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 종식은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의 정착이 관건이다.

2018. 5. 15. 17:53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지금 현재 동부 지역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동맹민주군(Allied Democratic Forces : ADF)이 무장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이 조직은 우간다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으로 수단의 지원을 받는 우간다 무슬림이 중심이 되어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지역과 우간다 국경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 고마에서 작전중인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c/FARDC_and_MONUSCO_reinforce_their_presence_in_and_around_Goma_following_a_second_day_%2821_May_2013%29_of_clashes_between_M23_and_National_troops._%288782972992%29.jpg



콩고민주공화국의 분쟁은 이웃 국가의 정치상황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 정착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은 내전과 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반군이 모두 진압되었다고 하지만 자원 확보와 지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웃 국가의 영향력이 언제든지 콩고민주공화국을 내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이웃한 르완다, 부룬디의 후투족 대 투치족의 대결 구도와 연계되어 있고, 종족간 대립이 깊어 질대로 깊어져서, 양 종족간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실정이다.


2017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상황은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 대통령인 조셉 카빌라(Joseph Kabila) 대통령은 2차례 연임을 하였으며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3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 선거가 20161127일 예정되어 있었으나, 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현 대통령인 조셉 카빌라 대통령의 임기가 연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적 불안정, 예를 들어 동부 지역의 반군활동이 활발해지거나 예기치 않은 소요사태로 인해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선거가 치러지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집권이 연장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러한 사태를 맞지 않고도 카빌라의 대통령 직이 연장되는 결과를 맞고 있다. 이미 콩고민주공화국의 선거관리위원회(Commission Électorale Nationale Indépendante: CENI)2016929일 대통령 선거를 2018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헌법재판소 역시 선거연기를 공포하였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콩고민주공화국의 선거는 20184월에서 7월 사이에 치러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야당과 국민들의 반발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으며 콩고민주공화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카빌라 현 대통령은 2016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 않고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 국내정치를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웃나라인 부룬디가 정치적 불안정을 이유로 대통령 선거를 미루고 대통령이 계속해서 정권을 이어가고 있는 사례를 학습하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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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의 냉전은 긴밀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발생한 지역분쟁이었다.

2018. 4. 20. 13:26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탈냉전시기에 아프리카는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했으며 아프리카 국가의 군사개입이 발생하여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생한 내전은 대표적인 사례로 아프리카의 제1차 세계대전(Africa's World War I)이라고 부르고 있다. 2002년 앙골라, 나미비아, 짐바브웨는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측에서 싸웠고, 르완다와 우간다는 반군편에서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키고자 했다.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 군사를 파병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역적 역학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잘 보여 준 사례였다. 냉전시기에는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했으나 탈냉전시기에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지역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이해관계가 중요한 요인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1994년 르완다에서 발생한 인종학살은 콩고민주공화국을 비롯한 중부 아프리카지역에서 민족 집단의 대이동을 야기하였고 이는 곧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1959년부터 1963년 사이 르완다의 정치적 불안정은 투치족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이때 난민으로 르완다를 떠난 투치족들은 거의 30여 년 동안 르완다에 돌아가지 못했으나 르완다의 투치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롤랑 카빌라는 투치족의 지원을 받아 1997년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1980년대 우간다로 들어간 투치족은 무세베니(Yoweri Museveni)가 이끄는 국민저항군(National Resistance Army : NRA)에 합류하여 밀톤 오보테(Milton Obote)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후 무세베니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우간다 군에 합류했다. 이후 우간다의 지원을 받아 르완다애국전선(Rwandan Patriotic Front : RPF)을 만들어 르완다를 침공하여 후투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1990년에 RPF는 르완다를 공격하였고 결국 19938월 권력분점에 합의하여 아루샤 평화협정(Arusha Peace Agreement)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평화협정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9310월 부룬디의 후투족 대통령 은다다예(Melchior Ndadaye)가 암살되면서 부룬디에서 투치족이 살해당했고 이어 후투족도 살해당했다. 이후 르완다 후투족 출신 대통령인 하비아리마나(Juvenal Habyarimana)와 부룬디의 후투족 출신 대통령인 은타리야미라(Cyprien Ntaryamira)가 탄 비행기가 199446일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공격으로 키갈리 공항에서 착륙 도중 격추되어 사망하면서 르완다의 후투족 과격파들은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에 대한 살육을 시작했다. 19944월부터 7월 사이에 약 100만 명이 살해되는 인종학살이 발생했다.


