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무역로와 스와힐리 문명

2018. 4. 6. 09:56


인도양에 접한 동부 아프리카 해안은 계절풍을 이용한 무역을 통해 아라비아, 인도, 그리고 멀리 중국과 왕래했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내륙지방과의 무역은 일찍 시작되었고 인도양은 남부 아프리카에서 채굴된 금, 구리, 철 등의 주요 목적지였다. 특히 14-15세기에 스와힐리 해안과 짐바브웨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는 이러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스와힐리 무역망은 해안가와 내륙지방을 따라 확대되어 갔으며 내륙지방과의 장거리 무역은 18-19세기에 급격히 확대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 일부 학자들은 스와힐리 문명이 서구 학자들에 의해 정체성을 분명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스와힐리 문명을 인도양의 대양문명(大洋文明)으로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스와힐리어 문명은 인도양 무역로를 중심으로 성장한 동아프리카 해안의 도시국가였다. 스와힐리인들은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서 온 이슬람 선원들과 교류하였고, 다우(dhow)선으로 알려진 배를 이용하여 인도양 무역에 참여하였다. 서기 1천년 무렵에는 아프리카의 스와힐리 도시국가들은 모가디슈(Mogadishu : 현재의 소말리아)부터 소팔라(Sofala : 현재의 모잠비크)에 이르기까지 약 120여개가 있었으며 국제해상무역에 깊이 관여했다. 13세기 무렵에는 킬와(Kilwa)를 중심으로 스와힐리 상인들이 해안을 따라 내려가서 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짐바브웨 지역의 고대왕국과 황금무역을 하였다


탄자니아 남부에 위치한 킬와는 쇼나(Shona)족이 지배한 짐바브웨의 금광을 기반으로 중국, 인도 그리고 다른 이슬람 세계와 광범위하게 무역을 했다. 이러한 도시국가를 기반으로 한 해상무역 사회는 아랍과 페르시아의 이민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의 문화를 모두 근본으로 삼은 독특한 스와힐리 문화를 발달시켰다. 많은 이슬람 도시를 여행한 이븐 바투타는 킬와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이고, 건물들이 매우 고상하며, 그 곳에 사는 주민들 역시 고결하고 덕망 있는 이슬람 교도라고 서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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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동부 아프리카의 주요 종족

2011. 1. 20. 11:36


1. 동부 아프리카의 주요 종족

팔라샤(Falasha)족 : 팔라샤인들은 비록 많은 수가 최근 이스라엘로 이주했지만 북부 에티오피아의 고지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팔라샤인들은 에티오피아에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티그리냐(Tigrinya)어나 암하라(Amharic)어를 말하며 더 최근엔 히브리(Hebrew)어를 말한다. 팔라샤인들은 유대인이지만 최근 수백 년 동안만 세계 유대사회에 접촉을 했을 뿐이다.

암하라(Amhara)족 : 암하라인들은 대부분 북부 에티오피아의 고지에 산다. 비록 암하라인들은 에티오피아 인구의 3분의 1정도 밖에 안 되지만, 그들은 에디오피아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배민족으로 역할을 해왔다. 암하라어는 암하라족의 언어이다. 암하라인의 대부분은 기독교도들이며 수세기동안 기독교는 암하라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아파르(Afar)족 : 아파르인(또는 다나킬(Danakil))들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그리고 지부티의 사막지역에서 산다. 아파르인의 대부분은 유목민족이다. 역사적으로 아파르인들은 다양한 술탄의 지위를 형성했지만 지금은 거의 반자치적이다. 아파르인들은 무슬림이고, 또한 아파르라 불리우는 언어를 쓴다.

오로모(Oromo)족 : 오로모인(또는 갈라(Galla))들은 동남부 에티오피아와 북부 케냐에서 산다. 과거에는 그들은 많은 무슬림 왕국들을 건설하기도 했다. 오로모어는 또한 오로모라고도 불리운다. 대부분의 오로모인들은 이슬람교나 기독교를 따르고 소수는 여전히 오로모 종교를 믿는다.

