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사용어사전

소련의 대 아프리카 정책(Soviet Union Policy in Africa)

africa club 2001. 11. 19. 21:33
소련의 대 아프리카 정책(Soviet Union Policy in Africa)
소련은 아프리카에 대해 초기에는 사회주의 노선에 의한 경제개발이야 말로 아프리카 국가건설의 장기적 목표라고 주장하고 그 단기적 목표로서 아프리카 국가통합에의 해결책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외교정책을 수행해 왔다. 70년대에 들어와서 보다 실질적으로 국가이익에 기반을 둔 팽창주의 전제하에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소련은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와 전혀 무관하였다. 소련 자체의 격렬한 혁명과 레닌-스탈린으로 이어진 맑스주의 혁명은 1950년대와 60년대 때 독립운동의 폭발에 아무런 역할을 수행치 못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자세는 관심만 거의 가지지 않았다 1960년대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시 루뭄바(Patrice Lumumba) 측에게, 나이지리아의 비아프라(Biafra) 내전시에는 나이지리아 연방측을 지원하였다. 또한 이집트의 낫세르(Abdul Nasser)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1960년대 초에는 기네아와 가나에 약간의 고문단을 파견하였다. 또한 70년대 초에는 소말리아와 관계를 설립하였는데 소말리아는 인도양에 있는 해군, 공군 기지를 소련에 제공하였다.
초기 소련의 팽창정책은 이집트에 있는 거대한 아스완 댐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저자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와 관련된 정책으로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소련은 아프리카에서 서구영향과 반대되는 정책을 시도했으며 또한 중국의 영향을 견제하려고 하였다. 70년대에 있은 두 곳의 투쟁( 혼 지역과 포르투갈에 대항한 해방투쟁)은 보다 적극적인 정책과 보다 깊은 연루를 시켰다. 1975년에 소련은 앙골라에서 MPLA를 지원하였으며 쿠바군대의 파견과 군 사고문단을 파견하였다. 1978년에 소련은 소말리아로 부퍼 에티오피아로 그들의 정책지원을 변경하였는데 이곳에도 군사고문 단의 파견과 쿠바군의 사용을 제공하였다. 80년대 중반까지 적어도 7개 국가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했으며 또한 적어도 20여개국에 경제 기술요원들을 파견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는 종종 소련의 개입으로 곤경에 처해지는 나라들이 있었다. OAU의 기본원칙은 '국내문제들에 있어 불갈섭'이며 일상정책으로 '아프리카 문제는 아프리카가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1970년대 말경에는 약 3만 6천여명의 군사를 파견하였다. 그같은 군사적 지원은 주로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에 이루어 졌다. (1) 소련의 개입은 항상 아프리카 일부 정부가 초대하는 형식이며 (2) 관련된 아프리카 정부들은 그들 분쟁에 OAU의 지지를 받고있으며 (3) 소련은 항상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와 관련된 문제들에서 아프리카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반면, 많은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외국군대는 곧 아프리카에서 떠날 것이라고 보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앙골라에 대한 소련개입에 지지하는 것은 반MPLA 세력들에게 서구국가와 남아공이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에티오피아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맑스주의를 주창하는 수많은 국가들의 출현은 소련에 대한 잠재적인 동지애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1990년 초 소련의 몰락으로 아프리카대륙에서는 이념보다는 실리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으로 그들의 정책 노선을 변경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보다는 자본주의 체제하에 피폐된 국가경제를 살려서 정책안정을 꾀하려 하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의 민주주의 도미노 현상도 이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