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남아공, 남부아프리카 이야기

남아공 민주화 10년

africa club 2012. 7. 16. 14:00

 

 


남아공 민주화 10년

 

 

kbs 월드넷 (2004. 4. 23. 방송) 질문입니다

 

 

 

1. 최근에 아프리카 다녀오셨다면, 언제였는지? 그때 피부로 느끼신 변화가 있다면?

 

지난 겨울방학 때 2 개월간 연구차 동남부 아프리카지역인 케냐, 탄자니아, 남아공, 짐바브웨, 그리고 나미비아를 돌아보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말라리아도 걸리는 등 고생도 많이 했구요.. 매번 방학때마다 아프리카를 방문하지만 이번처럼 놀라움과 흥분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여전히 반쯤 벌거벗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알 수 없는 주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아프리카(Primitive Africa)로 인식되거나 열대우림의 정글과 야생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야생의 아프리카(Wild Africa), 또는 발전되지 못하고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아, 가난, 질병, 내전, 구데타, 부정부패 등 아프리카는 희망이 없는 비관주의(Afro-Pessimism)를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습니다.

 

 

"본 게시글은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은 내용으로 무단복제를 하실 수 없습니다. 꼭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돌아보았던 동남부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지역이 정말로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케냐에서는 심야에도 버스가 밤을 새워 달리며 많은 사람들을 나이로비와 지방도시는 물론이고 국경을 넘어 이웃 탄자니와와 우간다까지 사람들과 물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탄자니아의 도시들은 하루가 다르게 정돈되고 질서가 잡혀가고 있으며 달라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짐바브웨는 지금 무가베 정권의 불안정으로 일시적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예외지만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선진국으로 안정된 정치체제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역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미비아의 카프리비 지역은 과거에는 앙골라와의 국경지역으로 테러로 인해 접근도 불가능하였으나 이제는 누구나 다닐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보츠와나와 짐바브웨를 연결하는 루트가 열려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유를 21세기에 들어와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도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개방경제로의 전환을 채택하고 있어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편입이 가속화됨으로서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제가 몸으로 느끼는 아프리카의 역동적 모습은 21세기에는 또 다른 위상을 갖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2. 흑인정권 10주년 맞은 남아공. 얼마 전 치러진 총선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압승을 거두었는데.. 남아공 사회의 현재 분위기?

 

 

남아공은 지금 자신감에 가득 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4월 27일은 남아공이 민주화를 겪은 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남아공이 흑-흑-또는 흑-백간 인종갈등, 또는 경제적 격차를 해결하지 못하고 내전으로 발전되어 기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소리는 틀린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한 남아공 정부는 1999년 6월 2일 두 번째로 출범한 타보 음베키(Thabo Mbeki)의 지도아래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사회-경제적, 문화적 민주화 과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안정을 찾아 아프리카국가들 중 모범적인 발전국으로 비쳐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남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아프리카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아주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을 가지고 있는 다인종․다문화사회의 특징을 살려 서로 화합하여 발전을 가속화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10년간의 노력의 결과를 들어 10년 뒤의 미래를 보아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3. 남아공의 인종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중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사례가 있다면?

 

 

저는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 TRC)야 말로 상징적인 사건으로서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로부터 화해를 통한 국가건설과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변화의 상징으로서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아공의 변화는 분명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TRC는 이 기적의 전형적인 상징으로서 인식되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은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회(multi-racial, multi-cultural society)이다. 인종, 언어, 종교, 계급 등에 따른 분열과 차별은 20세기에 들어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시행으로 그 정점에 다다랐다. 특히 인종집단간의 깊은 분열은 올바른 역사의식, 국가의식, 또는 국민의식의 형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 TRC)는 1995년 국민적 통합과 화해 증진법(Promotion of National Unity and Reconciliation Act)에 의해 설치되었다. 주된 목적은 진실을 밝힘으로서 국민들의 화해와 단결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조사기간은 1960년 3월 샤프빌(Sharpeville)사건이 발생한 시기부터 1994년 5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로 한정하고 있다. 1995년 말에 만델라 대통령에 의해 17명의 위원이 임명되었고 1995년 12월 1일부터 활동이 개시되었다. 의장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가 맡았으며 부의장은 보라이너(Alex Boraine)박사가 임명되었다. 모두 3개의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권폭력 위원회(Committee on Human Rights Violations), 사면 위원회(Committee on Amnesty), 그리고 보상과 복권 위원회(Committee on Reparation and Rehabilitation)로 구성되어있다. 위원회의 기능은 광법위하게 이루어진 인권의 침해와 남용을 조사함은 물론 그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조사하게 하였다. 살인, 납치, 고문, 불법적인 감금 등 과거에 분쟁과 정치적 이유로 발생된 광범위한 인권남용에 대한 조사를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

