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민주화되고 인권문제도 점차 아프리카 대륙에 정착되면서 호모와 레즈비언과 같은 동성애 문제들이 아프리카와 같은 보수적인 사회들과 충돌하는 장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무가베(Rovert Mugave) 대통령과 같은 많은 아프리카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동성애는 '비자연적, 비아프리카적 그리고 서구 식민지 사람의 수입품'이라고 믿는다. 아프리카 문화에 동성애와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활동의 형태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민족학자 프리트차드(E.E Evans-Pritchard)는 아프리카의 여성과 남성 모두 동성애들이 존재했었으며 특히 군대 내의 남자들 사이에서는 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19세기 중엽 여성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성의 충동들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뿐만 아니라 전사들 사이에서 친교와 충성을 창조하기 위해서 줄루 왕 샤카의 유명한 용사들 사이에서도 성안에서 교전이 벌어지기 전 격려의 차원에서 젊은 남자들에게 동성애를 허용하기도 하였다. 르완다와 우간다 왕국에서도 동성애 행동은 존재하였는데 특히 왕의 법정에서 매우 흔했다. 이와 같은 행위들에 대해 서구인들은 아프리카 지배하에서 그것을 비난했는데 특히 선교사들은 야만인으로 표현했다.
남아공에서의 레즈비언 여성들은 종종 전통적 치료자들로 여겨진다. 그들의 차이점은 그들에게 초자연성에 특별한 결합이 주어진 것으로써 보이지 않으며, 그들의 치료자의 위치는 그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들이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도 됨을 허락한다.
많은 서 아프리카 사회에서 그 중에서도 특히 가나의 판티족과 세네갈의 웰로프족들은 이성의 옷을 입거나 복장도착이 내려오는 전통이 있다.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 도시에는 수 십년 동안 우비스(woubis ; 여장을 좋아하는 호모) 사회가 있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북아메리카 인디안의 키테샤(kitesha)로 알려진 복장도착은 자웅동체의 성인 제 3의 성이 있다고 믿었다. 남아공 서부 만에 초기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크레올 케이프 칼라드(Creole Cape Coloured) 사회에는 복장도착의 전통이 있다. 남자들 사이의 결혼은 19세기말부터 남아공 도시들에로 몰려든 이민 노동자들 사이에서 흔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회들은 종종 암암리에 동성애자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법은 일반적으로 그들을 차별 대우한다. 국제 호모와 레즈비언 인권 위원회에 따르면 대부분아프리카 국가들은 동성애의 행동을 법률로 금한다. 예를 들면, 나이지리아의 형법 214조에는 자연의 이치에 반해서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사람에게는 최고 14년의 투옥을 부과한다 ; 케냐, 보츠와나, 잠비아 그리고 우간다도 유사한 법률들을 근거로 동성애를 금지 하고있다. 이러한 금지들에 관한 중요성은 그들이 영국 식민지 법으로부터 차별하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동성애는 대륙의 식민지화가 성행되는 동안 동성애에 대항하는 형식적인 금지들의 대부분이 사실상 '식민지 수입'이었다. 북부 무슬림 사회 정부에서의 샤리아(sharia) 법들, 이전 영국 식민지들 대부분 정부의 형법과 아프리카대륙의 공식적인 반 호모 감정의 근원인 동성애에 반대하는 강력한 기독교 학설들이 그것이다.
서유럽에서 젊은 동성애자들 특히 도시에 거주하는 '호모' 또는 '레즈비언'인들은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요 대도시인 아크라, 아비장, 다카르, 라고스, 나이로비, 하라레, 요하네스버그, 케이프 타운과 같은 도시들에서는 호모와 레즈비언의 공동체들이 발전하고 있다. 남아공에서 이 공동체들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 정부하에 더 발전하고 있다. 남아공은 특히 성의 본능의 기본을 기소대상에서 제한하는 무법자 세계의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 1996년 5월 정부 집권당인 아프리카 국민회의(ANC)의 회의 8절을 살펴보면, "나라든 사람이든 인종, 성, 성별, 이념, 인종 혹은 사회 기원, 피부색, 성의 본능, 나이, 무능력, 종교, 양심, 신념, 문화, 언어, 생명을 포함한 한 나라 혹은 많은 나라들에 대항한 것에 대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불합리하게 기소가 되는 대상에서 이를 제한한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1994년에 만델라 대통령은 스스로 케이프 타운에서 취임 연설 때 성의 본능의 기초에 기소 대상 제외는 묵인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국민회의는 만델라의 후계자 타보 음베키(Thabo Mbeki)를 포함해서 평등화 운동을 하는 호모들로서 인간의 권리는 동등하고 불가분하다고 설득했다. 헌법의 조항은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 남아공에서는 동성애의 실행이 비합법적이고 없애버려야만 한다는 것에 대항하여 비역 범죄 혹은 기소 대상에서 제하기 위해 만든 모든 법들은 1998년 5월에 법제화했다. “동성애의 표현”요한네스버그 대법원에서 조나단 헤허는 판결을 썼다. “이성애의 동등함이 정상적이므로 같은 관용과 존경에 권리가 주어진다.”
