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침략과 저항사

경제적 제국주의

africa club 2001. 11. 21. 12:59
경제적 제국주의는 제국주의가 유럽의 잉여자본을 위한 대리점으로서의 필요성에 대해 유럽제국주의 국가들이 해외영토 필요성의 기능을 한다는 레닌-홉스(Lennist-Hobsonion)이론이다.  즉, 상업적 이윤에 대한 제국주의적 목적이었다.  주요 요소들은 이러한 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즉 (i)서부아프리카의 잠재력에 대한 무지, (ii)상업단체의 역할과 보호무역에 대한 탐구, (iii)유럽의 산업화 등이다.

(i) 서부아프리카에 대한 무지
서부아프리카에 대한 무지는 유럽무역업자들과 비무역업자 모두 결국에는 아프리카를 그들의 상품을 위한 시장으로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콩고와 나이지리아는 그들의 실제가치에 대한 비율이상으로 경제적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었다.  서부수단에 있어 바쓰(Barth)의 평가 (여행을 통해 서부수단을 둘러본 바쓰의 평가)가 소코 칼립파테(Soko Caliphate)에 대한 상업적 가능성에 관한 가치에 대해 불신을 준 반면에 스탠리와 같은 관측자들은 콩고의 부를 지나치게 과장하였다.

(ii) 상인들의 역할
정부는 일반적으로 상인들로부터의 압력에 대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유럽주요 권력들이 이 시기에 식민지에 대한 그들 상인들에 의한 관심에 부응했다.  예를들면 188년대 무렵 서부아프리카에서 독일 상인은 꾸준한 성장을 보여왔고, 독일상인들은 식민지 보호령에 대해 점차적으로 눈독을 들여왔다.  그 결과 1884년 카메룬, 토고랜드, 남서부아프리카 및 탕가니카에 대한 그들의 점령은 비스마르크의 단순한 외교정책만은 아니었다.  빈틈없는 외교관으로써 상인들의 의견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얻으려 결심했다.
이와 유사하게 1882년 영국의 이집트 점령은 순수하게 군사적 전략을 위한 것뿐 아니라 그들의 상업적 위치가 위험에 처해있던 아시아에서와는 달리 아프리카에 있어 경제적 이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동일국가의 상인 간의 상품시장에 대한 쟁탈전이 고조되어있던 나이지리아에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간에 내륙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외국상인의 경쟁이 고조되고 있었다.
대륙내에서의 가격이 경쟁에 의해 지배되었던 가격보다 그들에게는 더 호감이 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지금까지는 전혀 도전받지 않았던 그들의 독점권에 대한 이런 간섭으로 분노했던 아프리카 중산층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었다.  평범한 분노는 분쟁으로 연결되었고 그런 사건에 대해 유럽상인들의 보호령에 대한 그들의 경영을 서둘러 요구했다.  예를들면 파이데르베(Faidherbe)는 세인트 루이스(St.Louis)에서 프랑스 상인의 요구를 결정해왔고, 지속적인 위협하에 있던 니제르 삼각지역에서 골디는 영국정부가 그의 회사에 주었던 특권에 대한 실패에 대해 논의하였다.  영국정부는 나중에 이에 굴복했다.

(iii) 유럽의 산업화
19세기 중엽까지 영국은 제조업 산업에 주도권을 쥐고 있던 국가로 아프리카의 가공되지 않는 천연자원에 대한 강력한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1880년대 무렵은 프랑스와 독일이 또한 공업화 되고 있었고 그들의 열대작물생산을 위한 재료를 영국에 의존해 왔었고 이에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의 산업화는 영국의 무대보다 그들이 직면하게 되었던 몇몇 문제에 대해 더 새로운 개척지였기 때문에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그들이 요구했던 신용에 있어 영국과의 경쟁에 대한 어려움; 완성된 상품에 대한 가격저하와 품질의 불공정한 경쟁; 천연자원들에 대한 그들이 제시했던 가격에 대한 불공정한 경쟁 등이 있었다.
그 결과 확산된 유럽의 산업화로 인해 점령된 식민지들이 소유물로써 보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