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 육십만년 전 호모 해빌리스는 현대인과 더욱 가까운 종인 호모 에렉투스로 갔다 .이 새로운 사람은 신체와 뇌의 크기가 그들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고 간주됨에 따라 다른 발걸음을 상징하였다. 그들은 불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았다. 그들의 돌도구는 균형적이었고 부드럽게 물체가 마무리 되었으며 첫눈에 호모 해빌리스의 조약돌 조각과 구별되었다. 그리고 도구제작 장소에 남아있는 얇은 돌조각으로부터 우리는 그들의 90%가 오른손잡이였음을 추론할 수 있었다. 이런 차별적인 손의 사용은 뇌의 좌우 기능분화의 표시였고 이것은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러므로 호모 에렉투스는 언어능력의 놀라운 발전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호모 해빌리스가 간단하게 고기를 찾아 헤매는 것, 보다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활동인 그룹사냥을 그가 조직할 수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호모 에렉투스는 원시인류시대에 영장류의 경쟁자인 호모 해빌리스를 처리하는데 그의 우월한 능력이 사용되었다고 보여진다. 아마도 그는 간단하게 그들을 살아갈 수 없는 동아프리카의 지대로 몰아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들의 처리를 곧바로 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이 지도의 연대에 의하면, 호모 에렉투스는 존재하는 유일한 인류였다. 호모 에렉투스는 또한 그 이전의 어떤 인류 보다도 더 지대한 공헌을 하는 어떤 활동을 했다. 그의 발자취는 북아프리카에서처럼 유럽(Heidelberg 근처)으로부터 중국(Peking 근처), 인도네시아(Java) 등에 걸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발견지역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카사블랑카(Casablanca)와 테르니핀(Ternifine), 오란 근처, 라밧(Rabat)과 세일 에서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보존된 연대의 지역은 이 지도 연대보다 더 이른 것은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예를 들어 Georgio에 있는 Dimanisi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호모 에렉투스는 그의 활동이 일찍 나타나기 시작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부터 북아프리카와 유라시아까지 그가 돌파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길을 간주해 볼 때- 나일 협곡을 미리 계산하고- 우리에게 직접적인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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