이후 RPF는 르완다에 진입하여 후투 과격파 정권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후투족 200만 명이 망명길에 올랐다. 역사적으로 과거 30년간 투치족이 이웃 국가로 피난하였으나 1994년 인종학살은 후투족을 난민으로 떠나게 하였다. 1994년 이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들어간 후투족은 르완다 RPF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정치조직화 하면서 르완다 뿐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의 지역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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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 분쟁 (2013.10.10)

2015. 3. 14. 23:26

<아프리카의 발전, 국제사회의 노력에서 나와>

 

지리교육과 2013190304 정희주

 

세계은행(WB)에서 10월 7일(현지시간) 발표한 반기 경제 보고서에 의하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각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5.1%에서 5.3%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올해 1.5%의 경제 성장률인 미국에 비교해보면 매우 긍정적이다. 또한 WB는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성장 속도에 비해 빈곤율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아프리카가 이렇게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 안정에 있다. WB에 의하면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은 내수에서의 빠른 성장 덕택인데 정치적 안정이 경제적 투자확대와 생산성 확대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수많은 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2013년 7월 12일  politicsweb는 알카에다 반군이 콩고의 동부 마을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또한 10월 8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신, 구 권력간 무력 충돌로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행해지고 있는 1인 장기 집권도 문제가 된다. 지도자가 국민에게 쓰여야 하는 돈을 독식하는 할 수 있고, 그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 하나가 그 국가에 큰 피해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난국 속에서 아프리카가 경제적 성장은 어렵다.



아프리카 안의 정치적 불안정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의 경제, 정치 등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국제 사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실행하고 있다. 먼저 미국은 10월 5일(현지시간) 소말리아와 리비아에서 전격적인 대(對)테러작전을 수행하였다. 테러를 일으키는 주범들을 제거함으로써 평화로운 국제사회를 만들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테러범에 접근하는 기술이 향상될수록 테러범들의 보안 능력도 향상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관계는 평행선상을 달릴 수 있다. Business day 2013년 10월 8일자를 보면,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케냐에서 일어난 유혈사태에 대해서 키바키 케냐 대통령과 라일라 오딩가 총리, 또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 체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유혈사태가 키바키와 오딩가가 출마한 대선의 부정 선거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시비비를 따져 한쪽의 사람만 체포될 경우 오히려 서로간의 분쟁이 더 커질 위험이 있다.



그럼 아프리카의 정치적 불안정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매스컴을 통해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감시하는 것이 답이 있다. 독재를 하거나 각 부족 간, 다른 종교간 분쟁이 발생하는 내면적 이유는 권력의 단맛과 경제적 이득이다. 자신이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고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을 위해 벌이는 분쟁들은 그들에게 부와 권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제3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크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경우를 살펴보자.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광산의 다이아몬드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총기를 판 기업의 손에 넘어갔다. 분쟁이 가지고 오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에게 알릴 필요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국제사회는 공신력있고 영향력이 큰 전달 매체들(다큐, 신문, 뉴스 등)을 통해 아프리카 사회에 대해서 비판하고 그들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가 원조 형태로 나가는 교육부분에 대해서도 언어, 수학 등 이러한 부분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상황들에게 대해서도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배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자료출처>

1.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10095451g

2.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801783

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522512

4. http://www.bizwatch.co.kr/?smode=referer&uid=2540&datatype=

5. http://www.politicsweb.co.za/politicsweb/view/politicsweb/en/page71639?oid=414961&sn=Detail&pid=71639

6. http://www.iol.co.za/news/africa/congo-attack-stirs-ugandan-fears-1.1546238#.UlT-MFCpUsY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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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akula는 독립선거위원회(IEC)의 회장이다. 현재 Tlakula는 광산 물류 회사의 직원인 Thaba Mufamadi와 열애설에 싸여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공공 시설인 독립선거위원회 건물을 Thaba Mufamadi에게 임대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공직자로써 공적인 업무로 사용해야하는 공공기관을 개인의 이득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연결고리는 다른 사실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녀는 광산물류회사의 지분은 20%정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녀가 부정하게 비리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심회시킨다. 이는 청렴하게 공직을 하겠다는 그녀의 과거의 말과 불일치하는 것이며 이번 스캔들을 통해 남아프리카에서 그녀의 영향력이 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출처> : http://www.bdlive.co.za/opinion/cart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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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리카] 정치분쟁 종식 동의안에 서명한 레소토 지도자들. 레소토

2015. 3. 8. 22:37


본 게시물은 생생한 아프리카 소식을 전달하는 아프리카 뉴스 전문 프로젝트 블로그, 

잠보리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http://blog.naver.com/jamborica/220191965749





http://allafrica.com/stories/201410030519.html

정치분쟁 종식 동의안에 서명한 레소토 지도자들

 

 

레소토 연립 내각의 정당들은 목요일에 마세루 협력 선언(Maseru Facilitation Declaration)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현 토마스 타바네(Thomas Thabane) 정부에 대한 타도 계획 등

(현재 발생하고 있는) 정치적 긴장상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조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부통령인 시릴 라마포사(Cyril Ramaphosa)의 중재와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outhern African Development Community)의 통제 하에 이루어진 협정의 조약들은

중단된 의회의 개최와 내년에 있을 선거의 기반을 닦기 위한 법제정부의 11월 해산 또한 포함한다.