소말리(Somalis)족 : 소말리족 대부분은 소말리아에 산다. 일부는 에티오피아와 북부 케냐에서 소수 종족으로 살고 있으며 아주 적은 수가 지부티에 산다. 소말리인들은 씨족에 의해 구성되는 독특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또한 소말리(Somali)라고도 불리는 언어를 쓴다. 대부분의 소말리족들은 무슬림이다.

카라모종(Karamojong)족 : 카라모종인들은 북동부 우간다에 산다. 그들은 소를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는 반유목, 목축인들이다. 다른 카라모종인들은 카라모종어의 다양한 방언들을 쓴다. 아주 적은 수가 기독교나 이슬람교로 개종하였고 대부분이 전통종교를 믿고 있다.

뇨로(Nyoro)족 : 뇨로인(또는 바뇨로(Banyoro))들은 우간다의 북서부 호수지역에서 산다. 그들은 이전에 부뇨로-키타라 제국(Bunyoro-Kitara Empire), 후에 부뇨로 왕국(Bunyoro Kingdom)을 형성했고 지금은 우간다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뇨로인들은 또한 뇨로라고 불리우는 언어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뇨로인들은 기독교도들이거나 무슬림이지만 뇨로의 전통종교도 여전히 믿고 있다.

간다(Ganda)족 : 간다인(또는 바간다(Baganda))들은 대부분 우간다의 북서부 호수지역에 산다. 그들은 부간다 왕국을 건설했을 때 중앙집권화된 군주국을 형성했고 지금은 우간다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간다어는 또한 간다라고도 불린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많은 간다인들이 기독교도나 무슬림이 되었지만, 간다의 전통종교도 여전히 폭넓게 믿어진다.

키쿠유(Kikuyu)족 : 키쿠유(또는 기쿠유(Gikuyu))인들은 케냐의 최대 인종 집단이다. 키쿠유인들은 식민지시대에 종종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는데 선두에 섰다. 키쿠유어는 또한 키쿠유라고도 불린다. 많은 키쿠유인들은 기독교도이고 그들만의 독립적인 교회를 세웠다. 적은 숫자가 키쿠유의 전통 종교를 따르고 있다.

동아프리카계 아시아인(East African Asians) : 거의 인도에서 온 많은 아시아인들은 식민지시대부터 동 아프리카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케냐, 탄자니아 그리고 우간다에서 작지만 영향력 있는 소수인종집단을 형성했다. 동 아프리카계 아시아인들은 여러 인도의 언어, 특히 구자라티(Gujarati)어나 펀자브어(Punjabi)를 사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와힐리어 같은 아프리카 언어나 영어도 사용한다. 대부분의 동아프리카 아시아인들은 비록 소수는 조로아스터교(Zoroaster)를 따르지만 힌두교도거나 무슬림이다.

마사이(Maasai)족 : 마사이인들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 지역에 살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소를 키우는 목축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정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일부는 농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마사이인들은 마아(Maa)라고 불리는 언어를 쓴다. 마사이인들은 이슬람교나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고 대부분은 그들 자신의 종교를 따른다.

후투(Hutu)와 투치(Tutsi)족 : 후투인들과 투치인들은 르완다와 부룬디의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의 문화와 역사는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혼합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투치인들은 후투인들을 지배하였지만 최근에는 힘의 균형의 깨는 많은 폭력과 전쟁이 발발하였다. 두 종족 모두 부룬디에서는 룬디(Rundi), 르완다에서는 르완다(Rwanda)라 불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후투인들과 투치인들의 대부분은 기독교도들이나, 토착 종교는 여전히 많은 신자들을 가지고 있다.

니암웨지(Nyamwezi)족 : 니암웨지인들은 중서부 탄자니아에 산다. 그들은 니암웨지어의 방언들을 말한다. 과거에 니암웨지인들은 동부 그리고 중앙 아프리카에서 장거리 무역의 선구자였다. 적은 수의 니암웨지인들이 무슬림이나 기독교도들이고 대부분은 니암웨지의 전통 종교를 따른다.