 

1996년 4월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TRC는 2년여에 걸쳐, 지난 30여 년간에 걸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인권유린에 대해, 1백 60회의 청문회와 희생자 2만 1천 여명으로부터 증언을 듣고 백인들이 저지른 암살, 고문, 실종들의 실상을 조사하였으며 백인들의 인권유린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인권유린상황에 대해서도 조사하였다. 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결과는 1998년 10월 29일 인권남용 사례를 담은 2천7백50쪽 짜리 5권의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한 뒤 만델라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인종간의 갈등, 정치적 분쟁, 말해지지 않은 고통과 불평등으로 대변되는 남아공의 경험은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위로부터의 민주화 이행과 국민화합을 실현함으로서 국가건설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정치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주요한 정치집단들이 정치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화에 대한 제도적 정착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둘째는 인권남용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를 진실에 대한 조사와 사면 및 복권을 명시한 TRC라는 기구를 통해서 밝힘으로서 역사를 청산하고 국민적 화합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TRC의 근본적인 취지가 보복이나 복수가 아니라 화해와 이해, 그리고 보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TRC는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인종주의자의 통치로부터 민주주의를 향한 남아공의 변화의 과정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남아공의 변화는 타협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시기에 인권남용에 대해 사면을 하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해 TRC는 상징적인 사건으로서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로부터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변화의 상징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TRC는 국가건설과 화해에 기초한 ‘복구적인 모델(restorative model)'을 제시하고 있는데 세계의 다른 예와는 달리 진실을 말하게 하고 사면과 보상을 시행하는 유일한 제도이다.

 

 

과거에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졌던 인권남용의 가해자들에게 행했던 일방적인 사면과는 다르게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가해자들에게 사면을 부여함은 물론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피해사실에 대해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아가 보상과 명예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구나 인권남용에 대한 사면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것은 중요한 기준을 다양하게 두고 있는데 특히 관련된 사건의 완전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전체적인 평가는 TRC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종족간의 화합을 가져옴으로서 짐바브웨나 유고슬라비아 같은 인종․종족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제공되었으며 화합을 이끌어낸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를 정리하여보면 첫째로 TRC는 정치적 실용주의 모델로서 가해자나 피해자나 국가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로 인식되고 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아파르트헤이트의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가해자로서의 권력을 포기하고 민주적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전감을 갖게 해 주었다. 둘째로 준법(quasi-legal)적 조정자 역할을 하였다. 인권남용과 폭력에 대해 가해자를 밝히고 책임을 지게 하였으며 도덕적 강제기능까지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심각하게 분열된 국민들에게 과거사를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TRC는 국가건설의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인종적 가해자와 피해자들 사이에 용서와 화해를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뉘른베르그식의 보복적인 승리자의 정의와 역사적 망각사이에 또 다른 길 - 즉 용서와 화해, 그리고 협력을 통한 국가건설과 새역사의 창조 - 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넷째, 인권남용에 대한 예방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효과로 인해 TRC는 인권남용이 다시는 발생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킴으로서 인권문화의 발전을 꽤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TRC가 남아공의 변화와 발전에 중요하면서 상징적인 촉매역할을 했다는 것일 것이다.

 

 

 

4. 세계 최고 수준의 범죄율을 보이고 있는 남아공의 치안문제의 심각성(선생님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 해주시면 더 좋습니다)에 대해?

 

 

우선 남아공이 얼마나 범죄율이 심각한지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남아공의 자동차 번호판은 9개의 주마다 다른 표시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우텡(Gauteng)주의 차량은 GP로 시작되고 케이프 타운은 CA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남아공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을 하곤 합니다. GP는 갱스터의 천국(Gangster's Paradise)약어이고 CA는 다시오라(Come Again)의 는 약자라고 말입니다. 지역적으로는 주로 하우텡, 크와줄루 나탈, 그리고 웨스턴 케이프에서 매일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푸념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남아공 사람들이 느끼는 범죄문제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지금 과거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안전문제는 현재 남아공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도시 모든 지역이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저녁 8시에 방송되는 SABC 정규뉴스 시간에는 뉴스의 대부분이 범죄발생과 그 피해에 관한 소식입니다. 이렇게 범죄가 기승을 부림에 따라 남아공에서 가장 유망하고 경기침체를 타지 않는 업종은 범죄관련업종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저는 매사에 조심한 덕분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범죄를 당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매이드가 집에서 일하면서 물건을 가져가는 것 정도는 일종의 행사처럼 겪었으며 밤늦게 고속도로에서 갱단으로 의심되는 차량의 추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음에 예로 든 경우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적어본 것입니다.

