟁의 시발
    독일인들은 19세기동안 자신들의 침략에 저항했던 모든 종족들을 쳐부수었다.  그 부족들은 소수 종족이었고 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독일군의 소총에 대항할 무기도 없었다.  20세기에는 민중들이 자신들이 하고자했던 것을 알고 있었으나 자신들의 불일치와 통치자들의 군사력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며 인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04년 예언자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킨지키틸레(Kinjikitile)였다.  응가람베(Ngarambe)에 있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루피지(Rufiji)강 지류에는 연못이 있었다.  킨지키틸레는 연못속에 살고있던 홍고(Hongo)귀신이 씌었다.
    킨지키틸레는 아프리카인들은 하나이며 떠오르는 이름의 물인 그의 축물은 백인들의 무기보다 더 강력하다고 설파했다.  그의 가르침은 루피지강 부근에 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그의 가르침은 자신들이 은즈위윌라(Njwiywila 혹은 주릴라)라고 칭했던 살그머니 속삭이듯 퍼뜨리는 캠페인을 통하여 마툼비부족민들에게도 전해졌다.  은즈위윌라는 응가람베라는곳에 백인들을 좀더 나약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축술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한사람 한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비밀 연락수단이었다.  또한 조상들은 돌아가신것이 아니라 신의 보호를 받고 계시다는 소문도 추가되었다.  조상들은 응가람베에 간 사람들에게 보여질지도 모른다.
    응가람베로의 순례여행이 1905년초 은즈위윌라의 단계에 따라서 신속히 계속되었다.  응가람베에서는 보케로(Bokero;인간과 귀신의 중간에서 매개해주는 존재)의 직함을 떠맡고 있는 킨지키틸레가 순례자들에게 독일인들의 무기에 대항할 주물을 주고서는 그들을 전쟁터로 보냈다.  그 주물은 기장가루를 물에 섞어 만든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곧 전사가 될 사람들의 이마에 바르거나 뿌려졌다.  때때로 전사는 물만을 마셨다.  독일인들은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식을 조사하기 위해서 사자를 파견하였다.
   그는 보고하기를;
'방문자는 물마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원했다.  그들은 방문자에게 말했다.  우리들이 이 마지(물)주물을 마시면 백인들과 현지인들간의 전쟁이 우리에게 해로움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운 나쁘게도 전쟁이 일어나면 총탄과 검이 우리에게 손상을 입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들의 흥미로운 사진을 좋아했고 그 주물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가  주물을 들이마시자 그들은 작은 갈대조각들을 그의 머리둘레에 묶고는 그가 1센트를 몸에 지니게 하고는 그가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동지애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치장하지 않는자는 죽음을 면치못할 것입니다.'

     실질적 봉기
    처음부터 킨지키틸레 응탈레의 메시지는 유럽인의 지배에 대항한  원조를 약속했다.  사람들이 응가람베로 몰려가자 그 운동의 호전성도 강해졌다.  마침내 1905년  킨지키틸레는 전쟁에 대비하여 사람들을 동원하여 훈련시키기 위하여 주변국가를 통하여 대표자들을 파견했다.  그는 백인들의 무기에 대한 보호를 그들에게 약속했다.  그는 그들에게 지도력, 조직과 단결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순례객들에게 주물을 얻고 돌아가서 독일인들을 위해 일을 게속하고 자신이 투쟁을 개시하라는 적절한 명령을 내릴때까지 기다릴 것을 요구했다.  1905년 9월까지 아무런 명령도 하달되지 않았기에 마툼비족 사람들은 조급하게 되어가지고는 독일인들을 자극할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줌베(Jumbe)의 플랜테이션에서 몇개의 새싹들을 뿌리뽑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결정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줌베는 키바타(Kibata)의 아키다(Akida)에게 그 사건을 보고했다.  아키다가 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심부름꾼들은 무례하게 되돌려 보내지고 추격받았다.  그들이 되돌아 도착하기도 전에 마툼비족 사람들은 1905년 8월 31일 무툼비구릉에서 제1차 교전으로 그들을 몰아넣었다.  마지마지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소식은 킨지키틸레의 메세지를 이미 전해들은 바 있던 루피지계곡 주민들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8월초 키치(Kichi)족, 남부 자라모족영토, 서부 울루구루(Uluguru)족영토와 응긴도영토에 사는 사람들이 그 전쟁에 가담했다.  루피지강 근처에 살고 있던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마툼비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고 자신들의 수많은 불평불만과 종교적 신념들을 공유했었기 때문에 합류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데 자라모족 사람들은 신의 사자인 콜렐로(Kolelo)라는 이름의 귀신에게 복종해야만 된다고 믿었다.  많은 이들이 성령 콜렐로를 킨지키틸레를 씌운 귀신 홍고와 동일시했다.  첫째로 콜렐로와 그를 보낸 신이 자라모족에게 승리를 약속했다.  8월말까지 그 운동은 남쪽으로는 루쿨레디(Lukuledi)계곡으로, 서쪽으로는 마헹게(Mahenge)고원과 킬롬베로(Kilombero)계곡으로 확산되었다.  킬로사(Kilosa)와 다레살람간 철로 남쪽의 전지역이 교전중이었다.  응고니(Ngoni)족도 9월에 전쟁에 합류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군대증강을 명령했고 1905년 11월까지 그 운동에 대한 조직적 진압을 시작했다.  마지마지의 지도자들은 살해되거나 모잠비크로 피신했다.  1906년 말경 무렵과 1907년초까지 그 운동은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