스와힐리(Swahili)족 : 스와힐리인들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해안을 따라서 그리고 펨바와 잔지바르 같은 해안의 섬들에서 살고 있다. 스와힐리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과 아랍인, 그리고 페르시아인들의 혼혈로 생겨난 인종이다. 스와힐리인들은 인도양 무역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 결과로 스와힐리어는 동 아프라카 각지에서 공용어나 무역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스와힐리인들은 무슬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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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동부 아프리카의 역사

2011. 1. 20. 11:34

1. 동부 아프리카의 역사

 
19세기에 무역을 장려하라는 목적으로 선물로 주어진 니암웨지(Nyamwezi) 조각은 니암웨지인들이 동부와 중부 아프리카 무역의 선구자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대 에티오피아어인 게즈(Geez)어는 과거에 기도서(성경)로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1896년 아도와 전투(Battle of Adowa)에서 에디오피아가 이탈리아를 패배시킴으로서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르완다와 부룬디의 후투(Hutu)와 투치(Tutsi) 사이의 인종 갈등은 동부아프리카의 최대 문제였다.

많은 왕국들이 빅토리아 호수(Lake Victoria)와 알버트 호수(Lake Albert) 사이에서 번성하였다. 이중 가장 중요한 왕국 중 하나는 부뇨로(Bunyoro) 왕국으로 16세기에 건설되었다. 부뇨로 왕은 비록 그의 역할이 거의 의식적이긴 해도, 현대 우간다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상징이다.

빅토리아 호수와 알버트 호수사이에서 번성한 또 다른 왕국은 부간다(Buganda) 왕국으로 500년 전에 출현하여 우간다의 일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부간다인들은 탐험가 스페커(Speke)와 그랜트(Grant)의 방문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곳에서 그림에 나오는 왕의 궁전을 보았다.

식민지 시대 이후로, 환금 작물은 동 아프리카에서 극적으로 증가하였다. 대부분의 보통 환금 작물들은 차나 커피이다.

동 아프리카는 초기 인류의 근원지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300만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유골은 인류의 진화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에디오피아의 랄리벨라(Lalibela)교회는 여러 세기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교회로 거대한 하나의 돌을 다듬어서 만들어진 교회다. 에티오피아는 500년이 넘는 긴 기독교 역사를 갖고 있다.

30미터가 넘는 악숨(Axum) 왕국의 기둥은 왕의 무덤을 나타낸다. 악숨 왕국은 2,000년 전에 에티오피아에서 번성하였다.

소금은 이전에 동 아프리카 사막 지역에서 중요한 무역상품이었다. 이것을 여전히 오늘날 몇몇의 암하라(Amharic) 인들의 여전히 통화로써 사용하고 있다. 벽돌 모양으로 사막에서 잘라서 운반한다.

1950년대, 거대한 규모의 수용소가 케냐의 마우 마우(Mau Mau) 폭동의 협력자라고 주장되는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 설치되었다. 마우 마우는 반식민주의 저항 운동이었다.

19세기에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빗은 잔지바르(Zanzibar) 술탄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1800년대에 부유한 잔지바르 술탄왕국은 노예무역으로 매우 많은 이익을 얻었다.

동물을 사냥하는 사파리(Safari)는 동 아프리카의 풍부한 야생동물의 수를 급격히 감소시켰다. 20세기 초에 유럽과 미국의 사냥꾼들이 코끼리의 엄니, 아프리카 들소의 뿔, 그리고 사자가죽 같은 기념물을 찾기 위해 이 지역에 몰려들었고 절정을 맞이했다.

세계의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동아프리카에 무역을 하기위해 방문하였다. 말린디(Malindi)의 술탄은15세기에 중국황제에게 기린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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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동부 아프리카의 아시아인

2011. 1. 20. 11:33

1. 동부 아프리카의 아시아인

동아프리카의 소수민족으로서 아시아인의 규모는 작지만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케냐의 나이로비(Nairobi)와 몸바사(Mombasa)는 가장 큰 동 아프리카 아시아인 사회를 가지고 있지만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과 잔지바르(Zanzibar)도 중요한 지역이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20여년 만에 우간다로 다시 모이고 있다.