 

 

* 차량 및 집에 대한 보험가입은 필수적이며 범죄예방회사나 무장경호회사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집에는 도난 방지 팬스를 입.출구에는 빠짐없이 설치하여야 한다.

 

* 만약 전자식 잠금 장치와 자물쇠로 된 잠금 장치를 하지 않고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면, 그리고 그곳에 드나드는 흑인들이 그러한 상황을 보았다면 밤사이 분명히 도난을 당할 것이다. 운전대를 쇠톱으로 잘라내고 훔치기도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잠금 장치를 하고 또 공공장소에서는 차량 감시인들에게 차량보호를 의뢰한다. 물론 이때 우리 돈으로 약 100-200원의 기부금을 준다. 잠금 장치로는 경보장치, 이모빌라이제이션(이 장치를 풀기 전에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운전대를 고정시키는 고릴라, 기어 잠금 장치(오토메틱 차에 해당)등이 있다.

 

* 고속도로를 운행할 때는 미행하는 차가 없는가를 확인하고 만약 일정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다고 판단되면 가지고 있는 이동전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하든지 속력을 내어 신속히 주유소나 가까운 민가 또는 도시로 가도록 한다. 

 

* 집에 있는 물건을 훔치기 위한 도난사건은 아주 빈번한 편이며 집을 정기적으로 비워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라면 반드시 도난을 당한다.

 

* 일하는 아주머니나 잡역부를 쓴다면 감시감독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집에 있는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며 또 언제 집안의 정보를 유출시켜 도둑이나 강도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요하네스버그 중심가에 있는 호텔이 시설과 규모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다면 분명 우범지역이다. 호텔로 노크를 하여 강도를 만나보게 되든지 어스름할 무렵 호텔밖에 산책을 나갔다가 반드시 강도를 만날 것이다.

 

*  CBD지역에서는 토요일에 현금자동인출기를 탈취할 정도로 위험하며 주로 현금수송차량을 터는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4-1. 남아공 치안 불안 문제의 원인과 정부의 해결 노력?

 

 

무엇보다도 빈부격차가 크고 직업이 없는 실업인구가 약 30-4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아공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를 인종 또는 사회적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남아공정부와 남아공 경찰은 지금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은 범죄예방과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3단계의 전략을 세우고 2002-2003년까지 단기적 전략으로 범죄율 수준을 고정현 단계에서 고정시키는데 힘쓰고, 2003-2005년에는 중기적 전략으로 정상화 단계로, 그리고 장기적 전략으로는 2000-2020년에는 사회-경제적 발전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2000년 4월 1일에는 국가범죄전쟁전략(National Crime Combating Strategy : NCCS)을 수립하고 약 20개의 범죄항목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한편 부족한 경찰력의 확보와 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1994년 이래 범죄율이 29.5%정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살인은 1994년 100,000명당 67.2명이던 것이 2002년에는 47.4명으로 줄었고 차량과 관련된 범죄와 은행절도는 약 18%로, 그리고 230여개의 범죄조직이 오해되었고 85명이 검거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아공 정부의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달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경제적으로 기회가 주어지고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희망이 있다면 범죄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5. 아프리카 언어의 다양성?

 

 

2034개의 언어가 존재하며 아시아 아프로틱, 나일 사하라, 나이저 콩고, 코이산 어족 등 4대 어군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아프로틱 어족은 주로 아랍인, 베르베르인을 중심으로 한 헴과 셈어족으로 북부아프리카에, 나일 사하라 어족은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유목을 하는 마사이족등이 속하며 주로 수단과 동부 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고, 나이저 콩고어족은 가장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반투(Bantu)흑인 인종집단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의 모든 지역에 살고 있으며 코이산족은 딸깍음(click sound)를 사용하고 노란색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나미비아와 남아공에 소수가 살고 있습니다.

 

남아공에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해안 지대를 중심으로 주로 두 부족의 흑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코이코이(Khoikhoi) 또는 호텐토트(Hotentot)라 불린 부족은 주로 목축을 영위하고 있었으며, 부쉬맨(Bushman)으로 불리는 산(san)족은 수렵과 채집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의 내륙지방에는 반투(Bantu)어를 사용하는 줄루(Zulu)족, 코사(Xhosa)족 등이 대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6. 아프리카 언어에서 '구전 전통'의 중요성?

