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침략과 저항사

영국의 점령과 반발 - 이체키리의 나나 올루무(Nana Olumu), 1883-94

africa club 2001. 11. 21. 14:05
이체키리의 나나 올루무(Nana Olumu), 1883-94
나나 올루무는 1883년 이체키리의 총독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유럽인들을 열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다루기로 결정했다.  그는 나폴레옹 1세의 외교정책을 연상시키는 무력의 사용, 우정 그리고 동맹결혼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우호보스(Urhobos), 자미슨(Jamieson), 에티오페(Ethiope) 그리고 와리(Warii)족들을 그의 무역제국으로 병합시켰다.
그가 이 지역을 통제하는 것을 시기하고 있던 영국은 1885년에 그에게 보호조약을 제의하였다.  나나는 조약에 서명했으나, 그의 제국에서의 영국 무역업자들의 상업적 우대의 항목을 생략하였다.  무어인영사와 무역업자들이 나나가 베넹강과 와리족 주민들에 의해 그 지역의 유일한 권력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였기 때문에 영국은 나나의 권위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그 제국에 분규를 일으키기 위해 도레 누마(Dore Numa)의 도움을 받았다.  나나는 영사의 초대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으며, 1894년 무어휘하의 원정대가 파병되었다.  그의 사령부인 에브로히미(Ebrohimi)가 점령되었는데, 영국은 여기에서 미완성된 운하와 정교한 종류의 군수품들을 발견했는데 이는 나나의 근대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체키리의 총독은 라고스의 영국총독에게로 피신했는데, 그는 니제르해안보호령의 지방장관에게 그를 인도하였다.  그는 소년들을 노예로 이용한 것과 영국회사의 무역로를 막은 혐의를 받았다.  그는 유죄판결을 받아 아크라로 추방되었다.  망명중 베넹강과 황금해안에서 나나를 알게된 죠지 네빌(George Neville)은 1915년 그의 파멸을 애도하였다.
'위대한 조직자인 그의 자리를 메꿀 사람이 없다 ; 그리고 비록 그의 석방의 조건에 따라 행동하고 받아들였지만 , 조국을 발전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 그의 조국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슬픈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