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일반

아프리카 정치 - 아프리카에는 미래가 있는가?

africa club 2001. 10. 22. 19:24

아프리카의 현대사는 전쟁과 쿠테타, 인권 유린 등 피로 얼룩진 역사를 이어왔다. 이런 아프리카에 희망이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지난 과거에서 역사적 교훈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이 겪어 온 현대사(특히 60년을 정점으로 한 탈 식민 지배 이후)를 돌아 보건대 유럽식/서구식 민주주의 체제 혹은 동유럽식 사회주의체제는 아프리카 토양에 맡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각국에서 실천해 온 유럽식 민주주의, 다당제, 사회주의식 일당체제 등이 거의 예외없이 실패를 했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다시 말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갈등과 가난, 민주화에 대한 끝없는 진통 등은 탈 식민 국가들이 유지하고 있는 정치 체제가 더 이상 존속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탈 식민 국가들은 외부로부터 조건이 지워진 국가이다. 이 국가 형태는 식민 지배의 잔재로 남아 있는 정치 체제로 그 성격이 식민 지배로부터 이어져 내려 온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착취적인 형태이다. 따라서 이것은 대다수의 민중을 생각하기 보다는 일부 지배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형태의 조직이라는 것이다. 이 지배 엘리트들은 간혹 서양의 지배 세력보다 더 잔혹하게 아프리카의 대중을 착취하고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서방 국가들이 아직도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독재 정권을 이용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98년 자이레의 모부투 세세 세코를 축출하기 위해 반군인 카빌라 세력에 많은 량의 군사 무기를 조달해 준 미국의 경우가 그렇고 아프리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에 유럽 국가들이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중 아프리카의 내정에 깊숙이 간섭한 예로는 95년 나이지리아의 군사 정부에 반기를 든 사로-위와를 비롯한 사회 운동가를 아바챠가 극형에 처한 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쉘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세계 제 6위 석유 생산 국가인 나이지리아의 눈치를 보느라 인권 운동가 사로-위와의 처형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초국적 석유회사인 쉘(shell)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국제 사회에서 아바챠가 이끄는 나이지리아 정부에 대한 금지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로비를 해왔다.
사실 사로-위와를 비롯한 행동가들은 오고니랜드의 상대적인 저발전, 가난 그리고 석유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에 대한 저항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오고니랜드에서 생산된 석유 수입의 일정 부분을 오고니랜드에 재 투자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나이지리아의 분열을 촉진하는 행동으로 이해됐으며 사로-위와 등을 정부의 전통 지도자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해 사형에 처했다. 이에 대해 쉘 등 초국적 기업과 국제 사회는 자사와 자국의 이해 관계를 우선 생각해 아바챠의 손을 들어 줬던 것이다. 이 사건은 서방 국가나 초국적 기업들이 아프리카의 정치와 경제에 얼마나 깊이 개입해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식민 지배 이전의 아프리카 사회는 문화적으로 다양했으며 정치 형태도 중앙 집권 체제를 가지지 않고 떠도는 분산 정치 체제로부터 중앙 집권체제를 갖췄지만 근대 국가의 중앙 정부와는 다른 정치 양식을 보여준 사회 등 다양한 정치 제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식민 이전의 정치 형태는 일정한 규모의 시민과 울타리 쳐진 영토 그리고 정부의 효율적인 통치를 갖춘 제도화된 국가와는 달랐다. 다양한 문화를 기반으로 한 아프리카 사회의 국경은 상상적이었고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의해서 국경을 건넜다고 해서 그것이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1884/5의 베를린 회의는 이러한 아프리카의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경직화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이 회의에 참석한 서방 국가들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임의적인 국경 분할, 부족의식 등을 도입했다.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보고 있는 집단 학살, 국경 분쟁, 내전, 분리 독립 등이다.
식민 정부는 이중적인 식민 교육을 통해 아프리카를 식민지배했다. 첫째 일부 전통 지도자를 서구식 엘리트 집단으로 변모시켰다. 이들에게는 국가 운영의 책임을 일부 할당하면서 유럽화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이와 반대로 대다수의 민중에게는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보다는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결과 탈 식민 국가에서는 민족주의라는 가식적인 이데올로기 아래 기득권을 누려왔던 엘리트(군부를 포함)를 중심으로 유럽식 헌법 제도와 대도시 건설, 규육, 법, 경제 분야 등을 모두 서양식 모델을 설립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 대안적인 발전 모델...

1) 네그리튜드(Negritude)
2) 흑인 의식운동(Black consciousness)
3) 아프리카 르네상스(Afrocam Renaissance)
4) 아프리카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frica)
5) 전통적인 정치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