아시아인들은 수백 년 동안 동아프리카에서 살아왔다. 이 지역은 무역업자들을 매료시켰고 다우(Dhow ; 짐을 옮기는 배)선은 상아, 금, 노예, 향신료를 인도산 직물, 철제품과 교환하기 위해 인도, 아라비안 반도, 그리고 동아프리카를 왕래했다. 그러나 오늘날 아시아인 공동체의 대부분은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몸바사와 우간다를 연결하는 동 아프리카 철도 건설(1896-1902)을 위해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다. 동아프리카의 아프리카인 노동력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해 노동력으로서 이용할 수 없었으며 또한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겨졌고 이런 이유로 약 32,000명의 인도인 노동자들이 인도에서 동아프리카로 유입되었다. 계약 노동자로 동아프리카에 온 인도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풍토병에 걸려 죽기도 했고 계약이 만료된 후 다시 인도로 돌아갔다. 하지만 약 7,000명의 인도인들은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아프리카에 정착했는데 이들은 그들의 고향인 인도와 긴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몇몇 인도인들은 철도 노동자로 계속 일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상인, 인도인 노동자들을 위한 요식업을 시작했고 얼마 안가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시켜갔다. 동아프리카의 사업기회는 1920년대에 인도인들의 이주를 더욱 촉진시켰으며 그들의 무역활동은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이르게 되었다.

동아프리카 인도 국민의회(East African Indian National Congress)는 아시아인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1914년에 만들어졌다. 이들의 요구는 입법의회(Legislative Council)에서 동등한 대표권과 특히 케냐 고지대(Highland)의 토지 소유권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고 유럽인과 아시아인을 분리하는데 대해 반대했다. 그들의 불만은 주로 그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유럽 이주민 정착자 사회를 겨냥하였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아프리카인보다 더 우월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독립 당시 아시아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아시아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시민권을 갖던지 아니면 영국의 영주권을 가질 수는 없지만 영국국민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새로운 독립국가의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국가에 충성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많은 아시아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그들의 안전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보호가 반아시아인 정서를 막아주었다고 믿고 있었다. 새로 독립한 국가들의 아프리카화(Africanization) 정책은 시골지역에서 아시아인들의 상업 활동을 못하게 막았지만 도시지역에서는 이들의 상업적 능력과 기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가게들이 국유화되고 직장에서 쫒겨났다. 케냐에서는 변화가 천천히 발생하여 따라 분열은 피했다. 하지만 우간다에서의 변화는 갑작스럽고, 혹독했다. 1972년,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다다 오우메(Idi Amin Dada Oumee)은 약 8만 명에 이르는 아시아인 공동체에 추방령을 그들의 사업체를 인수했다. 비록 이러한 추방정책이 처음에는 넓게 지지를 받았지만 우간다의 경제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 대통령은 우간다에 아시아인이 복귀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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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동부 아프리카

