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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국제관계-아프리카 외교 정책의 변화

독립 이후 아프리카 외교정책은 ‘큰 사람(big man)’ 또는 ‘큰 지도자(big leader)’ 신드롬 현상을 보였다. 중앙집권화된 외교정책 구조를 형성한 결과, 지도자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성격에 따라 개인화된 외교정책 추구하였다. 예를 들어 자이레의 모부투 세세 세코(Mobutu Sese Seko)와 같은 독재적인 지도자들은 강대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다. 그는 1965년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받아 군사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았으며 점차 대통령 주변에 모든 세력을 결집하였다. 아프리카의 초대 지도자들은 식민지배국가와 강력한 연대를 추구하는 외교정책 노선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정책인 종속적인 외교정책이라고 비판을 받는 주요 이유는 식민지 교육을 받은 아프리카의 지도자와 유럽 정상들이 ..

아프리카의 국제관계-종속-탈식민지(dependency-decolonialization) 논쟁

1951년 리비아의 독립은 공식적으로 식민통치의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했고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정부의 출현은 식민통치의 종말을 보여주는 사건이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 논쟁이 출현했고 독립과 탈식민지화가 아프리카 국가들과 기존 식민지 강대국 간 지속되고 있는 경제, 정치, 군사, 문화의 연결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고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 “독점적인 사냥지역(chasse gardée)”이라고 불렀다.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이 출현했고 냉전의 도래와 초강대국의 개입으로 유럽과 신식민지 관계가 모스크바와 워싱턴이 주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었다고 비판을 받았다. 즉, 직접적인 식민통치는 아..

아프리카의 국제관계-역사적 고찰

1884~1885 베를린회의눈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잃었고, 아프리카의 국제 관계는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1935~1945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은 세계에서 강력한 지역이었던 유럽이 쇠퇴하고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아프리카 민족주의자들의 운동이 발생했다. 이 시기에는 또한 아프리카 국제 관계가 아프리카에 의해 결정되기 시작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1947~1989 냉전과 미·소의 각축시기는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구(舊)소련연방의 비대칭적인 역학 관계 속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을 보였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이념에 바탕을 둔 미국과 구(舊)소련연방 간 냉전은 차가운 평화(C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