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아프리카 역사 100장면

25. 독일의 아프리카 지배

africa club 2011. 1. 20. 11:30

1. 독일의 아프리카 지배

 1895년에 아프리카에 영향을 주었던 독일의 식민지배는 4군데의 주요 지역에 집중되었다: 토고랜드(Togoland), 카메룬, 독일령 동 아프리카(German East Africa), 그리고 독일령 남서 아프리카(German South West Africa).

 
1.1.1. 1. 독일령 카메룬(German Cameroons)

노예무역을 근절시키고자 노력했던 영국 선교사들은 19세기 초반에 현재의 서부 카메룬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858년에 영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최초의 영구적인 정착지인 빅토리아(Victoria)를 이 지역에 건설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분할(scramble for Africa)”시기에 영국이 아닌 독일이 이 지방에 대한 통치권을 갖게 되었다. 독일은 1884년 7월 12일에 이 지역에 대한 보호령을 선포했고 내륙지역으로 통치지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때 얻게 된 새로운 영토를 카메룬(Kamerun), 혹은 독일령 카메룬(German Cameroons)이라 불렸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그 영토는 영국과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두개의 나라로 분리되었다.


1.1.2. 2. 독일의 동부아프리카(German East Africa)

1890년대와 제 1차 세계대전 사이에 현재 르완다(Rwanda)와 부룬디(Burundi), 탄자니아(Tanzania)의 대륙지방과 모잠비크의 일부분이 독일의 동부아프리카에 포함되었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르안다(Ruanda)와 우룬디(Urundi)를 형성하고 있었고 탄자니아는 탕가니카(Tanganika)로 알려져 있었다. 1891년에 독일 정부는 상업적인 독일 동아프리카 회사(German East Africa Company)로부터 그 지방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식민지는 1907년까지 독일의 완전한 지배를 받고 있지 못했다. 전쟁기간 동안에 독일령 동부 아프리카는 영국이 점령하게 되었다. 베르사유 협정(Versailles Treaty ; 1919년)은 벨기에로 넘어간 르완다-우룬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독일 식민지를 영국의 통치아래 두게 했다.

독일령 동부 아프리카에서 독일의 통치를 안정화하기 위해 취해진 경제변화는 1905년 독일의 통치에 반대하는 마지 마지 반란(Maji Maji rebellion)으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탄자니아 부족들의 단결을 초래했다. 마지 마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독일군은 반란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였고 교수형을 집행하여 아프리카인들을 살해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령 동부 아프리카에서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아스카리(Askari)라는 군인들로 차출되어 식민지 군대에 끌려가 싸웠다.

 
1.1.3. 3. 독일령 남서 아프리카(German Southwest Africa)

1884년에 독일은 남서 아프리카(Southwest Africa ; 오늘날의 나미비아(Namibia))를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남서 아프리카에서의 독일 통치는 아프리카 전체에서 가장 잔혹한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 후 몇 십 년간 반란은 아주 철저하게 진압되어서 헤레로(Herero)족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고 집단 수용소가 세워졌는데 식민지 정착 자들은 아프리카인 노동자들을 매우 잔혹하게 다루었다. 서기 1915년에 남아프리카(South Africa)가 남서 아프리카를 점령하여 1990년까지 그 곳에 불법적으로 통치했다.

핸드릭 비트부이(Hendrik Witbooi)는 헤레로족에 저항하여 독일에 협력하였던 그는 그 후 독일 통치에 저항하여 나마(Nama)족을 이끌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투쟁 끝에 그는 1905년에 전사했다.

1904년의 반란 후에 독일 당국은 헤레로(Herero)족의 대부분을 학살했다. 4분의 3 이상이 대학살의 결과로 사망했는데 학살당하거나 굶주려 죽었다.

독일령 남서 아프리카의 아프리카인 포로들은 목에 사슬로 묶여진 상태로 농장으로 끌려갔다.

 
1.1.4. 4. 토고(Togo) 공화국

역사가들은 현재 토고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조상이 북쪽으로부터의 침략자 아니면 아산테(Asante)와 다호메이(Dahomey) 사이에 일어난 전쟁의 피난민으로 믿고 있다.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찾고 있던 포루투갈 선원들은 15세기 후반에 이 지역에 도착했다. 노예무역이 시작되자마자 남쪽 토고는 노예해안(Slave Coast)으로 불리었다. 노예해안은 남서쪽 나이지리아(Nigeria)부터 현재 가나의 볼타(Valta)강 입구 주변까지 뻗어 있었다.

19세기 중반부터 독일 무역가와 선교사들이 토고에 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1884년 독일은 해안지역에 보호령을 만들었고, 1899년 그들은 독일령 토고랜드(German Togoland)라 불리는 식민지를 설립하였다. 세계 1차 대전 동안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령 토고랜드를 점령하였고, 1922년 국제연맹은 서쪽 1/3지역은 영국이 다스리고 동쪽 2/3는 프랑스가 다스리게 하였다. 1946년 UN은 영국과 프랑스령 토고랜드에 신탁통치를 하였다.

1956년 영국령 토고랜드 사람들은 황금해안(Gold Coast)으로 포함되는 것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였고, 1957년 황금해안지역이 가나로 독립하였을 때 합병되어졌다. 하지만 1956년 프랑스령 토고랜드는 프랑스연합(French Union) 내에서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프랑스는 토고의 진보당(Progressive Party)의 당수인 니콜라스 그루니츠키(Nicolas Grunitzky)를 수상으로 임명하였고 그는 토고가 프랑스 연합 내에 남기를 원했다. 하지만 1958년 토고의 통일당(Unity Party)의 수장, 실바누스 올림피오(Sylvanus Olympio)가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올림피오는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였고 1960년 4월 27일에 독립을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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