2011. 1. 20. 11:31

1.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Tanzania)와 케냐(Kenya), 그리고 에티오피아(Ethiopia)를 포함한 그레이트 아프리카 리프트 밸리(the Great African Rift Valley)는 고대 인류의 화석이 풍부하게 발견되는 지역으로 인류학자들이 동아프리카가 인류의 기원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지역이다. 역사시대에 고대 이집트(Ancient Egypt)는 가장 강력한 국가였으며 그 당시 가장 가치 있는 상품이었던 유향(乳香)(frankincense : 동아프리카․아라비아산 감람의 일종. 이스라엘 민족이 제례에 쓰던 고급 향료)과 몰약(沒藥 ; myrrh ; 미르라)을 생산하였다. 현재의 소말리아(Somalia)지역은 “푼트의 나라(Land of Punt)”로 알려진 지역이었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해안지역은 아라비아(Arabia), 페르시아(Persia), 인디아(India) 심지어 중국까지도 교역하던 초기 동부 아프리카의 상업 도시국가들이 성장하였다. 하지만 동부 아프리카는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하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과 달리 그들의 경제를 부흥시켜줄 수 있는 천연자원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부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삶을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가 적은 생존형 농부로 살고 있다. 농부들은 기근과 같은 큰 어려움을 가져오는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에 지배를 받는다. 개인당 GNP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브룬디(Burundi) 그리고 말라위(Malawi)가 가장 빈곤한 국가로 분류된다. 1990년대 말에 셋으로 분리된 소말리아(Somalia)의 통계숫자는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효과적인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 소말리아의 경제는 붕괴되었다. 하지만 2000년에 소말리아 남부 지역에 과도 의회(transitional assembly)가 설립됨으로서 다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푼트랜드(Puntland)라 불리는 지역인 북동지역은 소말리아의 재구성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머지 분리주의자들은 소말리아 랜드(과거 브리티시 소말리아 랜드(British Somalialand))가 분리된 채로 남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전 그리고 다른 분쟁은 몇몇의 국가들에게 경제적 발전의 실패를 가져다주었다. 1952년에 에티오피아와 합병된 에리트리아(Eritrea)는 1993년에 오랫동안 끔찍하게 지속되었던 내전이 끝나면서 독립하게 되었다. 에리트리아와 에티오피아의 불편한 관계는 국경 분쟁이 발생한 1998년까지 지속되었고 평화계획이 채결된 2000년에 가서야 종식되었다. 브룬디와 르완다(Rwanda)는 후투(Hutu)와 투치(Tutsi) 두 인종간의 소름끼치는 분쟁에 의해 크게 흔들렸다. 많은 난민들이 무자비한 도살로부터 달아났지만 많은 수의 난민들이 자이르(Zaire ; 현재의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불안정을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과거 영국령 동부 아프리카(British East Africa)에 속했던 우간다(Uganda) 또한 비교적 이웃 국가들에 비해 안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쟁들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1990년대에 보다 자유로운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탄자니아는 지금 현재 발전을 거듭하여 케냐의 상황에 근접하고 있다. 케냐는 독재적인 일당제 체제를 유지하였지만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하여 동아프리카의 관문 국가가 되었다. 1960년대에 이 3개의 영국령 동아프리카국가들은 동부아프리카 연합(East African Community)의 창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깊은 정치적, 경제적 차이는 범아프리카 협력(pan-Afriacn cooperation)의 기회를 어렵게 했다. 하지만 1999년에 새로운 협약이 케냐, 탄자니아, 그리고 우간다에 의해 서명되었고 이 계약의 목표는 관세 연합, 공동시장, 화폐 통합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합을 위한 것이다.

말라위(Malawi) 또한 하스팅즈 카무트 반다(Hastings Kamuzu Banda)의 독재아래 고통 받았다. 하지만 1993년에 다당제가 복구되고 1994년에 선거가 실시되어 반다가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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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독일의 아프리카 지배

2011. 1. 20. 11:30

1. 독일의 아프리카 지배

 1895년에 아프리카에 영향을 주었던 독일의 식민지배는 4군데의 주요 지역에 집중되었다: 토고랜드(Togoland), 카메룬, 독일령 동 아프리카(German East Africa), 그리고 독일령 남서 아프리카(German South West Africa).

 
1.1.1. 1. 독일령 카메룬(German Cameroons)

노예무역을 근절시키고자 노력했던 영국 선교사들은 19세기 초반에 현재의 서부 카메룬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858년에 영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최초의 영구적인 정착지인 빅토리아(Victoria)를 이 지역에 건설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분할(scramble for Africa)”시기에 영국이 아닌 독일이 이 지방에 대한 통치권을 갖게 되었다. 독일은 1884년 7월 12일에 이 지역에 대한 보호령을 선포했고 내륙지역으로 통치지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때 얻게 된 새로운 영토를 카메룬(Kamerun), 혹은 독일령 카메룬(German Cameroons)이라 불렸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그 영토는 영국과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두개의 나라로 분리되었다.


1.1.2. 2. 독일의 동부아프리카(German East Africa)

1890년대와 제 1차 세계대전 사이에 현재 르완다(Rwanda)와 부룬디(Burundi), 탄자니아(Tanzania)의 대륙지방과 모잠비크의 일부분이 독일의 동부아프리카에 포함되었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르안다(Ruanda)와 우룬디(Urundi)를 형성하고 있었고 탄자니아는 탕가니카(Tanganika)로 알려져 있었다. 1891년에 독일 정부는 상업적인 독일 동아프리카 회사(German East Africa Company)로부터 그 지방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식민지는 1907년까지 독일의 완전한 지배를 받고 있지 못했다. 전쟁기간 동안에 독일령 동부 아프리카는 영국이 점령하게 되었다. 베르사유 협정(Versailles Treaty ; 1919년)은 벨기에로 넘어간 르완다-우룬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독일 식민지를 영국의 통치아래 두게 했다.