 

왜 아프리카는 서구열강이 오랜 기간동안 식민지배와 침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처럼 완전히 서구문화에 동화되지 못했는가?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가 월등하고 우월하다면 당연히 아프리카라 문명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인들의 지배와 침탈의 과정이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해 이익이 덜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은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을 살펴본다면 절대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인도등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서구열강으로부터 지배를 벗어나고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전통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프리카에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기록보존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게 구전을 전해주는 읽고 쓰는 방법은 몰랐지만 속담, 그림, 이야기, 노래 등과 같은 세심한 장치를 통해 부족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예술 장르들에 삶의 다양한 면면을 효과적으로 투사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정보의 전달과 보존은 구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전을 정보를 보존하고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기록관리자의 임무를 담당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록보관은 아프리카사회에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구전의 중요한 역할은 과거의 집단적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지켜나가며 소속감을 향상시킨다. 재앙이 닥쳤을 때도 정체성은 집단의 재산이었다. 구전을 모두에게 유효한 공적 재산으로 여겼다

 

 


아프리카인들은 구전 문화와 전통에 그 뿌리를 둔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와 이야기꾼을 경외한다. 고대의 글쓰기 전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존재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로 구전인들이며 그들의 예술형태는 문헌적이라기 보다는 구전형태이다. "쓰여진 문헌(written literature)"과는 반대로 케냐의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응구기 와 시옹고(Ngugi wa Thiongo)가 사용한 “구연(orature)"이라는 용어는 말로 만들어져 전해진 것으로 춤과 음악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말로서 공동체내에서 종종 만들어지고 행해진다. 아프리카의 구전예술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아프리카 문화의 초기부터 발전을 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꽃을 피우며 살아있는 전통으로서 전해내려오고 있다.

 

 

아프리카 ‘구전문화(oral culture)’의 개념은 구연문학(oral literature), 구전전통(oral tradition)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구연문학이란 입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개념의 구전문화는 그 초점이 생산물과 멀리 떨어져 변화한다. 다시 말해, 원문은 구전원문의 이야기가 행해지는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배경을 포함한다. 게다가 구전문화는 구연 의사소통 관습의 지속성을 위해 말하는 단어의 사용과 주의를 끄는 것과 관련된 모든 관습과 습관을 가리킨다. 공연(performance)은 구전 텍스트의 실질적인 행위인 반면에 구전문화의 다양한 생산물은 구연문학으로 불리어질 수 있다. 

 

 

특히 非문자사회라는 아프리카의 특성상 구전전통ㆍ구비전승(oral tradition)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구전은 풍부한 기억력과 상상력을 기초로 ‘입’에서 ‘입’을 통해 사실을 전승하는 방법론으로 문자체계가 없었던 사하라이남 반투 사회의 대표적인 역사전승 방식이었다. 함파테(HampâtâBé)가 ‘아프리카에서 나이 많은 이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다’고 말한 내용은 역사적 자료로서 구전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전전통은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지니고 있는 보물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부족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유산을 관리하는 사람들(the custodians of heritage)’로 불리어졌다. 이러한 사람들을 서부아프리카에서는 그리오(griots) 남부 아프리카의 코사족에서는 임봉기(imbongi)라고 불리어졌고 서부 아프리카보다는 자유로운 형태로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연장자나 주술사등 사회의 전문가집단에 의해 전승되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들이 이와 같은 구전역사가들의 발화를 통해 나타난 신화, 전설, 찬양시, 속담, 이야기, 그리고 음악속에서 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적확히 직시한다면 아프리카를 이해하기 위한 구전전통의 연구를 통한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 연구는 매우 의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언어에도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다든지, 사회적인 위치나 공직에서의 직위가 높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속에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는 말속에는 “힘”이 들어 있다. 그래서 특별히 위기에 처한 경우에 발언되는 부모의 말은 행운을 “낳기도”하고, 저주, 성공, 평안, 슬픔, 혹은 축복을 “낳기도”한다. 또 주의의 말은 그가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는 그 약을 통해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병을 치유하거나 불운을 예방해주는 것은 약초보다도 사실은 그 주의의 말의 효험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저주”와 “축복”은 지극히 실제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 앞장에서 서술한 전문가들도 실은 개인적으로나 그들의 직책이나 직능으로 인해서 그와 같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7. 남아공 등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 우리 기업이 자원 개발 산업 진출한다면, 전망은?

 


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남아공에 대한 자원개발산업진출 보다는 남아공를 기반으로하여 주변 아프리카국가들 나아가 미국으로의 우회침투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남아공은 단지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남부아프리카 나아가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중요한 진출거점으로 인식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주변국들에 대한 자원개발산업 및 유통 제조업등을 컨소시엄형식으로 남아공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남아공은 비즈니스 환경이 아주 좋은 나라입니다. 남아공에 대한  ‘아프리카의 성장과 기회를 위한 행동지침(AGOA)’을 활용해 무관세 수출을 할 수 있고, 이중과세를 금지해 기업 이윤의 회수가 자유로워 자본이동이 용이합니다. 시장 개방에 적극적인데다 경제정책이 안정돼 있어 내국인과 동등한 조건으로 사업을 펼 수 있어요.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가 100% 허용된다는 점도 장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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