선거위원회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9개의 정당들이 협정에 동의하였다.

9개의 당에는 연립정부를 세운 3개의 당들과 반대하는 나머지 6개의 당들이 포함되어 있다.

"의회는 20141017일에 국가 원수 레트시에 3(King Letsie III)에 의해 다시 개회될 것이고

국가총선거는 20152월 말 그가 정한 날짜에 시행될 것입니다." 총리 대변인인 Thabo Thakalekoala가 발표했다.

"의회는 국가총선거를 치룰 준비를 하기 위해 201412월초에 해산될 예정입니다.

1017일부터 해산되기 전까지 의회의 절차는 절대적으로 총선거에 필요한 예산안과

다른 선거 관련한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데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정당들이 협정에 동의하기 전에 남아공 부통령인 시릴 라마포마와 중장 Tlaki Kamoli이 만났었다고 Thakalekoala는 말했다.

Kamoli는 연합정부의 타도 계획을 지휘한 것으로 혐의를 받아왔지만 그는 부정하였다.

"그 만남은 국가가 직면한 보안 문제와 우려들을 고심하기 위해 다음주에 그가 레소토에 단독으로 올 때 열릴 일련의 회담과 회의들을 위한 기반을 닦아 주었습니다." Thakalekoala가 말했다. 타바네는 Kamoli를 군대의 책임자에서 축출시키고 중장 Maaparankoe를 앉혔다.

연립정부와 경쟁 관계에 있는 정당들은 타베네 총리가 명백히 불신임투표를 막기 위해 의회를 중지시키고 정권을 쥐었다고 의심했다.

 Thakalekoala는 이 협정이 마세루의 정치 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협정에 동의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법률을 복원시키고 평화와 안정을 회복시키기 위한 모든 수단을 소진했습니다." 그는 말했다.

"이 협정이 모든 정당에 의해 만장일치로 동의되었다는 사실은 이 터널의 끝에는 희망의 빛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것이 국내에 만연한 긴장을 느슨하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는 바소토인(Basotho-레소토 국민들을 지칭; 역자 주)들은 만족한 것처럼 보이며

각 정당들이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침몰상황과 불안정함, 그리고 긴장을 해소시키기 위한 합의에서

역할을 지속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정 역

 

 

 

Lesotho Leaders Sign Agreement to End Political Feud

 

Peter Clottey

 

 

Political parties in Lesotho’s coalition government signed the “Maseru Facilitation Declaration” agreement on Thursday, which could ease the prevailing political tension that recently led to an alleged attempt to overthrow Prime Minister Thomas Thabane’s government.

 

Accord

 

The stipulations of the agreement, mediated by South Africa Deputy President Cyril Ramaphosa and backed by the Southern African Development Community (SADC), include the reopening of the suspended parliament, as well as the dissolution of the lawmaking body in November to pave the way for elections to be held next year.

 

The agreement was signed by the nine political parties that have officially registered with the electoral commission. They include the three parties that established the coalition government and six other opposition groups.

 

“Parliament would be reconvened by the head of state King Letsie III on 17th October 2014National general election would be held towards the end of February 2015 on a date to be set by the king,” according to the prime minister’s spokesman, Thabo Thakalekoala, who announced the deal.

 

“Parliament would be dissolved at the beginning of December 2014 to prepare for the holding of the general election the business of parliament between the 17th October 2014 and its dissolution will be strictly limited to the passing of budget for the holding of the elections and all other elections related matters,” he said.

 

Insecurity

 

Thakalekoala said South African Deputy President Ramaphosa held a meeting with Lieutenant General Tlali Kamoli before the political parties signed the agreement. Kamoli has been accused of masterminding the attempt to overthrow the coalition government -- an accusation he denies.

 

“That meeting was just to pave way for a series of consultations and meetings that [he] would be holding next week when he comes to Lesotho solely, to address the security concerns and challenges facing the country,” said Thakalekoala.

 

Thabane removed Kamoli as head of the armed forces and replaced him with Lieutenant General Maaparankoe.

