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에이즈 치료와 대책
지난 1996년 유럽과 미국에서는 81년 에이즈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후 에이즈 연구 사상 가장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 그 결과 확실한 사형선고로 받아들여지던 에이즈가 여전히 치명적이긴 하지만 고가의 치료법이 개발됨에 따라 사망자 수가 감소하게 되었다. 즉 96년 미국에서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 감소했으며 97년 서유럽의 신규 감염자 수는 30% 감소했다. 그러나 이제 서구에서도 바이러스 감염의 대상과 경로에 있어 아프리카의 양상을 닮아가고 있다. 동성애로 인한 에이즈 감염이 많았던 서구 사회에 이성간의 성접촉으로 인한 에이즈 감염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에이즈는 아프리카에서 맹위를 떨치는 다른 질병들과는 달리 서구인들에게도 전염되기 때문에 서구의 여러 제약 회사들이 에이즈 퇴치用 약품 개발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의사들은 ?트리플 칵테일?이라고 알려진 抗레트로바이러스성 제제 복합요법으로 에이즈 환자를 10년 정도 생존케 할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현재 미국과 서유럽 각국, 호주와 뉴질랜드도 이 치료법의 혜택을 받고 있다. 에이즈 진단을 받은 뒤 사망할 때까지 많게는 12만 달러의 비용이 드는 이 약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남자 동성연애자들이 대다수지만 미국에서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보조 프로그램 덕택으로 극빈 여성 환자에게까지 공급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약품들이 경제적으로 빈국이 대부분인 아프리카나 개발도상국에서 사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비싼 약값도 문제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제약회사들이 가난한 나라에 약을 기증한다 해도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치료법은 때로 복잡하기도 하며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세심한 체크와 정기적인 의료 검진이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절한 방법으로 투여되지 않을 경우 바이러스의 내성만 높여 약이 무력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의료비가 10달러 미만인 나라가 대다수인 아프리카의 병원들은 의사가 부족하거나 아스피린 같은 기본 의약품마저 부족한 경우가 흔하다.
미국 국제개발처 우간다 지국의 에이즈 전문가 엘리자베스 머룬은 에이즈 학자들은 단 한 잔의 맑은 물로 에이즈 치료가 가능하다 해도 아프리카의 대다수 HIV 감염자들은 병을 고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99년 11월 케냐가 "에이즈 때문에 국가존립이 흔들린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남아공에서도 공중 의료기관들이 환자 치료를 사실상 중단했는데 병원으로 찾아오는 에이즈 환자들을 그냥 돌려보내고 있다. 막대한 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의사들에게 입원 환자 중 일부를 포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나마 아프리카에서는 부유한 국가에 속하는 남아공의 에이즈 참상(慘狀)도 상상을 초월한다. AZT와 같은 치료제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진료를 받기도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부모로부터 천형(天刑) 을 물려받은 어린이들에게도 단 한번의 진료만 허용된다. 환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의료시설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확인된 에이즈 감염자만 인구의 10%인 4백만명에 이른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병원들은 모든 예산을 에이즈 치료에 쏟아 붓는 등 자구노력을 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연구비용을 줄이고 가망 없는 환자들을 조기 퇴원시키면서 인건비 절감을 위해 환자 가족들의 손까지 빌리며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주택건설, 교육 등에 소요되는 예산을 대부분 에이즈 치료비로 돌리고 있지만 경제규모 자체가 미미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남아공은 1997년 보건예산으로 34억달러(약 4조원)를 책정했다. 4천만명의 인구를 감안하면 1인당 85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엄청난 비용과 장기간의 치료를 요하는 에이즈에 대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새로운 치료약이 개발됐지만 선진국도 감당 못할 만큼 가격이 비싸 개발도상국 환자들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강력한 에이즈 치료제가 최근 새로이 개발됨에 따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빈부격차만 오히려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HIV/에이즈 계획(UNAIDS)은 전세계 에이즈 현황에 대한 실사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연구보고서는 전세계 에이즈 감염자 90% 이상이 빈곤으로 값비싼 이 치료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어두운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유엔은 올해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수가 1백 50만 명에 이를 것이며 어린이 1천 명을 포함한 8천 5백 명의 새로운 HIV감염자가 매일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세계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개발도상국들이 언제쯤 그들의 경제여건에 맞는 에이즈 치료법의 혜택을 받게 될지 그런 날이 오기는 할지 의문시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호평받고 있는 효과적인 약물요법에 드는 환자 한 명당 비용은 1년에 최고 2만5천 달러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비용은 선진국에서도 대단한 액수이니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일례로 이 약 1주일 치를 사려면 태국 보통시민의 1년 수입을 몽땅 털어야 한다. 또 인도 국민의 평균 연간수입 2백 70달러는 1주일 치 약값도 채 안 된다.
대다수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HIV 감염자들에게 약물요법을 실시하려 해도 재원이 없는 실정이다.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들의 국민 1인당 연간 보건경비가 10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아프리카에서 부유한 국가에 속하는 남아공(南阿共)에서도 모든 에이즈 감염자에게 치료를 실시하자면 국가예산의 3분의 2를 투입해야 된다.
따라서 값비싼 치료법보다는 예방과 홍보에 에이즈 관련 예산을 쓰는 것이 지금으로선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공중 보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재까지 태국?인도 등지에서의 에이즈 캠페인은 에이즈의 확산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했다. UNAIDS의 보고서에 의하면 에이즈가 개발도상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제시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 지역: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에서는 전세계 HIV 감염자의 59%에 이르는 1천4백만 명이 감염돼 있다. 말라위의 감염자 비율은 일곱 명 중 한 명, 잠비아와 짐바브웨는 여섯 명 중 한명 꼴이 넘는다. 남아공에도 2백만 명 이상의 HIV 감염자가 있다. 여성의 감염률은 유난히 높다. 자이르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절반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시아 지역: 태국에서는 80만명 가량이 HIV에 감염돼 있으며 90년대 말까지는 그 수가 1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도 감염자 수가 태국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베트남은 30만, 필리핀은 9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남미 지역: 카리브해 연안 지역은 HIV 감염률이 1.7%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브라질과 멕시코의 감염자 수는 중남미 지역 감염자 1백30만 명의 70%를 차지한다.
구동구 공산권: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를 비롯한 이 지역 국가들은 에이즈의 새로운 위험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 매춘과 마약복용 급증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에이즈 퇴치를 위한 진정한 해결책은 지금까지는 궁극적으로 백신 개발밖에 없다. 예방교육이 효과적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만으로 1백%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에이즈 문제의 해결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어느 곳에서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유엔 보고에 따르면 백신 연구에 배정되는 경비는 전체 에이즈 연구비의 1%에 불과하다.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 개발된 에이즈 치료제는 선진국의 의사와 환자들에게 에이즈에 대한 인식과 대처에 있어 보다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게 하였다. 에이즈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다음 과제는 이러한 치료법이 보다 광범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직은 요원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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