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각국의 식민지정책
흑아프리카의 식민기간은 약 70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기간 중 초반의 약 30년 동안은 설립의 시대로, 그 다음 30여년 동안은 적극적인 발전기로, 그리고 나머지 10여년 간은 후퇴기로 규정하고 있다. 이 식민 기간을 통해 유럽 식민제국들은 식민화를 시작한 다음 부터는 정치적 지배를 위한 여러 다양한 전략을 택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볼 때 영국의 식민정책은 간접통치(indirect rule) 방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반면 프랑스 식민정책은 동화정책(assimilation rule)에 의해 이루어 졌다.
일반적으로 영국방식은 간접통치라 하여, 통치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백인 행정관의 수를 줄이고, 대신 아프리카인(人) 수장 측을 행정 말단에 편입시켰다. 또 초기에는 백인만으로 구성되었던 총독 밑의 행정심의회, 입법심의회에 아프리카인 수장 측을 배치시켜 아프리카인의 근대정치에 대한 적응 훈련을 베풀었다. 간접통치의 창안자인 루가드(L. Lugard)는 간접통치의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간접통치는 토속 족장들을 위한 통치이며, 이들 족장들은 식민정부에 의해 그리고 법에 의해 인정된 기능과 권위를 가진 정부 기구의 통합된 부분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들은 식민 총독관리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는 않는다...... ".
이러한 원칙은 단순히 족장들을 이용한다는 의미 이상의 보다 더 넓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원칙은 영국인의 정치 문화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영국은 실용주의적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들간의 문화적 차이를 용인하고 있었기때문이다.
이에 비해 프랑스방식은 동화정책(同化政策)이라 하여 프랑스문화를 식민지에 보급하고, 아프리카인을 개화시켜 동화, 흡수하려는 것이다. 동화장책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성을 띄고 있다. 루이스(M.D.Lewis)는 이것을 크게 7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프랑스의 주요한 식민정책으로서의 동화. 둘째, 협동정책으로 대체된 정책으로서의 동화. 셋째, 자치를 반대하는 동화, 즉 위임정책이 아니라 동합정책으로서의 동화. 넷째, 법적 정의로서의 동화, 즉 식민 모국의 의회로서의 대표성. 다섯째, 문면화로의 동화. 여섯째, 인종적 평등성을 대표하는 동화. 일곱째, 직접식민통치의 고도화된 중앙집권식 형태로서의 동화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인 중에는 프랑스 문화를 몸에 익힌 일부 엘리트 (동화인) 와 대다수의 비동화인이 있었으며 프랑스는 동화인에 대해서는 본국인과 대등하게 취급했다. 또, 벨기에방식은 온정주의(溫情主義)라 하여, 아프리카인을 어린애로 다루었고 본국 식민성의 힘이 컸으며, 식민지 행정은 안정될 때까지 벨기인이 전담했다. 그 대상으로 복리후생시설 등의 보호조치를 취하기는 하였으나 아프리카인의 정치적 권리는 전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흑아프리카의 식민기간은 약 70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기간 중 초반의 약 30년 동안은 설립의 시대로, 그 다음 30여년 동안은 적극적인 발전기로, 그리고 나머지 10여년 간은 후퇴기로 규정하고 있다. 이 식민 기간을 통해 유럽 식민제국들은 식민화를 시작한 다음 부터는 정치적 지배를 위한 여러 다양한 전략을 택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볼 때 영국의 식민정책은 간접통치(indirect rule) 방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반면 프랑스 식민정책은 동화정책(assimilation rule)에 의해 이루어 졌다.
일반적으로 영국방식은 간접통치라 하여, 통치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백인 행정관의 수를 줄이고, 대신 아프리카인(人) 수장 측을 행정 말단에 편입시켰다. 또 초기에는 백인만으로 구성되었던 총독 밑의 행정심의회, 입법심의회에 아프리카인 수장 측을 배치시켜 아프리카인의 근대정치에 대한 적응 훈련을 베풀었다. 간접통치의 창안자인 루가드(L. Lugard)는 간접통치의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간접통치는 토속 족장들을 위한 통치이며, 이들 족장들은 식민정부에 의해 그리고 법에 의해 인정된 기능과 권위를 가진 정부 기구의 통합된 부분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들은 식민 총독관리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는 않는다...... ".
이러한 원칙은 단순히 족장들을 이용한다는 의미 이상의 보다 더 넓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원칙은 영국인의 정치 문화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영국은 실용주의적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들간의 문화적 차이를 용인하고 있었기때문이다.
이에 비해 프랑스방식은 동화정책(同化政策)이라 하여 프랑스문화를 식민지에 보급하고, 아프리카인을 개화시켜 동화, 흡수하려는 것이다. 동화장책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성을 띄고 있다. 루이스(M.D.Lewis)는 이것을 크게 7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프랑스의 주요한 식민정책으로서의 동화. 둘째, 협동정책으로 대체된 정책으로서의 동화. 셋째, 자치를 반대하는 동화, 즉 위임정책이 아니라 동합정책으로서의 동화. 넷째, 법적 정의로서의 동화, 즉 식민 모국의 의회로서의 대표성. 다섯째, 문면화로의 동화. 여섯째, 인종적 평등성을 대표하는 동화. 일곱째, 직접식민통치의 고도화된 중앙집권식 형태로서의 동화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인 중에는 프랑스 문화를 몸에 익힌 일부 엘리트 (동화인) 와 대다수의 비동화인이 있었으며 프랑스는 동화인에 대해서는 본국인과 대등하게 취급했다. 또, 벨기에방식은 온정주의(溫情主義)라 하여, 아프리카인을 어린애로 다루었고 본국 식민성의 힘이 컸으며, 식민지 행정은 안정될 때까지 벨기인이 전담했다. 그 대상으로 복리후생시설 등의 보호조치를 취하기는 하였으나 아프리카인의 정치적 권리는 전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