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르완다 내전 - 콩고민주공화국 내전(1)

africa club 2004. 6. 28. 22:35
콩고지역에는 콩고왕국이 있었으나, 19세기말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침입에 의해 콩고강을 중심으로 분리되어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서부지역은 프랑스가, 내륙의 탕가니카호(湖)를 끼고 있는 동부지역은 영국이 각각 점령하였다. 1885년 콩고조약에 의해 동쪽은 벨기에령이 되고, 서쪽은 프랑스령이 되어 1960년 독립을 성취할 때까지 각각 식민통치를 당하였다.

1960년 서부지역은 콩고 공화국(首都의 명칭에 따라 브라자빌 콩고라고 부르기도 한다)으로 동부지역은 콩고 민주공화국(킨샤샤 콩고, 1971년부터 1997년까지는 자이레 공화국으로 불리웠다.)으로 각각 독립하여, 냉전기에는 콩고공화국이 구소련권에, 콩고민주공화국이 미국권에 편입되어 있었다.

벨기에령 콩고지역은 독립운동 때부터 카사부부(Joseph Kasavubu)가 이끄는 아바코(Abako: Bakongo Alliance)와 루뭄바(Patrice Lumumba)가 이끄는 콩고국민운동(MNC:Cologolese National Movement)이라는 2개의 커다란 정치세력에 의해 나누어져 있었다.

카사부부는 레오폴드빌을 중심으로 연방주의를 주장하였고, 루뭄바는 스탠리빌(현재의 키상가니, Kisangani)지역에 지지 기반을 두고 가나(Ghana)의 지도자 엥크루마(Nkrumah)의 범아프리카주의에 공명하여 즉각적인 독립과 반식민주의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60년 6월 독립 후, 카사부부는 대통령에 루뭄바는 총리에 각각 선출되었다.

그런데 독립과 동시에 광물자원이 풍부한 남부 카탕가(Katanga)지역에서 벨기에의 지원을 받은 촘베(Moise Tshombe)가 분리, 독립을 선포하며 반란을 일으켜 내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으나, 내전상태가 지속되자, 루뭄바는 가나와 구소련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 때문에 루뭄바는 친소주의자 및 공산주의자로 알려지게 되어 서방권 국가들로부터 기피인물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카사부부가 루뭄바를 총리직에서 해임시키자, 루뭄바는 이에 불응하고 의회를 동원하여 카사부부를 하야시키려 하여, 콩고 민주공화국의 내정은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 미국의 지원을 받은 모부투(Joseph Mobutu)가 나서서 자신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시킨 루뭄바를 체포하여 카탕가 반군에게 넘겨 루뭄바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모부투의 도움으로 정권을 되찾은 카사부부는 촘베를 총리에 임명하는 등 일시적으로 정권을 안정시켰으나, 1965년 11월 모부투가 재차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였다. 이후 약 30여 년간 모부투의 장기집권이 지속되게 된다.

1997년 모부투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린 카빌라(Laurent Kabila)는 루뭄바 지지 세력이었다. 즉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의 이면에는, 독립 당시의 친루뭄바 세력 대 반루뭄바 세력의 대립구도가 잠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절에서는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린 제1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의 경과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