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물연구

아고스티노 네토(Agostinho Neto)

africa club 2004. 7. 18. 20:03
아고스티노 네토(Agostinho Neto ; 1922-1979)

반식민지주의자이며 독립운동가로 독립한 앙골라(Angola)의 첫 번째 대통령이다. 앙골라 서부의 카테테(Catete)의 벵고(Bengo)에서 태어난 안토니오 아고스티노 네토(Antônio Agostinho Neto)는 음분두(Mbundu)족 출신인 사제의 아들이었다. 그는 1947년에 앙골라에 퍼져가고 있는 포르투갈의 인종차별적 문화를 멀리하고 의학공부를 위해 리스본으로 간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포르투갈에서 공부하는 모든 아프리카 학생들이 그렇듯이 앙골라의 독립을 위한 운동을 시작한다. 이러한 행위는 독재정부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파괴분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며 네토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대열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1958년에 앙골라로 돌아와 의료학원을 설립한다. 1960년에는 포루투갈 정치경찰(Polícia International de Defesa ; PIDE)에 의해 체포되고 처음에는 케이프 베르데의 산토 타오(Santo Antꐀo)로, 그 후에 포르투갈로 추방되었다.

네토는 1962년에 포르투갈에서 탈출하여 1961년에 앙골라에 급격하게 진행되었던 반식민지 혁명의 지도자가 되었다. 앙골라 독립운동에 대한 그의 지도력은 앙골라인민해방운동(Movimento Popular de Libertaçꐀo de Angola : MPLA)을 통하여 해를 거듭할수록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1975년 드디어 독립을 맞이하게 되고 네토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초기의 앙골라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을 맞게 되지만 결국 쿠바의 군사개입으로 남아공의 침략을 물리치고 승리한다.  

1976년 말에 이루어진 남아공의 철수와 동시에 앙골라인들 에게는 스스로의 문제뿐만 아니라 동서냉전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었다. 냉전이 끝나는 1980년대 말에서야 앙골라는 궁극적인 재건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비록 소련에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갖게 되었지만, 네토는 정치적으로 포로로 머물러야했고 1979년 그는 모스코바의 병원에서 숨졌다. 포르투갈에서 뛰어난 시인이었던 네토는 1974년에 최초로 탄자니아(Tanzania)에서 시집을 창작발행 하였으며, 그 해에 Sacred Hope 라는 제목의 영어 번역본으로 출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