 

Political tension

 

Rival political parties in the coalition government accused Prime Minister Thabane of a power grab after he suspended parliament in an apparent move to avoid a vote of no confidence.

 

Thakalekoala agreed with the assessment that the accord could end the political fighting in Maseru.

 

“The signing of this agreement is a sign in the right direction, since we had no alternative. We were exhausted, all means of trying to restore law and order to restore peace and stability in this country,” he said. “The fact that this agreement was signed unanimously by all political parties shows that there is some light at the end of the tunnel, and we are hoping that this will ease the prevailing tension in the country right now.”

 

He said Basotho --as citizens of the kingdom are called -- appear to be pleased, hoping the political parties will keep their part of the bargain to ease the insecurity, economic foundering and tension faced by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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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리카] 중국과 남수단 - 분쟁 속 경제 연계. 남수단

2015. 3. 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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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리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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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llafrica.com/stories/201409150859.html 

 

 

 

중국과 남수단 - 분쟁 속 경제 연계

 

 

신생국가인 남수단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2011년 후반 독립 후 급격하게 성장하는 추세다.

중국과 남수단의 공식적 지표에 따르면 현재 남수단에서 대략 100에서 140개의 중국 기업이 활동 중에 있다.

2008년 이후 중국과 남수단 정부는 약 100억불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 뒤 중국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 남수단에 80억불 상당의 프로젝트를 추가로 지원할 생각이 있다고 표명했다.

그런데 201312월 발발된 분쟁으로 인하여 남수단내 급증하던 중국의 경제적 연계와 그곳에 활동 중인 중국기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분쟁 이전에는 석유가 쌍방의 경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었다.

석유 산업 내 중국국영석유회사(이하 CNPC)의 거대한 투자 지분과 함께

 남수단의 최대 수용 능력에서 중국으로 수입되는 석유 비중의 대략 5%를 차지한다.

또한 중국 회사들은 비 석유분야 투자에서도 그 흔적들이 엄청나게 눈에 띄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특히 도로 건설에 적극적이다.

예를 들어 Shandong 고속도로 기업에서 진행중인 1,043 km길이의 Juba-Rumbek-Bentiu 고속도로 프로젝트와

Malakal 지역의 파손된 도로 개선 프로젝트인 Sinohydro 등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백나일강 지역 주변에 위치한 몇몇 작은 규모의 농장에도 중국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닝샤주(Ningxia)는 남수단 농산부와 2012년 농업협력과 쌀 경작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사실, 쌍방의 경제적 협력은 201312월 까지 최고 속도로 달려왔다.

분쟁 발발 5일 전, 주바에서 열린, 중국 수출입 은행(Exim Bank)과 남수단 금융부가 공동 주체한 남수단-중국 발전 협력 포럼에는

 약 200여개의 산업 및 경제 대표들이 참석했다.

또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중국수출입은행은

남수단의 취약한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위해 20억불의 대출자금을 준비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수단에 파견된 중국 대사 ‘Ma Qiang’1215일 주말에 남수단자유당과의 회담 후

 남수단 대사와 함께 주바 공항의 혁신에 대해서 체결하는 것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분쟁 발발 후, 이 계획들의 현실은 20142월에 한 Ma 대사의 발언으로 보건대 가속도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이제 모든 상황은 변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업들은 중지상태입니다.”

중국의 주안점은 남수단내 중국이 지금까지 해온 투자와 자국민에 대한 보호로 옮겨갔다.

모든 가능성 측면에서 중국 지도부는 남수단측 지도부로부터 보장을 받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더 나아가 주바는 중국에 강력한 신뢰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7월과 8월 베이징 회담에서 남수단 부통령과 외무부장관 둘 다

CNPC회장과 중국외무부 장관에게 석유 노동자들과 장비의 안전에 대해서 보장했다.

1220CNPC는 비핵심인사와 생산직이 아닌 사람들을 철수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1, 2, 4번 구역내 운영은 완전히 중지되었으나 3번과 7번 구역은 최소 단계의 스태프들만이 운영중에 있다.

 이미 남수단의 석유 생산은 하루당 245,000배럴에서 하루당 160,000배럴로 30%로 떨어졌다.

 

 

박유택 역 

 

 

 

 

 

South Sudan: China and South Sudan - Economic Engagement Continues Amid Conflict

ANALYSIS

 

By Zhou Hang

China's economic engagement with South Sudan, the world's youngest country, is growing rapidly since the latter's independence in 2011. According to the Chinese and South Sudanese official statistics, around 100 to 140 Chinese enterprises currently operate in South Sudan.