획기적인 사건의 판례들에서 대법원의 판결들은 레즈비언 엄마가 그녀의 아이(그녀로부터 사회복지 시설에서 데려간)를 기를 수 있음을 법제화했다. 입법적인 도전의 기대에서 생명 보험 회사의 채용 대리점으로부터 기관 신분은 호모들에게 평등을 주기 위해 그들의 정책들을 개정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남아공은 호모의 메카로 아프리카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남아공 역사의 인종 격리 정책(Apartheid)이 있었음에도 흑인 호모와 백인 호모의 신문화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다. 서유럽과 결합된 그 거대한 백인 인구 유입으로 인해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 타운과 같은 지역들에는 백인 호모 신문화가 오래 전부터 활동이 있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흑인 호모 공동체들이 도시에서 발전했다. 예를 들면 요하네스버그에는 300개가 넘는 동성애 모임을 가진 '희망과 조화의 대주교 사회 교회'인 활기찬 흑인 호모 교회를 가진 것을 자랑한다. 남아공 흑인 호모 운동의 대표자는 1986년 반역죄와 함께 남아공 혁명의 몇몇 지도자를 비난했던 정치 활동가 시몬 은콜리(Simon Nkoli)가 있다. 호모 활동가와 인종 차별 정책 반대자로서 그의 맡겨진 역할은 남아공 호모를 위한 평등 획득을 원하는 것이었다.
남아공의 훌륭한 호모 공동체 정착을 계기로 나미비아, 보스와나, 짐바브웨, 스와질란드, 심지어 케냐와 같은 나라에서 호모들이 그들의 권리를 위해 법안 통과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남아공과는 반대로 이 나라들은 탄압과 억압으로 대항했다. 많은 예에서 교회는 호모 행동주의에 대항하는 방어 벽이었다. 남아공은 많은 현저한 교회 지도자들이 호모 평등을 강하게 지지한 유일한 나라이다. 특히 현재 교회에서 호모 목사를 규정하는 운동의 세계 대표인 영국 국교의 대주교이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주교가 그 대표적 예이다. 1998년 투투주교는 호모와 레즈비언에게 "최종적인 모독은 그들이 신의 자녀임을 의심하는 것이다"와 "인종 차별 정책의 승리 후에 교회가 가치 있는 개혁 운동을 찾는다면, 이것동성애 공포증과 이성애주의에 대항한 다툼이다" 라고 썼다.
이것은 스와질란드 교회 연맹의 지도자인 아이삭 달라미니(Isaac Dhlamini)의 말과는 아주 다르다. 그는 "동성애자들은 신을 싫어한다. 성경에 따르면, 이들은 쓰레기통에 던지워질 사람이다. 성경은 그들이 사라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라고 주장한다. 나미비아에서 무지개 연합인 호모 모임이 1996년 형성된 이후 삼 누조마(Sam Nujoma) 대통령은 "동성애자들은 나라 안에 자리가 없다"라고 여성 동맹에게 말했다. '서남 아프리카 인민 기구의 법' 단체의 공식적인 성명은 "관습으로 동성애를 모두 근절시키자. 우리의 선조로부터 수 백년 동안 물려받은 우리의 문화와 도덕적 가치들을 소생시키자. 우리는 외국의 부도덕적 가치들과 함께 우리 인간의 정체성을 위험하게 하지 말아야만 한다" 라며 동성애를 비난했다.
이것은 1995년에 선언한 짐바브웨 대통령 로베르트 무가베(Rovert Mugabe)에 의해 사용된 유사한 의견이다. “동성애는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린다. 그것은 비자연적이고 개와 돼지보다 더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임이 확실하다. 개와 돼지가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왜 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우리가 만든 우리의 전통적 가치들을 우리 스스로 회복해야만 한다.”이러한 주석들은 짐바브웨의 호모와 레즈비언(GALZ)인 호모 기구의 인정에 대한 짐바브웨 정부의 거절에 따른 국제적인 관심 후에 주제가 “인간의 권리”였던 짐바브웨 국제 책에 출품했다. 무가베의 견해에 따르면 정부는 흑인 호모를 몰아내기 위해 '반 호모 법'들을 전략적으로 전개했다. 때로 무가베는 그의 정적을 제거하는데 부도덕적인 '동성애'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남아공을 제외하고 동성애에 관용적인 국가들은 적은 편이다. 특히 식민주의 하에서 받아들인 기독교와 이슬람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남아공은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 타운 등을 중심으로 서구적인 동성애의 축제를 벌일 만큼 그들의 권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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