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사용어사전

아프리카에서의 쿠바(Cubans in Africa)

africa club 2001. 11. 19. 21:34
아프리카에서의 쿠바(Cubans in Africa)
아프리카에서의 쿠바는 군사적 혹은 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 초 쿠바는 소말리아와 기네아와 같은 '혁명' 국가들에 대한 약간의 기술들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본격적인 관계는 1975년 독립이 진행되고 있던 앙골라에서였다. MPLA가 독립 정부의 통제권을 얻는 것 처럼 보였으나 1975년 여름 동안 미국, 중국 그리고 남아공이 FNLA와 UNITA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MPLA를 지원했으나 마지못해 하였다. 쿠바의 피텔 카스트로(Fidel Castro)는 MPLA의 지도자인 네또(Agosti Neto)의 군사지원 요구를 받아들였다. 또한 소련도 그들의 전위세력으로 쿠바군을 앙골라에 끌어들였다. 1975년 11월 11일 앙골라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하였으나 내전은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쿠바군이 MPLA의 존재를 지켜주었다.
1977년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간에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쿠바는 그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였는데 1977년 이전에는 소말리아를 원조했으나 이후 에티오피아로 변경하였다. 이는 1974년 에티오피아의 셀라시 황제정권이 무너지고 에티오피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소련이 에티오피아로 정책을 선회한 것이다. 쿠바군은 한때 앙골라에 1만 9천명, 에티오피아에 1만 6천 5백명, 기타 적도기니, 기네아, 기내비소, 모잠비크 등지에 약 1천 7백명의 쿠바인들이 있었다. 쿠바는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소련은 하루에 2백만달러를 원조하였다. 소련은 아프리카에 있는 쿠바인 때문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었다. 비록 쿠바의 개입은 주로 군사분야였지만 9개 국가 이상에 많은 기술 전문가들을 파견하였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앙골라에서의 쿠바군 주둔을 우려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남아공이 반 MPLA 세력인 FNLA와 UNITA를 지원하기 위해 동부 앙골라로 군대를 파견한 것을 알았을 때 보다 더 쿠바군에 대해 관대했다. 그들은 쿠바군이 에티오피아에 파견되었을 때 보다 관대하였다. 비록 OAU가 외부의 개입으로써 모든 비 아프리카 세력들과 군사기지 제공을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쿠바군을 마음 내키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첫째, 쿠바군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인정한 정부 자격으로써 초대되었고, 둘째, 적어도 앙골라의 경우 쿠바군은 OAU에 의해 인정된 정부, 즉 MPLA를 지원했으며 그리고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대항하여 싸웠다는 점이 그 이유다. 또한 쿠바는 개발도상국이며 쿠바군의 인종도 그들과 같은 흑인이었기 때문에 쿠바는 강대국의 꼭두각시 보다 동지 같았다. 더구나 쿠바는 아프리카에 영구적인 군사기지를 설립한다 든지 혹은 경제적인 혜택을 노린다 든지 등의 이해관계가 없었다. 그들의 보상은 엄격히 이데올로기 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