 

Since 2008, they have concluded agreements worth about 10 billion USD with the South Sudanese government, and the latter through official channels has expressed willingness to have Beijing's support for projects worth 8 billion USD. The outbreak of violent conflict in December 2013 poses challenges to China's burgeoning economic engagement with South Sudan and the normal operations of Chinese companies there.

 

Prior to the on-going conflict, oil evidently featured as the most significant component of the bilateral economic relations. With China National Petroleum Corporation's (CNPC) large investment stake in the oil industry, South Sudan, at its full capacity, accounts for approximately 5 % of China's imported oil.

 

The traces of Chinese companies' involvement in non-oil sectors are also increasingly visible. They are particularly active in road construction, such as Shandong Hi-speed Group's 1,043 km-long Juba-Rumbek-Bentiu road project and Sinohydro's project of upgrading poor roads in Malakal, to name but a few. Although both sides often identify agriculture as an important area for further cooperation, concrete results seem to be unimpressive.

 

Some small-scale farms in which the Chinese have invested are reported to be located around the White Nile River region. Ningxia province also signed a MOU with the South Sudanese Ministry of Agriculture in 2012 on agricultural cooperation and rice planting.

 

In fact, bilateral economic cooperation was moving at full speed until December 2013. Five days before the conflict erupted, the Export-Import Bank of China (Exim Bank) and the South Sudanese Ministry of Finance co-sponsored the South Sudan-China Development Cooperation Forum in Juba, attended by some 200 industrial and commercial representatives.

 

Also, the Exim Bank was reportedly preparing to offer 2 billion USD in loans to develop South Sudan's fragile economic and social infrastructure; and China's Ambassador to South Sudan Ma Qiang was planning to sign the Juba airport renovation deal with the South Sudanese counterpart after the SPLM's party conference on that weekend of 15 December.

 

However, the realization of these plans appeared to lose momentum after the eruption of conflict, as Ambassador Ma conceded in his interview in February 2014, '[u]nfortuantely, everything has changed ... So everything is on hold.'

 

Beijing's focus is shifting to the protection of Chinese investments and nationals in South Sudan. Chinese leaders endeavour in every possible encounter to seek assurances from their South Sudanese counterparts.

 

Furthermore Juba makes strong promises to China too. For instance, in July and August the South Sudanese Vice President and Foreign Minister both promised to ensure the security of oil workers and equipment during their meetings in Beijing with the Chairman of CNPC and the Chinese Foreign Minister.

 

CNPC had decided to evacuate personnel on non-key and non-productive positions on 20 December. Its operations in Blocks 1, 2 and 4 have completely shut down, while those in Blocks 3 and 7 operate with a minimum level of staff presence. South Sudan's oil production has already dropped by over 30 %, from 245,000 barrels per day to 160,000 barrels p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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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내전에 관하여

2012. 7. 17. 21:35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내전에 관하여

 

 

 

수단은 아프리카 53개국 중 가장 면적이 넓은 국가로 영토의 절반이 나일강의 중류 및 상류의 분지이며 북동쪽 끝이 홍해에 면한 짧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BC 3000년경에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수단의 북부지역인 누비아를 침략한 후 이집트와 교류가 본격화되었고 BC 7세기경에는 누비아이들이 세운 쿠쉬왕국이 이집트를 정복하여 지배함. 6세기에는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나 7세기부터 아랍인들이 수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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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이래로 남부지역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있어왔고 1956년 독립이후에도 아랍인들과 무슬림들에 의해 중앙정부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남부세력은 차별철폐, 민주화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치/독립을 요구하면서 수단인민해방군(SPLA)를 조직하여 정부군과 대립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인종구성은 아랍인들은 약 39%, 아프리카인들은 약 69%이며 종교적으로는 수단의 북부와 중부에는 약 75%를 차지하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무슬림 수니파가 살고 있으며 산업으로는 주로 농업이 발달해 있고, 남부는 약 25%를 차지하는 딩카족이나 뉘르족, 실루크족 등 나일 사하라 족이 기독교와 전통종교를 믿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발달이 미약하여 남북간의 뚜렷한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부는 영국의 통치로 영어사용자가 많은 편이고 135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주요 언어만도 30여종이나 된다.

 

 

1956년 영국-이집트 령에서 독립할 때부터 내전에 발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다. 1969년 구데타로 집권한 누메이리 정권이 1983년 자치를 유지하고 있던 남부 3개주에까지 이슬람법(Sharia)을 도입함에 따라 음주, 간통 도둑질에 대해 공개적인 태형이나 수족을 절단하고 남부의 자원을 확보하려고 하자 흑인 기독교도들이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하였다. 

