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font color=blue>[ 주술사 / 전통의 ] - 우사

africa club 2003. 9. 25. 20:11
3. 우사(rainmaker/rain doctor)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비가 온다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곡물이 버리거나 홍수가 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누구나 즐거워한다.

따라서 계절은 공동체의 삶의 리듬을 결정하게 된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가 계절이 바뀔 때 제의적 행사를 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한 제의적 행사는 여러 경우에 벌어진다. 우기가 시작될 때, 파종을 할 때, 첫 열매를 거둘 때, 추수를 할 때, 수렵이 시작 될 때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러한 공동체적인 제의나 행사는 공동체 의식과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일이나 정신적인 일에 관하여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적 기회가 되기도 한다. 기우제는 그러한 공동체적 제의의 하나이며, 따라서 우사는 거의 모든 아프리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하나가 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일반인들이나 우사들이나 간에 모두 비를 "만들"거나 "내리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비록 자기들의 지위나 활동을 돋보이게 하고 강조하기 위하여 우사들이 어떤 활동을 한다할지라도 그들의 근본적인 역할은 중개자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우사의 지위는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아프리카의 메마른 지역일수록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뚜렷하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때문에 정상적으로 우기가 임하고 비가 내리면 대부분의 사회는 우사의 존재를 거의 망각하고 만다. 그러나 우사가 바보가 이나고 지적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들은 공동체의 지도적인 위치를 자연히 점하게 되고, 그들은 한 가지 일만이 아니고 여러 일의 "전문의"로 행세한다.

우사가 실제로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성스러운 물건을 사용하는데, 특히 (1)"우석"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대단히 귀한 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돌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우사들이 사용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2)"우엽"이나 잘 타는 것들을 태우기도 한다. 그 연기가 하늘에 올라가 비를 잡아내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여러 방법으로 물을 사용하여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기우제를 지낼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3)하나의 의식으로 물을 끼얹기도 하고 그 장소에 물을 붓기도 하며, 특별한 혹은 거룩한 샘에서 물을 길어 올리기도 하고 땀을 흘려 그것을 모아 공중에 뿌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경우에 물은 비를 상징한다.

비를 오게 하는 기술(혹은 비를 그치게 하는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후나 기상에 대하여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러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실제로 많은 기간을 보낸 사람들이다. 이러한 지식은 다른 우사를 통하여 얻기도 하고 하늘을 관찰하여 얻기도 하며, 나무나 곤충이나 동물들의 민감한 반응을 연구하여 터득하기도 하고 천문을 연구하고 상식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획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비가 오지 않는 건조기가 절정인 때 비가 내리도록 하겠다고 나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언제나 하늘을 바라본다. 단순히 기상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서 만은 아니다.

그들은 비를 만들고 또 내려주는 신에게 실제로 기도를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자세를 지속하지 못하면 결국 비를 오게 한다던가 그치게 하는 일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가 오는 것을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거룩한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미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비와 신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비를 호칭하는 단어와 신을 호칭하는 단어가 동일어인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사람들은 "신이 떨어져내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회에서는 신이라는 단어가 "비를 주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비를 인격화한다거나 그것을 신에 의하여 통어되는 것(신에게 종속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몇몇 사회에서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의 며칠 동안을 휴일로 지키기도 한다. 또 많은 사회가 새로운 계절을 충분한 비를 내려준 데 대한 감사나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기원의 의식으로 맞는다. 사람들은 비를 신의 선하심과 도와주심의 가장 분명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대를 이어주는 영원하고 신비로운 연계라고 믿고 있다. 비는 가장 구체적이고 끊임없는 자연의 리듬 중의 하나이다. 비는 과거에도 왔고 지금도 오고 있고, 미래에도 분명히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이 약동하는 생명의 리듬이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고 알고 있다. 또 비는 위에서 내리기 때문에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비는 그것 자체로 깊은 종교적 리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를 "다루는"사람은 지고한 종교적인 업무를 취급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비는 영원 그것 자체가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우사는 실제로 비를 오게 하는 일만이 아니라 인간이 시간 및 영원히 내리는 축복과 만나는 것을 상징화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1840년대 스코틀랜드의 의료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 말라위의 '바퀘인(Bakwain)'족 우사와 나눈 다음의 유명한 대화는 각자의 접근방식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인들의 사고 체계의 특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하며, 그의 아프리카인 동료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의  사: 이보게, 친구! 오늘 아침에는 약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 왜 자네는 이 나라에 있는 온갖 약을 다 갖고 있지 않나?

주술사: 그렇다네, 친구. 나는 그래야 한다네. 온 나라가 내가 만들고 있는 비를 필요로 하거든.

의  사: 그럼 자네는 정말 자네가 구름을 부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건가? 난 그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술사: 나도 자네와 같은 생각이라네. 비를 만드는 것은 신이지. 하지만 내가 이 약들을 가지고 신께 기도를 해서 비가 내리니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지. 바퀘인족이 쇼쿠아네(Shokuane)에 있을 때도 여러 해 동안 나는 그렇게 했다네. 또한 내 지혜를 통해서 여자들은 살이 찌고 빛이 나게 된다네. 그 사람들에게 물어 보게나. 내가 말한 그대로 말할 테니.

