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사용어사전

아프리카 해방운동 위원회(African Liberation Commitee : ALC)

africa club 2001. 11. 6. 15:55
◎ 아프리카 해방운동 위원회(African Liberation Commitee : ALC)

이 위원회는 1963년 OAU가 해방운동을 재정적, 군사적으로 원조하기 위해 창설된 기구이다. 그 본부는 사무총장이 있는 다르살렘(Dar es Salaam)에 설립되었다. 초기 이 위원회의 회원국은 알제리, 이집트, 에티오피아, 기네아, 나이지리아, 세네갈, 탄자니아, 우간다 그리고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였다.
OAU는 5월 25일을 아프리카 해방의 날로 지정하였다 또한 회원국들은 '모든 분야'에서 해방운동 단체들에 대한 훈련을 제공하기 위해 해방운동에 민족주의자들을 수용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다(OAU 결의 1조 14항,
1963). 1963년은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해 왔던 게릴라운동의 장기투쟁에서 승리했던 해이다.
반면, 1970년대 초기까지 포르투갈은 앙골라, 모잠비크 그리고 기네비소에 대한 영원한 지배를 재강조하였다. 남아공은 나미비아의 즉각적인 독립을 약속하지 않았다. 반면, 말라위와 잠비아의 독립은 임박하였으나 짐바브웨의 독립은 소원한 듯 했다. 이들 지역의 12개의 도서 국가들은 독립 계획이 거의 없는 식민통치 아래에 놓였었다. 따라서 해방위원회의 설립은 OAU 회원국들이 아프리카대륙에서 비타협적 식민주의의 마지막 표적들을 없애기 위해 무력사용을 위임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1963년 아프리카 국가들은 무력사용 지지에 동의하는 수단들이 없었다. 가나의 은쿠르마와 케냐의 탐 음보야(Tom Mboya)와 같은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은 간디의 비폭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1963년까지 인도는 무력으로 고아(Goa)를 점령하였고 알제리도 무력투쟁을 통해 프랑스를 몰아냈다. 이러한 승리는 포르투갈과 남아공이 무장세력을 통해 식민지 억압을 강화하려는 데 영향을 끼쳤다.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은 1963년 탄자니아 남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975년 승리할 때까지 계속 투쟁했다. 앙골라의 세 반군단체들은 독립을 위해 조직되었다. 앙골라 인민해방 운동(MPLA), 앙골라 민족해방전선(FNLA) 그리고 앙골라 전 독립 민족연합(UNITA)이 그것이다. 1964년 ALC는 FNLA 지도자인 로베르또(Holden Roberto)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고 1974년 네또(Agostinho Neto)가 지도하고 있던 MPLA를 지원하는 것으로 선회하였는데 이는 남아공이 FNLA를 지원하였기 때문이다. 최근 ALC는 나미비아의 독립을 지원하였고 ANC와 PAC를 지원하기도 했다. 해방위원회는 서부사하라에서 모로코에 대항하는 폴리사리오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던 에리트리아는 지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