 

1989년 바시르 장군이 누메이리 정권에 대한 구데타 이후 군사독재를 강화하고 이슬람원리주의의 민족이슬람전선(NIF : National Islamic Front)과 손을 잡고 이슬람법의 적용을 강화함. 비서구노선을 강화하여 이란, 이라크, 리비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의 입국을 환영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바시르정권은 내전종결위해 연방제이행을 선포. 인민해방군은 내부권력투쟁의 심화로 분열과 혼란을 겪고 3개의 파벌로 나누어진다. 1992년 정부군의 대공세와 이집트의 수단정부 지원으로 열세에 몰린 인민해방군은 1992년 5월 나이지리아의 중재 하에 아푸자에서 휴전협상을 체결하였으나 1996년 SPLA등 7개 세력이 민족민주동맹(NDA)를 결성 반정부 공세를 감행하였다.

 

 


1999년 수단정부는 수단반군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3개월간의 국가긴급사태를 선포하고 국가의 모든 권력을 오마르 알 베시르 장군(현 대통령)에게 위임하였다. 수단은 내전으로 인하여 약 20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난민은 약 450만 명 이상이 발생하였다.

 

수단 정부는 587개의 부족 중 단지 19개 부족이 중심이 되어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하나의 수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남부 3개주의 소수종족은 기독교와 원시종교 믿으며 자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수단 내전은 본질적으로는 반정부 분리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종교 부족간의 갈등과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원전쟁의 양상을 띠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수단의 내전은 종교적인 부분보다는 자원의 공유와 문화적인 충돌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북부의 수단인 들은 남부의 문화를 경멸하고 있으며 토착민들을 지배아래 두는 것을 신성한 의무처럼 보고 남부의 석유자원개발에 대해서도 자기들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파간 이념간 벌어지는 내전상황과는 달리 수단의 내전상황은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기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토착민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분리 독립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단 분쟁은 강대국의 직접적 이익이 걸려있지 않고 그 영향범위가 내부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수단의 내전상황은 수단정부가 분리독립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며 최선의 방책은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무장대결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올해 5월에 수단정부와 남부 반군인 수단인민해방군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서 지난 21년간의 수단 내전을 평화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개입으로 수단 정부와 최대의 반군조직인 인민해방운동(SPLM) 사이에 맺어진 평화협정이라는 데 더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수단의 평화정착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상당한 난관이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의 평화협상은 최종적인 것도 아니며 다르푸르 지역 같은 경우는 별개의 협상이 진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차후의 협상에서도 권력분배의 문제와 수도 카르툼에 대한 종교적 영향력 행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수단은 국가의 경제발전과 정치적 생존을 위해 테러지원국의 오명을 씻고 1989년 이후 계속되어온 경제 제제조치가 해제되기를 바라는 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맞물려 수단의 평화정착을 모색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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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다르푸르(Darfur) 내전

2012. 7. 17. 21:33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다르푸르(Darfur) 내전

 

 

 

 

다르푸(Darfur)지역은 수단의 서쪽, 정확히 말하자면 차드(Chad)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원주민들은 아프리카계와 아랍계가 섞여 있으며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프리카계인 - 퍼르(Fur)족, 마살리트(Masalit)족, 그리고 자그하와(Zaghawa)족 -이 다수족이며 인구는 약 600만정도이다. 2003년 초부터 수단정부군이 지원하는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Janjaweed)와 두 개의 아프리카계 반군들 사이에서 종족분규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으로 구타와 고문, 노예, 소년병,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 강간, 인종청소 등 내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인권남용의 백태가 보여지고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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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분쟁으로 인해 약 3만명이 숨졌으며 약 20만명이 이웃 차드에 피난해 있고 약 1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올해 말에는 약 220만명이 국제사회의 구호를 필요로 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03년 아프리카 부족들이 중심이 된 두 개의 반군집단 - 수단 인민해방군(Sudan Liberation Army/Movement : SLA/SLM), 정의평등운동(Justice and Equality Movement : JEM) - 이 다르푸 지역의 경제적 소외를 종식시키고 아랍인들에게 치우쳐 있는 국가권력을 공평하게 분배할 것을 주장하며 반군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또한 다르푸 지역은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북쪽의 유목민 집단들이 가뭄과 사막화로 인해  아프리카계 주민이 살고 있는 다르푸 중심지역을 자주 침범하는데 대해 정부에 대책을 호소했으나 정부의 무대응으로 일관한데 대한 반발도 작용하였다. 

