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사용어사전

아프리카 정당(Political Parties)

africa club 2001. 10. 29. 16:50
◎ 아프리카 정당(Political Parties)

아프리카의 정당은 아프리카의 독립 달성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정당에 있어 몇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첫째, 일당제의 추세였다.  1958년 불령 아프리카 각 지역들은 불령 공동체(French Community) 내에서 자치 공화국이 되었고,(제5공화국의 국민투표에서 반대표(No)를 던진 기니는 예외) 2년후에 각 공화국은 불란서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협정서 하에서 각각 독립을 달성하였다. (아프리카의) 신생국가들은 프랑스의 중앙집권적인(centralising)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일당제를 채택하게 되었다. 전독립기의 선거에서 보여 준바 있던 높은 지지에 비춰 대부분의 불령 아프리카내의 여당들은 국민들의 자발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일당제 국가들에서 정치지도자들은 일당제 성립에 다양한 이유를 제시했다. 즉 한편으로는 분파주의의 제거와 민족적 단결을 이루기 위해서 일당제가 필요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당제가 아프리카 사회의 기본적인 합의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독립 이후 시기에 대부분의 정당들은 독립전에 보다 강력한 이념적 기반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는 정당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방향과 목적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당들이 사회주의를 주창하지만 혁명적 정당보다는 개혁적, 진보적 정당의 형태를 취하였다.
1960년대 아프리카 정당지도자들의 이념적 토대는 취약했을 뿐만이 아니라 체계적치지도 못했다. 그 결과 명확한 행동지침(blueprints for action)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1970년대 들어오면서 일련의 정당 지도자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적인 관점에 설 수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앙골라의 MPLA, 기니 비사우의 PAIGC, 모잠비크의 FRELIMO 등이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로즈버그(Rosberg)와 칼라기(Callaghy)는 사회주의 정권의 '제2의 물결', a second wave'라고 기술하고 있다)
셋째, 단일여당으로 권력집중과 권력의 개인화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을 거치면서 정당의 지도자가 독립국가의 대통령이 되었다. 비록 정책 결정과정은 다소 복잡하게 진행됐지만 주요한 정책결정은 대통령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 결과 대통령의 구성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에 정당도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되었다.
넷째, 이익집단의 역할이 제한받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신생국가들이 독립전에 존재하고 있던 노동조합 등과 같은 자치기구를 제한했던 점은 여러가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즉, 노동자의 고용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국가의 위치를 유지, 파업 등으로 인한 물가인상을 억제, 도농(都農)간의 격차 해소. 조직적인 기구들의 정부에 대한 저항 차단 등이다.
노동통제 방법으로는 노조의 지도자들에게 정부각료나 대사직을 임명하는 회유책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구금, 추방, 합법화된 노조의 특권을 철폐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또한 아프리카 신생국가들은 노동통제를 위해 친정부적인 노조를 만들어 기존노조에 대립, 분열을 초래하였고 파업금지 안(anti-strike laws)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일당제의 도입과 대통령제의 출현에 따른 정당의 국가에로의 복속이다.
신생정부의 당면과제가 경제건설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대한 더욱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면을 규제를 필요로 하였고 이러한 인적 자원을 정당요원들보다는 정부관료나 기술자들로 충당하였다. 독립 초에 아프리카의 정당들은 상당수의 핵심인물들이 국가기구에 들어가면서 인물난에 직면하게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