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르완다 내전 - 콩고민주공화국 내전(3)

africa club 2004. 6. 28. 22:36
☞ 제2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의 전개

카빌라 정권은 모부투정권과의 내전과정에서 후투족 난민들을 대량학살 하였다는 의혹을 받게 되었다. 또한 카빌라 정권내에는 르완다 투치족 출신의 카바리(Kabari)가 국방장관을 지내는 등 르완다 투치족 계열의 군인들이 군사고문으로 머물고 있어, 카빌라정권이 르완다 투치족의 괴뢰정권이라는 비난도 받게 되었다. 또한 정당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면서 군부독재에 대한 경계심을 유발시켰다.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카빌라는 국방장관을 교체하고, 군사고문들을 추방하는 하는 한편, 정부내에서 투치계들을 제거하면서, 우간다, 르완다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였다.
1998년 7월 카빌라가 르완다 투치족의 전면 철수를 요구하며, 동시에 자신의 집권을 도운 투치계의 바냐물렝게족의 국외 추방을 선언하자, 바냐물렝게족과 르완다 투치계 군인들이 무장 봉기를 시작하여 제2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이 시작되었다.

카빌라정권의 완만한 국내 민주화이행은 내전에 따른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우간다와 르완다의 지원으로 반군이 수도에 접근게 되어서야 지원을 끌어낼수 있었다.

카빌라는 짐바브웨, 앙골라로부터 병력을, 나미비아, 차드, 잠비아, 수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반군 진압에 나섰고, 반군들은 콩고민주연합(RCD:Congolese Rally for Democracy)을 결성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반군들은 다시 우간다의 지원을 받는 콩고해방운동(MLC:Liberation Movement of Congo)으로 나뉘어져 내전의 양상은 더욱 복잡하게 얽혀지게 되었다.

특히 우간다의 지원을 받아 북부지역에서 반군활동을 벌이던 MLC반군 내에는 헤마(Hema)족과 렌두(Lendu)족이 서로간에 반목하고 있던 중, 우간다가 헤마족을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자, 헤마족은 스스로를 투치계, 렌두족은 스스로를 후투계로 인식하고 서로간에도 치열한 살육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콩고는 정부군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연합군, 친카빌라 경향을 띠는 후투족 민병대인 마이마이(Mai-Mai), 인트라하메(Interahamwe) 와 MLC, RCD가 대립하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콩고 내전 사태를 우려한 주변국들이 중재에 나서, 1999년 5월 콩고 민주공화국, 우간다, 르완다간에 정전협정이 체결되기는 하였으나, 반군들이 정전협정에 동의하지 않아 난항을 거듭하였다. 특히 콩고 남부지역의 카탕카지역은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으로 이 지역을 둘러싼 격전이 계속 되어, 다이아몬드 전쟁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2000년 2월 유엔 안보리가 콩고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평화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 하였으나, 교전 당사자들이 정전에 동의하지 않아 평화유지군의 파병이 연기되었다. 특히 카빌라는 2000년 8월 루사카 평화협정에 참여하는 것을 유보하겠다고 발표하고, 반군에 대한 총공세를 시작함으로써 평화에의 희망은 사라져 버리는 듯 하였다.

그러나 지난 1월 카빌라가 암살되고, 그의 아들 조셉 카빌라(Jeseph Kabila)가 집권하게 되었다. 그는 1월31일 유엔 평화유지군의 파병을 요청하는 등 평화협상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이어 2월에는 잠비아에서, 콩고내전 관련 6개국(짐바브웨, 앙골라, 나미비아, 우간다, 르완다) 회담이 개최되어, 관련국의 군대 철수 및 유엔 군사감시단의 전개에 동의하였다. 이로써 유엔은 교전당사자들이 현재의 전선에서 9마일을 후퇴하면, 이 지역에 유엔 군사감시단을 전개시키기기로 약속하였다.

우간다와 르완다도 일단 군대의 철수에는 동의하였으나, 앞으로 유엔의 활동에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미지수이어서, 제2차 콩고내전은 아직까지 종결된 상태라고 보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