 

반면에 아랍계 주민들은 다르푸 지역에서 아프리카계 주민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소외된데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1989년 바시르 장군이 누메이리 정권에 대한 구데타 이후 군사독재를 강화하고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이슬람법의 적용을 강화하였으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수단정부가 의도적으로 아랍 주민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주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수단정부군중 많은 사람들이 다르푸지역 출신으로 수단정부군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일종의 대리전을 치루게 함으로서 인권문제에 대한 국내외적 비난을 피하고 다르푸의 아프리카계 민족을 제압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수단정부는 다르푸와 차드의 가난한 아랍계 유목민들을 대상으로 잔자위드라는 무장단체를 만들게 하고 무장, 훈련, 장비등 모든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또한 이들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행위에 대해 죄를 묻지 않는 일종의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 단체의 지도자들은 과거에 농경마을을 공격했던 범죄경력을 가지고 있다. 진자위드라는 뜻은 다르푸인들 사이에 ‘산적(bandits)' 또는 '노상강도(highwaymen)'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약 20,000명의 병력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공격시 수단 공군의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복장도 수단정부군과 비슷한 녹색의 카키색 복장이고 수단정부에서 허가한 위성전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단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수단정부군과 잔자위드가 반군에 대한 공격보다는 시민들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공격과 파괴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증거에 따르면 수단군과 진자위드 민병대의 공격은 민간인이 거주하는 마을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수단공군의 공군력이 동원되고 있는데 이는 삶의 주거지를 완벽하게 파괴함으로서 거주지를 포기하고 떠나게 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잔자위드는 아프리카계 주민들에 대한 공격시 모든 것을 초토화시킴으로서 그들을 난민화시켜 쫒아내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살해, 강간, 약탈은 물론 구호품에 대한 약탈도 서슴지 않고 있다. 정부군은 언제나 먼저 도착하고 제일 나중에 철수함으로서 수단정부군과 잔자위드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집단임을 알 수 있다.

 

다르푸 지역의 분쟁은 정확히 종교적 분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거의 모든 다르푸 인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군과 진자위드는 모스크와 코란을 신성모독하며 모스크 안에 피난해 있는 사람과 지도자들을 살해하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정부군이 공격하기 전까지 수단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기껏해야 서부지역사람들 또는 다르푸 사람들 정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분쟁으로 인해 민족적, 인종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즉 국가의식은 더욱 희박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분명히 종족적, 인종적 분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먼저 다르푸 지역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을 수단정부에서 막고 있으며 차드지역으로 난민이 들어가는 것도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사회가 원조를 위해 이 지역에 들어가는데 약 4개월이 걸리고 있다. 도로상황도 엉망이고 철도도 다르푸 남부의 냘라(Nyala)지역으로만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수송로가 좋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무장세력이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단정부는 21년간의 남부의 내전에서도 국제사회의 구호노력을 방해하고 좌절시켰다. 수단정부의 이 같은 방해와 함께 남부지방에 첫 번째 기근이 들었던 1988년에는 약 250,000명이 생명을 잃었으며 두 번째 기근이 들었을때는 약 100,000명이 사망하였다. 수단정부는 다르푸지역에서 비슷하게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다.

 

수단정부는 다르푸 사태가 정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협상보다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르푸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실제적인 권한을 주지 않고 일당제 국가처럼 국가의회당(National Congress Party)의 주도하에 비둘기파인 고위공무원을 매파인 군 인사로 대체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국제사회가 이라크 사태에 대하여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고 국제방송매체들이 이 지역에 대한 자유로운 취재가 어려운 점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두 반군집단은 2004년 4월 8일에 휴전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수단 공군에 의한 폭격과 진자위드의 계속된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진자위드는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으로 피난한 시민들에게 테러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단정부는 제일먼저 진자위드를 무장해제시키고 인권남용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삶의 주거지를 빼앗기거나 떠나온 사람들에게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본다면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처럼 인종적 화해, 보상, 그리고 정의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사회는 무엇보다도 수단정부에 대해 잔자위드를 무장해제시키고 인종청소 등 인권남용에 대한 범죄행위를 조사할 것을 요구해야한다. 특히 전쟁의 수단으로서 강간과 살인등을 일삼은 전쟁범죄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수단정부가 약속한 위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게 하려면 국제사회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지금 현재 약 100만명이 넘는 다르푸 사람들이 보건과 위생, 영양, 주거지등은 물론 계속되는 공격으로부터 보호되기 위해 긴급하고 충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단정부는 한해 약 10억 달러에 이르는 남부에서 나는 원유수입으로 인해 중국, 러시아, 벨로루시등으로부터 군사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고 내부적으로는 2002년 10월 남부지역의 휴전으로 인해 다르푸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또한 국제사회의 공조로 무기금수조치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이 다르푸 지역의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에 수단에 대한 제제조치를 추진중인데 수단은 제 2 의 이라크 사태를 언급하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는 수단정부의 노력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UN은 남부 지역의 휴전과 함께 휴전감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보리는 이러한 감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6500명의 군대를 파병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이 병력은 다르푸 지역에만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수단 전 지역에 배치되고 기간도 짧기 때문에 그 효과가 의심되고 있다.