독일령 동부 아프리카에서 독일의 통치를 안정화하기 위해 취해진 경제변화는 1905년 독일의 통치에 반대하는 마지 마지 반란(Maji Maji rebellion)으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탄자니아 부족들의 단결을 초래했다. 마지 마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독일군은 반란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였고 교수형을 집행하여 아프리카인들을 살해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령 동부 아프리카에서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아스카리(Askari)라는 군인들로 차출되어 식민지 군대에 끌려가 싸웠다.

 
1.1.3. 3. 독일령 남서 아프리카(German Southwest Africa)

1884년에 독일은 남서 아프리카(Southwest Africa ; 오늘날의 나미비아(Namibia))를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남서 아프리카에서의 독일 통치는 아프리카 전체에서 가장 잔혹한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 후 몇 십 년간 반란은 아주 철저하게 진압되어서 헤레로(Herero)족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고 집단 수용소가 세워졌는데 식민지 정착 자들은 아프리카인 노동자들을 매우 잔혹하게 다루었다. 서기 1915년에 남아프리카(South Africa)가 남서 아프리카를 점령하여 1990년까지 그 곳에 불법적으로 통치했다.

핸드릭 비트부이(Hendrik Witbooi)는 헤레로족에 저항하여 독일에 협력하였던 그는 그 후 독일 통치에 저항하여 나마(Nama)족을 이끌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투쟁 끝에 그는 1905년에 전사했다.

1904년의 반란 후에 독일 당국은 헤레로(Herero)족의 대부분을 학살했다. 4분의 3 이상이 대학살의 결과로 사망했는데 학살당하거나 굶주려 죽었다.

독일령 남서 아프리카의 아프리카인 포로들은 목에 사슬로 묶여진 상태로 농장으로 끌려갔다.

 
1.1.4. 4. 토고(Togo) 공화국

역사가들은 현재 토고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조상이 북쪽으로부터의 침략자 아니면 아산테(Asante)와 다호메이(Dahomey) 사이에 일어난 전쟁의 피난민으로 믿고 있다.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찾고 있던 포루투갈 선원들은 15세기 후반에 이 지역에 도착했다. 노예무역이 시작되자마자 남쪽 토고는 노예해안(Slave Coast)으로 불리었다. 노예해안은 남서쪽 나이지리아(Nigeria)부터 현재 가나의 볼타(Valta)강 입구 주변까지 뻗어 있었다.

19세기 중반부터 독일 무역가와 선교사들이 토고에 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1884년 독일은 해안지역에 보호령을 만들었고, 1899년 그들은 독일령 토고랜드(German Togoland)라 불리는 식민지를 설립하였다. 세계 1차 대전 동안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령 토고랜드를 점령하였고, 1922년 국제연맹은 서쪽 1/3지역은 영국이 다스리고 동쪽 2/3는 프랑스가 다스리게 하였다. 1946년 UN은 영국과 프랑스령 토고랜드에 신탁통치를 하였다.

1956년 영국령 토고랜드 사람들은 황금해안(Gold Coast)으로 포함되는 것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였고, 1957년 황금해안지역이 가나로 독립하였을 때 합병되어졌다. 하지만 1956년 프랑스령 토고랜드는 프랑스연합(French Union) 내에서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프랑스는 토고의 진보당(Progressive Party)의 당수인 니콜라스 그루니츠키(Nicolas Grunitzky)를 수상으로 임명하였고 그는 토고가 프랑스 연합 내에 남기를 원했다. 하지만 1958년 토고의 통일당(Unity Party)의 수장, 실바누스 올림피오(Sylvanus Olympio)가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올림피오는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였고 1960년 4월 27일에 독립을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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