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르완다 내전-후투족과 투치족

africa club 2004. 6. 28. 22:30
대호수지역에 있는 조그만 소국. 인구 약 750만, 면적 2만 6000km, 인구밀도 274/km 공용어 키냐르완다어, 프랑스어,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루안다-우룬디(Ruanda-Urundi)로 벨기에가 통치 : 현재의 루안다와 부룬디.

원래의 선주민은 피그미족(Twa). 대다수 부족은 후투족(85%). 투치족(약 14%). 후투족과 투치족은 서로 다른 부족으로 역사적 배경이 다를 뿐만 아니라 외모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름. 후투족은 다수족으로 반투족에 속하며 피지배민족으로 주로 농경에 종사하였었고 투치족은 나일 사하라 어족으로 큰 뿔소를 기르던 유목민족으로 호전적이었으며 14세기에 북방으로부터 이주하였으며 지배종족으로 주로 사업이나 정부기관에서 일한다. 벨기에 식민정부는 소수부족인 투치족을 우대하여 그들을 교육시켜 말단 관료집단으로 이용하였으며 1925년에는 국왕 및 추장의 전통적 지배체제를 인정하면서 식민지 통치체제의 상징적인 상부구조로 삼는 간접통치방식을 실시.

이러한 두 부족의 적대감정은 종족 구성원의 소속감과 연대의식이 집단의 상대적 이익, 즉 집단비교가치(comparative group worth)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분출됨으로서 분규가 발생한 것이다. 태생적인 종족 구성원의 신분과 소속감이 타 부족과의 갈등시 소속 그룹의 안전과 자율을 위해서는 지고의 희생까지 감내하도록 하는 최우선적 심리기제로 작동함. 또한 분리하여 통치한다(divide and rule)는 식민정책을 위해 도입한 종족차별이 경제적, 교육적 측면내지는 도농간의 현격한 격차로 중첩되어 나타날 경우 종족간의 갈등은 증오의 형태로 표출되어 그 폭력성이 심화되기 마련. 벨기에는 신분증에 소속부족을 명기하도록 하였고 기존의 소수 투치족에 대한 권력독점을 용인, 존속시킴으로서 심화된 양 부족간의 격차가 독립이후 1인 1표 토표방식만으로도 권력획득이 가능한 후투족의 민주화 욕구와 이에 대한 투치족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나타났고 그 배경에는 유럽의 식민통치를 거치면서 경제적 풍요의 실체를 알게 된 다수 후투족의 증오에 가까운 상대적 박탈감이 존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