의  사: 하지만 우리는 분명 신께 기도를 할 때 약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할 때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하는데.

주술사: 정말인가! 하지만 신께선 우리에게 다르게 말씀하셨네. 신께선 흑인을 먼저 창조하셨는데, 백인들과 우리를 똑같이 사랑하지 않으셨네. 그래서 백인들은 아름답게 만드시고, 옷과 총과 화약과 말, 마차,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다른 여러 가지를 주셨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으셨지.

신은 우리에게는 투창과 양과 비를 만드는 힘만 주고, 자네들과 같은 마음을 주지 않았지. 우리는 절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네. 다른 종족들이 우리 영토 부근에 약을 놓고 비가 못 오게 하면, 우리는 굶주림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고, 그들에게 가서 그들의 힘을 늘리기도 한다네. 우리는 우리의 약으로 그들의 주문을 풀어야만 해. 신께서 자네가 모르는 한 가지 작은 것을 우리에게 준 것이지. 그는 우리에게 비를 만들 수 있는 특정한 약들에 대한 지식을 주었네. 우리는 자네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것들을 모르지만 얕보지는 않는다네. 우리는 자네들의 책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역시 경시하지 않는다네. 그러니 자네도 자네가 모른다 하여 우리의 이 작은 지식을 경시해서는 안 되네.

의  사: 나도 내가 모르는 것을 얕보지는 않는다네. 난 다만 자네가 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오해한 것 같아.

주술사: 사람들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주제에 대해 그렇게 말하곤 하지. 우리는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비를 만드는 것을 알았고, 그 분들의 뒤를 따르고 있네. 쿠루만 (Kuruman)에서 물을 끌어다 밭의 곡식을 키우는 자네는 비가 오지 않아도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해나갈 수 없네. 우리는 비가 오지 않으면 가축들에게 풀을 먹일 수 없을 것이고 소들에게서 우유를 얻지도 못해서 아이들이 말라 죽게 되겠지. 우리의 아내들은 비를 만들어서 곡식을 키우는 다른 부족들에게로 도망갈 것이고, 전체 부족이 결국 흩어져서 사라지네.

의  사: 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나도 자네에게 동의하지만, 약으로 구름을 불러올 수는 없는 것이야. 자네는 구름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네의 약들을 이용하고는 신에게만 주어지는 그 명예를 갖는 것이 아닌가.

주술사: 나는 내 약을 사용하고 자네는 자네 것을 사용하네. 우리는 둘 다 의사이며, 의사는 사기꾼이 아니야. 자네는 환자에게 약을 주지. 때로 신께서 기꺼이 자네의 약을 이용해서 환자를 치료해 주시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하지. 그러면 환자는 죽는 거야. 환자가 치료되면 자네는 신이 하신 일이 대한 명예를 취하지 않는가. 나도 그럴 뿐이야. 때로 신은 우리에게 비를 허용하시고, 때로는 그렇지 않네. 신이 비를 허용할 때는 우리가 그 마술에 대한 칭찬을 받는 거야. 한 환자가 죽었다고 해서 자네는 자네 약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는 않겠지. 마찬가지로 나도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내 약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네. 자네가 내 약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어째서 자네의 약은 계속 사용하려는 것이지?

의  사: 나는 내 능력이 닿는 한도에서 생명체에게 약을 주고, 비록 치료가 되지 않더라도 약의 효과를 볼 수 있어. 자네는 자네의 약이 절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구름들을 불러 모으는 체 하지. 구름은 대체로 한 방향으로 펼쳐져 있고 자네의 연기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네. 신만이 구름을 움직일 수 있지. 그저 애써 보고 기다릴 뿐이야. 자네의 약이 아니어도 신께선 우리에게 비를 내려주실 테니까.

주술사: 마할라-마-카파-아-아!(Mahala-ma-kapa-a-a!) 글쎄, 나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항상 백인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해 왔지. 도대체 어떤 사람이 굶주려 죽기를 애써본다는 생각을 해보겠는가? 그렇다면 기꺼이 죽겠다는 말인가?

의  사: 그렇다면 자네는 한 곳에서는 비가 오고 다른 곳에서는 안 오게 할 수 있나?

주술사: 그런 것은 해볼 생각도 않겠네. 나는 우리 나라 전체가 푸르게 되어 모든 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바라네. 여자들이 손뼉을 치면서 감사의 선물을 내게 주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싶다네.

의  사: 자네는 그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도 기만하고 있는 것 같군.

주술사: 그렇다면 여기 그런 사람이 둘이겠군(둘 다 사기꾼이라는 의미).

(M. 글루크만(Gluckman)의 <책임 배분 The Allocation of Responsibility> 서문에서 발췌, p. 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