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르완다 내전- 내전일지

africa club 2004. 6. 28. 22:31
1890-1916년 독일령 동아프리카, 1916-1962 벨기에령.

1959년 르완다의 왕 무와미 무타레(Mwami Mutare) III가 사망하고 정권을 잡은 투치족 정부는 후투족 지도자들을 살해하면서 후투족의 반란으로 이어져 약 15만 사상자 발생. 약 8만명의 투치족들이 우룬디와 주변국가로 피난. 마지막 왕인 투치족의 키게리 1세도 망명.

1960년 선거로 후투족이 정권장악. 1962년 7월 1일 독립. 초대 대통령으로 카이반다(Gregorire Kayibanda) 선출. 1965년 1969년 재선됨.

1963년 부터 강제추방된 부룬디의 투치족이 르완다를 기습공격함. 보복조치로 수천명의 투치족이 살해당하고 약 1만명의 투치족이 우간다와 부룬디로 추방당함.

1973년 하뱌리마나(Juvenal Habyarimana)장군이 구데타로 집권. 1978년 일당제 채택. 1978, 1983, 1988년 재선됨.

1990년 우간다를 거점으로 한 투치족의 반군세력이 르완다 애국전선(Rwandan Patriotic Front ; RPF)를 결성하여 르완다 후투정부를 공격함.

1993년 8월 OAU의 중재로 르완다 정부와 RPF가 아루샤에서 평화협상을 체결하고 과도거국내각을 결성하기로 합의함.

1994년 르완다의 하뱌리마나(Juvenal Habyarimana) 대통령과 부룬디의 은타리야미라(Cyprien Ntaryamira)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대통령친위대가 격추시켜 사망함. 후투족 과격파가 대통령의 양보에 대해 불만을 품고 살해함으로서 인종갈등이 재연됨. 정부방송은 대통령의 암살배후에 투치족 게릴라들이 관련되어있다고 방송하며 후투족에게 투치족에 대한 보복 공격을 선동. 수많은 투치족이 계획적으로 살해됨. 약 65만명의 투치족중 25만명이 사망.

1994년 7월 우간다의 무세베니의 지원하에 카가메가 주도하는 RPF가 키갈리(Kigali)에 입성하여 정권획득하고 후투족 온건파들과 거국내각을 구성함. 수많은 후투족들이 보복이 두려워 인근 자이레의 고마로 피난하여 난민촌을 형성. 많은 난민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함.

2003년 3월 후투족의 비지뭉구 대통령이 사임하고 4월 후투족의 폴 카가메(Paul Kagame)가 대통령에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