 

4월 8일 휴전협정에 따라 수단 정부와 두개의 반군집단은 아프리카 연합(Africa Union)이 휴전을 위해 휴전 위원회를 설치하는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AU는 약 120명의 휴전감시요원과 270명의 무장 보호병력을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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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동부 아프리카

2011. 1. 20. 11:31

1.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Tanzania)와 케냐(Kenya), 그리고 에티오피아(Ethiopia)를 포함한 그레이트 아프리카 리프트 밸리(the Great African Rift Valley)는 고대 인류의 화석이 풍부하게 발견되는 지역으로 인류학자들이 동아프리카가 인류의 기원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지역이다. 역사시대에 고대 이집트(Ancient Egypt)는 가장 강력한 국가였으며 그 당시 가장 가치 있는 상품이었던 유향(乳香)(frankincense : 동아프리카․아라비아산 감람의 일종. 이스라엘 민족이 제례에 쓰던 고급 향료)과 몰약(沒藥 ; myrrh ; 미르라)을 생산하였다. 현재의 소말리아(Somalia)지역은 “푼트의 나라(Land of Punt)”로 알려진 지역이었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해안지역은 아라비아(Arabia), 페르시아(Persia), 인디아(India) 심지어 중국까지도 교역하던 초기 동부 아프리카의 상업 도시국가들이 성장하였다. 하지만 동부 아프리카는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하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과 달리 그들의 경제를 부흥시켜줄 수 있는 천연자원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부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삶을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가 적은 생존형 농부로 살고 있다. 농부들은 기근과 같은 큰 어려움을 가져오는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에 지배를 받는다. 개인당 GNP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브룬디(Burundi) 그리고 말라위(Malawi)가 가장 빈곤한 국가로 분류된다. 1990년대 말에 셋으로 분리된 소말리아(Somalia)의 통계숫자는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효과적인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 소말리아의 경제는 붕괴되었다. 하지만 2000년에 소말리아 남부 지역에 과도 의회(transitional assembly)가 설립됨으로서 다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푼트랜드(Puntland)라 불리는 지역인 북동지역은 소말리아의 재구성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머지 분리주의자들은 소말리아 랜드(과거 브리티시 소말리아 랜드(British Somalialand))가 분리된 채로 남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전 그리고 다른 분쟁은 몇몇의 국가들에게 경제적 발전의 실패를 가져다주었다. 1952년에 에티오피아와 합병된 에리트리아(Eritrea)는 1993년에 오랫동안 끔찍하게 지속되었던 내전이 끝나면서 독립하게 되었다. 에리트리아와 에티오피아의 불편한 관계는 국경 분쟁이 발생한 1998년까지 지속되었고 평화계획이 채결된 2000년에 가서야 종식되었다. 브룬디와 르완다(Rwanda)는 후투(Hutu)와 투치(Tutsi) 두 인종간의 소름끼치는 분쟁에 의해 크게 흔들렸다. 많은 난민들이 무자비한 도살로부터 달아났지만 많은 수의 난민들이 자이르(Zaire ; 현재의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불안정을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과거 영국령 동부 아프리카(British East Africa)에 속했던 우간다(Uganda) 또한 비교적 이웃 국가들에 비해 안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쟁들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1990년대에 보다 자유로운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탄자니아는 지금 현재 발전을 거듭하여 케냐의 상황에 근접하고 있다. 케냐는 독재적인 일당제 체제를 유지하였지만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하여 동아프리카의 관문 국가가 되었다. 1960년대에 이 3개의 영국령 동아프리카국가들은 동부아프리카 연합(East African Community)의 창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깊은 정치적, 경제적 차이는 범아프리카 협력(pan-Afriacn cooperation)의 기회를 어렵게 했다. 하지만 1999년에 새로운 협약이 케냐, 탄자니아, 그리고 우간다에 의해 서명되었고 이 계약의 목표는 관세 연합, 공동시장, 화폐 통합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합을 위한 것이다.

말라위(Malawi) 또한 하스팅즈 카무트 반다(Hastings Kamuzu Banda)의 독재아래 고통 받았다. 하지만 1993년에 다당제가 복구되고 1994년에 선거가 실시되어 반다가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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