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남아공, 남부아프리카 이야기

남아공 백인들은 아프리카의 원주민?

africa club 2012. 7. 16. 14:05

 


남아공 백인들은 아프리카의 원주민?

 

 

 

역사는 선주민, 원주민 그리고 토착민과 이주민 또는 정착민의 도전과 응전 그리고 투쟁과 화해의 장이었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은 고향과 타향이라는 선을 넘나들며 삶을 이어왔다. 더 나은 삶과 자유를 찾아 들어온 사람들은 그곳에 터를 잡고 먼저 살고 있는 사람들과 운명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남아공에 사는 백인들은 스스로 ‘아프리카에 사는 백인’이라는 뜻을 가진 아프리카너(Afrikaner)라고 부른다. 미국의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남아공의 아프리카너들도 이곳에 정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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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인도로 가는 중간기착지로 케이프 타운에 정착을 시작한 이후로 이주지가 계속 확대되어 18세기에는 케이프 타운에서 동쪽으로 약 1200여 km나 떨어진 그레이트 피쉬 강(Great Fish River)까지 확대되었다. 케이프 타운에서부터 동쪽으로 이주 정착한 사람들은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인들로 아프리칸스(Afrikaans)어를 바탕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발전시켜나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노예제도 폐지와 원주민들에 대한 처우 개선 같은 영국 정책의 강요는 아프리카너 백인들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독립을 갈망하기에 이른다.

 

1835년부터 1838년 사이에 우마차(ox-wagon)를 이끌고 케이프 타운을 벗어나 알수 없는 내륙지방으로 ‘푸어르트렉커(voortrekker : 앞서간 여행자, 개척자)’들의 대이주(Great Trek)가 시작되었고 결국 트랜스발(Transvaal) 공화국과 오랜지 자유주(Orange Free State)라는 2개의 공화국을 건설하게 된다. 이들의 삶과 고난의 역사를 프레토리아 언덕에 개척자 기념관(The Voortrekker Monument)을 건설하여 기념하고 있다.

프레토리아의 개척자 기념관은 대통령궁(Union Building)이 서 있는 언덕을 멀리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제일 높은 언덕에 세워져 있으며 모든 지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주위로는 64 대의 우마차가 빙 둘러져 있어 아프리카너들의 ‘방어정신(Laager spirit)를 상징하고 있고 이곳을 지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건물의 정면에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자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상징물은 대이주 기간에 여성들의 노력으로 아프리카너들의 문화와 기독교가 온전히 유지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건물의 네 귀퉁이에 세워진 거대한 상반신 인물상들은 대이주의 개척자 지도자들이다. 쿠와줄루 나탈에서 줄루족에게 살해되었던 피터 레티프(Piet Retief), 피의 강(Blood River) 전투에서 줄루족에게 대승을 거두고 레티프의 복수를 하였던 안드레스 프레토리우스(Andries Pretorius), 포처포스트루엄(Potchefstroom)을 비롯한 내륙지방으로 개척자들을 인도했던 헨드릭 포트기터르(Handrik Potgieter), 그리고 많은 무명의 개척자 지도자들의 상이 서서 프레토리아를 바라보고 있다.

 

문의 창(assegais)은 딩가네의 힘을 상징하고 있으며 조각된 검은 누(Black wildebeest/Gnu)들은 수 많은 딩가네의 군사를 나타낸다. 또한 들소(Buffalo)들은 남아공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맹수를 상징한다.

기념과의 꼭대기에 있는 지그재그 형식의 삼각처마는 개척자들의 문화적 유산이 풍부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사방의 벽에 아프리카너들이 어떻게 남아공에 이주하게 되었고 또 대이주를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원주민들과 투쟁하며 역사를 건설하게 되었는지 부조로 담고 있다. 또한 중앙에는 매년 12월 16일 12시에 기념관의 최상부로부터 한줄기 햇살이 들어와 “우리 남아공을 위하여(Ons vir jou Suid-Afrika)'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비석을 비치게 해 놓았다. 이 문장은 ‘남아공의 부름(Die stem van Suid-Afrika)'라는 노래에서 따온 것이다. 이 빛의 투사는 개척자들에 대한 신의 축복을 의미한다.

 

12월 16일을 남아공의 백인들에게 독립기념일과 같은 중요한 날이다. 이날은 1838년 딩가네가 이끄는 줄루족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날이며 아프리카너 백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온전히 보존하고 발전시키게 된 날이다.

개척자들은 전력상으로 결코 줄루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생존을 위해 싸움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만약 신께서 이 전투에서 우리가 승리하도록 해주신다면 우리는 이곳에 신을 위해 거대한 성전을 건설하고 이날을 영원히 기념할 것입니다.’라고.

 

물론 이 전투가 끝나자마자 아프리카너 백인들은 피터 마리츠버그에 교회를 성대히 짓고 이날을 기념해왔고 정확히 100년 뒤에 아프리카너 민족주의가 한참 고양되던 시기에 프레토리아에 이 개척자 기념관을 건립하게 된다.

1994년 이전에 남아공의 모든 백인들은 이곳을 참배하고 매년 12월 16일을 서약의 날(Geloftedag)로 기렸다. 현재는 이날은 화해의 날(Versoeningsdag : Day of Reconciliation)로 피의강 전투가 있던 장소에서 흑인과 백인들의 모두의 역사로서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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